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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이용과 측정
신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누가 신문을 보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문사 운영진은 물론 기사를 쓰는 기자 입장에서도 구독자가 몇 명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을 것이 틀림없다. 19세기 말 성장하기 시작한 광고 산업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힘을 실어주게 된다. 투명하고 정확한 광고 집행을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구독자 수 측정이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광고주와 광고회사의 이러한 요구에 신문 발행인도 호응하면서 1914년 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s, 발행부수공사기구)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족된다.1) 한국ABC협회도 1989년에 설립돼 신문사가 보고한 발행부수를 집계·발표한다. 프랑스(1922)나 영국(1931)은 물론 아시아의 인도(1946), 일본(1952)과 비교해도 신문 발행부수 측정의 역사가 짧다.
방송이 등장했을 때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누가 방송을 듣느냐(혹은 보느냐)였다.2) 그런데 발행부수나 판매량을 통해 대략 몇 사람이 신문을 보는지 측정할 수 있었던 신문과 달리, 방송 청취(시청)의 경우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존재했다. 정보를 전파에 실어 불특정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보내는 라디오와 TV 방송의 특성 때문이었다. 특히 방송은 청취자(시청자)가 무료로 이용하는 대신, 광고를 싣는 광고주가 광고료를 지불하는 특별한 시장 구조였다. 방송사가 재원을 확보하려면 이용자에 대한 데이터를 통해 광고주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 라디오 청취율과 TV 시청률 측정은 방송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방송사와 광고주, 광고사가 함께 풀어야 할 숙명과도 같은 성격을 지녔다.
개인 단위의 시청률 측정은 피플미터(people meter)라는 기계식 측정 장치의 도입으로 전기를 맞는다. 가장 먼저 피플미터를 도입한 영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1980년대에 피플미터로 시청률을 측정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몇 차례 시도 끝에 1999년에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대부분 국가에서 단일 회사가 시청률을 산출하는 것과 달리, 현재 한국은 두 개의 민간회사(닐슨, TNmS)가 시청률을 측정하고 있다.
영화 관람객 수 측정 역시 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이슈다. 제작사와 배급사, 영화관 등 이해 당사자뿐 아니라 정책 당국도 정확한 관람객 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고 이 법에 근거해 2003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도입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은 국내에서 상영하는 영화 관람객 수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전산망을 이용해 자동으로 영화 관람 데이터를 집계하므로 박스오피스 실시간 순위와 관객 수, 흥행수입, 예매율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영화 종영 후에 발표되는 최종 관객 수는 영화진흥위원회와 관련 정부 기관의 감독을 거쳐 확정된다.

신문과 TV, 영화 영역의 측정 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지향점은 동일하다. 해당 분야의 이해 당사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투명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미디어 측정 데이터는 해당 산업 생태계가 필요로 하는 통화(currency)와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ABC제도와 신문 발행부수
ABC란 말 그대로 신문의 발행량을 공정하게 측정하는 제도다. 신문사나 잡지사가 간행물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제출하면 협회가 객관적인 방법과 기준을 적용해 검증한 뒤 결과를 공개한다. ABC제도를 통해 공개되는 자료는 신문광고 요금 단가를 산정하기 위한 광고 시장에서도 필요하지만 신문사 입장에서도 경영전략 수립과 구독자 확보를 위한 경쟁에 필수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정책 당국이 신문시장의 경쟁상황을 판단하고 지원정책과 규제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자료다.
국내 신문사가 보고한 발행부수 자료는 한국ABC협회의 검증을 거친다. 지국 규모별로 3개 그룹으로 나눈 후 그룹 내에서 무작위로 선정하고 협회의 공사원이 직접 현장 실사를 통해 보고한 유료부수를 인증한다. 제출 자료에 대한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한 인증 절차다. 전체 지국을 조사하면 시간과 비용이 과다하므로 일종의 표본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제조업에서 제품의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표본을 뽑아 검사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ABC제도의 장점은 협회에 가입한 모든 신문사를 대상으로 지역별, 지국별 정보를 수집하기에 세밀한 통계를 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발행부수와 함께 발송부수, 유료부수를 별도로 집계하고 유료부수의 경우 지국과 가판으로 나누어 집계하므로 신문시장의 변동 상황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다만 신문사가 제출하는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자료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는 공사원 현장 실사가 매우 중요하다.
표본 조사와 전수 조사
신문을 발간하는 신문사가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직접 제출하는 방식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신문 발행부수를 조사할 수는 없을까? 국가통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품질을 진단하는 역할을 하는 통계청은 국가통계의 종류를 작성 방법에 따라 조사 통계, 보고통계, 가공통계로 구분하고 있다. ABC제도는 신문사가 제출하는 자료를 집계하므로 보고통계에 가깝다.
만약 조사통계 방식을 적용한다면 신문사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와 가구와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로 접근할 수 있다. 전국의 신문사 지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식을 취하면 발행부수와 유료부수 산출이 가능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전국 신문지국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운영 중인 지국은 1,925개로 나타났다. 이 정도 규모면 조사 대상 사업체 수가 많지 않으므로 표본조사보다 전체 지국을 모두 조사하는 전수조사를 추천할 만하다. 만약 전수조사에서 응답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지국이 많으면, 즉 응답률이 지나치게 낮을 것으로 예상되면 표본조사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전수조사에서 70%만 응답했다면 집계된 결과는 전체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표본조사는 한 업체가 응답을 거부해도 그와 유사한 규모의 업체로 대체하면 된다. 조사 비용이나 응답자 부담을 감안하면 일 년에 한 번 혹은 반년에 한 번 조사할 수 있다.
전국의 가구와 가구원을 대상으로 면접조사 방식을 선택한다면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는 산출할 수 없지만 가구별로 어떤 신문을 구독하는지, 개인별종이 신문이나 인터넷을 통한 뉴스 이용률 등을 조사할 수 있다. 이 방법을 적용한다면 통계청이 제공하는 전국 광역시도별, 성·연령별 모집단 정보를 활용하여 표본 설계가 가능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방송사업자 시청점유율은 가공통계에 해당한다. 어떤 방송사업자가 특수관계자에 해당하는 다른 방송사와 신문사를 보유하고 있다면 해당 방송사업자의 시청점유율에 특수관계자의 시청점유율을 더하고, 보유한 신문사의 일간신문 구독률에 매체교환율(신문의 구독률을 방송의 시청점유율로 환산한 비율)을 적용해 산출한 환산시청점유율을 합산해 산출한다.
표본조사는 흔히 전수조사보다 정확도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전체에서 표본을 일부 뽑는 표본조사는 표본오차가 발생하는 반면 전수조사는 표본오차가 없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반면 전수조사는 조사 대상 수가 표본조사보다 많으므로 비표본오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비표본오차에는 표본을 추출하는 정보 결함으로 인한 ‘포함오차’, 자료수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측정오차’, 자료입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처리오차’, 응답자가 일부 문항 혹은 문항 전체를 거부해 생기는 ‘무응답오차’가 있다.

표본오차를 줄이려면 표본 수를 늘리면 된다. 하지만 표본 수를 1,000에서 2,000으로 늘릴 경우 단순 임의 추출을 가정하면 95% 신뢰수준에서 약 0.9%p가 줄어들지만 10,000에서 20,000으로 늘리면 감소폭은 0.3%p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표본 수를 상당한 규모로 늘려도 전체 추정오차는 크게 줄지 않는다. 다만 표본 규모를 늘리면 지역별 할당 표본 수는 증가하므로 지역별 추정치의 표본오차는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또 발행부수가 적은 신문이 조사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아무리 표본 수를 늘린다고 해도 전국 단위(시도별)로 배분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만 보급되는 신문이용률을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려면 특정 지역을 별도로 조사하거나, 표본조사가 아닌 조사 방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객관적 검증 절차 마련 필요
1914년에 세계 최초로 ABC제도를 도입한 미국은 2012년 매체공사연합(Alliance for Audited Media)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 신문, 잡지가 디지털로 변화하고 종이 없이 디지털판만 발행하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조사 대상이 부수(circulation)가 아닌 종이와 디지털 콘텐츠를 포괄하는 매체(media)로 변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ABC협회 사무검사 결과에서 매체 환경 변화를 반영해 종이신문 부수와 온라인신문 트래픽을 함께 조사하는 통합 ABC제도 도입을 협회에 권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3)
신문구독률 측정 방법론 변화와 함께 발전해야 할 분야는 검증이다. 검증은 조사 결과를 누구나 믿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안전장치다. ABC부수공사는 용어 자체가 말하듯 단순한 조사가 아닌 공사(公査)를 의미한다. 영어로도 감사(Audit, 監査)라 표현한다. 자료의 신뢰도 확보를 위해서 객관적인 기관에 의한 검증이 필수적이다.
방송 분야에서는 시청률 자료에 대한 검증을 필수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시청률 조사를 주관하는 협의체에서 자체 검증을 한다. 프랑스와 미국은 시청률 조사회사와 분리된 독립 기관이 검증한다. 신문 이용률도 어떤 조사 방법을 선택하든지 객관적인 검증 절차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독립 기관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다. 미국의 MRC(Media Rating Council, 미디어평가위원회)처럼 TV와 라디오는 물론 인쇄 매체와 인터넷 매체 측정을 통합적으로 검증하는 비영리기구의 역할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필요하다.
영국 ABC협회는 2020년 매달 발표하던 발행부수 공시를 신문사가 원한다면 더는 의무적으로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4) 텔레그래프, 더 선, 더타임스는 공개를 거부했고 데일리 익스프레스, 가디언 등은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종이신문 시장의 쇠락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신문 발행부수는 이제 멀티 플랫폼 시대에 신문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적절한 척도로 간주하기 점점 어려워진다. 광고주 입장에서도 종이신문뿐 아니라 인터넷 기사 등 다매체를 통한 뉴스기사 이용률이 더 궁금하다. 이른바 총 브랜드 도달률(total brand reach)이 의미 있는 시대가 됐다.
영국은 이미 객관성, 투명성, 책임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미디어 측정을 관장하는 다양한 기관 연합체인 JIC(Joint Industry Currency)를 가동하고 있다.5) 여기에는 신문부수공사(ABC)를 포함해 라디오(RAJAR)와 TV(BARB), 우편광고(JICMAIL), 지방매체(JICREG) 측정 단체가 참여한다. 미국도 JIC(U.S. Joint Industry Committee)를 발족해 서로 다른 매체를 넘나드는 이용률 측정을 고민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유통되는 시장만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미디어 영역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산업이 걸어온 역사 속에서 이미 증명됐다. 미디어 이용조사의 미래도 여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1) <시상상식사전- ABC제도>, 박문각,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4388&cid=43667&categoryId=43667
2) 정용찬, 《시청률 조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쪽, 2013.
3) <(사)한국ABC협회 사무검사 주요 결과 및 조치 권고사항>, 문화체육관광부, 10쪽, 2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