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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북리뷰《페이크와 팩트》
미디어 리뷰 | 등록일 : 2025-04-25

 

《페이크와 팩트》 ⓒ디플롯

 

 

 

탈진실의 시대. 허위 정보가 손쉽게 SNS를 타고 확산되고, 누군가는 이를 맹신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으로 인해 생명과 존엄을 위협받는다. 허위 정보가 실제적 폭력으로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을 극단으로 내모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David Robert Grimes)의 «페이크와 팩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적 사고와 연민에 기반한 공론장의 회복이라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책의 원제는 «The Irrational Ape(비합리적인 오랑우탄)»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라임스는 인간이 왜 때때로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이 어떻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치밀한 과학적 논거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우리는 무엇을, 왜 믿는가. 그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과 정보 환경의 구조가 어떻게 가짜뉴스와 음모론, 그리고 반지성주의를 만들어 내는지를 분석하며, 단순히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을 넘어,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중립’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비합리성의 덫: MBTI는 과학적일까?

 

그라임스는 특히 우리가 ‘그럴듯하지만 모호한 설명’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MBTI를 예로 든다. 그는 심리측정학자 로버트 호건(Robert Hogan)의 말을 빌려 “MBTI는 공들인 중국 포춘쿠키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표현하며, MBTI가 과학적 타당성과 재현성 면에서 심각한 한계를 지닌다고 비판한다. 연구에 따르면, MBTI는 동일 인물이 며칠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유형으로 진단될 정도로 불안정하며, 질문 자체도 지나치게 모호해 일관된 응답을 끌어내기 어렵다. 그라임스는 이를 ‘포러 효과’와 ‘플라시보 효과’의 결합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친숙하고 긍정적 설명에 쉽게 끌리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이 과학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신념을 포장한 자기 위안일 수 있다.

 

MBTI는 어쩌면 우리가 허위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잘 보여주는 축소판일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는 과학적 언어를 빌려 쓰지만, 실제로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로 정체성을 만들어주며, 그 이야기의 기원이나 근거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게 만든다.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진단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그 설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이야기 속에 안주하는 셈이다. 이 책은 MBTI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정서적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쉽게 과학적 사고를 포기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기계적 중립과 알고리즘, 정보 왜곡의 이중 함정

 

나아가, 그라임스는 언론의 ‘기계적 중립’이 허위 정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고한다. “기계적 중립은 충돌하는 주장 뒤에 있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공정성이라는 환상에 집착할 때 번성한다”라는 그의 지적은, ‘양쪽 주장을 모두 다룬다’라는 형식적 균형이 실제로는 거짓된 주장에도 언론이 ‘주목’이라는 자원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허위 정보가 생성되는 속도가 빠르고, 정파적 주장에 대한 근거를 검토하기보다 ‘논란이 되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포장한 보도가 반복된다. 특히 유튜브 등 비공식 플랫폼을 통해 확산된 자극적인 주장들이 검증 없이 언론에 인용될 때, 언론의 중립은 정보의 균형이 아닌 현실 인식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알고리즘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과 신념을 정교하게 분석해 ‘보고 싶은 정보만’ 보여준다. 수긍할 만한 콘텐츠는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불편한 정보는 점차 보이지 않게 된다. 이는 확증편향을 강화하고, 공론장을 점점 더 폐쇄적인 구조로 만든다.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고 조율이 이뤄져야 할 토론의 장은 사라지고, ‘각자의 진실’만 남는다. 그라임스는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호의의 원칙’, 즉, 상대의 주장을 가장 이성적이고 강력한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를 제시하며, 토의가 이뤄질 수 있는 윤리적 최소 조건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이 원칙이 모든 담론에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증오와 왜곡에 기반한 주장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며, 타인의 권리와 인간성을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 언론이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발언의 장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페이크와 팩트》는 결국 정보 자체보다 그 정보를 수용하고 판단하며, 사회적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태도를 중심에 두고 있는 책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구분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준과 그것을 지켜내려는 태도다.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단지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이 아니라, 그러한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윤리, 용기,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연민이다. 진실은 스스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말하고, 누군가가 지켜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역할을 망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지금 이 시대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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