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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20 - 리영희재단 <리영희 저널리즘을 말하다> 좌담회
기획연재 | 등록일 : 2021-10-29

통상적인 일대일 대담을 벗어나, 이번에는 좀 많은 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마침 리영희재단에서 <리영희 저널리즘 스쿨>을 기획하고 있었고, 그 일환으로 ‘리영희 저널리즘’에 대한 다면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지면을 통해 함께 한 적이 있던 리영희 선생의 따님 이미정 리영희재단 상임이사의 제안, 그리고 몇 차례의 협의를 거쳐, 과거와 현재, 현장과 학문, 노장과 소장, 기억과 기록을 가로지르는 대화의 장이 지난 10월 26일 <리영희 저널리즘을 말하다>라는 좌담회로 마련됐다.

 

 


리영희재단은 지난 10월 26일 <리영희 저널리즘을 말하다>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측부터 이정훈 신한대 교수,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 신홍범 조선일보 해직기자. Ⓒ리영희재단

 

 

좌담회에 참석한 신홍범 선생은 조선일보 해직기자, 조선투위 위원장으로서 반독재 언론자유 투쟁을 이끈 주역이다. 리영희 ‘기자’의 모습을 선배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가장 가까이 체험했던 인물인 셈이다. 김효순 기자는 한겨레신문 편집인을 역임했고, 최근 리영희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던 시기, 조선동아투위의 투쟁이 국민주 한겨레신문 창간으로 결실을 맺던 시대, 기자에서 교수로, 다시 해직교수에서 저술가로 위치를 바꾼 리영희 선생을 그리 멀지 않은 발치에서 함께 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리영희 선생의 교수연구실을 “제집 드나들 듯했던” 학생이었다. 제자이자 기숙자였던 그는 마침내 리영희 저널리즘에 대한 가장 독보적인 기록자가 됐다. 이정훈 신한대 교수는 리영희 선생을 기자로도, 교수로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리영희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던 민주화 세대의 끝물로서 1970년대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천착했던 연구자다. 리영희 선생이 던졌던 화두를 끌어안고 몸살을 앓았고, 그 결과 편하고 게으른 무지의 삶으로는 결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나와 같은 세대의 일원인 셈이다.

 

최영묵 “1992년도에 있었던 일인데요, 리영희 선생님이 좀 편찮으셔서 제가 조교로서 국제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대리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실에 가서 ‘강의를 어떻게 할까요?’라고 여쭸더니 ‘강의는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하고, 다만 정장을 해라. 꼭 넥타이를 매고.’라 답하시더군요. 저는 그 부분이 언론인이면서 지사적인 전통이 몸에 배 있던 시대의 어떤 분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정장을 안 하시고 수업 들어오신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의관을 갖춘다는 게 그냥 단순한 옷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성(誠)을 갖춘 상태에서 수업을 하신다는 거.”

 

저널리스트로서, 교수로서 리영희 선생이 어떤 성품을 지니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아닌가. 실제로 이미정 상임이사와의 기존 대담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급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만날 때면, 그 대상이 촌로이건 학생이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의관을 정제했다. 자신이 마주하는 대상에, 그리고 수행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태도다. 최영묵 교수가 농반진반으로 언급했듯, 이날 좌담에 참여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리영희가 속했던 시대의 분위기와 그 이후 시대의 차이가 느껴졌다(물론 정성의 차이라기보단 각 세대가 옷을 통해 나타내는 의미의 차이에 가깝겠지만). 특히, 곱게 빗어 넘긴 백발에서부터, 엄격한 정장에, 셔츠, 넥타이, 조끼, 구두 그리고 몸가짐과 말투에 이르기까지, 신홍범 선생의 외관과 언행은 당대의 리영희를 연상케 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언론

 

신홍범 “저는 리영희 저널리즘을 이상주의적 저널리즘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리영희 선생님은 1971년 기자협회 선거에서 ‘다시 이상주의자가 되자’라면서 지사(志士)로서의 기자상을 복권해야 한다고 주장했거든요. 진실 앞에서 타협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권한을 강화하고 진실을 추구하라는 겁니다. 직장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고,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었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그의 언론관은) 지사적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는 진실을 믿었습니다. 진실은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진실은 힘이 셉니다. 더 큰 진실은 더 더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의 힘을 통해 세계를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간을 더 자유롭게 하는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 인생을 더 고귀하게 하고 인간의 정신을 더 높게 들어 올리는 세상. 더 진보된 사회,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언론의 의무라고 여겼습니다.”

 

이 엄정한 어조에는, 간명한 단어와 문장이, 서로 약간씩의 중첩을 거치며 고조되는 동안, 더 큰 힘을 얻어가는 기세가 있었다.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이 말이 올바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말의 고상함과 현실의 비루함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냥 못 들은 척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리영희 선생은, 그리고 이 말을 옮기는 신홍범 선생은, 실제로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어떤 차이일까? 사람일까 아니면 시대일까?

 

김효순 “한겨레신문 창간 20주년을 맞아 정신적 원조인 리영희 선생님을 인터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어서 제가 불려 나갔어요. 제 위에 있던 선배들이 하나둘 다 나가고, 어느 순간 보니까, 제가 그걸 해야 하는 자리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드렸더니 리영희 선생님께서 자신은 더 이상 지적 활동을 안 한다고 (그 때가 몸이 많이 편찮으실 때였거든요) ‘에이, 무슨 소리야. 난 안해!’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 안 하셔도 좋으니 어쨌든 찾아가겠습니다.’하고 갔는데, 의관정제 딱 하고, 미리 준비를 다 하시고, 정말 줄줄줄줄 말씀 잘하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선생님은 후배 기자들한테 뭘 기대하시느냐’ 했더니 ‘부지런한 기자, 공부하는 기자’를 말씀하시면서 ‘기자는 가난해야 된다.’ 이러시더군요. 앞의 두 개는 당연히 공감되지만, 요즘 젊은 기자들한테 ‘가난해야 된다’ 이 말은 진짜 차마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웃음) 리영희 선생님은 당대에 접근 가능한 (혹은 심지어 접근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자료를 섭렵하는 분이었어요. (…) 리영희 선생님의 가르침이랄까, 이상이라고 할까, 그것에 관련해서 우리들이 배워야 할 것은, 표피가 아닌 본질에 주목해서 관련 자료가 아무리 방대해도 그걸 끝까지 볼 수 있는 끈기, 그리고 그걸 분석할 수 있는 학식 같은 것,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김효순 이사장은 ‘리영희가 기자로서 살았던 시대’에 대해 다채로운 증언과 분석을 제공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다 옮길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시기별로 중요한 인물과 자료를 배치해 리영희 선생의 지적 치밀함과 깊은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줄 또 하나의 ‘사료(史料)’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당대 한국 상황에서 금기시됐던 중국에 대해 리영희 선생이 펼쳤던 독자적 연구라든가,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남북한 평화를 말하고 그걸 위해 일본 저널리스트나 학자, 시민운동가와 활발히 교류했던 면, 그리고 명확히 차별화됐던 베트남 전쟁 관련 기사와 저술 등은, 당시 권력과 체제가 금기 안에 가두고, 당대 기자나 학자 등속이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허위와 왜곡에 협력했던 상황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세계 지성계의 흐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식 수준의 글이며,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면서 리영희의 빛나는 (그리고 피나는) 성취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종종 있었던가 보다. 정작 실상은 그 당시 그들은 그걸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테다. 혹 알고 있었다면 그걸 뻔히 알고서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앞서야 마땅하다. 리영희 선생도 “군사독재 시대에는 끽소리도 못하던” 이런 비루한 족속들에 대해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발언하는 신홍범 조선일보 해직기자 Ⓒ리영희재단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

 

최영묵 “강준만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1960년대의 북한과 남한을 봤을 때, 북한이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사회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달라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남한에는 리영희가 있었고 북한에는 리영희가 없었던 것에 있다’고 말이죠.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굉장히 수사학적인 표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김효순 선생님 말씀을 접하니 새삼 (현실감이 드네요). (…) 실제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실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묻혀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파헤치고 진실을 전하려는 한 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우리 사회를 상당 부분 변화시킨 게 있지 않겠는가. (…) 리영희 선생님이 1971년에 쓰신 게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인데요, 거기서 아까 김효순 이사장께서 언급하신 부류의 언론인과 지식인 유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시거든요. 기회주의적인 언론, 권력과 억압이 극대화돼 있을 때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워지니까 비로소 말을 꺼내면서 ‘그때 얘기했던 게 무에 그리 대단하냐’는 식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것이죠. 근데 그 사람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추적해보면 다 나오지 않습니까.”

 

역시 시대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차이이기도 한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기자로서 살아야 했던 시대’는 무시로 권력이 진실을 감추고 체제가 침묵을 강요하던 시점이다. 뜻이 있고 양심이 있는 지성인이라면, 신홍범 선생의 말처럼, 진실의 힘을 믿고 그 진실을 파헤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인이나 지식인들은 침묵했다.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진실의 힘을 믿지 못해서였을 테다. 심지어는 진실을 덮거나 왜곡시키는 데 일조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이 수두룩하다. 리영희 선생이 한 ‘기자는 가난해야 한다’는 말의 적어도 일부는 그런 의미일 거다. 진실을 흐린 대가로 얻는 부귀라면, 혹은 심지어 부귀를 얻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면, 진실을 추구하는 기자는 가난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내가 리영희 저널리즘의 정수를 ‘앙가주망의 저널리즘’ 즉 ‘현실에 대한 지적 개입으로서의 저널리즘’이라고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영희 선생은 무작정 금기를 찾아서 깬 게 아니라, 이성과 열망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만나게 된 허위의 장벽을,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온몸을 부딪쳐 깨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지금 시대는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현격히 많은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오로지 ‘자유’를 외치고 ‘독재’를 타도해야 한다는 기자들이 있다. 리영희 선생이 ‘기자로서 살아야 했던 시대’에도 그들은 그럴 수 있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게 설마 ‘방대한 자료를 끝까지 볼 끈기가 없어도 될 자유’이거나 ‘부지런하게 공부하는 기자가 되지 않아도 좋을 자유’인 걸까? 달라진 시대에도 여전히 혹은 또 다른 방식으로 숨겨진 진실을 찾다보니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혹은 원하는 만큼 부유하기는 어려운) 기자가 아니라, 부유한 자들의 부를 더 키워주는 데 복무함으로써 조금이라도 부스러기를 나눠먹을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기자라면 어떡할까? 만약 지금 시대에도 부숴야 할 금기, 끈질긴 지적 탐구를 통해 타파해야 할 우상이 있다면, 그리고 그걸 막아 나서는 권력이 있다면, 그 앞에 대고 ‘리영희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지금 시대의 언론자유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이정훈 “오늘 모임에 오기 위해 《진실에 복무하다: 리영희평전》을 다시 한번 꺼내서 읽었는데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상과 이성》이라는 책의 서문을 통해, 당신이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것,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고 밝혔다.’ 평전을 쓰신 권태선 선생은 ‘리영희 선생님께서 실천하신 진실의 추구라는 것은 결국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였다.’고 말한 바 있죠. 제가 ‘직업으로서의 언론’이라는 관점에서 리영희 저널리즘에 접근하는 출입문이 바로 그겁니다.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 행위로서의 진실 추구. 바꿔 말씀드리면, 현재 스스로를 기자 또는 언론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정말 진실을 추구하고 있는지, 만약 진실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각자 어떤 우상에 도전하고 있는지, 또는 현시점의 언론인들에게 우상은 과연 무엇인지. (…) 2021년 현재 우리의 형식적 민주주의 수준을 감안하면, 리영희 선생님께서 기자 생활을 하셨을 때의 우상인 ‘전제적 정치권력’이 지금도 우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 저는 이제 언론사 내부에 우상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기 위해, ‘디지털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책상에 앉아서 유명인의 SNS나 익명게시판에 떠도는 댓글을 취재해서 기사를 양산해야 하는 기자들과 그것을 강요하는 현실이 오히려 가장 큰 우상이라는 거죠. (…) 대부분의 기자들이 선한 의도로 기자직을 선택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직업으로서의 언론이, 자신들이 생산한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성찰하거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것. 저는 그것이 타파해야 할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의 우상에 맞서는 건 지성의 책무이자 본능이다. 만약 우상을 피하거나 이상한 데서 찾는다면 그건 지적 게으름의 소치일 게다. 지성인은 경계에 선 자다. 자신이 속한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계급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계급 사이에서, 소외된 계급의 입장에 서서 ‘말해 줄 것을 선택한’ 사람이다. 세계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 바깥을 꿈꾸며 세계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넓혀보려고 분투하는 자다. 현재의 저널리즘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태만에 빠져 있는 게 분명하다면, 적어도 그 저널리즘은 지성의 일부가 아니거나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2006년 5월 19일 한국기자협회 제1회 '기자의 혼' 상을 수상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는 생전의 리영희 선생 Ⓒ연합뉴스

 

 

최영묵 “리영희 저널리즘이 무엇인지에 대해 리영희 선생 본인이 따로 정의해서 얘기하신 것은 없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서 다른 분들이 다양한 방면에서 얘기하셨듯) 추론을 할 수밖에 없죠. 여러 단서를 통해서 추적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8억인과의 대화》를 보면 (모종의) 원칙을 본인이 밝혀 놓은 게 있어요. 예컨대 현장에 가서 쓴 것이냐. 데이터가 중심이 된 글이냐. 주류 지식인의 글이냐. 그리고 마지막에 결정적인 게 있어요. 스폰서가 있느냐 여부를 봅니다. 스폰서가 있는 건 제외했단 거죠. 왜 주류 지식인을 보느냐, 특정한 견해로 편중되지 않으려면 (일정한 대표성을 담보한) 당대 주류의 의견을 먼저 참고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그건 (당시 중국) 공안의 추적을 피하는 (특수한 조건에서의) 방법이기도 했겠죠. 그리고 또 ‘경계’에 관련된 이야기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리영희 선생에게 영향을 준 대표적 지식인으로 루쉰과 사르트르가 있을 텐데요, 루쉰의 ‘철방(철로 만들어진 방)’ 개념은 경계를 확장해서 결국 인간을 해방시키는 쪽으로 조금이라도 진전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본 면이 있는 거고, 사르트르가 말하듯 자기 계급을 선택해서 투사(投射, projection: 마음을 던져 동일시함)하는 그런 지식인의 모습이 리영희 선생의 저널리즘 정신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측면은 최영묵 교수가 리영희 선생의 저서와 기사, 인터뷰 등을 폭넓게 검토하여 저술한 《비판과 정명》에 면면히 드러나 있다. 최영묵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비판은 우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과정이고, 정명(正名)은 (잘못 명명된 이름을 바꾸어 올바른 이름으로 돌림으로써) 사물과 사상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비판이 인식과 글쓰기의 밑바탕이라면, 정명은 글쓰기와 사회적 실천을 연결하는 고리이다.” 한없이 가벼운 존재로 채워진 현대의 시각에서는 너무나 무겁고 고답적인 이야기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이로부터 벗어난 저널리즘 자체가 비판과 정명의 대상이다. 다만, 현대 환경에 ‘비추어’ 비판하고 적절히 고쳐 부르는 것이 맥락에 부응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기도 하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오늘날 기자의 자세


이정훈 “언론 직업이 다른 유사한 직업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짓기 위해서는, 리영희 선생이 말씀하셨던 학자 40%의 자질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 조금 느린 것 같지만,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간 뉴스를 단편소설 혹은 손바닥 장(掌)자 장편소설 정도 분량으로 한 달에 한두 개 정도를 만들어서 유료회원들에게 보내주는 서비스 형태, 그런 것도 디지털 시대에는 한 번쯤은 시도해 볼만하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사를 지금보다는 훨씬 덜 쓰고 더 오래 연구하고 성찰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확보하려는 내부투쟁이 필수적이죠.”

 

앞서 이정훈 교수가 말했던, 언론사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현대의 우상’은 더 많이 써서 더 많은 주목을 유도하는 산업구조이고, 현대 언론인이 최우선적으로 타파해야 할 것 역시 바로 그것이다. 어떤 이는 이걸 과거의 기계파괴운동과 유사한 퇴행적 행위거나 적어도 현실성이 매우 낮은 주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유력 언론사들마저 앞다퉈 나서는 이른바 ‘디지털 대응’이 과연 기계를 거부하기보다 잘 수용하는 미래지향적 행동일까?

 

신홍범 “저는 오늘날의 기자가 갖춰야 할 자질 이전에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기자가 취재를 한다는 건 자연인이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대신해서 서 있는 거라고 생각해야 되거든요. 또 기자는 자기 이성에 따라서, 양심에 따라서, 그리고 양식에 따라서, 독자성과 독립성을 가져야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독립성과 독자성을 잃어버렸어요. 회사가 추구하는 이익을 자기 가치로 여기고, 자기가 속한 집단의 관행이나 명령을 그대로 복종합니다.”

 

현대 저널리스트로서 유지하거나 새로이 해야 할 자질에 대해 말하기 전에, 변치 않아야 할 ‘자세’에 대해서 되짚어야 한다는 이야기. 억압하는 권력에 맞서 투사이자 지사로서 ‘기자를 살아냈던’ 리영희와 신홍범의 시대보다 한결 ‘기자하기 좋은’ 사회적 조건이 된 건 맞는데, 왜 드러나는 모습은 더 ‘기자하기 어려운’ 시대에 가까운 걸까.

 

김효순 “맘이 무겁습니다. 특히 젊은 기자들한테 이게 전달될지 제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인데요, 저는 한겨레에서 비교적 일찍 간부직으로 올라갔고 하루 종일 회의에 회의만 하느라고 세상을 차분히 보는 게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2007년에 대기자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갖고 돌아볼 수 있게 됐죠. (…) 저는 이 시대의 젊은 기자들이, 이정훈 교수께서 말한, 학자로서의 풍모를 조금이라도 갖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기자들 진짜 공부 안 합니다. 솔직히 공부할 시간도 없고요. 저는 무슨 ‘지사(志士)로서의 기자’를 말하기 이전에, 자기가 쓰는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보기라도 하는 기자가 됐으면 해요. 5분이면 즉각 아무런 차별성 없는 기사가 양산되는 시대잖아요. (…) 1970~80년대에 기자 뽑을 때에는 신원조회까지 했습니다. 학생운동이라도 했으면 무조건 아웃이에요. 1990년대를 지나면서 그런 게 없어졌어요. 그런데 막상 뽑아놓고 보니까 강남 출신에 엘리트 집안에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자란 친구들로 자연스레 채워지더란 거죠. 행여나 ‘이놈이 들어와서 우리 회사 말아먹지 않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된 셈이에요.”

 

물론 새로운 기술환경을 오용하는 주체들이 다수를 점하는 시장에서 몇몇 언론사의 내부투쟁만으로 이 ‘타락’의 흐름을 뒤집기는 역부족일 수는 있다. 그렇다 해도 우상에 순응하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현대의 저널리스트들에게 리영희처럼 홀로 돌파하는 지사가 되길 주문할 수 없다면, 적어도 수많은 리영희들을 찾아내고, 키우고, 연대하는 네트워커로서의 자질과 역량이 필요하다는 게 내 지론이다. 실은 리영희 선생도 다양한 국내외 지성인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글에 호응하는, 비록 다수는 아니지만 다수에게 전파할 의지를 가진 열혈 독자를 갖고 있었기에 그 거대한 우상을 부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최영묵 “예전에 홍윤기 교수가 리영희 선생을 ‘철학시민’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철학의 본질과 리영희의 행위가 동일하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의심하고, 비판하고, 그것을 바꾸는 것, 이것이 철학이 복무할 대상. 정작 철학은 철학을 잃었는데 리영희는 그런 철학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겠죠.”

 

좌담 말미에 김효순 이사장이 잠시 언급한 바 있듯, 리영희 선생은 신화로만 회상되면 안 된다. 막연히 신화를 만들거나 또 막연히 그것을 부수는 데만 열중하기보다, 그를 화두 삼아 현재의 사회 담론을 만드는 지점에서 새로운 저널리즘 연대가 시작될 필요가 있다. 무오류의 리영희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지식을 추구했기에 오히려 당대의 타자와 자신의 오류에 대해 더 민감하고 솔직할 수 있는 리영희 저널리즘. 그것에 동참했던 세대와, 그것을 기록했던 세대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새 세상을 꿈꾸고 만끽할 수 있었던 세대 사이의 가교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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