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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에서 존재로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는 ‘물리적 세계의 모든 것들은 그 근원에 비물질적인 원천과 설명을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를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은 ‘예와 아니오’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장비를 이용해 끌어낸 기록을 바탕으로 한 최종 분석으로부터 발생한다. 다시 말하자면 물리적인 모든 것들은 근원에서는 정보 이론적이며, 이것이 참여하는 우주다. ‘비트에서 존재로’, ‘참여하는 우주’, ‘모든 것은 정보다’와 같은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양자 정보(quantum information)의 기초적 아이디어를 제시한 존 휠러(John Wheeler)의 이 은유들을, 동시대를 산 선구자적 인물 클라우드 섀넌(Claude Shannon)을 중심에 두고 구체적인 미디어들의 발달사 그리고 정보에 대한 이론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인포메이션: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이하 《인포메이션》)라는 책이다.
정보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학문 분야에 따라 다른 정의가 사용되기에 정보에 대한 통합적 논의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이 책의 제목을 번역하지 않고 굳이 ‘인포메이션’이라는 것으로 남겨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보라는 용어로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포메이션의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정보는 개체의 차원을 넘어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보라는 단어를 파자해보면 정보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물론 영어를 비롯한 서구권의 언어가 일어로 번역되고, 다시 한국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개입하는 언어학상의 난점은 차치하고 살펴보자. 먼저 ‘알리다(inform)’라는 동사의 명사형으로서, 알려진 내용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정보라고 말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이른바 정보화사회의 도래를 환호하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보화를 외치던 1980년대 당시, 다수가 이해한 정보는 이런 것, 즉 모르던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새로운 내용을 담지한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이 단어의 다른 의미 그리고 《인포메이션》이라는 책에서 제시하는 정보의 뜻은 ‘in(en)+form+ation’으로 이해하는 것에 가깝다. 즉 접두어 ‘in(en)’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떤 실재의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것’ 혹은 그런 과정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존 휠러의 말은 바로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전개되며, 이 책의 저자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의 설명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책의 내용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이런 이해 방식이 작용하고 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확실한 경우에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보는 대상, 주변 환경 등의 불확실성과 관련돼 있다. 그래서 정보는 불확실성을 감소시켜서 진정한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 모든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며,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정보를 생성, 전달, 가공 및 저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그것의 과정이 바로 문자, 인쇄, 전신, 인터넷 등 미디어들의 도입과 발달의 과정일 것이다. 각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재 혹은 현실은 미디어가 형식화시키는 과정(in+formation)과 그 결과에 따라 다르게 전개됐다. 그런데 섀넌의 정보이론은 예를 들자면 구술적 인식 체계와 다른 문자적 인식 체계를 지닌 세계를 만들어내는 문자의 힘과 같이 자신의 방식으로 형식화하는 구체적 미디어의 힘과는 달리, 모든 기술의 기반이 되는 메타 기술(meta-technology)이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냈다.
정보에 대한 새로운 시선
《인포메이션》에서 설명하는 클라우드 섀넌을 보면, 그는 몇백 년이 지난 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섀넌의 이론은 미디어학과의 기본적인 교재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기본 모델이었는데, 학창 시절 그저 물리적 잡음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델이겠거니 했던 그 이론이, 우리 존재 일반을 설명하는 방식을 바꾼 혁명적 주장의 바탕이 된 이론이었다. 세상에나! 책의 본격적인 소개보다 먼저 이런 사실을 고백하는 쪽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고 생각이 든 이유다.
섀넌이 1948년 발표한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A Math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이라는 논문은 ‘의미’의 전달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물리적 전달의 효율성에 관한 통신 이론이었다. 이 이론이 보통 정보이론으로 불리며 통용된 까닭에 정보 개념에 관한 혼란이 더 생겨났다는 점도 사실이다. 마셜 매클루언(M. McLuhan)을 비롯한 많은 기술철학자와 의미를 정보의 중심에 두는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섀넌의 이론을 비판했었다. 그를 《인포메이션》이라는 책의 중심에 두고 있는 제임스 글릭도 같은 지점에서 비판받고 있는데,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일부에서는 기술결정론자의 혐의를, 그리고 정보 불평등의 문제에서 보여준 다소간의 무관심에 대한 비판과 미래에 대한 낙관론 등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에서 보여주는 장점들이 이런 비판을 덮게 만든다.
섀넌은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물리적 잡음을 최대한 통제하고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전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이고, 더 나아가 전달할 수 있는 대상이 단순히 문자나 말로 된 것들만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 우주의 모든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비트에서 시작해 메가·기가·테라·페타 등의 확장된 크기로 문자, 이미지, 소리로 이뤄진 모든 것을 전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비트에서 시작된 존재들의 우주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전달된 것의 의미는 섀넌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인포메이션, 빅 히스토리
어떤 사물에 대한 개념 자체가 변하는 시대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우리 인간의 정신과 삶에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흔히 이야기하는 문자도 그러하고, 전신이라는 미디어를 비롯한 충격적인 변화를 수반했던 미디어를 이해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매클루언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인공물을 미디어라고 부르면서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 혹은 생각의 방식 전환이 필요하고, 그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 비로소 그 미디어의 이해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글릭은 《인포메이션》에서 우리가 정보라고 지칭하는 개념 혹은 대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길을 안내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번역판의 부제목과는 상이한데, 원제는 《The Information: A History, a Theory, a Flood》다. 정보에 관한 역사로 시작해서 정보에 대한 이론, 그리고 정보 홍수에 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제목을 보면 대략적인 전개 과정과 내용이 대충 짐작이 될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을 읽다 보면 정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방식을 얻게 되는 동시에, 기존에 각 독자가 지닌 지식의 깊이에 따라 다양한 통찰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점은 저자의 이름이 다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한데, 나비효과를 우리에게 소개해준, 한 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카오스》라는 책의 저자가 바로 제임스 글릭이다.
그는 《카오스》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의 마지막 후보 중 한 명이 되기도 했고, 복잡한 과학 이론과 개념을 놀라울 정도로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서게 해주는 훌륭한 글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오랫동안 뉴욕타임스에서 과학 전문 기자로 활동한 그의 이력에서 나오는 꼼꼼한 내용 취재와 독자들을 빠져들게 하는 그의 이야기 솜씨는 다양한 개념과 학자들의 주장 그리고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인포메이션》의 내용을 참아가며 읽게 해준다. 많은 사람이 정보라는 것에 대해, 상식적 수준에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미 우리는 이른바 정보화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에 더 그런 생각에 확신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항상 문제는 근거 없는, 그러나 강력하게 작동하는 그런 확신에서 나오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된 인포메이션이라는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말하는 북이 보여준 세계
《인포메이션》은 무려 3,000년에 이르는 역사적 범위를 탐색하고 있다. 말하는 북에서부터 글쓰기의 출현 그리고 컴퓨터와 그것을 바탕으로 이뤄진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 이르기까지 살펴보고 있다. 이 역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정보를 다루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낸 미디어들과 그것을 다루는 사상가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클라우드 섀넌에 이르는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글릭은 이것처럼 여러 새로운 발명과 미디어들 그리고 사상가들의 이야기가 정보에 관한 하나의 큰 이야기를 완성하는 작은 부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글릭은 정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추상화의 과정인데, 정보는 어떤 것(예: 어떤 생각)이 다른 것(예: 단어)으로 추상화되는 과정에 개입하고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또한 정보는 여러 알갱이가 합쳐진 것과 같은 양식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섀넌이 ‘비트’라고 부르는 기본 알갱이들이 모여 어떤 존재의 단위가 된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 추상화와 작은 단위들이 만들어내는 규칙성이 바로 정보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파악할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용함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글릭은 정보화 시대는 알파벳이나 전화 혹은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 그 자체의 발명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되고, 0과 1과 같은 형태로 정제되며, 비트로 계산되는 것이 가능해지는 시점, 바로 그곳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정보는 모든 곳 그리고 모든 것에서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이제 모든 것은 정보라는 것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데, 이를 존 휠러는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이나 통계 자료 등을 정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만, DNA에 각인된 유전적 내용들을 모두 정보로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것은 물론 돈은 누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정보일 수 있고, 물질의 원자들 역시 어떤 종류의 정보일 수 있다. 이런 관점을 확장하면 우주의 모든 사물은 서로 연결된 추상화의 구조 속에 놓여 있으며, 그 구조는 정보라는 것을 통해 생각하는 방식으로 가장 잘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를 통해 새로운 시선이 열리게 된 것이다. 글릭은 바로 이 새로운 시선이 열리는 것이 어떤 맛인지 책의 첫머리에 보여준다. 말하는 북이다.
《인포메이션》은 ‘말하는 북’이라는 아주 재미있고 통찰이 숨어 있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꽤나 두껍고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는 책의 첫머리에 이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일종의 길잡이 혹은 서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 열대우림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전달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지닌 사람들은 단순히 소리로 들리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야기하듯 그 내용이 전달된다는 것을 실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북이 울리는 소리로만 들리는 사람들은 북이 하는 말을 듣는 사람들과는 ‘실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이다.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의 상황에 견주어 말하자면, 북을 두드리는 속도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졌고, 그 허용량은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그래서 오히려 옆에서 외치는 소리보다도 더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북, 흔히 스마트폰으로 우리가 부르는 북이 우리 모두의 손에서 두드려지는 중이다. 물론 전달된 그 북소리를 듣고 그것이 어떤 의미로 새겨질지는 여전히 다른 문제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우리 언론이 북을 두드릴 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여기일 것 같다는 생각은 아직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못 봐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