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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막 지난 8월 17일,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에 몰려든 민간인들로 아수라장이 된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탈출을 위해 미군 수송기에 매달렸다가 추락하는 비극적 광경을 목격한 우리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영상대로라면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화와 광주에서의 살육을 경험한, 그리고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이 탈레반에 의해 피랍됐다가 참수형을 당하기도 했던 끔찍한 기억을 가진 한국인들이라서 더욱 그러할 터였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정확한 뉴스를 접하고 있는 걸까? 지난 몇 주 동안 미디어를 채웠던 그 많은 정보 가운데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가 직접 취재해서 얻어낸 것은 얼마나 될까? 대개는 CNN, BBC, AP 등 영미계 유력 언론이나 뉴스통신사를 인용하는 데 급급하고, 그마저도 대단히 선정적이고 단편적인 ‘해외토픽’ 수준의 기사를 양산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여 관련 전문가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희수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겸 석좌교수. 평생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봉직하면서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국내의 척박한 지식 환경을 조금이라도 풍성하게 해보려 노력해온 전문가다. 그를 만나자마자 “방송국에 많이 초청돼 가시는 지금, 아프가니스탄 관련 국내 보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떠하신지” 물었다.
“조금 답답하네요. 2001년에 9·11이 터졌을 때, 당시 세 개 방송국 뉴스를 동시에 커버하면서 근 한 달간 24시간 내내 방송에 메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방송 진행자가 제게 던졌던 질문이 생각나요. ‘선생님, 지금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어디쯤 숨어있는 것 같습니까?’ 그 말을 듣고 경악했어요. 제가 그랬죠, ‘아마 미국 CIA도 모를 거다. 어떻게 그런 질문을 인문학자에게 던질 수 있느냐.’ 그 당시에 우리가 얼마만큼 다른 세상에 대해 무지한가, 세계의 어떤 지역에 대해서는 제3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지식을 갖고 있는, 국제 지식의 양극화 현상이 굉장히 심각한가를 절감했죠. (…) 근데 딱 20년 만에 또 이런 일이 생겼잖아요. 하지만 우리 언론이 이에 관련해서는 별반 성숙하지 않았다고 느끼죠.”

전쟁에 대한 올바른 질문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을 묻는 장면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앎이 질문을 구성한다. 그리고 답변자의 전문성에 대한 고려 역시 적절한 질문을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시각각 돌아가는 국내 뉴스를 좇기도 바쁜데, 평생 가본 적도 없는 아프가니스탄과 평소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알카에다(Al-Qaeda)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까. 오사마 빈 라덴이 원흉이라니, 미국 군사작전의 대상인 그의 행방에 대해서나 물어야겠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펜타곤 지하 벙커에서 미국 대통령과 미군 장성이 숨죽이며 위성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도 그렇지 않은가 하고 진행자는 생각했음 직하다.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이란, 이를테면, 어떤 걸까?
“전쟁이란 건 당사자가 있잖아요. 모든 전쟁은 악이지만, 전쟁의 당사자는 선과 악으로 나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걸 편으로 갈라서, 결국 전쟁의 한 당사자의 생각과 시각, 시선과 정보만 전달해주는 건, 비록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정보 왜곡을 낳는)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죠.”
요컨대 전쟁을 내 편과 네 편, 선한 쪽과 악한 쪽으로 손쉽게 나누고, ‘우리 편, 착한 편’의 시각으로 채색된 정보에 바탕을 둔 질문, 그리하여 현재 상황을 균형 있게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미국과 동맹을 이루고 있고, 우리의 시각 역시 미국이 필두에 선 서방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관점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미국이라고 하는 어떤 합법적이고 정통적이고 민주적인 가치의 수호자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어떤 생지옥과 같은 그런 상, 이게 우리가 지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이죠. 하지만 정작 지금 이 시각,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전혀 모르잖아요. 공항에 탈출 러시가 일어나는 것 등은 조작된 것이 아니라 끔찍한 현실이죠. 그러나 과거에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이 (…) 생존을 위해 도망가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전쟁 이후에 나타나는 후유증이고 일반적인 현상이죠. (…) 그러나 그에 해당하지 않는 아프가니스탄 일반 국민의 실상인 것은 아니거든요. 그들의 시각에서는, 좀 과격한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최근 40년 동안 가장 안정된 시기를 맞은 걸 수도 있어요. (…) 소련하고 전쟁 10년, 그다음에 내전, 탈레반 정권 잠깐 5년, 그러고 나서 다시 20년 전쟁. 이 4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처음으로 미국의 공습 위협 없이,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그런 삶을 살다가, 대포 떨어질 위험 없이 발 뻗고 잘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 미국과 서방세계의 관점을 담은 외신들은 자신들에게 협력했기 때문에 탈레반에 의해 박해당할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들이 마치 아프가니스탄 민중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비치는 뉴스 전달에 치중할 만하다. 그리고 그걸 다시 받아서 전달하는 우리는 아프간인들 다수가 탈레반의 압제에 노출돼 버린 비극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공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탈레반의 지배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을 가져다줄까? 미래의 일을 단언할 순 없지만 결국 과거의 일로부터 판단하는 수밖에 없는데.
“저의 인류학적 경험에 의하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탈레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좋아할 리가 없죠. 인류적 보편 가치를 위반하는 그들이니까요. 하지만 왜 탈레반이 유일한 정치적 대안으로 존속할 수 있었을까(를 질문해야죠).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가능했거든요. 분열 속에서, 중앙정부의 지원이 거의 미치지 않는 곳에서, 물과 전기와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많은 지역에서 탈레반이 해줬고, 따라서 비록 마음에 안 들지만, 생존을 위해서 그들에게 협조해온 거죠.”
이슬람을 보는 우리의 시선, 서구와는 달라야
미국이나 유엔이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명분을 걸고 군사적 행동을 통한 개입을 시도한 경우는 적지 않다. 하지만 그 결과 내전이 항구화되고, 결국 수렁에 빠진 미국이 슬그머니 발을 빼지 않을 수 없었던 사례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9·11 테러에 대한 응징을 표방하고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한 군사행동은 ‘침공’에 가까웠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타격을 가할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외세에 대한 저항을 내걸고 더 극단적인 세력이 대항 명분과 근거를 확보하는 문제도 일으켰다. 결국 누가 됐든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원동력 삼아 탈레반과 같은 조직이 세를 불렸다는 이야기다. 자유주의적 가치를 외부로부터 주입하려다가 오히려 통치력을 지닌 독재를 불러들이는 난감한 문제.
“뉴스에 나오는 인터뷰는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흔드는 시위자들을 대상으로 하곤 하죠. 근데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옹호하는 사람이 과연 인구의 1%나 될까? 아직도 저항하는 세력이 있고 마치 그게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보편적 정서인 것처럼 하면 우리의 판단에 혼란이 생길 거란 말이죠. (…) 20년 전 탈레반이 우리에게 했던 악행만 부각시키는 것보다, 40년 만에 처음으로 자주권 행사의 기회를 가지게 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시각에서, 탈레반의 지배를 점차 민주적인 것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그 국민들의 몫이란 말이죠.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그러나 그 시작이 제일 소중하다고 봐요.”
당장은 탈레반에 의한 것이라서 우려할 수 있지만, 어떤 통치가 됐건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자생력을 기대하고 그것을 촉진하는 것이 (더 큰 실패가 예정된 개입보다는) 바람직하다는 인식으로 읽힌다.
“서구에는 이슬람 포비아가 있어요. 1,000년 넘게 갈등하고, 지배받기도 했던 서구는 이슬람에 대해 공포심과 적대적 DNA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유럽과 미국의 시선으로 이슬람권의 문제를 바라보는 관습을 넘어서야 해요.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동 및 이슬람권과 그런 불편한 경험을 가지지는 않았단 말이죠. 물론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류의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데 깊숙이 발을 디디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1,200년 적대의 트라우마를 가진 당사자가 아닌, 우리 관점에서 (이슬람권과의) 협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류 열풍이 거센, 한국을 좋아하고 우리를 롤모델로 삼아 따라오고자 하는 중동 및 이슬람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서구의 그것과는) 달라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언론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거죠.”
지역 전문기자의 필요성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 가치에 충실한 이들에게는 이희수 교수의 이런 입장이 과도한 ‘이슬람 편향’에 따라 ‘압제를 용인’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권에 대한 지식이 매우 얕은 상황에서, 오랜 역사적 갈등과 전쟁의 한쪽 당사자인 미국과 서구의 시각에만 치우친 정보는 우리로 하여금 독자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사고를 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진 우리 스스로의 입장을 갖고 독자적 취재를 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적어도 외신을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참조하는 게 당장은 필요할 테다.
“뉴스 보도라는 건 어차피 약간은 선정적일 수밖에 없고 깊이가 얕은 한계가 있죠. 하지만 해외 유력 언론의 전문 칼럼니스트의 생각은 굉장히 깊이가 있어요. 대단히 내공이 있고, 수십 년간 그것만 해왔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죠.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 뉘앙스가 미국의 국익과 연결돼 있음을 염두에 둔다고 하더라도, 문제에 접근해서 서술해내는 논리라든지 시선이 결코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오피니언 리더들의 칼럼은 상당히 비중 있게 봐줘야 하죠.”
따라서, 현재의 문제를 ‘자유주의적 편향’에 대항하는 ‘이슬람적 편향’의 이념적 구도로 보면 인식이 넓어질 수가 없다.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지배적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균형 잡힌 정보와 견해, 그리고 미국과 서방 중심적 이해관계와 우리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대비시켜 고려하는 현실주의적 사고가 중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이런 방향으로의 개선을 위해선 우리 지식사회와 언론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할 것임은 더 말해 무엇하랴.
“기성 언론인들이 스스로 전문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또 9시 뉴스나 이런 거에는 완전히 전문적인 정보를 주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되 적절한 깊이를 갖고 있는 뉴스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각 언론사에 당연히 (각 지역) 전문기자가 있어야 할 것이고, 만약 당장 그게 어렵다면, 이런 글로벌 이슈가 생겼을 때 그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팀, 즉 언론 쪽하고 전문가나 학자들이 협업할 수 있는 24시간 태스크포스가 가동되는 게 좋겠죠. 한두 사람만의 생각을 듣고 옮기는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스크리닝을 할 수 있는 전문가 풀이 형성돼 있으면, 지금과 같은 개별 플레이로 인해 혼란스러운 정보가 양산되는 걸 방지할 수 있을 거라 봐요.”
적어도 공영방송이나 국가기간뉴스통신사라면 지역 전문기자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고, 직접 취재할 수 없는 영역에 관련해서는 다양한 전문가 네트워크를 상시적으로 운영하면서 정보와 시각을 교환하다가 유사시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충분히 귀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는 조언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추락하는’ 현실을 지켜본 바로는, 이런 투자를 할 만한 여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되다 보니, 너무 패배주의에 빠져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이슬람 문명 이해의 주춧돌을 놓다
“제가 외교부에 이런 제안을 했어요. 국가 예산을 들여서 나라별로 전문가 포럼을 운영하도록 지원해라. 거기에 코트라(KOTRA) 직원을 했던 사람, 오랜 기간 사업을 해온 사람, 또 교민이라든가 현지 사정에 능통한 학자와 언론인들 십수 명이 매달 한 번씩은 만나게 지원해줘서, 평소에 토의하고 교감을 나누다가, 이런 위기 상황이 생기면 딱 모여서 정제된 정보를 언론, 국가, 사회, 기업에 주면은 얼마나 좋으냐. 그거 얼마 돈 드는 일도 아니다. 이제는 중동이니, 동남아시아니 그렇게 뭉뚱그리지 말고, 적어도 국가별 전문가 그룹을 만들어라. (…) 지난번에 오만에서 아랍-중국 다이얼로그 콘퍼런스에 제가 게스트로 초대받아서 갔어요. 중국에서 각 나라에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도록 젊은 박사급 인력을 보냈더라고요. 중국은 아프리카를 전공하는 인력이 1,200명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가 질리는 거죠. 우리나라? 10명 만들기도 힘들 거예요.”
십분 공감하는 말이다. 우리 학계는, 적어도 주류만으로 치자면, 거의 100% 가깝게 미국 유학파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미국 전문가인 것도 아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 문화, 정치, 사회, 경제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지역 전문가’가 얼마나 될까? 그러니 그보다 훨씬 취약한 유럽은 말할 것도 없다.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관련 지역 전문가는 조금 나으려나?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나 스스로를 포함, 대부분의 학자는 엄밀히 말해서 지역 전문가라기보다는 ‘대충’ 그쪽을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아는 사람 정도임에도 그쪽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마치 정통한 것처럼) 답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경험, 수없이 겪었다. 중동, 아프리카, 근동, 동남아시아 등 이른바 제3세계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게 있을까.
“저는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제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아랍은 악마였죠. 저도 천주교 배경으로 자란 사람이라 다르지는 않았지만, 마침 이집트의 저명한 교수가 저희 학교에 와 계셨는데, 그 교수를 좋아해서 찾아다니니까 그분도 많이 좋아하시더군요. 그래서 매일 이슬람권에 관한 책을 같이 읽었어요. 그렇게 1년을 토론하고 나니 유학을 가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히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했고, 때마침 한국과 터키 사이에 문화 교류 협정이 돼서 이스탄불 국립대학에 정원이 생겼죠.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떠났어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제 동기들이 미국 갈 비행기를 탈 때 저는 이스탄불에 갔고 그게 제 운명을 바꾼 거죠.”
이희수 교수는, 개인적으로도, 또 사회적으로도 척박했던 환경에서, 그런 우연찮은 일들을 겪어가며, 이슬람 문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작은 주춧돌을 놓았다. 하지만 그가 애써 만들어놓은 커리큘럼을 이어줄 후배와 제자를 학교에 자리 잡게 하는 데는 딱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 그는 아쉬움과 회한을 토로했다.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은 오랜 난관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선진국으로서의 자격에 자축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이른바 ‘미라클 작전’을 통해 아프간 협력자를 성공적으로 탈출시켜 난민으로 수용한 모습은 그런 자격에 값하는 국가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대응 역량, 그리고 국제사회의 모범적 일원으로서의 책임에 값하는 지식사회, 언론, 시민의식도 갖추고 있을까? 그에 대한 아픈 질문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그에 대한 성실한 답변을 준비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 할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