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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기획연재 | 등록일 : 2021-09-30

이번 호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한국 언론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 뚜렷이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당시인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기소 돼 강제징집을 당했고, 대학 졸업 직후엔 YWCA 위장결혼식 사건으로 그 무시무시한 서빙고 보안사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이런 그를 역사의 무대 위로 더 선명히 끌어 올린 건 1986년 ‘보도지침 폭로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그는 전두환 정부가 일선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을 《월간 말》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국가는 다시 또 그를 잡아 가뒀다.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 누설, 국가 모독’ 등이었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새삼 아연하다. 정부가 언론사의 보도를 검열할 뿐 아니라 그 방향까지도 하나하나 지정하는 반민주적 행위를 해왔다는 걸 폭로한 그에게 국가보안법상의 ‘국가 기밀 누설’과 ‘외교상 기밀 누설’, 그리고 외신 기자들과 회견했다는 이유로 ‘국가 모독’ 등의 죄를 지우던 어처구니없는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제가 했던 보도지침 사건이 우리나라 내부 고발 제1호였던 셈이죠. 물론 그 당시에는 내부 고발이라는 말도 없었어요. ‘양심선언’이라고 했고, 저도 당시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서 폭로했죠. (그로 인해 옥고를 치르기는 했지만) 결국은 민주화가 됐으니 저는 좀 나은 편이죠. 아직도 기업체나 사립학교 같은 곳에서는 내부 고발을 하기가 대단히 힘들어요. 자칫하면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도 적지 않아요. (…) 고소·고발을 당해서 쫓겨나거나 오랜 기간 법정 투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내부 고발자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다는 거죠.”

 

실제로 그는 보도지침 사건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던 바 있다. 아마도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는 “신문사에서 평범한 언론인 생활”을 해왔을 거라고 스스로 짐작한다. 그래서일까, 기자협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초대 사무총장 등 언론계와 시민운동에 두루 걸쳐있는 그의 다채로운 이력 속에는 보도지침 폭로 사건이라는 첫 발자국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가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으로 선임되기 직전까지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시민운동 단체인 내부제보실천운동의 상임대표를 맡았던 것도 그렇다.

 

“법이 그래도 과거보다는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내부 고발자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나 법률적 방어막이 아직까지는 안정적이지 못해요. (…) 공익제보자 관련법도 몇 개로 나뉘어 있고요. 이명박 정부에서 행정개혁을 빌미로 국민권익위원회 틀 안에 축소시켜버렸는데, 과거의 국가청렴위원회처럼 내부 고발 사안을 전담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죠. 내부 고발을 활성화시키고 청렴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그런 제도적 대안도 필요하고요, 내부 고발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직사회나 기업체에 대한 내부 고발은 그것이 없었다면 발생했을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럼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보상이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봐요.”

 

 

김주언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뉴스1

 

 

뜻이 있다면 그 뜻을 펼칠 방안 찾아야

 

보도지침 폭로 사건을 기점으로 민주화와 언론자유, 부패 척결과 내부 고발자 보호 등의 사회 보편적 가치를 향한 초심을 유지해온 김주언이사장에게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민주화운동 세대의 전형성 같은 것이 짙게 느껴진다. 일찍이 그는 보도지침의 존재를 외부로 알릴 결심을 하게 된 건 “통제를 하는 정부나 통제를 받는 언론이 다 같이 언론 탄압과 통제라는 치욕으로부터 마침내 해방되고 구원돼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고 말했던 바 있다. 통제받는 대상뿐 아니라 통제하는 주체 역시 ‘치욕’스러움 속에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돼야 한다는 믿음. 고문과 투옥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음에도, 다시 한번 자신의 직장 생활마저도 나락에 떨어뜨릴지도 모를 폭로로 이끈 것은 분명 말 그대로의 ‘양심’이었을 테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부끄러움’의 정서, 그리고 필경 그의 가톨릭 신앙 배경에서 나오리라고 짐작되는 ‘구원’의 확신이 읽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대가 일정 부분 ‘주류화’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는 작금의 불편한 시선을 굳이 고려한다면, 그 전형성 속에는 필경 이런 것을 유발하는 요소도 끼어들어 있을 법하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실제로 그가 담당하기도 했던) 한국언론재단 연구이사나 KBS 이사와 같은 요직(?)을 독점해온 것은 아니냐는 비판을 가한다든가 시기 어린 마음으로 비아냥대는 것 말이다.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을 해온 것이 무슨 ‘자리’를 노리고 한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비판이 잘못됐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 나름대로 ‘변명’을 하자면,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언론 개혁에 대한 신념을 펼치기 위한 방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죠. 언론을 어떻게 해서든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그걸 가능하게 해줄 자리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즉 뜻이 있다면, 그 뜻을 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에요).”

 

그는 이 부분에서 무척 솔직하고 단호했다. 쉽게 말해, ‘변명’이 길고 구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바꾸고자 한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 그는 국회의원이나 기타의 선출직 권력과 같은 ‘일반적’ 직위를 추구할 일은 아니라고 봤던 듯하다. 다만 언론을 바꾸고자 했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가능하게 해줄 자원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것이 공적 자원과 집행력을 갖춘 ‘전문적’ 직위이건 시민사회 속의 운동이건, 뜻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실천’을 계속하려 해왔다. 그리고 그런 실천에 관련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려 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어떤 자리를 맡는 것 자체로 비판을 넘어선 비난이 정당화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모든 비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앉아야 할 자리를 남이 차지한 것에 대한 질시의 다른 이름인 경우도 많았다. 우리 사회의 그 수많은 공직 혹은 기타의 직위는 반드시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사회적 자원이다. 비판의 칼날은 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는 과정의 정당성, 그리고 그 직위를 점한 이후의 결과에 두어져야 마땅하다. 그래서, 김주언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언론이 더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지 물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조건에서 연합뉴스도 예외는 아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곳(으로서 그에 값하는 책임을 보여야 하는 기관)임에도, 최근 국민적으로 문제가 됐던 주요한 오보가 있었죠. 그리고 지난 몇 년간 검찰 개혁 등의 문제에서도 상당히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많았지 않습니까? 또 내년에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일반 국민으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급자 중심 개혁에서 공급자와 수요자 동시 개혁으로

 

모범 답안에 가깝지만, 그만큼 밋밋할 수도 있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검찰 개혁 등에 관련된 공정 보도 문제는 그가 말하는 ‘국민’이 모두 동일한 시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또 그는 연합뉴스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경영 감독 권한을 가진 뉴스통신진흥회의 이사장일 따름이다. 일선의 문제를 개선하기에는 거쳐야 할 너무나 많은 단계가 있고, 문제 자체의 성격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맞습니다. 연합뉴스의 대주주 역할일 뿐이고, 그것도 뉴스통신진흥회법에 의거해 사장 선임권과 경영 감독을 수행하는 정도이긴 합니다. 더욱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뿐 아니라 편집권 독립의 원칙에 따라, 뉴스 콘텐츠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어렵죠. 대신 좋은 경영진을 선임해, 편집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뉴스가 공정한지 아닌지를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잘 행사해야 하는 거죠. (…) 이번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시민 평가 방식을 처음 도입했거든요. 그랬더니 신임 사장 후보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신을 뽑아준 것은 단순히 언론계나 대주주가 아니고, 일반 시민들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시민에 대한 책임과 공영언론으로서의 책무 같은 것을 더 무겁게 느낀다고 말이에요.”

 

연합뉴스가 단지 (주요 이해당사자이자 주주이기도 한) 언론계나 (시민보다는 사실상 정부를 대행한다고 의심받는) 대주주로서의 뉴스통신진흥회를 넘어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공영’ 언론이라는 사실을 더 무겁게 받아들일 새 경영자를 선임하려고 노력한 점은 돋보인다. 그러나 듣는 귀가 너무 배배 꼬여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그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언사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아무리 신임 경영진의 본심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연합뉴스의 일선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조금은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해 보인다.

 

“이제 해야 할 부분이, 편집총국장이나 각 부서 국장급 인사를 하는 건데, 신임 사장과 임원들에게 이런 기조를 강조하며 이야기를 나눴죠. 예컨대 경제 분야에서는 전문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검찰 관련 분야에서는 지나치게 검찰 시각에 편중돼 있다는 비판이 많아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화롭고 공정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다소간 더 구체화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솔직히 편집권을 넘어 현장에 개입하는 일은 부당하고, 직접 언론 활동을 수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으로서 첫발을 뗀 그가 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최선의 현실적인 접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뜻한 바로서의 언론 개혁에 이 ‘자리’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걸까?

 

“과거에 우리가 언론 개혁을 얘기할 때는 공급자 중심의 시각에 머물러 있었죠. 공급자를 어떻게 개혁하느냐 그런 관점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제는 공급자뿐만이 아니라 수요자들도 인식을 바꿔야 할 부분이 있다, 즉 수요자들이 언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죠. 즉 공급자 중심 개혁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동시에 개혁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옮겨갔어요.”

 

그 스스로 열어젖혔던 이른바 ‘언론민주화’ 운동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그에 종속된 사주 체제로부터 편집권을 독립시키고, 언론인들의 자율성을 확보하면 좀 더 공정한 보도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혹은 희망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 그 운동이 설령 자유와 독립의 여건을 성취시켜준다고 한들, 그것이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상태에 우리 언론이 필연적으로 도달해 있으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언론 ‘민주화’가 언론 ‘개혁’으로 명찰을 바꿔 달게 된다고 한들, 공급자의 문제와 수요자 문제, 나아가 그들 사이의 경계가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는 현재 환경은 절대 녹록지 않다. 그렇다면 김주언, 그는 지금, 1986년과 2021년 사이, 그리고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 공적 직위와 운동가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이제 시민에게 1인 미디어가 있고 시민들 자체가 스스로 미디어가 되고 있는 조건에서, 연합뉴스가 진정한 공영 언론으로서 시민이 공감하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뿌리내리는 것. 물론 그게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물론 안 될 거고 뉴스통신진흥회만으로 또 연합뉴스 경영진이나 내부 구성원만으로도 안 되고, 우리 시민이 함께하는 형태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커다란 과제죠. 두 번째로는, 우리 시민사회가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더 성숙하고 더 발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들이 그래야 하고, 예를 들면 언론노조도 자신들이 신문 등 언론사 쪽(의 시각), 특히 메이저 언론에만 기우는 게 아니고 더 폭넓은 틀에서 진정한 언론 개혁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을 해줘야 한다는 거죠.”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고민

 

언론 ‘민주화’ 운동의 주축을 자처했던 이들이 변화된 환경에서도 여전히 공급자 위주의 사고, 좀 더 정확히는 언론인(과 그들이 속한 언론사), 즉 ‘공급자로서의 자신’ 위주의 문제의식으로 언론 개혁 이슈에 접근하고 있다고 그는 판단하는 듯했다. 최근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는 또 하나의 쟁점, 냉정히 말하자면 고급 정치의 숙의 대상이 아닌 저급 정치의 편 가르기용 땔감으로 던져 넣어졌고, 그 결과 우리 사회 자체라기보다는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를, 그리고 언론계와 언론학계 ‘내부’를 양분시켜 어느 한쪽의 선택을 강요하는 식으로 급속히 정쟁화된, 언론중재법 개정 관련 논의 역시 그러해 보이는데.

 

“저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명칭’보다는 피해 구제를 신속히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실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언론 전담 재판부가 신설될 필요가 있다고 보고요. (…) 많은 사람들이 느낄 때 언론은 (일반 피해자에 비해) 상당히 우월적인 지위에 있다고 보는 거고 그래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고 하면 다 좋아하죠. 하지만 그 명칭에 얽매여서 논의가 혼란해졌고 이젠 완전히 진영 논리로 싸우는 형국이 돼버렸잖아요. 언론중재법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찬반을) 얘기하지 않으면 마치 언론 개혁에 대한 얘기가 아닌 것처럼.”

 

그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입증 책임 전환에 관련된 모호성으로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언론 피해 구제의 신속성과 (배상액 등의) 실질성이 현재보다 더 크게 확보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요컨대 공급자로서의 언론인 의식을 넘어 수요자와 피해자의 관점을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언론중재법(개정안에 담긴 문제의식)이나 그런 것들은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또 (반드시 그걸 해야 한다 혹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논의가)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어요. 또 언론 개혁 입법이 이뤄진다고 해서 언론이 다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충분조건으로서가 아닌, 필요조건 측면에서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공영언론의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법이랄지, 편집권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문제 등도 중요하죠. 동시에 편집권 독립이 마치 기자 개개인의 ‘데스킹 받지 않을 자유’인 것처럼 오인되는 문제에도 유의해야 하고요. (…)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권력의 개입 이상으로 자본권력이 침입해 들어온 현실에 대한 통제, 나아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라고 봅니다. (…) 비단 법률과 제도의 개혁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시민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고 같이 변화하면서 공론장에 가깝게 만들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죠.”

 

대화가 여기에 이르니, 역시 이 문제는 짚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연합뉴스가 포털에 기사형 광고를 대량 전송한 것이 적발돼 기사 노출 차단이라는 제재를 받아야 했던 웃지 못할 현실. 우리 언론과 대중에게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공급하는 뉴스통신사가, 그리고 그것도 공영 언론이, 수익을 좇아 자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버렸고, 그로써 시민이 농락당한 것과 진배없는. 다시 말해, 바로 앞에서 김주언 이사장이 언급한 거의 모든 이슈가 꼴사납게 서로 비벼져 있는 이 상징적 사건 말이다.

 

“공영 언론을 표방하는 국가기간통신사라는 데에서, 그런 식의 기사형 광고를 거리낌 없이 전송해온 것에 대해서, 최근 연합뉴스 사장이 두 번이나 공개 사과를 하기도 했죠. 그런 일을 방치했다는 거 당연히 큰 잘못입니다. 게다가 그런 걸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입도 얼마 안 돼요. 아니 할 말로 (부끄러움이 큰 것에 비해) 수입도 크지 않은 그런 일을 관행적으로 해와 놓고도 내심 ‘우리만 한 거 아니야’라는 인식, 다른 모든 신문이나 인터넷 매체, 민영 뉴스통신사 다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는 태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문제가 이번 신임 사장 선임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였어요. 모든 후보들에게 질문을 했고, 그런 것에 연관된 문제를 모두 점검해서 다 없애버리겠다는 확약을 받았습니다.”

 

연합뉴스의 경영진 인선과 경영 감독을 담당하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시민을 대리해 해줘야 할 마땅한 책무였던 셈. 그런데 김주언 이사장의 시선은 그 너머로까지 향하고 있었다.

 

“그간의 한국 언론이, 연합뉴스뿐 아니라 모든 언론이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에 너무 의존적이에요.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거기에 종속돼서는 네이버나 다음과의 제휴가 끊어지면 자기들이 죽는 것처럼 생각하거든요. 저는 잘못됐다고 봐요. 현재도 다른 미디어 플랫폼이 많이 있고, 앞으로도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나올 텐데 그걸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죠. (…) 또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경우에도 이젠 뉴스가 (자신들의 서비스로 끌어들이는) 커다란 유인책이 아닌 것 같다, (…) 향후 몇 년 내에는 뉴스를 전면에 배치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과는 다른 쪽으로 가게 될 거라고 전망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 그렇다면 연합뉴스가 중심이 되든, 아니면 모든 신문과 기타 매체들이 뭉쳐서든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뉴스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 제가 이번 사장 후보 면접 과정에서 몇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뉴스 플랫폼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도 있었어요.”

 

그는 늘 애초의 ‘김주언’

 

우리 언론이 포털에 종속돼 버린 현실은, 싫든 좋든 포털에 맞는 뉴스를 생산하게 되는 단계를 넘어, 그것에게서 벗어나면 곧 죽음이라는 ‘무의식적 공포’를 통해 완성된다. 이른바 ‘늘공(늘 공무원)’과도 같은 현장 속 언론인들의 눈에는 김주언 이사장이라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냉혹한 현재 조건을 무시한 채 한갓 이상론이나 기껏해야 비현실적인 대안을 설파하고 있다며 내심 콧방귀를 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공이 그렇듯, 김주언 이사장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늘공들의 ‘심기 관리’ 기술에 더 깊이 포획돼 버리거나 현실의 벽을 수긍하며 임기를 마치게 될 수도 있다.

 

문득, 야인(野人) 시절의 김주언을 처음 만났던 몇 년 전 인사동의 한 식당이 떠올랐다. 언론학계와 언론 시민운동의 연대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다가, 어두컴컴한 밥집으로 옮겨 허름한 술과 안주를 나누던 자리. 보도지침 폭로 사건의 주역이라는 이름표에 은근히 긴장했고, 아니나 다를까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케 하는 굵고 짙은 눈썹과 무골이 흐르는 표정에 잠시 눈치도 봤지만, 그가 방바닥에 앉은 자세는 (시쳇말로) 새색시처럼 다소곳했고, 유려하면서도 강건했던 글과는 사뭇 다른 어눌하고 순박해 보이는 말투를 따라 내 마음도 금세 눅지근해졌다. 그곳에서 보았던 이들 중 몇몇은 그날보다 더 말쑥해진 차림을 하고 그날의 박주산채(薄酒山菜)보다는 한결 더 금준미주(金樽美酒)와 옥반가효(玉盤佳肴)에 가깝게 누군가를 접대할 수도 있을 만한 자리로 영전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중 마지막 순서의 인물일지도 모를 김주언 이사장은 여전히 그때와 다르지 않은 차림이었고, 불편한 몸을 이끌어 손수 냉장고에서 ‘편의점 커피’를 내오는가 하면, 대화를 마친 뒤에 시쳇말로 쿨(?)하게 인사하고 나오려 했더니만, 어느샌가 내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별무존재인 나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는 등, 오히려 몇 년 전 그날 그 자리보다도 더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나는 반가웠다. 그가 어느 자리에 있건, 그의 이름 뒤에 어떤 호칭이 붙건, 그는 늘 애초의 ‘김주언’일 것이고, 시대와 역할에 맞춰 변하되 시류와 자리에 따라 변하지는 않을 ‘늙은 청년’일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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