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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포럼] 북 리뷰: 《자아의 원천들: 현대적 정체성의 형성》
미디어포럼 | 등록일 : 2022-03-25

 

《자아의 원천들: 현대적 정체성의 형성》 Ⓒ새물결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 바람직한 선거운동, 바람직한 대통령 후보 등 이 모든 바람직한 대상의 상실을 개탄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선거는 끝이 났다. 가장 공적인 일들에 복무하기 위해 세상에 나선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도 사적인 이익에 골몰했다고 서로 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는 상황에서, 선거에 나선 개인이 투표를 통해 지켜야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개인에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토대나 근거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선거 과정을 보며 하릴없이 답답해지는 마음에 다시 열어본 책이 《자아의 원천들》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사적 이익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한 삶과 헌신을 이야기하는 말들에서 느낀 염증을 치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근대적 정체성에 대한 그의 그림이 우리 시대의 도덕적 상황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현재 살아있는 서양 최고 철학자 중 한 명이다. 《자아의 원천들》은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생애에 읽었던 책들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꼽는다. 출간 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이 주는 울림은 현재도 여전하고, 오히려 공동체를 뒤덮으며 광폭으로 질주하는 개인의 시대에는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철학사, 종교사, 지성사, 그리고 문학 등의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며, 지금까지 전개된 다양한 근대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교통정리하고 연결해 근대 주체를 형성하는 여러 측면을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세분화된 여러 학문에서 이뤄낸 주요 문헌의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테일러 자신의 맥락으로 담아내는 데 할애하고 있어서, 읽는 독자들에게 여러 영역의 주요 문헌들을 따라가며 지적 경로를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 때문인지 번역서의 경우 1,0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이어서 독서에 엄두를 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테일러의 글은 철학적 논의들이 자주 보여주듯, 어렵고 꼬여있는 그래서 한참을 다시 읽어도 의미가 손에 확 잡히지 않는 그런 책은 아니다. 풍부하고 방대한 내용들이 비교적 쉬운 언어로 표현돼 있다. 어느 학자의 표현처럼 “기만적일 정도로 쉽다”는 것은 과장일지 몰라도 다른 철학책들에 비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여느 철학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주장을 부드럽고 정중하게 펼치는 사람이며, 날 선 비판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학자가 아니다. 지적인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힘으로 평범한 언어를 통해 본인의 주장을 펼쳐 나간다.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평범하고 쉬운 일상 언어에 기초해 철학적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 소개를 읽고 집어든 고전들이 늘 그러하지만, 평자들의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이 책의 주제가 갖는 무게 그리고 다루고 있는 내용의 방대함과 다채로움에 비해 그의 글쓰기와 논증이 보여주는 놀라운 재주는 감탄과 함께 학문적 역량에 대한 부러움을 일으킨다. 하지만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심과 이해가 없다면 이 책에서 얻어가는 이득이 조금 부족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개인과 자아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자유롭게 욕망을 충족시키라고 명령하는 자기계발서류 책들의 홍수 속에, 나의 감정과 욕구에만 집중하게 하는 진정성은 나를 제외한 모든 타자적 존재를 나의 진정성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간주하게 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그것만으로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근대적 정체성 형성의 풍경: 다양한 원천들

 

찰스 테일러는 《자아의 원천들》에서 현대적 정체성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피고 해석학적으로 탐구한다. 우리가 경험했던 현대적 정체성은 놀랍게도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해 중세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데카르트와 로크에게 도달하여 일차적으로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그들의 중대한 통찰이 현대적 정체성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고대나 중세와 완전히 단절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기여는 결정적이었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테일러의 생각이다.

 

또한 우리가 요즘 말하고 있는 ‘자아’라는 것은 자연적이거나 본성적인 것이 아니며, 사실 데카르트에 이르기 전까지 자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아는 일종의 근대적 발명품인 것이다. 세계를 기계론적으로 파악하는 데카르트적 시선과 자신의 정신마저 일종의 기계로 대상화하는 로크적 시선이 ‘나’를, 자아를 창조해 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테일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대인의 자아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 자아를 형성한 다양한 원천들이 현대에 서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 원천들》은 모두 5부로 나눠져 있다. 기본적인 탐색의 틀을 제시하는 제1부 <자아의 정체성과 선>에서는 자아의 정체성과 선(가치) 개념들의 불가분성이 논증되고, 모든 반성적 사유에 있어서 자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덕적 원천들이 필연적으로 요청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인간의 주관적 욕구, 성향과 선택을 객관적이고 위계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선의 다층적 이해에 기반하는 준거 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후 이어지는 장들의 세부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서로 경쟁하고 연결된 각 원천들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근대적 내면화 혹은 내면적 깊이를 갖고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주체의 개념이다. 둘째, 근대 초기로부터 발전된 일상적 삶의 옹호다. 셋째, 도덕적 원천으로서 자연의 내면적인 소리에 관한 낭만주의적 표현주의다.

 

테일러는 근대 초기만 해도 바람직한 도덕성의 성취가 인간 자신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통해 가능하다고 봤다는 점에서 중세 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그 이성이 어디에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도덕의 원천을 찾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새롭게 정립돼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본다. 데카르트는 도덕의 원천이 내면화되어 우리 내부에 위치하게 되는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플라톤의 철학에서 우주에 대한 설명은 도덕 이론과 서로 불가분한 방식으로 연결돼 있었다. 즉 우주의 존재론적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곧 좋은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때 이성은 이 선의 질서에 대한 통찰을 그 핵심적 역할로 삼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물질적 세계의 질서는 이른바 기계론적-과학적 방법에 의해 파악되기 시작한다.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이 인간의 도덕적 질서를 설명하는 데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정신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이 세계는 질적 성질은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것이 되고 추상적인 양적 성질을 본질적인 것으로 삼는 것으로 파악되기 시작했다. 막스 베버의 표현으로 하자면, 세계가 탈주술화(disenchantment) 됐으며 우리가 선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원천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곳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후 모든 앎은 외적 실재인 이데아로부터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정신 내부에서 구성해나가는 어떤 것이 된다. 이성에 의한 이 구축 능력이 우리 삶을 형성할 수 있을 때, 곧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일상적 삶의 옹호>에서는 전근대적인 영웅 혹은 종교적 이상에 따른 예외적 삶이 더 이상 삶이 지닌 의미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인간의 노동과 가정적 생활, 삶이 지닌 의미의 원천으로 대체되는 과정이 설명되고 있다. 즉 도덕적 탁월성은 이제 일상적, 직업적 활동과 가정적 생활에서의 삶의 방식 속에 존재하게 된다. <자연의 소리>에서는 근대적 내면화의 두 가지 방향과 연계된 낭만주의적 표현주의가 논의되고 있다. 한 방향에서는 창조적 상상력이, 그리고 두 번째 방향에서는 자연 혹은 인간의 본연을 하나의 도덕적 원천으로 보는 관점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자아 탐구의 목표는 자기충실성의 이상으로 확대된다. 이 자기충실성의 추구라는 측면은 자아의 중요한 원천인 동시에 나르시시즘적 자기애로 진행될 수 있는 길을 열 수도 있다. 이런 방향에 대한 경고와 비판은 테일러의 책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정교한 언어>에서는 근대적 자아의 정체성이 지닌 자가당착적 모순과 편협성을 해결하기 위한 치유책으로서 삭막한 세계에서 안식처로서의 가정과 일상적 삶의 찬미 그리고 공동체적 삶이 주는 유대성과 의미 지평의 확대를 제시하고 있다.

 

공동체에서 분리된 개인은 ‘부드러운 전제정치’를 야기한다

 

테일러는 이 책에서 자아는 어떤 원천들로부터 생성되고 구성된 것인지를 밝히고, 자아 개념이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현재 작동하고 있는 자유로운 개인이 지닌 문제들을 추적하고 있다. 공동체를 통해 정체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자아와 개인은 추상적이고 상상적인 존재이며, 이런 개인의 자유와 자아는 그저 본인의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삶을 정당화할 위험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정체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테일러의 핵심문제이며 그의 철학적 화두다. 테일러에 의하면 개인은 결코 공동체에서 분리된 원자가 아니다. 원자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개인적 가치에 묶여 있는, 즉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갇혀있는 개인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인들은 자기실현의 물질적 수단이 충분히 공급되는 한 자신의 사생활을 즐기지 결코 공동체의 문제에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테일러는 개인들이 선거와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만족하고 자신의 가치와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현대 자유주의는 시민의 능동적 정치 참여를 봉쇄한다는 점에서 ‘부드러운 전제정치’를 가능하게 한다고 경고한다.

 

테일러는 이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정체성이 공동체를 통해서만 구성된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현대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무엇이 실제로 더 중요하고, 어떤 가치가 공동체에 더 커다란 의미를 갖는가에 관한 공동의 관심과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답게 테일러는 개인들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전제할 때에만 개인은 공동체에서 분리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개인의 절대화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가 붕괴한다면 개인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도덕적 진공지대가 발생한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영위하기 위해 도덕적 질서로서의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테일러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의도는 근대성과 근대적 자아에 대한 일방적 옹호나 비판이 아니라 근대적 자아의 자화상에 대한 하나의 교정 작업이며 복구 작업이다. 얽혀 있는 역사적 전개 과정들의 명료화를 통해서 묻혀있던 선(善)들을 드러냄으로써 그러한 선들의 원천이 지닌 권능을 복원하고자 하는 시도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도덕적 공간과 기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개인들은 자유와 자기실현을 누려야 하지만, 그 개인들의 자아정체성 형성 조건으로 타인들과 각자가 속한 공동체, 그리고 공동체에서 공유되는 의미지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테일러의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치르는 데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개인의 부도덕이 전시되기에 급급한 참혹한 상황을 보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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