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지난 5월, 중국의 최고 인터넷 감시 기관인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 Cyberspace Administration of China)은 침체된 중국 경제를 되살리고 기업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 불만에 대한 신속 대응 채널을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성명은 CAC가 주요 국영·민간 기업들과 기업의 온라인 평판 보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CAC는 기업을 위해 온라인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산업 및 경제 보안을 위한 긴급조치임을 강조하며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 기업과 그 소유주 또는 최고 경영진에 대한 허위 사실, 부정확한 비난을 퍼뜨리는 웹사이트와 계정을 대상으로 하며, 기업 전용 채널을 통해 해당 계정과 관련 콘텐츠를 보다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접수된 신고에 대해서는 이후 신속하고 철저한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을 주재한 니우이빙(Niu Yibing) CAC 부국장은 이번 조치가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 개선과 민간 기업 대상 지원 강화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지시를 이행하는 방법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기업과 관련된 허위 정보 및 사업자 권익 침해 원인 분석을 더욱 강화하고 기업과 사업자를 괴롭히는 온라인 허위 정보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온라인 비즈니스 환경 개선에 주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라인 민족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된 반기업적 정서를 감안하면 큰 변화로 판단된다. ‘기업가는 배신자’와 같은 반기업적 내러티브 중심의 캠페인이 이슈가 됐고 일부 극단적인 누리꾼들은 기업가의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해 대상자들 사이에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된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단속도 민간 기업에 대한 대중의 편견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영웅으로 대우받던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과 바이트댄스 창업자 장이밍을 비롯, 많은 중국의 빅테크 기업 경영진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진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당 기간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중국 당국이 자본의 ‘비합리적인’ 확장을 억제하고 공동 번영을 추구하면서 강력한 규제·조사를 받았고 대규모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 가치와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중국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의 격차가 벌어졌다.
기업의 어려운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강도 규제를 이어오던 중국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둔화된 경제 성장세가 회복되지 않고 더욱이 청년 실업률이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하자 2022년 말부터 빅테크 기업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하며 태도를 크게 바꾸기 시작했다. 이번 CAC의 조치는 ‘기업 친화적’인 정책 기조로의 전환에 발맞춘 제스처로 해석된다.
검열에 대처하기 위한 기업들의 대응책
흥미로운 사실은 기업 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내놓은 이번 조치가 오랫동안 기업들을 골치 아프게 한 콘텐츠 검열의 접근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영화, 방송 등 모든 형태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창작 분야와 비즈니스 영역 전반에 집중적인 검열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베이징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에서 코미디언 리하오시(Li Haoshi)가 자신이 키우는 개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시진핑 주석이 인민해방군을 표창한 구호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뛰어난 행동과 능력’을 농담의 소재로 다뤘다. 공연이 끝난 후 리하오시는 인민해방군을 심각하게 모욕한 혐의로 베이징 공안의 조사를 받았으며, 그가 소속된 회사 상하이 샤오궈 문화 미디어(Shanghai Xiaoguo Culture Media)는 1,335만 위안(약 23억 9,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고 133만 위안(약 2억 3,800만 원)의 ‘불법 이익’을 압수당했다. 또한 모든 소속 코미디언의 공연이 무기한 중단된 상황이다.
작년 6월에는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이브 커머스 진행자인 리지아치(Li Jiaqi)의 방송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리지아치 측은 며칠이 지난 뒤에야 이러한 중단이 기술적인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일각에서는 리지아치가 방송 중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연상시킬 수 있는 제품을 소개했기 때문에 당국이 해당 방송을 종료하게 했다는 추측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인터넷 콘텐츠 검열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심화·고도화되고 있다. 중국의 기업, 유명인들은 대중과 소통하고자 소셜미디어 등에 콘텐츠를 게시할 때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나 이슈를 다룬 콘텐츠를 게시하면 규제 당국은 이러한 콘텐츠에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거나 경고 없이 소셜미디어 계정은 물론 비즈니스를 부분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다. 가수, 배우, 라이브 커머스 진행자 등 유명인의 경우에는 해당 업계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에서 콘텐츠나 플랫폼 관련 비즈니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콘텐츠 조정(content moderation)을 거쳐야 한다. 모든 콘텐츠는 공개 전 점검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큰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중국은 경쟁적이고 불확실성이 높은 비즈니스 환경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위험선을 넘는 것은 기업에 많은 비용과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 대부분은 콘텐츠 검열과 삭제 등을 담당하는 대규모 인력을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빅테크 기업은 콘텐츠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며 새로운 규칙이나 민감한 주제에 대한 업데이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회사는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콘텐츠 조정 기능을 제공하는데, 이들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비디오·사진·오디오·텍스트 등 다양한 콘텐츠를 식별하고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내용들을 감별하여 삭제나 수정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도 이러한 정치적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작년 7월 출시한 런민선자오(人民审校, People’s Proofread)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고객이 자신의 자료를 플랫폼에 업로드하면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검열 전문가팀이 위험 요소를 포함한 콘텐츠를 식별한다. 정치 체제와 종교 관련 내용,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인물, 중국에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분쟁 지역과 관련된 지도 등이 해당한다. 런민선자오는 빅테크 기업들의 알고리즘만큼 강력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츠를 감별하는 데는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당국의 새로운 기조 변화와 이에 따라 수정되는 검열 기준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비스가 공개적으로 제공되고 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중국 체제의 통제 수준이 점점 더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민감하고 복잡한 정치 이슈들이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검열 기준의 모호함과 함께 그 경계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이 검열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데 있어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업에 보인 변화의 제스처와 전망
이처럼 심화하는 검열 강도로 인해 기업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당국은 빅테크 기업들에게 확실한 변화의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대미 무역전쟁과 국내 실업률 증가 등 많은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한 빅테크 기업들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난 7월 12일 리창 총리는 알리바바 클라우드, 메이퇀(Meituan), 바이트댄스(ByteDance), 샤오홍슈(Xiaohongshu) 등 빅테크 기업의 대표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개최, 플랫폼 경제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해당 심포지엄은 국가의 강력한 경제 계획 기구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National Development and Reform Commission) 모임 이후 진행됐는데, 해당 모임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NDRC는 플랫폼 기업이 투자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에 기여했음을 강조하고 빅테크 기업중심의 플랫폼 경제가 중국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기대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반독점 및 데이터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빅테크 기업 단속이 끝났음을 확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국이 플랫폼 경제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매우 분명한 정책 신호다.
NDRC는 다음 단계로 플랫폼 기업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 사례를 공개하고 관련 기업들이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NDRC 모임 및 빅테크 기업들과의 심포지엄 이후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주요 기업의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으며 각종 증권사는 관련주의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당장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지난 몇 년 간 ‘잃어버린’ 시간이 상당히 극적이었던 점을 고려했을 때 지금의 대응은 당국의 실추된 신뢰와 버려진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중국의 기업들이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부담은 ‘지나치게 강력한’ 당국이 비즈니스 세계에 지속적으로 개입한다는 것과 민간 부문이 신뢰와 해명을 필요로 할 때는 대부분 방관하거나 늦게 개입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의가 크게 확장되고 있지만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식어버린 혁신과 성장의 분위기가 다시 끓어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