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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재난 보도 양상은 한결같다. 재난에 대해 정확히 알아볼 새도 없이 취재진은 현장에 급파되고, 피해자와 희생자, 그 가족 인터뷰에 몰두한다. 인터뷰이 한 명에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미는 것은 예사다. 과연 다른 나라는 어떨까. 우리와는 사뭇 다른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 현장의 취재 상황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서프사이드 비치(Surfside Beach)는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었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해변가에 지어진 12층 아파트는 비쌌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수영할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도 아파트 안에 있었다. 무너지리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곳이라는 얘기다.
하려는 이야기는 아파트 붕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층 건물이 붕괴하면 누군가는 다치고, 죽고, 실종된다. 재난의 한가운데 사람이 존재한다. 기자들에게는 ‘그 사람’이 중요해진다. 무슨 말을 들을지, 어떤 감정을 표출할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장례식장에서도, 붕괴 참사 한가운데서도, 화재 현장에서도 그렇다. 어느 순간 ‘사람’을 쫓아다닌다. 사고 희생자들은 누구 손이라도 붙들고 싶어서 처음에는 미디어를 찾아간다. 기자들이 묻는 대로 답해준다. 그런데 기자들은 조금 더 생생한, 적나라한 증언을 듣고 싶어서 희생자들의 기억을 헤집는다. 후비고 판다. 심지어 도발한다. 그리고 왜곡한다.
플로리다 마이애미 붕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비규환을 기대했다. 매몰된 실종자들의 가족이 울부짖고, 통곡하고, 언론은 득달같이 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겠거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붕괴 현장에는 헬기가 날아다니고, 쉴 새 없이 살수차가 물을 뿌려댔고, 시커먼 연기는 사흘 내내 일대를 뒤덮어 난장판이었지만, 언론이 보여주는 풍경은 그저 붕괴 현장에 한정됐다. 울부짖는 사람도 없었고, 쥐어짜는 기자도 없었다. 진기한 풍경이었다.
이 글은 재난 현장에서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방송사가 그렇다. 자극적인 화면을 굳이 쓰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는, 현명하게 시스템으로 보도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이라고 다 선진국은 아니지만-오히려 많은 부분 그렇지 않다-취재 보도와 인권에 대한 한은 배울 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시스템 준비부터 취재원 섭외까지, 현장 PD의 활용
최종 사망자는 98명. 그러나 6월 24일 새벽 1시 반쯤 멀쩡하던 아파트가 무너졌을 때 그 안에 몇 명이 있었는지는 좀체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 같은 관리 시스템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 시점에서 전국 방송이 현장 생중계를 하러 가야 할지 판단을 해야 한다. 참고로 땅덩어리가 워낙 넓은 미국은 ABC, CBS, MSNBC, NBC가 대표 방송사지만 직할 체제는 아니다. SBS와 비슷한 구조로 각 로컬 방송사가 전국 방송사와 제휴돼 있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ABC와 제휴한 마이애미의 방송사는 WPLG로 ABC의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방송국이다.
KBS를 포함해 SBS, MBC 3사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항공편을 예매했다. 비록 한국인 사망자는 없었지만, 삼풍 붕괴 사고를 겪은 우리로서는 미국발 삼풍 아파트 붕괴 사고의 피해 규모가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워싱턴 D.C.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 안에는 ABC와 NBC 등 방송사 제작진이 가득했다. 혼자서 MNG를 메고 가는 프리랜서들도 눈에 띄었다.
사고가 나고 24시간이 되기 전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지역 방송사들이 중계차를 탈 때 비를 피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커다란 하얀 천막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다음날 새벽 6시에 현장에 도착하니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이른바 미국의 전국 방송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24시간 뉴스를 전하는 케이블 네트워크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규모는 역시 우리로 치면 지상파 방송사들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현장의 움직임이 달라 보였다. 중계차를 타는 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쉴 새 없이 물리는 방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현장(Field) PD였다. 여기서부터는 시스템이다. 알고 보니 이렇게 대형 사고가 나고 현장에서 중계가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미국 방송사들이 해당 지역의 현장 프로듀서를 고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프로그램별로 현장 PD가 있긴 하지만, 본사에서 내려가는, 이를테면 CNN의 앤더슨 쿠퍼(Anderson Hays Cooper)라고 해도, 유명 기자나 앵커가 현지 상황을 잘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주요 연락처를 수배하고, 발전차를 주변에 주차하고 선을 끌어다가 중계 카메라와 TV, 조명 등에 연결하고, 인터넷망 혹은 위성을 연결해 실시간 방송 송출이 가능하게 하는 등 방송 중계 시스템을 갖추고, 여기에 더해 실시간 방송에 출연할 사람들을 섭외하기 위해서 그 지역 현장의 프로듀서를 고용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난 마이애미데이드(Miami Dade County) 시장의 기자회견 일정, 소방서장의 일정 등을 파악해 취재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현장 PD의 일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실종자 가족에 대한 인터뷰였다. 생방송에서 즉석으로 실종자 가족을 모셔서 기자가 인터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단 섭외가 안 된다. 기자가 방송 준비하면서 섭외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사고가 나고 30시간 정도 흘렀을 때, KBS 옆 ABC 뉴스에서 실종자 가족–남편과 두 아들-을 섭외해 생방송 인터뷰에 돌입했다. 무너진 아파트에 혼자 머물고 있었던 아내이자 아들들의 어머니는 실종상태였고, 이들은 눈물을 보이면서도 담담하게 생방송 인터뷰에 임했다. 인터뷰 섭외는 현장 PD가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센터에 의뢰해 이뤄졌다. 생방송 인터뷰 전에 현장 PD와 기자는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사전에 알려주며, 하고 싶은 이야기나 피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생방송의 온에어 사인이 켜지자, 기자는 이들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고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은 실종자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 PD는 방송 인터뷰가 끝난 뒤 이들을 데리고 NBC 부스로 이동했다. 알고 보니 실종자 가족 인터뷰를 원하는 방송사들은 아주 많았고–거의 다 원했다–현장에서 섭외가 되지 않은 방송사들 가운데, ABC에서 인터뷰한 가족이 NBC에서도 인터뷰하길 원했다. 현장 PD는 즉석에서 NBC팀에 제안해 인터뷰가 성사됐다. 실종자 가족, 거주자 인터뷰뿐 아니라,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이 아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줄 소방대원, 혹은 전(前) 소방대장을 섭외해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것도 현장 PD의 역할이다.
만약 한국 상황이었다면, 인터뷰하러 나타난 실종자 가족들에게 언론이 마이크를 마구 들이밀었을 것이다. 이들을 한 바퀴 빙 둘러서서 수많은 방송사, 그리고 신문사 기자들이 마이크 혹은 녹음기, 핸드폰을 들이밀고 여러 질문을 하면서 이들의 육성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전했을 게다.
미국에선 그런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 섭외, 실종자 가족을 대하는 태도, 현장에서 질문하는 방식, 다른 언론사와의 인터뷰 의향 확인까지 철저하게 취재원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실종자 가족이 ABC, NBC와 인터뷰를 할 때 다른 언론사들은 옆에서 묻지 않았고 마이크를 들이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KBS 마이크를 슬쩍 들이대려 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타사의 단독 인터뷰 ‘인용 보도’로 취재원 조리돌림 하지 않기
취재원의 말을 직접 확인해서 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 갈등 국면, 누구의 말이 맞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직접 취재’와 ‘확인’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재난 상황에서 희생자의 유족, 실종자의 가족들에게도 그들의 ‘감정’을 묻는 것이 실체적인 진실을 확인하는 것일까?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 사고뿐 아니라 허리케인 아이다 등 여러 재난 상황에서 미국 미디어들은 굳이 ‘제가 직접 만났습니다’를 시전하지 않았다. 피해자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일일이 다 접촉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사연을 보도하는 데 인색하지도 않았다.
방식은 ‘인용 보도’였다. ABC는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피처 기사를 내면서 자사가 만난 사람이 아닌 경우 인용 보도의 링크를 달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마이애미 로컬 방송국이 만나서 들은 이야기, 뉴욕타임스가 취재했던 이들, 마이애미헤럴드가 보도한 이야기들을 취합해 ‘링크’를 달고, 인용 보도를 통해 굳이 ‘제가 만나지 않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희생자들의 ‘말’에 무게를 싣고 이야기를 풀었다.

이는 굳이 재난 상황에서만 벌어지는 보도 풍경은 아니다. 대부분 미국 언론들은 주요 인사들의 ‘말’을 전하는 데 있어 인용 보도에 인색하지 않다. ‘CNN에 따르면’, 혹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타사의 단독 보도를 소개한다. 덧붙여 취재하는 것들도 ‘인용’과 ‘출처’를 밝히는 관습을 따른다. 워낙 저작권 문화가 강한 탓도 있겠지만, 남들이 잘해놓은 것들을 인정하는 문화가 분명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취재원은 같은 이야기를 수십 개 언론사의 기자와 전화통을 붙들고 하는, 이른바 ‘조리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공적 공간 재난 현장 취재와 사적 공간 쉼터 취재
재난 현장에서의 취재 포인트는 크게 두 곳이다. 사고가 일어난 현장, 그리고 피해자들과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쉼터다. 현장 취재는 경찰력, 소방력과의 대응이 핵심이다.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 소방 등 행정당국과 조율해 어느 정도까지 취재가 가능한지,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한국 기자단과 비슷한 분위기가 미국에도 있다. 마이애미데이드시에서 현장 사무소가 꾸려지기도 전에 이미 전국에서 기자들이 먼저 와 있었다. 마이애미 지역방송사들과 CNN 같은 24시간 케이블 뉴스 방송사들이 가장 먼저 왔고, 사고 발생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ABC, CBS 등 전국 방송에서 중계진이 도착했다. 서로 아는 사이기도 하고, 대부분 모르는 사이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취재 포인트가 개방돼야 한다는 지점에서는 모두 의견이 동일했다. 방송사 중계용 카메라가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개방해줄 것을 요청했고, 방송사 카메라에 불필요하게 걸리는 주차된 소방차를 빼달라고 요청하는 데 동의했다. 어느 언론이든 한 곳이 총대를 메고 요청하면, 다른 언론사들은 암묵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과도하거나 구조 활동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사리에 맞는 요구였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곧바로 협조가 됐다.
쉼터 취재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피해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크게 두 곳, 시에서 마련한 커뮤니티 센터와 유대교 시나고그(Synagogue, 유대교 사원. 아파트 거주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었다)로 나뉘어 머물게 됐는데, 둘 다 사적인 공간이었다. 기자들의 출입은 엄격히 통제됐다. 아무도 노란 테이프로 둘러진 공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청자 제보, 디지털 최대한 활용
언론사라면, 기자라면 당연히 생존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을 것이다. 그것도 제보가 있다면 더더군다나. 제보 자막을 방송에서 활용하는 것은 어디서나 기본이다. 그런데 디지털 세상이 되고, 사람들이 모바일로 뉴스를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제보 자막을 넣는 일은 더 중요해졌다. 마이애미 붕괴 사고에서 디지털을 좀 한다 하는 언론사들은 실종자, 희생자를 다루는 기사 하단에 정보 자막을 집중적으로 넣었다. 보다 기민한 방식으로는 정보성 기사를 쓰고 상단에 배열해두는 사례도 있었다.
해당 뉴스를 제작한 곳은 ABC 계열사인 마이애미 로컬 방송국 WPLG였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가장 많은 실종자 가족들이 전화해 실제로 많은 인터뷰를 확보했다. 무엇보다 실종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계속 업데이트해서–최근까지도–뉴스가 한번 나가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브랜딩에도 성공했다.

예단하기보다는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 전하기
재난 보도의 원칙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예단해 보도하지 않고, 감정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다.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든가 “생존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두고두고 트라우마로 작동한다. 때문에 가급적 사실에 기초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전하라는 것이 지침이다.
미국 미디어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 이 지점인 것 같다.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고 24시간이 지났을 때 현장에 있는 모두가 매몰자들에게 생존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실종자들의 가족 역시 인터뷰에서 이미 체념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생중계로 소식을 타전하는 기자들도, 현장에서 상황을 브리핑하는 마이애미데이드 시장, 소방서장, 경찰서장 누구도 죽음을 예단하거나 암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속적인 메시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희망을 가져달라”였다. 누군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걸까. 실제로 붕괴 사고 이후 사흘째부터 언론 보도는 현장의 소방구조대원들,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 일부러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아파트 붕괴의 구조적인 원인, 붕괴의 조짐들, 관리 부실 등을 탐사 보도하면서도 현장에서의 취재와 보도는 ‘구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를 최대한 부각하고 있었다. 포인터(Poynter) 등 저널리즘 전문지에서도 이들을 좋은 보도로 꼽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