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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은 2026년 새해를 맞아 시민들의 콘텐츠 선호도와 이용 정도를 기획조사했다. 전국의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콘텐츠로서 뉴스를 얼마나 선호하고 얼마만큼 이용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 답을 통해 콘텐츠로서 뉴스의 경쟁력을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본다. 편집자 주
<조사 개요>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표본크기: 500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
조사기간: 2025년 12월 1일 ~ 12월 3일
조사방식: 온라인
표집방식: 성·지역·연령별 비례할당 추출
조사기관: ㈜마켓링크
‘언론의 위기’는 이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된 화두다. 언론 전반과 언론인에 대한 낮은 신뢰, 뉴스 회피 현상 등으로 대변되는 이 위기는 결국 콘텐츠로서의 뉴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뉴스 회피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본질은 비교적 단순하다.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뉴스가 더 이상 ‘보고 싶은’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스는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을 위한 공공재이자, 동시에 언론 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상품이다. 그렇다면 상품으로서 뉴스의 경쟁력은 과연 어느 지점에 놓여 있을까. 월간 《신문과방송》은 신년을 맞아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기획조사를 실시하고, 이용자들의 ‘머리(이성)’와 ‘가슴(감성)’ 속에 뉴스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봤다.
뉴스는 생각보다 인기가 있다? 세대별 선호도 양극화 심해
뉴스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응답자들에게 뉴스(시사보도), 교양, 드라마, 예능, 스포츠, 영화, 애니메이션·만화, 교육, 홈쇼핑, 기타 등 총 10개의 콘텐츠 유형 가운데 좋아하는 콘텐츠를 3순위까지 선택하도록 했다. 전체 평균만 놓고 보면 결과는 의외로 긍정적이다. 1순위 응답에서 뉴스는 15.0%를 기록하며 예능(20.6%), 영화(16.6%)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3순위까지 합산한 비율 역시 43.4%로, 예능(56.2%), 영화(52.6%) 다음이었으며 드라마(42.4%)나 스포츠(31.2%)보다도 높았다.
수치만 보면 뉴스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콘텐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이른바 ‘평균의 함정’에 가깝다. 데이터를 세대별로 나눠 살펴보면 선호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세대 양극화’가 드러난다. 60대의 경우 과반인 56.9%가 뉴스를 선호한다고 답한 반면, 20대의 응답률은 28.0%에 그쳤다. 50·60대의 높은 선호도가 전체 평균을 끌어올렸을 뿐, 젊은 세대 다수는 좋아하는 콘텐츠로 뉴스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림 1], [그림 2]


그렇다면 20대는 뉴스를 싫어하는 걸까?
응답자들에게 싫어하는 콘텐츠 역시 3순위까지 선택하도록 한 결과를 보면, 20대의 뉴스 비선호 응답률은 25.6%로 전체 평균(21.2%)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림 3] 이는 뉴스 선호도가 낮다고 해서 곧바로 ‘뉴스를 싫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3순위 안에 뉴스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뉴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기보다는, 예능·드라마·만화 등 더 선호하는 콘텐츠가 많았다고 해석하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20대는 ‘예능·드라마·SNS 등이 더 끌린다’(3.46점), ‘뉴스보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아서 굳이 안 본다’(3.05점)와 같은 문항에 전체 평균보다 높은 동의 수준을 보였다. 이들에게 뉴스는 혐오의 대상이라기보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의 경쟁 속에서 밀려난 ‘후순위 선택지’에 가깝다. [그림 4]

뉴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끌리지 않아
뉴스에 대한 평가를 인지적 차원과 정서적 차원으로 나눠 살펴본 결과, 이용자들은 뉴스의 유용성과 가치를 ‘머리’로는 인식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크게 끌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뉴스는 내게 유용하다’(3.70점), ‘뉴스는 내게 가치가 있다’(3.59점), ‘뉴스는 내게 혜택을 준다’(3.31점), ‘뉴스를 보는 일은 현명한 일이다’(3.70점) 등 인지적 평가 항목은 대체로 3점 후반대의 점수를 기록했다.
반면 ‘뉴스는 기분을 좋게 한다’(2.69점), ‘뉴스를 보는 일은 멋진 일이다’(3.17점), ‘뉴스를 보면 행복하다’(2.71점), ‘뉴스를 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3.02점) 등 정서적 평가 항목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보였다. [그림 5]

주목할 만한 점은 20대의 태도다. 뉴스 선호도에서는 다른 세대와 큰 격차를 보였지만, 뉴스의 유용성에 대한 평가는 기성세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뉴스를 보는 일은 멋진 일이다’라는 항목에서는 20대가 3.43점을 기록하며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이는 최근 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텍스트힙(Text Hip)’ 트렌드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활자를 읽고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 자체를 ‘지적이고 쿨한 이미지’로 인식하는 흐름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표 1]

가치 인정하지만 지갑은 열지 않아
뉴스를 좋아하고 뉴스의 유용성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면, 실제로 유료 이용으로 이어질까? 응답자들에게 유료로 이용할 의향이 있는 콘텐츠를 3순위까지 선택하도록 한 결과, 뉴스의 응답률은 19.6%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가장 높은 이용 의향을 보인 콘텐츠는 동영상 서비스(67.4%)였으며, 음악 스트리밍(56.6%)이 그 뒤를 이었다. 뉴스에 대한 유료 이용 의향은 유사한 성격의 지식·정보 콘텐츠(35.8%)보다도 낮았다.
이러한 경향은 뉴스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50대 이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스를 좋아한다고 답했지만, 유료 이용 의향은 20% 초반에 머물렀다. [그림 6], [표 2]


그렇다면 모든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면 어떨까? 무료 이용 상황을 가정했을 때 뉴스를 선택한 비율은 24.8%로, 유료 이용 의향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는 뉴스에 대한 평가와 선호도와는 별개로, 뉴스 이용 의사 자체가 높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 7]

머리와 가슴 중 무엇이 뉴스 이용을 결정할까?
뉴스의 유용성을 인식하는 것과 뉴스에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가운데 어떤 요소가 실제 이용 의향에 더 큰 영향을 미칠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인지적 평가 점수와 정서적 평가 점수를 기준으로 각각 두 집단으로 나눠 뉴스 유료 이용 의향을 비교했다.
인지적 평가가 낮은 집단에서는 뉴스 유료 이용 의향을 보인 비율이 14.8%에 그쳤으나, 인지적 평가가 높은 집단에서는 24.4%로 다소 높게 나타났다. 반면 정서적 평가에 따른 차이는 훨씬 뚜렷했다. 정서적 평가가 낮은 집단의 유료 이용 의향은 9.9%에 불과했지만, 정서적 평가가 높은 집단에서는 28.1%로 세 배 가까운 격차가 나타났다.
통계적으로 엄밀하게 살펴보지 않은 한계가 있지만, 인지적 평가보다 정서적 평가에 따라 뉴스 유료 이용 의향의 차이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 뉴스의 유용성을 아는 것보다, 뉴스에서 재미와 흥미, 매력을 느끼는 경우 이용자의 지갑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봐야 하는 뉴스’에서 ‘보고 싶은 뉴스’로
이번 조사를 통해 뉴스에 대한 선호도와 인식, 이용 의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결과, 사람들은 언론이 우려하는 만큼 뉴스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세대는 뉴스를 혐오하기보다는, 단지 더 매력적인 다른 콘텐츠를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싫어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곧바로 뉴스 이용, 더 나아가 유료 이용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중요한 점은 시민적 의무감이나 정보 전달의 유용성과 같은 인지적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이용을 이끌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뉴스를 통해 재미와 흥미, 만족감,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 이용 의향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자극적이거나 연성적인 뉴스로의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 20대가 ‘뉴스를 보는 일은 멋진 일’이라고 응답한 대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지적 쾌감, 복잡한 세상을 이해했다는 효능감, 그리고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주는 ‘지적인 멋’을 충족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뉴스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재미일지도 모른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읽는 행위 자체가 즐겁고 뿌듯한 경험이 되도록 뉴스 전달 방식을 혁신할 때, 뉴스는 ‘봐야 하는 의무’를 넘어 ‘보고 싶은 권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