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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 27 - 한경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기획연재 | 등록일 : 2022-05-27

최근 자진사퇴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이른바 ‘아빠 찬스’를 활용한 자녀의 부정 편입학 논란을 넘어서지 못했다. 딸과 아들 모두 면접 점수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있었고, 편입 평가에 반영됐던 아들의 논문은 ‘스펙 쌓아주기’의 결과물로 의심받았다.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의 고교생 딸도 비슷한 문제 제기에 부딪혔다. 대필 의혹이 불거졌고, 논문 실적을 위한 일종의 부실 공장이랄 수 있는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s)’를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앞의 경우와는 달리 그는 법무부 장관이 됐다. “입시에 활용되지 않았”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른 듯하다. 검찰의 압수 수색과 기소는 없었고, 언론의 몰아치기도 그리 거세지 않았다. 또 한 번의 큰 내홍과 분열을 겪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인 걸까? 우리 사회는, 우리 정치는, 그리고 우리 언론은 4년 전의 그 사건을 거울삼아, 공직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함께 적절한 자제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진 걸까? 유감스럽게도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기존에 문제 됐던 엘리트층의 ‘스펙 품앗이’는 오히려 더 산업적이고 더 조직적인 ‘스펙 공장’으로 발돋움해 있고, 지난번 일과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 엘리트층이 학벌을 매개로 자신의 계층성을 자녀에게 효과적으로 상속시키기 위한 분투를 멈출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테다. 오히려 더 음습하고 더 폐쇄적인 써클 안에서 더 고도화되고 더 정교해진 노하우를 개발해 은밀히 전수함으로써, 평범한 이들은 도무지 접근할 수 없는 ‘천공의 성채(SKY castle)’를 짓게 될 것이 뻔하다.

 

“교육은 죽었다. 교육 만세!”

 

이즈음 나는 허한 마음으로 온라인을 떠돌다가 한겨레에 실린 한 줄의 문구에 시선이 꽂혔다. <교육은 죽었다. 교육 만세!>라는 제목의 칼럼. 아니, 교육이 죽었다면서, 별안간 만세는 또 무얼까? 이 또한 그렇게 경멸해 마지않는 낚시 기사는 아닐까? 반신반의하며 클릭을 했고, 후루룩 읽어 내려갔다. 한경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의 특별 기고 칼럼이었다. 유네스코 총회가 2021년 11월에 발표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보고서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그는 이렇게 전하고 있었다.

 

“학생 시절에 ‘왕은 죽었다. 왕 만세!’ 구호를 접했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났다. 왕국을 일신하려면 선왕을 묻어버려야 하듯, 교육의 미래는 낡은 교육이 사회적 효능을 다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열리지 않을까?”

 

그 칼럼에서 직접 설명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왕 샤를 6세가 죽고 그의 아들 샤를 7세가 즉위할 때 처음 사용된 그 구호 “Le roi est mort, vive le roi!”는 기존 왕의 죽음이 곧 새 왕의 등극을 알리는 서양 군주제 국가의 의례적 구호로 자리 잡았다. 이것저것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연상 작용의 후과일 테지만, 마침 정권 교체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불거진 ‘교육’ 문제이기도 하니, (옛)교육의 죽음과 (새)교육의 탄생을 선포하고자 했던 한경구 사무총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유네스코가 제안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란 게 도대체 무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그리고 유네스코 총회의 그 보고서는, 내가 맞부딪친 암울함이나 그것을 안겨준 사회정치적 계기와는 관련 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담론을 제안하려 한 것일 테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유네스코, 어쩐지 우리를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이끌 것 같은 이름 아니런가? 그렇게 무작정, 그를 만났다.

 

“(이 보고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글로벌 차원의 문제도 있지만, 한국 교육을 혁신해보는 작업을 하기 위한 매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만한. 그러니까, 한국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응축된 그 부분)에 주목하는. 새로운 정부에서도 교육 개혁을 하겠다고 하죠. (…) 저는 옛날부터, 입시 공정성 문제는 입시로 해결하면 안 된다, 아니 사회에서의 평가가 불공정한데, 학벌 좋은 놈이 당연히 유리한데, (즉 학벌로 사람을 보는 식의) 평가가 부정확하니까 학벌 좋은 놈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입시가 공정해질 수가 있냐, (여력이 되는 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밀고 들어가게 돼 있다(고 주장해왔어요). (…) 대학 학벌이 그리 좋지 않더라도 어쨌든 링에 올라갈 찬스를 주는 사회, 그리고 평가를 (일생) 한 번이 아니라 중간에 몇 번 해줘서, 학벌이 좋은 사람도 시원치 않으면 점점 내려갈 수밖에 없고, 학벌이 시원치 않아도 본인이 분발해서 올라갈 수 있으면, 죽을힘을 다해서 입시에 (모든 걸) 쏟을 필요가 없어지거든요.”

 

 

한경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출처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홍보팀>

 

 

한경구 사무총장은 평생 교육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하버드대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강원대 인류학과 교수로 첫 교편을 잡았다. 이후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서울대에 새로 설치된 자유전공학부에서 학부장을 맡아 우리 고등교육의 혁신을 위한 다양한 실험에 매진했다. 정년퇴임을 앞둔 2020년 12월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에 취임했는데, 그의 말마따나 유네스코는 지금은 주로 세계유산을 매개로 대중에게 인지되지만, 교육 문제를 중추로 해서 결성되고 활동해온 국제기구다.

 

“제가 있었던 강원대는 국립대학 가운데 마이너에 속해요. 그래도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거든요. (…) 한국의 인구 규모면, 사립대학 중요한 것들하고 거점 국립대학들까지 해서 한 스물다섯 개 정도에 들면 어느 대학을 나오더라도 (주된) 링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입시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아요. 죽을힘까지 쓸 필요는 없게 되는 거죠. 그런데 거점 국립대학의 학부 교육이 엉성한 경우가 많거든요. (…) 학부 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하게 되면 입학 당시의 학력은 다소 격차가 있다 해도 기준선을 끌어올려서, 졸업 시점에서는 그렇게 심각한 차이가 있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안 하고 자꾸 입시 단계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해요. 입학사정관제를 했다가, 프랑스 바칼로레아 제도가 에세이를 쓴다고 하니까 우리도 에세이를 (입시에) 도입했는데 실패했죠.”

 

학교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그는 우리 사회가 형평성과 수월성이라는 교육의 두 목표를 놓고 실질적으로는 마치 어느 한쪽에만 정답이 있는 것처럼 왔다갔다 해온 게 문제라고 보고 있었다. 엄연히 수월성의 문제가 혹은 욕망이 존재하는데 마치 형평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거나, 사회적·교육적 형평성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실질적으로는 수월성 중심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종의 역설에 갇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수월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 방식을 다층화하는 한편, 주요 대학 간의 수월성 격차를 완화하는 노력을 동시에 진행하지 않은 채, 대학으로 가는 관문만 공정하게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의무교육에서 고등교육으로 이어진 다음 끝나버리고 마는 ‘학교 교육’의 시대 자체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유네스코 보고서에 대한 저의 독해는 ‘학교의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고 말하는 데 있어요. 지금까지 학교는 굉장히 많은, 뛰어난 공헌을 했지만, 이제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평생학습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거죠. 사실 학습사회라는 개념은 이미 1970년대 유네스코 보고서에서부터 제안된 개념인데, 이제 진짜 그렇게 된 거죠. 우리나라는 평생교육을 학교 못 간 사람들 위주로 하고 있는데, 이제는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교육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 여태까지는 학교 교육이 (국가 예산 투입의) 주였어요. 평생학습은 교육 예산의 1%도 안 된다고 그래요. (…)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데, 대학 후의 학습(수준)은 한국이 엄청 낮지 않습니까? 나이 40이 되고 50이 돼도 다른 OECD 국가 사람들은 꾸준히 뭔가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책 한 권 안 읽고 그러는 거죠.”

 

유네스코 총회가 2021년 11월에 채택하고, 2022년 봄에 한글본으로도 발간된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보고서는 ‘전 생애에 걸쳐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 보장을 전 세계 국가에 촉구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의 시대에도 적정한 질을 갖춘 인간 노동이 보장되려면, 그리고 나아가 기후 위기와 같은 환경적 재앙을 극복하려면,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가치와 방법론을 체득한 시민이 필요한데, 도리어 “양질의 교육이 엘리트의 특권이 되고 대다수 집단은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어 비참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찾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20세기의 교육이 ‘학교’를 중심으로 문해력을 갖춘 시민을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21세기의 교육은, 물론 학교의 효능성을 보호하고 재창조해야 하지만, 학교 바깥에서 “학습에 대해, 또 학생, 교사, 지식, 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의 제안처럼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한계와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를 바꿀 전환점이 될 수 있고, 이는 “교육에 대한 공공 재정 투입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교육에 관한 공적 토론에 모두가 함께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글로벌 사회는 고사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비전과 담론조차 도무지 생성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치, 우리 학문, 우리 언론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때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은 이제 유네스코에 많은 분담금을 내는 나라들 중 하나로 성장했다. <출처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홍보팀>

 

 

“우리 사회 속의 교육 격차, 굉장히 심하지 않습니까? 좌절감도 많고요. 저는 이제 이것을, 우리 문제를 오히려 다 까자고 말해요. 한국 교육은 한국 내에서는 그렇게 비판의 대상이지만, 외국에선 한국 교육을 엄청 부러워하고 한국은 엄청 교육 잘하는 나라로 돼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한국 교육이 성취도 많지만 사실 문제도 많은데, 우리는 이런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고 있다, 혹은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니 같이 힘을 합치자, 왜냐하면 한국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너희들도 겪고 있거나 곧 겪을 문제이니까, 라고 (세계에 대고) 말하자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 하잖아요. ‘선진국이란 자신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만드는 나라’라고요. (웃음)”

 

‘슬기’ 모으는 능력 부족한 한국

 

한경구 사무총장은 한국이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국가가 됐음을 여러 번 강조했다. 특히 “유네스코에 가면 (한국은) 최고의 모범생”이라는 것이다. 유네스코 분담금 순위로 8위에 해당하는 나라고, 자발적 분담금을 기준으로 하면 그 이상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국가별 위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하고, 역동적이라는 칭찬을 받는단다. 그러면서 그는 서가에서 옛날 국정교과서 한 권을 꺼내 내게 보여줬다. 책의 마지막 장에, “이 책은, 유네스코와 운크라에서 인쇄 기계의 기증을 받아 설치된 국정교과서 인쇄공장에서 박은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이 됐을 때 이걸 들고 유네스코 본부도 가고,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보여주면서,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공부를 한 가난한 나라의 소년이 유엔 사무총장이 됐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교육이 중요합니다’라고 했대요. (유네스코와 한국의 관계를 역설하는) 아주 짧으면서도 강렬한 물증이었던 셈이죠.”

 

한경구 사무총장 스스로도 대학 시절 유네스코가 한국에 제공한 북 쿠폰으로 전공 서적을 구해본 경험이 있는 이다. 그런 길을 거쳐, (돈이 될법하지 않은 학문을 하겠다는 자식의 생계를 걱정하는 부친의 염려를 잠재우기 위해)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외무공무원이 됐다가, 다시 학문을 선택해 유학을 갔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수가 된 다음, 또다시 유네스코와 오랜 인연을 맺은 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에까지 취임했다. 그동안 한국은 유네스코의 쿠폰을 가장 많이 받던 나라에서 유네스코에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에게 여전히 안타까운 사실은 “마음 좋은 시골 아저씨처럼 돈은 많이 내는데” 아직까지 “말발”이 서지 않고 리더십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리더라는 사람은 우리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언지를 정의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생각을 못 하거나 어렴풋하게만 생각하는 것을 딱 부러지게 잡아내서 ‘이게 문제다, 우리 이걸 해결해야 돼’하면서 이슈를 던지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자기가 직접 해결을 못 한다고 해도, 문제를 제시하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함께 방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아직까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그런 것을 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저희가 아젠다를 제시하고, 그 담론을 주도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선도하는 그런 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진짜 선진국이 아닌 거예요.”

 

​그 이유를 그는 우리 사회의 전문가 집단에게서 찾고 있었다.

 

“한국이 이제 옛날보다 커져서 전문가도 각 분야에 생기긴 했는데, 뭐랄까요, ‘슬기’를 모으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개개인으로서의 전문가들은 꽤 성장을 했는데, 어떤 현안이 있을 때 모여서 어떤 문제를 탐구하고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 너무 약한 겁니다. 그러니까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 너무 없고요. 전문가의 책임이긴 하지만 전문가의 전문성을 존중하기보다 갑질만 하는 공무원들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 그러다 보니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신념으로 가(는 결정을 내려)요. 물론 사람이 따질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신념으로 갈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그래도 따질 수 있는 건 다 따져봐야 하거든요. 그러고도 모르겠는 게 남으면 신념으로 가는 건데, 우리는 그 과정이 너무 약한 것 같아요.”

 

 

한경구 사무총장은 “내 주장만 한다기보다 남의 주장도 내가 좀 들어보고, 상대도 내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앞으로 유네스코가 해야 할, 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출처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홍보팀>

 

 

비난받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사회 만들어가야

 

그래서 그는 이제는 유네스코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너무 정치나 이념으로 갈리거나, 전문가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슬기’를 모아 국제사회에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담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딴생각을 가지고 누군가를 이용해 먹으려는” 주체로 비쳐서는 안 되는데, 그래도 유네스코에게는, 비록 그 자체로서는 자원과 인력을 많이 갖추지는 못한 소박한 조직이기는 해도, 역량 있는 사람들과 시민을 ‘모아낼 수 있는 힘(convening power)’이 있다고, 아주 겸손한 어투로 그는 자신했다. 말할 기회를 공정하게 주고, 반박할 기회도 갖게 하고, 그러면서 “내 주장만 한다기보다 남의 주장도 내가 좀 들어보고, 상대도 내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고 느낄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게 앞으로 유네스코가 해야 할, 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그는 밝혔다.

 

“교육을 그렇게 받고, 유학을 다녀와서도, 결국 자기 것 공부만 하지 넓게 보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 드물어요. (…) 물론 전문가여야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그래야 진짜 전문적인 얘기를 하는 전문가겠죠. 그러나 사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라고 해도 말 그대로 ‘돌대가리’는 아니거든요. 물론 돌대가리도 있지만. (웃음) 단지 그 분야를 잘 모르는 것일 뿐이지, 자기 분야에서는 뛰어난 전문가인 분들이 있죠. 그런 분들에게 설명을 해서 납득을 시키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무슨 새로운 물리학 이론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표를 얻고 세금을 걷어야 되는데, 심지어 나름대로 스마트한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면, 문제가 심각한 거죠.”

 

요컨대 ‘슬기’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각각의 슬기를 ‘모아서’, 각자의 전문 분야를 넘어 서로를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 셈이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해보니, 전문가연 해온 우리 학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필요에 따라 써먹기만 하는 정책 결정자들과, 어느덧 ‘슬기를 잘 모으기’보다는 ‘슬기를 오용하고 편으로 쪼개기’에 특화돼버린 듯한 우리 언론과 미디어의 모습이 겹쳐졌다.

 

“시민으로서 당연히 의문시되는 것을, 조롱이나 비난을 당하지 않고 질문을 할 수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거든요. 그걸 할 수 있으면, 그게 좀 쌓이면, 비로소 우리도 우리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 국제적인 의제로 만들고, 그로써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게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비전과 거시 담론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다시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교육을 새로운 사회계약서의 주된 내용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면 교육의 유일한 그릇이라고 여겼던 학교를 벗어날 필요가 있듯, 지적 담론과 사회적 소통의 그릇이어야 한다고 ‘기대했던’ 언론을 벗어나 새로운 소통 기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네스코는 과거 신세계정보통신질서(NWICO, New Worl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der) 담론을 통해 우리 언론과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관련된 지적·실천적 자극을 제공했던 진원지기도 했다. 그리고 문화 다양성 문제를 현대 사회의 핵심 이슈로 자리 잡게 했던 주체였다. 만약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교육 이슈를 매개로 불평등과 새로운 소통 형식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들과 시민의 ‘슬기’를 모으는 장을 열고자 한다면, 이 또한 신선한 기회이자 기여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연대의 가치와 필요를 느끼게 하는 또 하나의 든든한 우군을 만났다. 나를 짓누르던 우울감이 한결 가벼워짐을 경험했다. 역시나 절망감이란 비극적인 상황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갈 수 없을 듯한 고립감에서 나오는 것이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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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 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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