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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혁신, 필요와 피로 사이] 언론계의 혁신 피로도 증가
커버스토리 | 등록일 : 2024-01-26

디지털 혁신을 목표로 국내 언론계는 다양한 시도를 거듭해 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으며, 이로 인해 언론 종사자들에게는 피로가 누적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를 통해 언론인의 디지털 혁신 피로도를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 혁신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저널리즘 업계의 주요 화두였다. 언론사들은 뉴욕타임스가 2014년 발표한 혁신보고서를 금과옥조로 삼아 자체적인 디지털 혁신 보고서를 발표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혁신 전담팀을 꾸리고, 첨단 기술을 동원해 다양한 실험을 선보여 왔다. 이 모든 시도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기존과 다른 문법에 기반한 양질의 저널리즘 생산물로 이용자의 이목을 끌고 수익을 냄으로써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모델을 제시하는 데 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한국 저널리즘 혁신의 역사를 돌아보면,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표적 성공 사례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혁신에 대한 언론인의 피로감은 쌓여가고 있다. 


성공 사례 부재 속 피로와 무력감 확산

 

언론인의 디지털 혁신 피로는 최근 발간된 <2023 한국의 언론인: 제16회 언론인 의식조사>(이하 언론인조사)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1) 응답자들에게 “귀하는 소속된 언론사의 디지털 대응 및 혁신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십니까?”라고 질문한 결과 38.3%가 ‘그렇다’, 34.1%가 ‘보통이다’라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이는 27.6%였다. 5점 척도로 계산했을 때 피로감 정도는 3.15점으로 보통 이상 수준이었다. 이 수치를 소개하는 이유는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한 기자들의 비율이 예전 조사와 비교해 특별히 높아지거나 낮아져서가 아니다. 도리어 기자들이 느끼는 혁신 피로감이 나아지지도 악화하지도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2021년 언론인조사 당시에도 혁신 피로를 느낀다고 답한 이는 38.2%로 2023년의 결과(38.3%)와 비슷했다. 5점 척도로 계산했을 때 피로도 점수는 2021년 조사 당시에도 3.14점으로 2023년 조사 결과(3.15점)와 비슷하다. 디지털 혁신 피로가 고질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고질화한 혁신 피로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혁신에 대한 기자들의 무력감이다. 같은 조사에서 디지털 뉴스 유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무엇인지 물은 결과 무려 76.6%의 응답자가 ‘포털’이라고 답했는데, 이는 디지털 혁신과 관련한 언론인의 무력감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언론사 자체 홈페이지나 앱과 같은 독자적 플랫폼을 활성화해 충성 이용자를 모아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는 ‘탈포털’ 논의가 최근 언론계에서 활발히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 사이에서 포털의 중요도 인식이 더욱 높아진 것은 다양한 혁신 시도를 해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실패를 거듭한 끝에 포털 위주의 현 뉴스 생태계에 안주할 마음을 먹게 된 결과라 해석할 수도 있다. 포털이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라고 답한 비율은 2019년 언론인조사에서는 65.4%였고 2021년 조사에서 70.2%로 늘어난 데 이어 2023년 조사에서 또다시 증가한 것이다. 자사 뉴스 웹사이트 및 뉴스 앱이 중요하다고 답한 기자는 2021년 조사의 7.1%보다도 낮은 6.5%에 불과했다.

 

 

디지털 혁신과 관련한 피로와 무력감은 심층 인터뷰 결과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 방송사 소속 기자(10~15년 차)는 많은 언론사가 뉴욕타임스를 따라 인터랙티브 뉴스나 데이터 저널리즘 등 혁신적 실험을 활발하게 추진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몇몇 매체를 제외하고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너무 많은 리소스가 투입되고 투입 대비 효과가 없는 이유”도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완전히 네이버에 종속된 뉴스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자사 기사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가 해당 기사의 영향력을 좌우하다 보니 “환경에 그냥 완전히 어떻게 보면 순응해 (…) 언론사 자체 (…) 독자를 유입해서 여기에 파이를 키워서 우리 걸 하는 (시도가) 옛날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포털에 대한 의존 강화는 디지털 혁신의 실패와 무력감에 따른 현실 순응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혁신 피로와 무력감은 특히 언론사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30대 기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30~34세 기자들의 44.2%, 35~39세 기자들의 42.1%가 소속 언론사의 디지털 대응 및 혁신과 관련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해 전체 응답자 평균(38.3%)을 크게 웃돌았다. 연차 특성상 이미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데 더해 추가적인 디지털 혁신 업무까지 수행하면서 이들의 피로감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디지털 혁신과 관련한 인력 확충에 대한 요구가 가장 큰 이들도 30대 기자들이었다. 한 중앙일간지 기자(10~15년 차)는 이용자들이 최근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을 통해 기사를 유통해 보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전용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혁신 실험을 했지만 약 1년 만에 그만뒀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인력 문제(가 있으니까) (…) 다 흐지부지” 됐다는 것이다. 언론인조사에서 디지털 대응을 위해 중요한 요소를 묻자 30~34세 기자들의 44.8%가 ‘디지털 관련 전문 인력 채용’을 꼽아, 응답자 전체 평균(36.3%)보다 높았다.


기술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혁신 피로 가져와

 

언론인의 혁신 피로에 대한 경고는 수년 전부터 있어 왔다. 2018년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이하 로이터 보고서)2)에는 뉴스 조직 내 혁신 피로와 번아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17개국, 27개 언론사의 디지털 부문 전문가 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에 기반한 이 보고서가 혁신 피로와 번아웃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첨단 기술 활용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실증적 결과를 바탕으로 한 명확하고 장기적인 혁신 전략도 없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무조건 이를 활용해 저널리즘 생산물을 만들고 배포하기에만 급급한, 즉 기술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혁신 피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로이터 보고서는 ‘반짝이는 것 신드롬(Shiny Things Syndrome)’이라고 지칭했다. 보고서를 위한 인터뷰에서 이 표현을 처음 사용했던 미국의 언론인 킴 뷰이(Kim Bui)는 “반짝이는 것 신드롬은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또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게 한다”고 언급했다. 즉 뒤처지지 않고 재빨리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저널리즘 생산물을 제작하는 것에 천착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저널리즘의 핵심 가치나 혁신의 목표는 간과하게 되고, 그 결과 혁신에 대한 피로가 커진다는 이야기다. 

 

‘반짝이는 것 신드롬’ 때문에 언론계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해당 기술의 활용 방안을 고민한다. 이 기술의 활용이 장기적인 혁신 목표를 실현하는 데 어떤 이바지를 할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일단 도입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 해당 기술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면 성과 없이 실험을 접는 식이다. 한때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늘자 한국의 언론사들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뉴스 유통에 골몰했다. 디지털 유통 플랫폼으로 소셜미디어가 중요하다고 답한 이는 2023년 언론인조사에서는 4.8%였는데, 2019년 조사의 16.7%, 2021년 조사의 9.8%와 비교해 보면 지속적인 하락세임을 알 수 있다. 즉 일단 소셜미디어를 통한 뉴스 유통을 시도하긴 했으나 소셜미디어에서의 페이지뷰 증가가 충성 이용자 확보나 수익 증가 같은 실질적 이득을 언론사에 가져오지 않자 급속히 관심을 끊는 식인 것이다.

 

 

 

 

최근 언론계는 생성 AI의 활용에 골몰하고 있다. 2023년 언론인조사 결과 응답자의 62.6%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인공지능 지식 및 기술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기자는 10.1%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그 관심의 정도를 반영한다. 향후 언론사에 생성 AI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60.4%로 많았고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이는 9.2%에 불과했다.


피로와 무력감 딛고 혁신을 지속할 방법

 

언론계가 피로와 무력을 최소화하고 계속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 논의를 종합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언급할 부분은 ‘시간’의 중요성이다. 빠른 기술 변화에 조급하게 적응하려 하기보다 도리어 시간을 가지고 기술 도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로이터 보고서는 저널리즘의 혁신을 위해 기술이 중요하기는 하나 기술에만 연연하면 곤란하다고 언급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느린 저널리즘(slow journalism)으로, 저널리즘 혁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잠시 멈춘 채 돌아보고, 배우고, 고민하고, 협력하며,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언급할 부분은 ‘이용자’의 중요성이다. 언론사 디지털 혁신의 목적은 언론사가 얼마나 첨단 기술을 잘 활용하는지 선보이는 데 있지 않다. 더 많은 이용자에게 양질의 저널리즘 생산물을 제공하는 것이 보다 궁극적인 목적이기에, 이용자를 바라보고 혁신을 시도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로이터 보고서도 기술에 끌려가지 말고 이용자에 집중하되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혁신 전략’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시간의 중요성과도 연결되는데, 장기적인 혁신 전략이 존재할 때 첨단 기술 활용에 연연하기보다 이 기술의 활용이 과연 해당 언론사의 장기적 전략에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다. 권태호 한겨레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언론사 혁신보고서가 실패하는 이유>3)라는 글에서 “혁신·디지털 보고서를 내기 전에 10년 뒤, 20년 뒤 어떤 언론사가 되길 원하는지 먼저 푯대를 설정해야 한다. 그다음 10년 뒤 거기 닿으려면 지금, 5년 뒤 뭘 해야 하는지 구획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혁신을 통해 장기적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혁신과 관련한 언론사의 강령(mission statement)을 명확히 할 때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혁신 피로도 줄일 수 있다. 

 

장기적인 전략에 대한 중요성 인식은 언론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디지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를 질문한 결과(세 가지 복수 응답), ‘사주·경영진의 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높은 관심’(59.1%)을 꼽은 기자들이 가장 많았다. 이는 2021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의 나이가 많을수록 ‘사주, 경영진의 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높은 관심’이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높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개별 기자들의 노력뿐 아니라 경영진의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한 언론사의 혁신과 발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부분은 디지털 혁신에 따른 실패의 경험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 언론사의 혁신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실패를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부단히 혁신 시스템을 재정비한 결과 혁신 성공 사례를 만들어 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언론계에서도 그간 수없이 많은 혁신의 시도와 또 실패 사례가 있으나 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 때문에 언론계 전체가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도 남지 않은 셈이다. 

 

때문에 <저널리즘 혁신 해외 연구 경향과 전략>4)이라는 보고서에서는 “혁신의 결과는 성공일 수도 실패일 수도 있는데, 이 모든 과정을 의미 있는 ‘시행착오(trial and error)’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혁신 실험과 시행착오에 따른 결과는 오픈소스 형식으로 혁신 생태계 내 다양한 구성원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를 통해 향후 혁신 생태계 내의 불필요한 실패를 줄일 수 있고 저널리즘 생태계 전반에 혁신 노하우가 축적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일종의 ‘디지털 혁신 실패 보고서’가 언론 생태계 내에서 작성되고 공유될 때, 언론계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또 배움으로써 혁신에 대한 피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전국의 기자직 종사자 2,011명을 설문조사하고 응답자 중 18명을 심층 인터뷰해 2023년 11월 발간했다. 

2) Posetti, J., <Time to step away from the ‘bright, shiny things’? Towards a sustainable model of journalism innovation in an era of perpetual change>, Reuters Institute, 2018

3) 권태호, <언론사 혁신보고서가 실패하는 이유>, 기자협회보, 2021.11.30,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0533

4) 최지향·유승철·정선호, 《저널리즘 혁신 해외 연구 경향과 전략》. 한국언론진흥재단,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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