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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25 - 채영길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기획연재 | 등록일 : 2022-03-25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의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잘 믿기지 않았다. ‘똘똘이 스머프’ 같은 외모에,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 심지어 부산 억양이 살짝 섞인 음성과 말투에서마저 나긋나긋(?)함이 느껴지는 그로부터 ‘민언련’ 하면 떠오르는 ‘투사’의 이미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담을 요청하는 나의 메시지에 “갑자기 심장에” 무리가 느껴진다는 농반진반의 반응을 보여 왔다. 내 요청을 차마 거절하진 못했지만, 민언련의 공동대표로서 다시 세상 앞에 선다는 일의 막중한 부담감이 그 짧은 메시지에서도 읽혔다.

 

“민언련의 회원 규모가 조금씩 줄고 있어요. (한 번에 훅 빠지는 것은 아니고) 조금씩 조금씩 줄었는데, 이게 매달 줄어들다 보니까 지난해 감소한 규모가 꽤 돼요.”

 

원격 화상회의 화면 너머로 보이는 그의 얼굴 역시 여전히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찾아왔던 이른바 ‘시민운동 시대’의 훈풍이 꺼진 지는 이미 제법 됐다. 활동가와 회원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건 비단 민언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민언련은 2017년 대통령 탄핵 국면을 지나면서 후원회원 수를 꽤 늘렸고, 여타 시민단체에 비해 더 젊고 의욕적인 활동가를 다수 배출했다. 그 덕에 서울 중심부에 독자적인 터전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마른 모래가 빠져나가듯, 회원들이 시나브로 줄어들고 있다.

 

“회원들은 (민언련으로부터) 좀 ‘사이다’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기를 많이 기대해요. 기존 언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분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시는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까, 기존 언론에 대해 더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는 걸 원하시는데, 저희로서는 많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도, 그분들의 기대와는 괴리가 있는 것 같아요. 고민이 있죠. 그런 요구에 담겨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천 내용이 달라질 테니까요.”

 

채영길 신임 대표가 그간 민언련 정책위원으로서 마주했던 이탈 회원들은 민언련이 쟁점 사안을 대하는 태도를 지나치게 중립적이라고 봤고, 그로부터 실망감을 느끼거나 강한 불만족을 표했다. 그런 와중에 영락없이 ‘서생’의 풍모를 지닌, 투사보다는 학자에 훨씬 가까운 그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민주화 운동 시기에 행할 수밖에 없었던 강한 저항이나 온몸을 던지는 비판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통렬하고 선명하게 기성 언론을 비판해주길 바라는 회원들의 기대에 그는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치적으로 극화된 태도의 문제라고만 보는 것은 적절한 해석이 아닌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그분들이 생각하기에 현재의 언론이, 그리고 그런 언론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가 제대로 된 공론의 모습을 띠도록 (민언련이 더 매섭게 채찍질) 한다면, 제 생각에는, 그게 그분들이 생각하는 ‘과도하게 중립적인 태도’를 넘어선 활동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맡은 채영길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출처 - 필자 제공>

 

 

‘자유’의 관점을 넘어 ‘평등’의 가치로 방향을 전환할 때

 

우리 언론 환경에 대해 시민들이 쏟아내는 분노와 거부감을 ‘정파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언론인이나 학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실제로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즉 ‘내 편이 돼주지 않는’ 언론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는 수용자들이 있고, 이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공정함이 설 자리는 매우 좁다. 심지어는 모든 언론을 싸잡아 ‘기레기’로 폄하하는 담론에까지 이르면 그나마 ‘반성하는 언론인’이나 ‘성찰적 학자’조차도 그런 시민들에 대해 거꾸로 거부감이나 적대감마저 품게 된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민을 싸잡아 정파적이라 손가락질하고, 그런 불만에 호응하려는 비평 작업을 다시 싸잡아 이른바 ‘사이다 비평’으로 분류한 후, 애써 ‘고구마 비평’으로 대항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는 모르겠다. 채영길 교수 역시 현실로부터 한발 물러서서, 멍청한 대중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포퓰리스트들을 엄하게 꾸짖고, 모든 현실의 정파로부터 거리를 둔 ‘우아함’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직업과 계층에 속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렵지만 쉬운 길을 거부하고 쉬워 보이지만 어려운 길로 한 발짝 들어서는 걸 택했다.

 

“일단 그분들의 불만에 제대로 된 언어와 제대로 된 힘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분들을 그리고 특정 비주류 매체들을 정치적으로 극화된 것으로만 비판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응대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기존의 규범과 도그마로 재단하는 것, 즉 객관주의와 전문직주의로 다듬어진 (그 또한 과거에 만들어졌고, 상당 부분 엘리트주의적이며, 변화된 현실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저널리즘 규범의 언어로 재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거죠. (…)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적절히 사회화시킬 것인가, 비판을 하더라도 더 적절한 언어로 그것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민언련이 사용하는 비판적인 언어에도 그런 주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요소가 숨어 있고 회원들의 불만은 그것을 지목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런 시민들을 이해하고, ‘시민의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관점에 바탕을 둬서, 새로 부상하는 언론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득권인) 우리가 그들을 너무 단정적으로 바라보고 고립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요.”

 

시민들이 품고 있는 불만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 채, 그런 불만에 호응하며 튀어나온 신생 언론에 대해 엘리트주의적인 태도로 폄하하는 것. 나 역시 그것을 ‘어렵지만 쉬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채영길 대표는 “그런 시민이나 언론을 배제하는 공론장을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요컨대 우리의 공론장은 객관주의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몇몇 전문직주의 언론만으로 구성되거나 지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이미 아니고, 그것이 온당하지도 않다는 인식이다. “다만 그런 시민과 새로운 언론이 공론장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지” 불분명하고, 제대로 된 논의조차 진행해본 바가 없기 때문에, 민언련이 그런 고민을 품어 안아 같이 풀어가는 주체가 돼보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과거에는 언론의 자유, 객관적인 언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았는데, 오늘날에는 이미 시민들이 언론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목소리가 제대로 사회화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비판이 아무리 전문적이고,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공감을 받기는 힘든 시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왜 지금 이 자리를 맡게 된 걸까?’ 그리고 ‘이 자리에서 어떤 것들을 더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제 자신도 그렇고 저를 대표로 만들어주신 분들의 뜻도 그렇고, ‘자유’라는 관점을 넘어 ‘평등’이라는 가치로 방향을 전환할 때라는 공감대가 있어요. 정치 철학에서도 자유 자체가 최고의 가치는 아니잖아요? 정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평등의 가치로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과거에는 자유만으로도 충분히 정의로울 수 있었다면, 이제는 (전문직 언론과 같은) 누군가만의 자유가 아니라, 나 자신의 그리고 모두의 자유가 허용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긴 거죠. 언론인들이 언론 자유를 말할 때 이제는 많은 시민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나는 갖지 못한 자유를 왜 너희들만 독점하려고 하느냐’는 거죠. 우리 민언련이 해온 전문적인 모니터링과 비판 역시 그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기에는 불충분했던 거고요. 어쩌면 시민들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우리보다, 더 직접적으로, 더 자주, 더 본질적인 ‘권력 불평등’의 문제를 이야기해온 건지도 몰라요.”

 

지금 우리 사회가 보완해야 할 목소리가 무엇일지 고민 필요해 

 

민언련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축이었으며, 그 적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이끌어내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억압하는 권력 편에 서서 시민을 호도했던 기성 언론으로부터 쫓겨나고 뛰쳐나와 벌였던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의 소산이다. 그런 유산의 기초를 놓았던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창립선언문 한 부분을 보자.

 

“우리는 오늘 언론을 박탈당한 캄캄한 암흑시대를 살고 있다. 말할 권리, 알 권리, 알릴 권리가 인간의 천부적인 기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의 말살로 우리는 ‘말’을 잃어버린, 침묵을 강요당한 언론 부재 시대를 살고 있다. 말하고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요구가 있는 곳에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와 수단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민중은 오늘 그 같은 기본적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표현 수단이어야 할 기존 언론기관으로부터도 거꾸로 지배당하고 박해당하는 일찌기 경험하지 못했던 언론 소외를 겪고 있다.”

 

당시 권력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시민의 표현 수단을 찬탈했다. 때문에 자유 언론 실천 운동은 단순히 엘리트 전문직주의 언론인에게 자유를 부여하라는, 이른바 ‘부르주아지’의 운동이 아니라 시민의 표현 수단으로서의 언론을 복원함으로써 ‘말할 권리, 알 권리, 알릴 권리’와 같은 천부인권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채영길 교수가 ‘자유를 넘어 평등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를 말할 때, 그는 분명히 민언련의 유산 위에 서 있으면서 그것을 새로이 하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기성 언론의 관점을 시민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동등한 표현 수단을 갖고자 하는 시민의 의지를 이해하고 그에 적절한 언어로 응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시민이 누구냐, 즉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단지 민언련 회원이 곧 시민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고, 제 생각에는, ‘지금 현재 사회에서 보완돼야 할 목소리’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시민이 아닐까 싶어요. 목소리라는 것에는 어떤 가치나 색깔이 담기기 마련이고, 그건 시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죠. 저는 여성주의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념적 가치로 부상했다고 봐요.”

 

모든 시민에게 주목하는 것, 그리고 모든 시민의 제반 권리에서 평등함을 추구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시대에 따라 ‘보완’ 즉 북돋움이 필요한 목소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으로 보인다. 이것은 이른바 ‘억강부약(抑強扶弱)’의 가치, 즉 약자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일 텐데, 그에 주목하고 그것을 키우는 것을 정파적이고 편향적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이야말로 공정함을 가장한 기득권의 언어인 셈이다.

 

“뜬금없이 들릴 수 있을 텐데, 저는 과거의 마르크시즘도 노동자들만의 비판적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약자들을 연결하는) 공통의 비판적 가치이고 토대라고 봐요. 그런 것처럼 여성주의는 오늘날 약자들의 연대를 위한 중요한 토대 가치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페미니즘이 일종의 (과거의) 뉴레프트와 같은 시대적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거죠. 물론 이것이 지나치게 편협한 토대라고 비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최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운동을 넘어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고, 빈곤, 차별, 소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통의 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거든요. 이를 통해 연대를 구축하고, 청년들의 새로운 참여 공간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서 새로운 활력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인식이다. 여성주의가 약자로서의 여성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그 권리의 신장에만 머무른다면 그 자체는 중요한 ‘일부’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다른 약자들에 눈을 돌리고 그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는 촉매가 된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전체’로 나아가기 위한 접착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평등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응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으나, 자칫하면 ‘너희도 결국 페미니즘 운동단체가 되는 거냐’는 불만이 (전통적) 회원들로부터 튀어나올 수도 있다.

 

“민언련의 역사를 제가 오독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저는 《말》지를 만든 게 작은 공론장 하나를 조직한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런 일을 오늘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봐요. ‘미디어 시민사회’라고 하는, 혹은 ‘언론의 시민사회’라고 부를만한 것. 즉 다른 영역의 시민사회와 우리를 구별시키는 것은 바로 ‘언론을 통해서 조직되는 시민사회’에 대한 주목이고, 그런 조각들을 연결하고 조직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보는 거죠.”

 

요컨대 초기에는 빼앗긴 언론 자유를 되찾아 언론에게, 그리고 그럼으로써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민언련의 지향이었다면, 나중에는 권력으로서 성장한 기성 언론을 비판하는 게 민언련이라는 ‘특수한 시민사회’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스스로의 언론과 스스로의 미디어를 매개로 조직되는 작은 공론장들, 작은 시민사회들을 서로 연결하고 성장시키는 게 민언련의 지향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채영길 ‘교수’가 아닌 ‘대표’의 구상인 셈이다. 이런 말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그의 얼굴에 드리워 있던 수심의 그늘이 조금은 걷혀가는 듯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통 있고 가장 토대가 튼튼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 약화 추세를 거스르지는 못하고 있는, 유력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인 민언련의 신임 대표로서, 그는 그 짧은 순간에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발굴하고, 부탁하고, 연대하는 대표

 

“지금까지 말한 고민이나 구상은 사실 제가 주도하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일단 그런 실천을 하고 있는 분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좀 많이 만나고, 같이 활동을 하고, 연대하고 사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나아가, 매우 벅차고 힘든 일일 수는 있는데, 아까 언급했던 시민들의 공론장, 언론을 통해 조직되는 시민사회에 관련된 작업, 이것도 결국에는 이미 하시고 계신 분들을 만나서 배우고 대화하고 방향을 모색할 생각이에요. (…) 제가 갖게 된 대표라는 직함은, 제가 그런 뜻으로 누군가와 만나자고 연락을 했을 때, ‘바쁘다’면서 안 만나주고, 얘기를 나눌 기회를 못 잡게되는 그런 일이 적어지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웃음) 저는 그런 의미에서 명함의 권위를 누리고 싶죠. (웃음) 그걸 갖고서 어떤 이들을 발굴하고, 부탁하고, 연대하고 이런 작업을 제가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그러고 보니, 직전 공동대표인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나 정연우 세명대 교수 역시 민언련 ‘대표’라는 직위에 대해 이와 비슷한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요컨대 대표는 이끌고 주도하는 자리가 아니라, 만나고 모아가고 연결하는 사람으로서의 위치라는 것이다. 또 그러고 보니, 이들 학자 출신의 민언련 대표들에게서도 ‘투사’보다는 ‘선비’의 풍모가 더 많이 느껴졌고, 그들의 외모, 성품, 행동거지 역시 채영길 교수에게서 느껴지는 그것과 더 비슷하면 비슷했지 그리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이들 선배 세대는 더 투사적인 역할을 시대적으로 부여받았고 그런 소명을 받아 안는 데 주저함이 없었지만, 민언련을 대표하거나 민언련에 몸담아온 이들은, 학자 출신이든 언론인 출신이든, 투사와 선비 사이의 영역에서 이른바 지사(志士)적인 고민과 실천을 해왔던 이들이기도 했다.

 

내가 민언련 공동대표로서 채영길 교수의 이름을 들었을 때, 선뜻 믿기지 않았던 것은 그의 ‘투사적이지는 않은’ 풍모도 있었지만, 민언련의 대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젊은 듯한 그의 연배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것도 따지고 보니,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시차를 두고 두 차례나 민언련 대표를 역임한 김서중 교수가 처음 민언련 대표를 맡았을 때가 2007년 무렵이니, 당시 그의 연배로 보나 시대적 배경으로 보나 지금의 채영길 교수의 경우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스스로가 그만큼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다! 이 젊되 젊지만은 않은 민언련 신임 공동대표 채영길 교수가, 투사적이지는 않되 마냥 선비스럽지만도 않은 모습으로 개척해나갈, 아니 연결해나갈 ‘시민 공론장’의 조직 주체 민언련의 모습은 어떠할까? 기대만큼 걱정도 많지만, 걱정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와 연대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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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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