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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논의된 독일 공영방송 개혁이 완료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재정의, △방송분담금(Rundfunkbeitrag) 책정 절차 개혁 등 두 가지로 나뉘어 진행됐던 이번 공영방송 개혁은 통독 이후 가장 큰 변혁으로 평가받는다.
2024년 중순 완료되어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1단계 공영방송 개혁에선 공적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현재 공영방송이 선형(Linear) 중심의 채널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었던 점을 고려, 비선형(Nonlinear) 텔레미디어(Telemedia)로 활동을 전환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새로운 텔레미디어 서비스 운영을 위해선 공영방송사들이 운영하는 채널들을 폐지해야 하지만, 운영 효율성이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채널들에선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란 논의에 따른 것이다. 1단계 공영방송 개혁이 합의된 후인 2024년 하반기부턴 방송분담금 책정 절차 개혁이 본격적으로 다뤄졌다. 최근 몇 해 동안 방송분담금 책정 과정과 관련해 주정부들과 공영방송사, KEF(Kommission zur Ermittlung des Finanz-bedarfs der Rundfunkanstalten, 공영방송재정수요조사위원회) 간 갈등이 여러 차례 발생했기에, 이 안건은 미디어 정책 전환 관련 중요 이슈였다.
KEF의 설립과 수신료 결정 원칙
제도화의 역사
방송분담금 결정 과정의 주요 행위자인 KEF의 역사는 1975년부터 시작된다. KEF 설립 배경에는 1961년 연방헌법재판소의 ‘제1차 방송판결(BVerfGE 12, 205)’과 1968년의 연방행정법원의 판결(BVerwG 6 C 88.64, Urteil vom 15. März 1968)이 있었다. 첫째, 제1차 방송판결은 독일 공영방송의 헌법적 기초를 규정하면서 방송은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며, 연방정부와 주정부 모두가 공영방송의 편성, 인사, 운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국가불개입 원칙(Staatsferne des Rundfunks)’을 정립했다. 둘째, 1968년 연방행정법원의 판결은 방송수신료 책정 및 징수 권한을 연방정부 산하 기관인 연방체신부(Bundespostministerium)가 아닌, 방송 입법권을 가진 주정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당시까지 방송 재정을 담당하던 체신부가 연방 행정기관으로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또한 방송 정책은 기본법 제30조 및 제70조에 따라 주정부의 관할이므로 두 기관 간 권한 충돌 가능성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1)

판결 후, 주정부들은 공영방송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써 방송수신료 책정을 위한 방송수신료 법규 제정을 시작, 1968년 말 서독의 11개 주가 참여하는 최초의 방송수신료 협약인 「방송수신료 제도 규정을 위한 주간협약」2)이 체결됐고, 개정을 거친 후 1969년 각 주의 주법(州法)으로 수용돼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됐다. 또한 이들은 1973년에는 공동 방송수신료 징수 기관으로 1973년 GEZ(Gebühreneinzugszentrale der öffentlich-rechtlichen Rundfunkanstalten)를 설립했다.3) 이를 바탕으로 1975년, 현재까지 독일 공영방송 재원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KEF가 조직된다. KEF는 1975년 2월에 개최된 주정부 총리회의(Ministerpräsidentenkonferenz)를 통해 합의됐고, 그 활동 근거는 1968년의 연방행정법원 판례법과「방송수신료 제도 규정을 위한 주간협약」에 두었다. 공영방송 재정이 각 방송사와 주정부 간의 협의를 통해서 결정되던 방식이 변화했고, 공영방송 운영에서 정치적 독립성이 확보된 것이다.
KEF의 독립성과 방송수신료 책정 절차는 연방헌법재판소의 1994년 제8차 방송판결(BVerfGE 90, 60)에 근거해 확립된다. 판결에서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법 제5조에 따라 보장되는 ‘방송의 자유’를 ‘공적 책무 수행 자유’4)의 개념으로 판단,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방송수신료 책정이라는 수단을 통해 공영방송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며, 이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단계적이고 협력적인 방송수신료 결정 절차 마련을 요구했다. 이 절차엔 △공영방송의 공적 임무 수행에 적합한 재정 확보를 통해 기초적 서비스 제공 의무,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개입 없이 채널 운영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포함해야 함이 제시됐다. 이 판결을 반영해 주정부들은 1996년「방송재정주간협약」5)을 체결해 방송 재정 문제를 독립적으로 규율하게 됐다. 또한 단순히 KEF의 정치적 중립성만 확보한 것이 아니라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수행에 필요한 절차적 기본권 보장 체계를 성문화했다.
2021년의 방송분담금 인상과 관련한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1 BvR 2756/20)에서도 KEF의 역할은 재확인됐다. 당시 판결에 따르면 KEF가 제안하고 주정부들이 합의하기로 한 방송분담금 인상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기능적 재정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또한 KEF가 제안한 방송분담금 인상/인하 문제는 정치적 목적이나 고려로부터 독립돼야 하며, 단순한 정치적 이유로 인상을 거부하는 것도 금지됨도 확인했다. 이는 1994년의「제8차 방송판결」에서 KEF의 제안은 단순한 참고가 아니라 방송수신료(현재의 방송분담금) 결정의 핵심적 기준이며, 거부는 극히 제한된 ‘예외적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원칙을 이은 것이다.

2021년 방송분담금 인상과 관련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1 BvR 2756/20)은 KEF의 역할과 법적 지위를 재확인한 사건이었다. 이 판결에 따르면, KEF가 제안하고 주정부 간 합의가 이뤄졌던 방송분담금 인상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기능적 재정(funktionsgerechte Finanzierung)’을 보장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됐다. 또한 연방헌법재판소는, 방송분담금의 인상 또는 인하 여부는 정치적 목적이나 정당 이해로부터 독립돼야 하며, 단순한 정치적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이 판단은 1994년「제8차 방송판결」에 확립된 “KEF의 권고는 단순 참고가 아니라, 수신료 결정의 헌법적 기준이며, 거부는 예외적이고 정당화 가능한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판례 원칙을 계승한 것이다.
이처럼 방송분담금(과거 방송수신료)의 책정 과정의 독립성이 확보되고, 재확인되는 과정에서 그 과세의 성격도 변화했다.
방송분담금 도입의 배경과 헌법적 정당성
독일 역사에서 방송수신료 개념을 지칭하는 단어는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했다. 1923년부터 도입된 개념은 ‘방송수신료(Rundfunkgebühr)’다. ‘Gebühr(이용료)’는 ‘명확한 대가성이 전제되는 징수 개념으로서, 방송 이용의 전제를 방송수신기 소유 여부로 판단했다. 한편, 2000년대 들어 방송 이용 방식이 인터넷, PC 등으로 확대되면서, 이러한 매체들도 수신료 징수 대상에 포함됐다. 2007년부터 변경된 이 징수 기준은 업무용 PC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매체를 포함할 것인가에 대한 모호성이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독일 연방행정법원이 인터넷에 연결된 PC도 방송수신료 징수 대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이후부터는 독일의 거의 모든 가정이 방송수신료를 납부하게 되었다.6)
2009~2010년 말부터 공영방송사와 주정부들은 공영방송사 재정조달시스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방송수신료 징수 대상을 찾기 위해 현장조사원이 가정을 방문했던 방식의 한계, 수신기 소유 여부 신고 누락 및 방송수신기 정의와 유형 확장 등의 문제가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0년 말 주정부는 모든 가구와 사업장에 방송수신기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정액으로 징수하는 ‘분담금(Beitrag)’ 도입을 결정한다.7) 현재의 ‘Beitrag’는 법률에 근거한 공적 부담금이라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Abgabe(기여금/부담금)’에 해당하지만, 일반적인 세금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성격의 기여금이다. 이는 더 이상 특정 서비스 이용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의 ‘Gebühr’와 차이를 보인다.
방송분담금 개념이 도입된 이후, 이 과금 방식이 헌법적으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해석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2018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1 BvR 1675/16)은 방송의 자유와 공영방송의 재정적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여금으로서 방송분담금을 합헌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방송분담금을 특정 목적에 대한 대가로서 과세하는 일반적인 ‘Abgabe’가 아니라, 공공 목적을 위해 모든 구성원이 균등하게 부담하는 ‘Beitrag’로 해석하며 그 정당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거부모델’ 도입 논의: 유연한 제도인가, 헌법적 도전인가
연방행정법원 및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KEF의 운영과 방송분담금 산정 방식과 방송분담금의 법적 근거도 마련됐지만 정치적으로 이 문제는 많은 갈등을 만들었다. 원칙적으로 KEF의 권고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주정부들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거부하거나 KEF의 권고를 수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방송분담금을 결정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KEF는 공영방송사들의 재정 평가를 통해 방송분담금 인상을 제안했지만, 주정부들은 당시 공영방송 개혁을 이유로 거부한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
그 결과, 주정부들은 2024년 말, 제2단계 공영방송 개혁의 주제인 방송분담금 책정 절차의 개선 방안으로 ‘거부모델(Widerspruchsmodell)’ 도입에 합의하게 된다. 이 모델은 KEF가 방송분담금 인상을 제안했을 때 인상률에 따라 이를 거부하는 주의 수가 충족되면, 자동적으로 거부되는 방식이다.8) 이는 현재 KEF 체계가 구성되고 유지되도록 확인되었던 원칙, 즉 “KEF 권고를 거부하려면 반드시 명시적이고 타당한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1994년 연방헌법재판소 판결, 그리고 “이견이 있는 주의회는 근거를 명확히 제공해야 한다”는 2021년 판결의 원칙에 반할 수 있는 제도 도입 시도다.
물론 주정부들의 의견처럼 ‘거부모델’은 방송분담금 책정 과정의 유연성과 실질적 결정력을 높이려는 제도적 시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가 정치적 이견을 정당화 없이 반영하거나, 책임 있는 정당화 없이 KEF의 권고를 거부할 가능성을 내포한다면, 이는 곧 그동안 독일이 헌법 판례와 제도를 통해 확립해 온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절차적 정당성 원칙에 대한 구조적 도전이 될 수도 있다.
독일 공영방송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방송의 자유와 정치로부터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를 축적해 왔으며, 그 핵심에는 KEF의 독립성과 이를 중심으로 한 단계적 수신료 책정 절차가 있었다. 향후 ‘거부모델’이 실제로 도입·시행될 경우 그것이 과연 이러한 헌법적 원칙과 제도적 유산을 보완하는 개혁이 될 것인지, 혹은 그 축적된 기반을 잠식하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인지는 제도 설계의 정교함과 실행 과정의 정치적 책임성에 달려 있다.
독일의 KEF 모델과 방송분담금 체계는 국내에서도 공영방송 재정의 독립성을 위한 모범적 제도로 꾸준히 인용돼 왔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도 정치 개입의 여지를 제도화하는 변화가 논의되는 지금, 우리 역시 방송수신료 책정권과 징수 방식, 정치적 독립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를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 기본법에 따라 독일의 문화 및 방송(미디어) 정책은 주정부 관할이다. 이에 연방정부에는 미디어 정책을 관할하는 행정기관이 없으나, 연방 차원에서 중요한 문화 기관 및 프로젝트를 진흥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연방미디어부(Staatsministerin für Kultur und Medien)’가 있다. 모든 연방 차원에서 적용되는 미디어 정책은 주정부의 합의 결과인 협약(Staatsvertrag)으로 결정되므로, 모든 주의 동의가 필요한 체계다.
2) Staatsvertrag über die Regelung des Rundfunkgebührenwesens(1969년 협약, https://recht.nrw.de/lmi/owa/br_gv_show_pdf?p_jahr=1969&p_nr=73)
3) 방송분담금이 도입된 2013년 1월 1일부터 Beitragsservice von ARD, ZDF und Deutschlandradio로 변경
4) 원어는 ‘dienende Freiheit’로 직역하면 ‘보조/봉사적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단순한 개인 권리가 아닌 민주적 공공질서 유지에 기여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유를 의미하는 바, 본문에선 이 내용을 담은 용어를 사용한다.
5) Rundfunkfinanzierungsstaatsvertrag
6) <Urteile vom 27. Oktober 2010 - BVerwG 6 C 12.09, 17.09, 21.09>, https://www.bverwg.de/271010U6C12.09.0
7) 파울 키르히호프(Paul Kirchhof) 교수는 독일 방송분담금의 아버지로 불린다. 보고서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badenwuerttemberg.de/fileadmin/redaktion/dateien/Altdaten/202/101005_Anlage_Kirchhof_Gutachten.pdf
8) 거부권 발동 조건: 0~2% 인상 3개 주, 2~3.5% 인상 제안 2개 주, 3.5~5% 인상 제안 1개 주, 5% 인상 제안 시 현행대로 전체 합의 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