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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진행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쇼핑 행사인 광군제(光棍節 또는 솽스이·雙11)가 11일(1~11일) 동안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올해 광군제를 앞두고 코로나19로 인해 움츠러든 중국 내수 소비 시장이 큰 회복세를 경험할 수 있을지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전력 수요 증가와 석탄 공급 부족 등으로 인한 사상 초유의 전력난과 광군제를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강력 규제 등이 광군제의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광군제의 흥행 성적은 여러 악재들 속에서의 ‘선방’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중국 최대의 온라인 커머스 사업자인 알리바바는 광군제 기간 동안 지난해보다 8.5% 증가한 총 5,403억 위안(약 100조 원)의 매출(총 거래금액, GMV, Gross Merchandise Value)을 기록했다. 작년까지 매년 20% 이상의 폭발적인 증가율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다소 부족한 결과지만, 당국의 규제로 인해 이전과 같은 대규모 홍보 활동을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름의 성과로 볼 수 있다. 알리바바는 광군제 매출을 올리기 위해 중소규모의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을 인수하거나 행사 기간을 연장하는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해왔는데 올해는 조용하게 행사를 치르기 위해 노력한 여러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업계 2위인 징둥(JD)은 작년보다 30% 가까이 증가한 3,500억여 위안(약 64조 원)의 거래액을 달성했다. 행사 기간 동안 중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추진 중인 디지털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였다.
2009년 시작된 광군제 쇼핑 행사
광군제는 2009년 11월 11일 시작된 중국,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쇼핑 할인 행사다. 광군(光棍)은 중국어로 독신자(솔로)를 의미하는데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이날을 ‘솔로 데이’로 부르던 캠퍼스 문화에 착안해 알리바바가 솔로들을 타깃으로 한 대규모 할인 행사를 연 것이 그 시작점이다. 2009년 알리바바(타오바오)의 광군제 매출액은 5,000만 위안(약 92억 원)에 불과했으나 2020년에는 4,982억 위안(약 92조 원)의 매출액을 달성해 12년 만에 만 배의 성장을 기록했다. 광군제 행사는 원래 11월 11일 하루 동안 열렸지만, 2020년부터 11월 1~11일로 기간을 늘려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알리바바는 광군제 기간을 자사의 플랫폼 운영 역량과 기술력을 홍보하는 기회로 삼아왔다. 국내외 기자 수백 명을 알리바바 본사(저장성 항저우 위치)로 초청해 실시간 매출과 판매 동향 등을 생중계로 전파했다. 전 세계 주문 상황이 초대형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이 행사를 ‘기록의 밤(纪录之夜)’으로 명명했는데, 창업자 마윈을 비롯해 여러 스타와 유명인이 등장하는 이 행사가 매년 광군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그러나 올해는 기록의 밤 행사를 취소하고 행사 마감 이후에 전체 매출 기록 등 간단한 자료만 공개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정부 당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빅테크 규제로 조용히 치러진 축제
실제로 올해 광군제는 더 많은 거래 금액을 달성하기에 여러 제한이 있었다. 중국 정부가 반독점 규제를 명분으로 지난해부터 빅테크 기업 때리기에 나서면서 행사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광군제 행사의 중심인 알리바바는 지난해 10월 창업자 마윈이 한 콘퍼런스에서 중국 금융 당국의 후진성을 비판한 사건 이후 예정됐던 금융 자회사 앤트 파이낸스의 IPO(기업공개)가 취소되고 대규모 추징금을 부과받는 등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달 8일부터 나흘간 열린 중국 공산당 최대 연례행사인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가 광군제 기간과 겹친 것도 대규모 홍보 및 프로모션 활동을 위축시킨 이유 중 하나다.
대신 알리바바는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는 중국 공산당의 ‘공동 부유’ 노선에 부합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반독점 규제에 대응해 공정한 시장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알리바바는 올해 광군제 쇼핑 기간 우선순위를 친환경 소비와 취약계층 지원에 두고, 또 매출액을 성장시키는 것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행사의 초점을 변경했음을 밝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올해 광군제에는 지난해 대비 15% 증가한 사상 최대 규모인 29만 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또 다른 온라인 쇼핑 서비스 티몰(톈마오, 天貓)에 따르면 광군제 행사 시작 한 시간 기준 2,600개 브랜드의 개별 거래액이 지난해 매출을 뛰어넘었다. 특히 중국인의 자국 브랜드 선호가 강화되면서 중국 브랜드 매출이 지난해 대비 크게 늘었다. 징둥은 화웨이, 오포, 샤오미 등 자국 스마트폰 업체의 행사 초반 거래액이 전년 대비 300%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왕홍 활용한 라이브 커머스 대흥행
중국 브랜드의 선전과 함께 올해의 실적을 견인한 것이 바로 라이브 커머스(라이브 스트리밍 & 온라인 커머스)다. 라이브 커머스는 최근 중국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새로운 판매 채널로 각광 받으면서 광군제 기간에도 여러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평가되는 것은 유명 왕홍(网红, 인플루언서) 간의 라이브 커머스 판매 대전이다. 중국 최고의 라이브 커머스 왕홍은 ‘립스틱 킹’으로 유명한 리자치(李佳琦)와 ‘라이브 커머스 판매 여신’으로 불리는 웨이야(薇娅)다. 두 사람은 타오바오에 라이브 커머스가 도입된 이후부터 매 광군제에서 라이브 커머스 판매로 치열한 경쟁을 해왔다. 1차 예약 판매 접수를 시작한 10월 20일 저녁 8시부터 타오바오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진행했는데 리자치가 2020년에 이어 연속으로 웨이야를 근소한 차이로 누른 것으로 나타났다. 리자치가 106억 위안(약 1조 9,000억 원), 웨이야는 82억 위안(약 1조 5,000억 원)을 판매했으며 이 두 사람이 판매한 총액은 188억 위안(약 3조 4,000억 원)이다.
11일 광군제 당일 약 14시간 동안 진행된 웨이야와 리자치의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시청한 사람이 각각 1억 100만 명, 8,515만 명에 달했다. 재방송 조회수를 합치면 이 수치는 각각 2억 3,900만 명, 2억 4,800만 명으로 늘어난다. 특히 이 둘의 라이브 커머스에는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들도 소개돼 큰 판매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디지털 위안화 결제 최초 적용
올해 광군제의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디지털 자산의 활용이다. 앞서 소개한 대로 징둥은 처음으로 광군제 기간에 디지털 위안화를 결제 과정에 적용했다. 징둥 앱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검색하면 쇼핑 바우처와 할인 쿠폰 등을 받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주문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이 세계 최초로 도입하려는 중앙은행 차원의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로 현재 본격적인 실용화를 위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 그리고 텐센트의 위챗페이가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 배경 중 하나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알리바바의 경쟁사인 징둥을 통해 광군제 동안 베타 테스트에 나선 것도 개연성이 있다. 징둥의 발표에 따르면 광군제 동안 약 10만 명의 사용자들이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결제를 진행했다.
광군제 기간 주목을 끈 또 다른 디지털 자산은 NFT(Non-Fungible Token)다. NFT는 미술, 음악, 영상 등 고유한 디지털 작품이나 물리적 작품의 소유권과 연결된 디지털 자산으로 블록체인상에 기록돼 개인이 임의로 이를 변경하거나 위조할 수 없다. 알리바바는 타오바오와 티몰 앱을 통해 더블11 메타버스 미술전(Double 11 Metaverse Art Exhibition)을 론칭, 여덟 개 브랜드와 협력해 실제 상품 구매 시 사은품으로 디지털 작품(digital collection)에 대한 NFT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행사에는 버버리, 코치, 키엘 등의 글로벌 브랜드 등이 자체 제작한 NFT로 함께 참여했는데, 버버리의 경우 개당 2,900위안(약 53만 원)인 NFT 스페셜 에디션 스카프 1,000개를 단시간에 판매 완료했다. 에일리언웨어(Alienware)는 자사 노트북 컴퓨터를 구매할 때 받을 수 있는 브랜드 로고 NFT 100개를 발매했다.
올해 광군제는 여러 측면에서 달랐다. 과시적 성격의 행사였던 이전과 달리 조용한 축제로 치러진 점, 라이브 커머스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된 점, 디지털 자산을 통한 새로운 실험들이 진행된 점 등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알리바바와 징둥 등의 주요 온라인 커머스 플랫폼들은 성장을 이뤄냈고 이들은 이 성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할 것이다. 정부 당국의 빅테크 규제가 상당 기간 지속되고 중국 공산당이 주창하는 공동 부유가 향후 중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이 지속적인 성장과 생존을 위해 어떤 전략을 추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