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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바이에른주에 거주하는 H 씨는 바이에른주방송(Bayerischer Rundfunk) 명의로 발급된 방송분담금(Rundfunkbeitrag) 미납 독촉장을 받았다. 당시 H 씨가 미납한 방송분담금은 2021년 10월부터 2022년 3월까지인 6개월분으로, 연체금 8유로(약 1만 3,600원)를 포함해 총 63.53유로(약 10만 8,000원)였다. 독촉장을 받은 후 H 씨는 바이에른주방송에 독일 공영방송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고, 다양성과 균형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질적 수준이 결여된 ‘국가적 여론 권력의 대리자(Erfüllungsgehilfe staatlicher Meinungsmacht)’로서 기능한다며 방송분담금 납부 거부와 관련하여 법적 절차를 밟게 된다.1)
2022년 H 씨는 뮌헨 행정법원(VG München)에 분담금 납부와 관련해 자신의 ‘이행 거부권(Leistungsverweigerungsrecht)’이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이행 거부권은 독일 민법(BGB) 제320조에 따른 쌍무계약상의 항변으로서,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할 때까지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으나 선이행의무가 있는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 이에 대해 뮌헨 행정법원은 원고의 주장이 민법 제273조의 ‘유보권(Zurückbehaltungsrecht)’에 관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나, 방송분담금은 법률에 근거한 공법상 부담금으로써 민법 제320조의 ‘이행거부권’이 적용되지 않으며, 프로그램 내용과 질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한 납부 거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한 법원은 프로그램의 편성과 내용 및 이를 감독하는 방송위원회(Rundfunkrat)와 행정위원회(Verwaltungsrat)의 역할 수행에 대한 평가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소를 기각했다(VG München, Urteil v. 21.09.2022 – M 6 K 22.3507).2)
H 씨는 위 판결에 불복해 바이에른주 행정법원(BayVGH, Bayerischer Verwaltungsgerichtshof)에 항소했다. 이에 대해 바이에른주 행정법원에선 공영방송사는 미디어주간협약(MStV, Medienstaatsvertrag)에 따라 다원적 내부 감독기구에 의해 운영이 규율되며 시청자와 청취자는 공영방송사에 직접 청원이나 불만 제기를 할 제도적 통로가 마련돼 있다는 점을 들어 항소를 기각했다. 아울러 방송분담금 징수는 기존 판례에 따라 ‘이용 가능성’에 근거함을 확인했다. 나아가 바이에른주 행정법원은 본 건에 관해 연방행정법원(BVerwG)으로의 상고(Revision)를 허가하지 않았다(VGH München, Urteil v. 17.07.2023 – 7 BV 22.2642).
하지만 H 씨는 ‘상고 불허에 대한 불복 신청(Nichtzulassungsbeschwerde)’이라는 특별 절차를 통해 연방행정법원에 상고 허가를 신청했으며, 결국 2024년 5월 상고 허가를 받았다. 이 시기부터 H 씨와 ‘ARD 등대(Leuchtturm ARD)’라는 시민단체의 협력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3) 이 단체가 H 씨의 소송에 공개적 지원과 법적 자문을 시작했고, 이후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소송이 아닌 공영방송 시스템의 근간을 묻는 본질적인 소송으로 격상됐다.
하급심의 확립된 법리: ‘이행 거부권’의 배척
H 씨의 소송 이전에도 몇몇 유사한 선례들이 있었다. 2023년과 2024년 프라이부르크 행정법원(VG Freiburg)은 각각 ‘부정확한 보도’와 ‘편성 이의’를 이유로 방송분담금 납부를 거절 또는 유보하려는 청구를 기각했다(9 K 385/23; 9 K 2585/24).4) 또한 법원은 방송분담금이 방송분담금 주간협약(Rundfunkbeitragsstaatsvertrag)에 근거한 공법상 부담금임을 전제로 민법 제320조의 이행거부권이나 제273조의 유보권으로 납부 거절이나 유보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했다. 여기에 더해 판례들은 분담금의 정당화 이익은 ‘공영방송을 이용할 가능성에서 오는 이익(Vorteil der Nutzungsmöglichkeit)’이며,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이나 오류 주장만으로 그 이익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도 재확인했다(VG Ansbach AN 6 K 19.00594; VG Koblenz 3 K 697/22; VG Bremen 1 K 2429/24).
한편, 법원들은 프로그램의 편성과 내용, 균형성 및 품질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내부 감독기구인 방송위원회와 행정위원회가 담당하며 행정법원의 전면적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VG München M 6b 14.1339; VG Würzburg W 3 K 23.95; VG Hamburg 3 K 22358/24; VG Aachen 8 K 1352/24). 다만 프라이부르크(9 K 2585/24)와 아헨(8 K 1352/24)은 이론상 예외를 언급했는데, 이는 공영방송 전반의 프로그램 임무 수행에서 ‘전면적이고 지속적이며 명백한(offenkundig)’ 결함이 체계적으로 입증 가능한 경우에 한정된다. 제시된 사건들에서는 그 높은 문턱이 충족되지 않아 분담금 부과의 적법성과 납부 의무 유지를 공통된 결론으로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방송분담금에 관한 2025년 연방헌법재판소(Bundesverfassungsgericht) 결정도 있었다. 이 사건에서 소송인들은 중부독일방송(MDR, Mitteldeutscher Rundfunk)의 내부 감독기구 구성과 운영이 ‘국가로부터의 독립(Staatsferne)’과 ‘투명성(Transparenz)’에 반하므로,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균형성이 담보되지 않아 분담금의 정당화 이익인 ‘이용 가능성에서 오는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 라이프치히 행정법원(VG Leipzig, 2021-06-23, 1 K 632/18)과 2심 작센주 고등행정법원(Sächsisches OVG, 2024-01-31, 5 A 562/21)은 「방송분담금 주간협약」에 근거한 분담금 부과의 적법성을 확인하고, 감독기구 결함 주장만으로 방송사의 존재나 처분 권한이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청구를 배척했다. 소송인들은 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본안에 들어가지 않고 절차 요건(보충성 등) 미충족을 이유로 비채택됐다.5)
같은 시기에 진행된 이 사건과 H 씨의 사건은 같은 쟁점을 다른 경로로 다뤘다는 점에서 진행이 달랐다. H 씨 사건은 행정소송에서 분담금 납부 거절이나 유보에 관한 행정법적 쟁점을 다툰 반면, MDR 사건은 헌법소원 경로에서 조직적·절차적 하자를 근거로 분담금의 정당화 이익 자체를 문제 삼았다. 다만 분담금의 합헌성은 이미 2018년 결정(BVerfG 1 BvR 1675/16 등 병합 사건)에서 확인된 바 있어 MDR 사건은 절차 요건 미충족으로 본안 판단 없이 종료됐다. 한편 H 씨 사건에서는 연방행정법원이 2024년 5월 23일 상고 허가해(Beschluss vom 23.05.2024-BVerwG 6 B 70.23), 공영방송이 프로그램 다양성 보장 임무를 구조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경우 분담금 징수에 대한 법률상 다툼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조건을 어떻게 한정할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다.6)
연방행정법원의 최종 판결과 그 법적 의미
연방행정법원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 H 씨가 패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원고가 공영방송이 그 임무를 명백히 위반했다는 증거를 제출하려면, 방송 프로그램과 채널 운영을 검토해 구조적으로 제시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원고가 패소하더라도, 연방행정법원이 방송분담금 관련 행정소송에서 ①채널 운영에 대한 불만 제도(Programmbeschwerde)의 보완과 연계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법적 근거와 범위로 허용되는지 ②공영방송의 전체 채널 운영에서 구조적·지속적 임무 위반이 주장될 때 행정법원이 어떤 기준으로 심사할지 ③방송분담금 납부자가 공영방송의 임무 중 하나인 ‘이용 가능성에서 오는 이익’이 없다고 판단할 때 납부 의무의 유예나 거절이 가능한지 ④행정법원이 공영방송의 기능임무(Funktionsauftrag) 위반을 예외적으로 심사한다면 그 요건과 기준은 무엇인지라는 네 측면을 다룰 것으로 예상됐으므로, 방송분담금 징수 법리를 정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 됐다.7)
연방행정법원에서 상고가 허가된 후 심리가 2회 진행됐고, 판결은 2025년 10월 15일 내려졌다. 예상과 달리 연방행정법원은 이 소송을 하급심인 바이에른주 고등행정법원으로 파기 환송하는, 원고 측의 절차상 승소로 결론냈다. 또한 판결 전체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통제 가능성과 관련된 심사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먼저 연방행정법원은 H 씨가 주장한 민법상의 ‘이행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방송분담금이 「방송분담금 주간협약」에 근거한 공법상 ‘분담금(Beitrag)’으로서 사적 가치에 기초한 계약 관계에 의한 납부가 아니므로, 납부 의무 성립은 납부자의 이용이나 만족 여부와 무관하다고 명시했다. 또한 RBStV에는 공영방송의 채널 운영 의무 이행과 방송분담금 납부 사이의 직접적 상호 연관성(wechselseitige Verknüpfung)이 규정돼 있지 않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민법상의 ‘이행 거부권’이나 ‘유보권’과 같은 항변은 적용되지 않으며, 채널 운영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납부를 거절하거나 유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판결의 핵심은 하급심의 법리 오해를 지적한 데 있다. 법원은 단순히 ‘이용 가능성’만으로 분담금 징수가 정당화된다고 본 바이에른주 고등행정법원의 판단이 2018년 연방헌법재판소 결정의 구속력을 오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행정법원의 해설에 따르면, 당시 결정의 의미는 방송분담금의 헌법적 정당화가 ‘다양성 보장’이라는 공적 책무를 이행하도록 ‘구성된’ 채널을 이용할 가능성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영방송 채널의 편성과 프로그램 내용이나 균형성에 대한 평가는 원칙적으로 내부 감독기구(방송위원회, 행정위원회)의 역할이고, 이를 처리하는 별도 절차가 존재하므로 행정법원은 광범위한 재심사를 자제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공영방송의 전체 채널 운영에서 전면적이고 지속적이며, 명백한 결함이 상당 기간 반복되거나, 방송분담금으로 인한 개인 부담과 공영방송의 프로그램 품질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입증되는 경우에는 방송분담금의 ‘정당화 이익(der die Erhebung des Rundfunkbeitrags rechtfertigende individuelle Vorteil)’ 자체가 문제될 수 있음을 명시했다. 여기서 정당화 이익은 공영방송을 이용할 가능성에서 오는 이익으로서 개별 프로그램의 오류나 개인적 취향에 따른 불만만으로는 번복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연방행정법원은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 공영방송이 다양성과 균형성을 심각하게(gröblich) 위반한다는 주장은 원고 측이 ‘전문적(과학적, 학문적) 감정(wissenschaftliche Gutachten)’을 활용해 ‘명백하고 규칙적인 결함(evidente und regelmäßige Defizite)’을 입증해 진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라디오와 텔레비전, 텔레미디어(온라인·모바일 등)를 포괄하는 전체 채널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시간적으로 충분하고(최소 2년 이상), 객관적으로 내용을 검토한 자료가 제출돼야 한다는 기준이 제시됐다. 이 기준을 충족하는 보고서가 제출되고 증거조사 후 법원이 원고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법원은 「방송분담금 주간협약」의 방송분담금 징수 근거조항(제2조 제1문)의 합헌성에 관해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konkrete Normenkontrolle, Art. 100 GG)’을 할 수 있다.
다만 연방행정법원은 H 씨가 제출한 자료가 이 높은 기준을 충족하는지는 하급심이 다시 심리해야 할 사실관계의 영역이라며 사건을 환송했다. 따라서 원고의 납부 거부권은 인정되지 않았으며, 방송분담금 납부 의무는 현행대로 유지된다.
연방행정법원 판결의 의의
연방행정법원의 이번 판결은 원고 개인의 ‘이행 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패소지만, 공영방송 시스템 전체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절차적 승리로 평가할 수 있다. 이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그동안 하급심이 분담금 징수를 정당화하며 견지해 온 ‘단순 수신 가능성’ 논리가 연방헌법재판소의 2018년 결정의 취지를 오해한 것임을 명백히 파기한 데 있다. 연방행정법원은 분담금의 헌법적 정당성이 ‘다양성 보장이라는 공적 책무를 이행하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의 이용 가능성에 있음을 재확인했다. 이는 방송분담금 납부 의무와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이행이 법리적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최고 행정법원이 확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번 판결은 방송위원회 등 내부 감독기구가 채널 운영에 대해 일차적 책임을 지지만, 그 시스템이 실패할 가능성을 사법부가 인정한 데 중대한 의의가 있다. 그동안 법원들은 내부 감독 구조의 존재를 근거로 프로그램에 대한 심사를 사실상 거부해 왔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선 공영방송의 ‘장기간의 심각한 구조적 실패’가 발생할 경우 행정법원이 이를 외면하지 않고 직접 심리해야 할 의무를 부여했다. 이를 위해 비록 제출해야 하는 자료가 높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공영방송의 ‘구조적 실패’에 대해 사법부가 개입해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경로를 열어준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연방행정법원의 판결이 향후 공영방송의 책무성 논의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이번 독일 연방행정법원의 판결은 텔레비전 수신료 징수 및 공영방송의 책무성 논란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판결에서 수신료의 존재 이유가 공영방송의 실제적인 공적 책무 이행과 법리적으로 분리되지 않음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향후 한국에서도 공영방송의 구조적 책무 이행 실패에 대한 사법적·제도적 통제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법리적 참고점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2) 이 원고에서 제시한 각 판례의 링크는 지면 제한으로 표기를 제외했다. 검색 가능한 판례 표시를 제시했으므로, 모든 자료는 온라인에서 확인 가능하다.
3) ‘ARD 등대’는 DACH(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지역의 공영방송 개혁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로, 2024년 6월 6일 ‘방송분담금 납부자 협회(Bund der Rundfunkbeitragszahler)’의 창립 회원들로 구성됐다(https://leuchtturmard.de/).
4) 서면 판결(Gerichtsbescheid)로 법원이 구두 변론 없이 서면으로만 결정한 판례
5) https://www.bundesverfassungsgericht.de/SharedDocs/Pressemitteilungen/DE/2025/bvg25-054.html
6) Pany, T., <Öffentlich-rechtlicher Rundfunk: Wie verfassungskonform ist er?>, 2024.6.12, Telepolis, https://www.telepolis.de/article/
Oeffentlich-rechtlicher-Rundfunk-Wie-verfassungskonform-ist-er-9759802.html
7) <Und dafür auch noch zahlen?>, Sueddeutsche Zeitungm, 2025.10.13, https://www.sueddeutsche.de/medien/bundesverwaltungsgericht-rundfunkbeitrag-oeffentlich-rechtlicher-rundfunk-li.3322635; Bräutigam, F. & Raillon, P., <Verhandlung zum Rundfunkbeitrag>, Tagesshau, 2025.1.10, https://www.tagesschau.de/inland/gesellschaft/rundfunkbeitrag-verhandlung-100.html; https://www.l-iz.de/leben/faelle-unfaelle/2025/10/klagerin-aus-bayern-wehrt-sich-gegen-rundfunkbeitrag-bundesverwaltungsgerichturteil-635346
8) <Streit um Rundfunkbeitrag geht in weitere Runde>, Die Zeit, 2025.10.15, https://www.zeit.de/news/2025-10/15/streit-umrundfunkbeitrag-geht-in-weitere-rund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