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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가장 큰 화제였다. 국내 방송사들이 글로벌 OTT, 토종 OTT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공영방송사 KBS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KBS는 과연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지 그 답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1월 중순 ‘KBS는 왜 <오징어 게임>을 못 만드나’라는 제목으로 KBS 입장에서 글을 써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난 KBS 국정감사에서 파장이 큰 질문이었으므로 다룰 만한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적절한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KBS는 공영방송이니까”라는 한마디로 답하면 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동일하다. 그럼에도 한동안 화제가 됐던 주제이므로 제목을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글을 쓰기까지 이 화두를 잠시 접어두고 있었지만, 남한산성 성곽길을 걷는데 대학 시절 읽은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 떠올랐다. 지식인은 역사적 주체로서 자신의 소명을 의식하고, 피지배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게 된다는 내용으로 기억난다. 한동안 드라마 제작 현장에 있었고, 넷플릭스를 연구하는 올드 미디어 종사자로서 이 책의 관점을 갖고 정리해 봤다. 제목에 쓰인 변명은 잘못에 대해 이유를 들어 해명하는 것보다 사회현상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위해 사리를 분별해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KBS와 <오징어 게임>, 논란의 발단
지난해 10월 12일 KBS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모 의원이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KBS 사장은 “<오징어 게임>은 KBS 같은 지상파가 제작할 수 없는 수위의 작품”이라고 답했다.
이는 바로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10월 28일 “우리 방송은 왜 <오징어 게임> 못 만드나: 그 오해와 진실”이라는 토크콘서트까지 열었다. 개인적으로 국회에서 피감기관에 대한 이해 없이 던지는 ‘입틀막’(입을 틀어막는) 질문에 너무 과민 대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논란이 됐던 문제에 대해 차분히 정리할 필요는 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이 2021년 9월 17일 출시된 이후 전 세계 94개국에서 1위를 했으며, 첫 28일 동안 최소 2분 이상 시청한 가입자는 총 가입자의 66%인 1억 4,200만 명이라고 밝혔다. 국가별 OTT 플랫폼에서 콘텐츠 순위를 파악하는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에서 52일간 1위를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에 총 2,140만 달러(약 253억 원)를 제작비로 투자했고 8억 9,110만 달러(약 1조 626억 원)에 달하는 가치를 창출했다. 제31회 고담 어워즈(Gotham Awards)에서 한국 작품 최초로 획기적인 시리즈(40분 이상) 부문을 수상했고, 2021 피플스 초이스 어워즈(2021 People’s Choice Awards)에서도 올해의 정주행 시리즈 부문을 수상했다.
국회를 위한 변명
국정감사에서 <오징어 게임> 관련 질문 내용을 달리했으면 어땠을까? “KBS는 왜 <오징어 게임>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느냐?”가 아니라 “KBS가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고 정부나 국회가 어떻게 지원해 줬으면 좋겠는가?”라고…. 향후에는 질책성 질문으로 일관하는 것은 없었으면 한다. 적확한 질문과 학계의 변화 촉구 논의도 이뤄졌으면 한다.
넷플릭스 순 이용자는 2021년 10월 말 코리안클릭 기준으로 1,086만 명에 달한다. 2위인 웨이브 418만 명과 3위인 티빙 410만 명을 합친 인원보다 많다. 국내 창작자의 넷플릭스 쏠림 현상, 저작권 독점 논란, SK브로드밴드와의 망이용료 논란, 법인세 납부 논란 등 국내 드라마 산업의 보호와 성장을 위해 해결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물론 여러 법안이 상정돼 있지만 법안 의결과 시행은 더디기만 하다. 자칫하다가는 대만처럼 올드 미디어가 경쟁력을 잃고 몰락하는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유럽 의회의 발 빠른 대응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EU는 2018년 시청각미디어서비스지침(AVMSD, The Audiovisual Media Services Directive)을 개정하면서 글로벌 OTT에 EU의 자국 콘텐츠 의무 편성 비율을 규정했다. 또 유럽 콘텐츠 육성을 위한 투자 비용을 내도록 하며, 동일 콘텐츠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일정 점유율 이상의 OTT는 방송 심의를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헝가리·독일·덴마크 등이 AVMSD에 따라 쿼터제 규정 입법을 마쳤다. 프랑스의 경우 OTT의 서비스 목록 중 유럽 제작물을 50% 이상, 프랑스어 콘텐츠는 35% 이상 할당했고, 3년 후부터는 그 비율을 각각 60% 이상, 40% 이상 상향 적용할 예정이다.1)
<오징어 게임>의 대단한 흥행은 넷플릭스에게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 줬다. 그렇지만 저작권이 없는 제작자는 10% 내외의 이윤을 가져가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2) 넷플릭스 본사가 있는 미국은 OTT 오리지널의 경우에도 작가와 감독이 추가 수익인 리지듀얼(Residuals)을 받게 돼 있다. 이를 참조해 관련 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리지듀얼은 작가의 저작물을 재사용한 대가로 지급되는 보상금이다.3) 고예산 SVOD(월정액 가입형 주문형 비디오) 프로그램이 오리지널 플랫폼에서 서비스되면 90일간(가입자 규모 100만 미만은 1년)은 리지듀얼이 없고, 그 이후부터는 ‘리지듀얼 기준 × 가입자 규모 × 연차 %’ 산식에 의거 리지듀얼이 계산된다.
KBS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다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KBS가 제작할 수 없는 이유로 공영방송 본래의 존재 목적과 막대한 제작비, 심의 등을 꼽을 수 있다. 국정감사에서 양승동 KBS 사장이 말한 대로 공영방송에서 방송하기에는 수위가 너무 높다. KBS마저 선정적인 드라마를 한다면 그 또한 ‘수신료를 받는 KBS가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하느냐?’며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은 명약관화다. KBS도 19세 이상 시청가 드라마를 방송한 적 있다. 2016년 긴급 편성된 4부작 단막극 <베이비시터>나 2018년 드라마 스페셜 <잊혀진 계절> 등에서 실험적으로 시도됐다. 최근 <부부의 세계(JTBC)>나 <펜트하우스(SBS)>가 19금이었음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만약 KBS에 이러한 작품이 제출됐다면 KBS는 분명히 편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넷플릭스 <인간수업>의 제작사 대표는 지상파에서는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처음부터 넷플릭스와 협의했다고 한다.
공영방송의 드라마는 상업방송과 달라야 한다. 이것이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의 운명이고 존재 목적이다. 저녁 일일극과 주말 연속극은 가족이 모두 즐길 수 있도록 제작·방송하고 있으며, 평일 오후 10시 시간대의 미니시리즈의 선정성이나 폭력성 수위도 민영방송보다 낮다.
둘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선정성, 폭력성 등에 대해 철저한 심의를 한다. 최근 선정성 징계 현황을 보면, 2018년에는 <황후의 품격(SBS)>과 <플레이어(OCN)>가 관계자 징계를, 2020년에는 <편의점 샛별이(SBS)>가 주의를 받았다. 폭력성 관련해서는 2018년 <오늘의 탐정(KBS)>, 2020년 <펜트하우스(SBS)>가 주의를 받았고, 2018년 <손 the guest(OCN)>가 경고를 받았다. 징계를 받으면 방송 평가와 재허가 심사 때 벌점을 받는다. <오징어 게임>이 KBS에서 방송됐다면 분명히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최고 제재인 관계자 징계가 떨어졌을 것이다. 방송사는 징계를 받으면 제작사에 구상권으로 일정 금액을 벌금으로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사는 아예 이를 피해 넷플릭스를 선호한다.
셋째, 제작비 규모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는 <더 클로저(The Closer)> 281억 원, <더 크라운(The Crown)> 152억 원 정도 된다. 블룸버그가 밝힌 <오징어 게임> 제작비는 약 28억 원이다. KBS 2TV 미니시리즈 광고단가를 보면 전후 CM(Commercial Message)은 1,170만 원, 중간광고는 1,800만 원이다.4) <연모>의 경우 70분 편성으로 중간광고 8개, 전후 광고 28개 등 총 36개로 4억 7,000만 원 정도다. <연모>가 <오징어 게임>과 동일한 금액으로 제작됐다면 현재 광고 규모와 국내외 판매를 통해서 는 제작비 28억 원을 절대 만회할 수 없다. 제작비를 만회할 수 없는데도 드라마를 제작하면 당연히 방만하다는 지적을 받을 것이다.
KBS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KBS는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는 훌륭한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다. 조건만 충족되면 가능하다. KBS는 <오징어 게임>을 제작할 수 없다는 내용을 역으로 적용하면 된다.
첫째, KBS에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성 높은 19금 드라마를 제작해도 정부나 국회, 국민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맡겨두면 된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분 때문에 전체가 잘못된 것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창의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도록 허용하되, 작품성이 없다면 그에 대해 지적하는 문화를 만들면 KBS에서도 가능하다.
둘째, 충분한 제작비를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 앞서 제작비 규모를 언급했는데, 제작비가 충분히 지급된다면 가능하다. 제작비가 충분하다는 것은 충분한 제작 시간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넷플릭스처럼 31개의 자막과 15개의 더빙에 소요되는 비용을 쓸 수 있다면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 제작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제작비만큼 수익을 창출 못했다고 비난만 하지 않으면 가능하다.
셋째, 뛰어난 감독이 나가지 않도록 하면 된다. KBS 출신이 퇴직하고 스튜디오드래곤이나 JTBC로 이적해 만든 드라마가 대체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스위트홈>의 이응복 감독, <안나라수마나라>의 김성윤 감독 등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를 제작했다. 이들이 KBS에서 나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대우해 주고 좋은 드라마를 제작하도록 요구하면 가능하다.
올드 미디어의 치열한 고민과 대응 우선돼야
똑같은 질문에 한 번은 긍정을, 또 한 번은 부정했다. 이런 것이 모순이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은 이러한 모순에 처해 있다고 했다. 필자가 올드 미디어에 근무하고는 있지만, 넷플릭스 연구자이므로 글로벌 OTT와 올드 미디어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정리했다.
<오징어 게임>은 올드 미디어에서 봤을 때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조건에 따라 대작을 만들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KBS는 <태양의 후예>처럼 대작을 충분히 만들 능력이 있다. 현재 조건을 냉철히 진단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올드 미디어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대응이 먼저고 중요한 일이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드라마는 올드 미디어의 영역이 아니다. KBS가 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이나 <동백꽃 필 무렵>, <연모>, <무브 투 헤븐> 같은 휴머니즘이나 감성이 넘치는 전형적인 K-드라마 제작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부족한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BBC처럼 글로벌 OTT와의 적극적인 전략적 제휴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1) 이지영, <“OTT 시장 내주면 4차 산업혁명도 밀려…EU처럼 쿼터제 도입해야”>, 중앙일보, 2021.3.2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22299#home
2) 유건식,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시장을 바꾸다》, 152-154쪽, 한울, 2021.
3) <Residuals for High-Budget Subscription Video on Demand (HBSVOD) Programs>, Writers Guild of America West, https://www.wga.org/members/finances/residuals/hbsvod-programs
4) KBS, 《Knowhow》, 2021.12, https://pwwwapi.kbs.co.kr/api/v1/introduction/advertise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