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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26 - 정찬형 YTN 전 대표이사
기획연재 | 등록일 : 2022-04-29

“제가 내일 대담 진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겼습니다.”

 

휴대폰에 뜬 그의 문자 메시지에 가슴이 철렁했다. 어렵사리 성사된 대담이 무산되면 어쩌나 하는 속물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가 건조한 문자 뒤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는 “다음 주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메시지로 나의 속물스런 걱정을 잠재워 주는 대신, “사정은 그때 설명 드리지요”라는 말로 나의 인간적인 염려를 더 키웠다. 문자 그대로 ‘불행 중 다행’인 상황이었으나, 누구의 불행이고 누구의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약속된 일자에 정찬형 전 YTN 대표를 만나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안색을 먼저 살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은 전과 같이 형형했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그의 건강 측면에서도, 그리고 덩달아 나의 죄책감 차원에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그가 다음에 꺼낸 말은 나의 불안감이 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그때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문자 메시지를 드렸습니다.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았지만 약속 날짜 즈음에는 거동이 가능하겠다 싶어 응한 거였는데, 수술받았던 부위가 터져버렸지 뭐예요. 약속을 취소해야 하나 싶었지만, 원고 기일에 임박해 있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아는 처지라.”

 

그는 웃었지만, 나는 웃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쩌랴, 비틀스의 ‘오블라디 오블라다(Ob-La-Di, ObLa-Da)’가사처럼, ‘삶은 그렇게 굴러가는 것(life goes on)’이 아니겠는가. YTN 대표 임기를 마칠 즈음에 불행히도 몸에 큰 병이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됐고, 다행히 빨리 수술을 받게 됐고, 불행히 수술 자리에 문제가 생겼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잘 수습해서 대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원고 마감에 쫓기는 불쌍한 ‘동지’에 대한 연민도 때론 삶을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법이다.

 

“비관적인 전망 같은 건 안 하려고 했었거든요. 비관적 전망은 ‘청산하는 사람들’의 기술이에요. (해오던 일을) 청산(하겠다는 마음을 먹기) 전에 비관적 전망을 내려서 자기의 청산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내세우기 위한. 차범근도 그렇고, 박지성도 그렇고, 손흥민도 그렇고, 잘하는 선수들은 악조건에서 공간을 확보하고 점수를 내는 거지, ‘조건이 나쁘니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죠. 지더라도 덜 지게 하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낙관적인 부분을 보려고 그랬는데….”

 

시장의 주목받은 ‘YTN스럽지 않았던’ 시도

 

정찬형 전 대표는 이른바 (그 세대가 종종 품고 있던) ‘혁명적 낙관주의’를 체현하고 있는 인물로 보였다. 수술 후 회복 중에 나의 대담 제의를 (여러 있을 법한 다른 고민에도 불구하고) 결국 받아줬고, 위급한 상황이 생겼어도 상대의 처지를 걱정하며 날짜를 옮겨서라도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그런 그 자신의 행적을 담담하면서도 다소 코믹하게 기술하기도 했다. 그런데 “했었거든요”라는 말에서 비치듯, 영어식으로 하자면 ‘과거완료형’으로 자신의 낙관주의를 기술하는 국면이 생겨버렸다. YTN 대표를 맡았던 시절이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실패했어요. 저는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쉽게 안 무너진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3년 계약 종료로 <뉴스가 있는 저녁> 앵커에서 하차한 변상욱 기자, 그리고 그전에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진행자 자리를 그만둔 이동형 작가 등을 떠올리며 꺼낸 말로 보인다.

 

 

정찬형 YTN 전 대표이사 <출처 - 필자 제공>

 

 

“변상욱 기자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했던 이유가, 혼란한 뉴스를 정리해주는 통찰이 가능한, 팩트체크가 가능한 브리핑을 쭉 해왔기 때문이에요. 일종의 반발도 있었지만, 언론계나 미디어 리터러시 관점에서 보더라도, 또는 언론 지망생들의 입장이나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더라도,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는 거거든요. 상시적으로 미디어 비평을 했던 거고, 이 안쪽(YTN)에 있는 사람들이 안 하는 부분을 해왔던 건데, 변상욱 기자가 빠지고 난 자리가 채워질 수 있을까. 제가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했다면, 변 기자 본인이 건강도 안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잡았어야 되지 않나, 저 같으면 잡았겠다. (…) 시청률이 거의 안 나와서 뉴스 편성도 안 하던 시간이에요. 다른 데가 저녁 뉴스 들어가면, YTN은 ‘우리는 그 시간에 장사 안 해요’ 이런 분위기였거든요. 저녁 뉴스를 만들어 그만큼 오게 했는데, 수훈갑인데, 붙잡았어야 되지 않나.”

 

<뉴스가 있는 저녁>은 지난 3년간 평균 시청률은 유료방송 가입 가구 기준 1.11%를 기록했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지난 3월 1일 방송은 2.47%였다. YTN 안에서 독보적일 뿐 아니라 뉴스 시청률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간대에 거둔 보기 드문 성과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주로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편향성 논란이 야기되긴 했지만, 이들이 동시간대의 종편 뉴스에 대해서는 별말 안 하는 것으로 보면 ‘편향에 의한 편향 논란’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하다. 모든 평가는, 특히 이 시대의 저널리즘 산물에 대한 평가는 상당 부분 자기중심적이고 또 편파적이다. 적어도 분명한 건, 정찬형 전 대표가 YTN에 있었을 때 시도한, 기존의 ‘YTN스럽지 않았던’ 사례는 대중의 이목을 끌었고 시장에서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대표로 재직했던) 기간 동안에 변화를 꾀했던 것들이 상업적으로도 실패하고 이랬더라면 보람이 없었을 텐데, 피드백도 엄청 셌고, 반응도 엄청 좋았고, 상업적으로도 시장에서 성공했고, YTN의 평판에도 영향을 끼쳤죠. <뉴스가 있는 저녁>이나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등이 기성 보도에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해서,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 조사나 평판 이런 것에서 (YTN 및 여기서 생산된 프로그램이) 항상 높은 점수를 낼 수 있었던 걸 생각을 하면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결과가 나쁘지 않은데, 지속가능하게 만들어놓기까지 했어야 되는데, 그것까지는 못했죠. 어디까지가 내 책임일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평가를 한다. 정찬형 전 대표의 자기 평가 역시 그럴 것이다. 그건 감안돼야 마땅하다. 다른 이들, 특히 그가 재직하던 시절 YTN에 종사하던 이들의 평가를 들어야 그럭저럭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테다. 그런데 기업 대표의 공과를 따질 때, 어떤 이유로든 그의 경영 방침에 반대했던 이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마련이고, 그의 재임으로 인해 무언가를 얻었던 이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게 뻔하다. 일단 정찬형 전 대표의 재직으로 인해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이들은 그의 어떤 경영 요소에 의해 덕을 보았을까.

 

“(경영자의 역할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스스로가 금기시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다’고 공간을 열어주는 일. 그렇게 하다 보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원칙을 말해주면, 그걸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친구들이 있어요. 리스크 없이 돈 벌려고 하는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고, 리스크 관리를 잘하는 게 실력이고 그게 매니지먼트(의 역할)인 거.”


과거완료형이 된 YTN에서의 ‘실패’

 

그가 열어준 공간에서, 새로운 주체가 전과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었던 흔적은 여러모로 역력하다. 앞서 언급한 <뉴스가 있는 저녁>이나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등의 프로그램이 그러하다. 과거의 YTN과는 확연히 달랐고, 보통의 YTN 프로그램에 비해 충성도가 높은 수용자를 끌어모았다. 그가 TBS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에 탄생시킨 전혀 새로운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 역시 교통 관련 소식을 전해주는 관변 라디오 방송에 국한돼 있던 TBS를 일약 한국 시사 방송계의 샛별로 등극시켜 격변을 야기했다.

 

“TBS에 있을 때 제작에 있던 친구들이 저한테 이렇게 묻더군요. ‘대표님, 왜 같은 재료를 쓰는데 MBC 라디오가 만들면 정품 같고, 왜 TBS가 만들면 약간 좀 삐짜(B자) 같을까요?’ 사실 그랬죠. 당시 TBS는 모든 프로그램이 이미테이션(모방품) 가지고 먹고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로부터 한 1~2년이 지나고 난 다음, <김어준의 뉴스공장> 새벽 라이브를 하는데, MBC 후배들이 휴가 내고 그걸 방청하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그 친구를 불러서, ‘B자가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저기 A자 만드는 데서 휴가 내고 왔단다. 자리 하나 좀 마련해줘. 너희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금 타 메이저인 공룡, 대 MBC 라디오가 휴가 내고 왔단다’라면서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말해줬죠. (웃음) 저는 그렇게 작은 콘텐츠 하나가 주변을 변화시키는 동기가 되고, 학교가 되고, 아카데미가 되고 이러는 게 너무 즐거워요. 지금도 그게 작동이 되고 지속가능해져 있다는 게.”

 

이 말을 할 때 정찬형 전 대표의 얼굴엔 자랑스러움과 아련함이 동시에 흘렀다. MBC의 능력 있는 라디오 PD로서 여러 히트 프로그램을 ‘제조’하는 한편, 보도와 제작에서의 공정성과 자율성을 지향하는 언론 노동조합의 초기 역사를 개척하기도 했던 그가, 홀연히 MBC를 떠나 TBS 대표 자리를 맡고,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라는 또 하나의 메가 히트작을 터뜨렸던 일. 그건 YTN 대표 시절보다 더 먼 과거였지만, 관련된 회상은 과거완료형은커녕, 과거형을 넘어 현재형, 심지어 ‘현재진행형’으로 기술됐다. B자 시절의 TBS는 과거‘완료’형이고, 변화된 TBS를 보러 오던 MBC는 과거형이라면, 그 변화가 지속되는 TBS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런 게, 그런 공간을 내어 새로움을 길어 올리고, 그 경험이 확산되는 과정이 즐거운 그는 현재형이다. 그렇다면, 너무 빨리 과거형을 지나 과거완료형이 돼버린 YTN에서의 ‘실패’에 대해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임명동의제의 벽을 넘지 못했죠. YTN의 구성원 스스로가 10년을 싸우면서 그 과정에서 리더 역할까지 했던 (…)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 인물을 배척해버리는 바람에. 보도국장이 됐어야 했던 다른 인물의 경우도 비토했어요. 결국 보도국을 보조하는 기능에 불과했던 제작국을 보도제작국으로 해서 임무를 나누는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죠. <뉴스가 있는 저녁>이 보도제작국의 주요 업무이면서 <돌발영상>이나 <알고리줌> 등을 만들 수 있도록 구조를 짜놓고, 여기에 시사 PD들이 결합하게 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 인사권으로 보도국장을 세울 수 있었다면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은 있어요.”

 

 

그가 열어준 공간에서, 새로운 주체가 전과 다른 무언가를 채워 넣었던 흔적은 여러모로 역력하다. <뉴스가 있는 저녁>이나 <이동형의 정면승부> 등은 과거의 YTN과는 확연히 달랐고, 보통의 YTN 프로그램에 비해 충성도가 높은 수용자를 끌어모았다. <출처 - 필자 제공>

 

 

대중의 시선을 YTN으로 이끌었던 <돌발영상>의 초기 주역이자, 당시 정부가 벌였던 YTN 장악 시도에 파업으로 대응하는 일련의 싸움을 이끌었고, 결국 해직자가 됐다가 다시 YTN으로 돌아온 노종면 기자를 보도국장으로 천거했지만, 당시 YTN 기자의 절반을 살짝 넘는 비율로 거부됐다. 이번엔 (구성원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를 더 받아들여) 김선중 기자를 새로 추천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임명동의를 얻지 못했다. YTN 보도국 구성원들은 보도국장 임명동의 재차 부결을 통해 사실상 정찬형 체제에 확고히 반기를 들었던 셈이다. 정 대표가 보도국을 경유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보도전문채널인 YTN의 대표가, 보도 조직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 기대한 인물을 국장으로 임명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건, 이미 정찬형이 시도한 실험 자체가 거의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는 의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찬형 전 대표는 언론노조 운동의 주역으로서 MBC 재직 시절 주요 보직 임명동의제와 중간평가제를 쟁취했던 인물이고, 이는 여러 언론사에 전파된 바 있다. 

 

“사실상 제가 만든 제도의 장벽을 제가 넘지 못한 거죠. MBC 초창기에 10개 국장에 대한 중간평가제를 해서 9개 국장을 날려버렸던 역사도 있고 그랬는데…. 의지를 갖고 건강한 방송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리더로 왔을 경우에 그런 제도가 브레이크로서 작동이 되는. 그렇죠. 아이러니를 경험한 거죠. (…) 그래도, 제가 두 번이나 잘못 임명했다고 하는 건 인정하기 어려워요. 지금 와서 생각해도, 잘못 임명한 게 아니다. 거부한 거다, 어떤 변화를. 그 두 사람 같은 경우에는 혁신하고 변화를 시킬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었거든. 그러니까, 변화나 혁신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그런 결과를 빚었던 거라고 봐요. 그래서 변화와 혁신이 보도국이 아닌 보도제작국의 제작물에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던 거죠.”

 

과거형 벗어나 지속가능한 낙관주의 구현되길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넘어, 경영과 제작·보도의 분리를 지향하는 건 언론 조직과 미디어 기업을 일반 기업이나 직업과는 다른 특수한 존재로 만드는 제도적 기초다. 그러나 이건 양날의 검이다. 보도와 제작을 입맛대로 통제하려 드는 외부 간섭에 저항할 진지이기도 하지만, 바람직하고 또 필수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도 있다. 악한 경영자는 이 진지에 의해 퇴출돼야 마땅하고, 선한 경영자는 이 리그를 깰 힘을 지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선과 악은 그리 말끔하고 자명한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되도록 공정하게 말하자면, 경영자의 자질 혹은 성정이 강하거나 약한 것에 의해 실제의 결과가 좌우될 가능성이 높을 뿐이며, 악하고 강한 경영자 앞에선 무색해지고, 선하고 약한 경영자 앞에선 기세등등해질까 봐 염려될 따름이다. 나는 정찬형 전 대표의 선과 악을 따질 의향은 없다. 다만 보도 자율성 보장을 위해 구축된 제도를 무시할 만큼 강하거나 자기부정적이지는 않은 인물이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다.

 

“결국은 여러 차례 말함으로써 동어반복을 계속한 셈이 됐지만, 저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YTN 구성원들에게) 반복적으로 질문했던 것 같아요. 규약을 만들었지 않느냐, 노사가 합의했지 않느냐, 노조 창립 정신은 이런 것 아니었느냐. (…) 예를 들어 코로나19 초기 국면에서 보도가 엉망진창이었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도 그런 거였어요. 메르스 이후 만들어진 감염병 보도 준칙이 있다. 우리 인트라넷 열자마자 바로 그게 뜨도록 올려놓아라. 지금 아무도 그 생각을 안 하고 보도하고 있다. 앵커 뒷면 벽에 ‘코로나 패닉’이라고 내걸고 있지 않느냐. 그 준칙에 ‘패닉’이라는 단어 쓰지 말라고 돼 있지 않느냐.”

 

그가 YTN을 통해 하고자 했던, 벽에 가로막히자 보도가 아닌 보도 제작물이라는 우회로를 뚫어서라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가 원래 YTN에서 구축해보고 싶었고 일부 실험도 했던 것은 피드백을 받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뉴스였어요. 24시간 뉴스 채널의 경우에는 충분히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데, (우리 보도 내용에 대해) 피드백이 들어오거나 반론이 들어오면 그걸 데스킹해서 바로바로 (후속 뉴스에) 붙여버리는 거죠. (…) 이렇게 해서 뉴스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바뀌고, 다른 기자가 이걸 종합해 나가면, 밤쯤 되면 더 업데이트된 기사가 되는. (…) <시시콜콜>이라는 이름으로 시도를 해봤죠. 시청자센터에 제작 권한을 준 다음 시청자 피드백을 받아 이후 보도에 반영이 되게 하는 식으로, 내부에선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반발이 엄청 심했죠. 그래도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던데, 유지가 됐으면 좋겠어요. 기계처럼 찍어내는 뉴스가 아니라 문답이 되는 뉴스.”

 

그는 사회적 의미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기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새롭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그 영역을 더 넓혀갈 수 있는 생태계를 꿈꿨다. 경영자로서의 정찬형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제각각 다를 수도 있지만, 역량 있는 라디오 제작자로서 그런 표본을 만들었고, 언론 노동조합 운동가로서 그것을 위한 진지를 구축했으며, 공영 미디어 기업의 경영자로서 제작 자율성을 존중하며 새로운 것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그래서 그의 과거완료형 경험은 더 나은 공영 미디어를 구상하는 이들에게는 마땅히 현재진행형의 자료가 돼야 한다. 그리고 설핏 주춤하고 있는 그의 낙관주의는 새로운 힘을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노동조합 운동을 통해서 언론사들이 각성했는데, 그렇다고 각 언론사의 구성원들이 모두 더 발전된 형태의 언론을 만들어내려고 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고 봐요. 그중 몇 명이서 그 공간을 확보해서, 이를테면 텔레비전에 ‘어머니의 노래’ 등 광주에 관련된 것을 만들기 시작하니까, 라디오에서도 뭔가를 만들어 보고,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출입처 저널리즘의 약점을 보완해보게 되고 그런 역사였다고 생각해요. (…) 플랫폼이 다양화되는 과정에서도 이런 ‘의인’ 열 명은 항상 있을 것이다 (웃음) 그런 낙관적인 생각이 있었다니까요. (…) 제가 지금까지 만든 성과로 얻은 분들이나 새로 발견한 사람들을 쭉 짚어보니 열 명은 되더라고요. 소돔과 고모라는 고작 의인 열 명을 채우지도 못해 망했는데, 내가 보는 의인은 아무리 못해도 열 명이 넘는다. (웃음) 그리고 그 영향력도 작지가 않다.”

 

그게 선의지에 의한 것이든 악덕에 의한 것이든, 강압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느려 보여도 결국 설득과 감화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스스로 공간을 열고 넓히는 시도를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역사는 분명 다수가 함께해야 만들어지는 것이나, 그 다수를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소수의 의인이고, 그들 사이의 연대가 아니겠는가. 정찬형 전 대표를 여기까지 발 디뎌 오게 한 낙관주의가 지금은 잠시 ‘과거형’으로 또 한 번 표현되고 있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금 희망에 찬 미래형 문장으로 바뀌고, 지속 가능한 현재로 구현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그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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