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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라디오 방송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1925년 3월 22일 오전 9시 30분, 도쿄방송국(JOAK, 현재의 NHK 도쿄 라디오 제1방송)이 일본 해군 군악대의 클라리넷 독주를 송출한 것이 시작이었다.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 탄생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이어 나고야(1925년 7월), 오사카(1926년 12월)에서도 차례로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전국 단위로 확대됐다.1)
또 일본은 점령 중이던 중국 다롄(大連, 1925년)을 시작으로 식민지 조선(1927년)과 대만(1928년)에서도 잇달아 라디오 방송을 개시했다. 그만큼 라디오 보급은 빠르게 진행됐고,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흘렀지만, 일본에선 라디오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지상파로 직접 라디오 방송을 수신하는 경우는 크게 줄었지만, ‘라지코(radiko)’로 대표되는 디지털 변환 방송과 팟캐스트 시장은 확대일로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잡음이 뒤섞인 가장 아날로그적인 매체인 라디오가 디지털의 높은 파고조차 잘 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팬데믹이 부른 ‘라지코’ 흥행
라지코는 디지털 통합 플랫폼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공영방송 NHK의 라디오 방송 어플리케이션(앱)인 ‘라지루 라지루(らじる★らじる)’를 제외하면 사실상 일본 전역의 라디오 방송을 다루는 거의 유일한 인터넷 스트리밍 앱이다. 현재 NHK 방송을 포함해 전국 114개국 라디오 방송(지난 8월 기준)을 내보낼 정도로 활동 무대는 광범위하다.
원래 라디오는 전파를 이용하는 매체의 특성상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들을 수 없다. 라지코는 이런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또 이미 방송된 프로그램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청취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을 내세워 2010년 3월 처음 스트리밍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청취자를 늘려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라지코의 위상은 급격히 올라갔다. 고립감에 빠진 사람들이 다른 청취자들의 사연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인 라디오를 통해 위안을 느꼈던 덕일까. 팬데믹 이전 750만 명 수준이던 라지코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일본 정부의 긴급사태 선언(2020년 4월 8일)을 기점으로 한 달 만에 900만 명까지 늘었다. 이때 라디오의 매력에 빠진 청취자들은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대부분 남았다. 지난 5월 30일 발표에 따르면 라지코의 MAU는 약 850만 명이다.2)
라지코는 아사히방송 기사장(技師長, 수석엔지니어)이었던 간도리 게이시(香取啓志, 현 라지코 최고기술고문)와 덴츠(Denstu) 간사이 지사 종합미디어국 글로벌업무실장 출신의 미우라 후미오(三浦文夫, 현 간사이대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당초 두 사람은 라디오 방송의 인터넷 기반 동시 스트리밍 서비스(IP Simul Radio)를 여러 라디오 방송국과 시도해 봤지만, 개별 방송국만으로는 청취자 확보에 한계가 있었다. 그로 인해 업계 통합 스트리밍 시스템을 생각했고, 이 구상이 라지코 설립으로 이어졌다.
여러 지역의 각기 다른 라디오 사업자들이 이 같은 제안에 흔쾌히 동의한 건 업계 전체가 느끼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라디오 광고비 집행은 1991년 역대 최고인 2,406억 엔(약 2조 2,700억 원)을 찍은 뒤 꾸준히 내려갔다. 급기야 라지코를 시작한 2010년에는 절반 수준인 1,299억 엔(약 1조 2,200억 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방송국 수는 그대로인데 광고 수입은 격감하고 있었던 것이다.3)
광고주 입장에서도 라지코는 대단히 효율적인 매체다. 이전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광고가 가능해졌고, 사용자의 성별·연령 등 특성에 맞춘 표적형 광고도 할 수 있어서다. 기본적으로 라지코는 지상파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광고를 똑같이 내보내는데, 방송국과의 계약에 따라 라지코에서 자체 제작한 사용자별 표적형 디지털 음성 광고를 방송 프로그램이나 팟캐스트 등에 삽입할 수 있다.
실제 광고 매출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라디오 전체 광고비는 1,162억 엔(약 1조 96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02% 증가했다.4) 라지코의 독자 광고 역시 지난해 광고 매출이 전년에 비해 62% 늘었다. 이와 관련, 이케다 다카오(池田卓生) 라지코 사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라디오는 완청률이 높은 데다, 음성 광고는 시각적 정보가 없기 때문에 상상력에 호소할 수 있어 인상 깊게 남는 장점이 있다”라고 세일즈 포인트를 밝히기도 했다.5)
독자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라지루 라지루)를 운영하는 NHK도 2019년부터 라지코에 참여하고 있다. 민영과 공영방송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편하게 함께 듣고 싶다는 청취자들의 ‘니즈’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다만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므로 계약상 NHK 라디오의 경우 광고를 넣지 않도록 했다.
라지코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100만 명 이상의 청취자들은 월 385엔(약 3,600원)의 ‘청취 지역 제한 해제(area free)’ 요금제를 쓰고 있다. 라지코 측에 따르면 원래 라디오는 전파 특성상 방송 권역이 제한돼 있기에 과금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월 480엔(약 4,500원)의 ‘청취 시간 제한 해제(time free)’ 요금제를 구독할 경우 30일 이내 방송을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청취 지역·시간 제한을 모두 해제한 요금제(더블 플랜)는 월 865엔(약 8,100원)이다.

‘국민 밴드’ 콘서트보다 비싼 라디오 이벤트 티켓
라지코의 성공은 개별 방송국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라지코를 통해 수신 지역 월경 청취자가 늘면서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마니아층이 폭넓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라디오국의 또 다른 수입원인 장외 이벤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2월 열린 ‘오도리의 올나이트 닛폰 in 도쿄돔’이다. 예능 콤비(お笑いコンビ)인 오도리(중·고교 동창인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가스가 도시아키가 2000년 결성)가 진행하는 닛폰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인 ‘오도리의 올나이트 닛폰’(일요일 새벽 1~3시 방송)은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비디오리서치에 따르면 월간 라디오 청취율 조사에서 2016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51차례나 연속으로 1위(동일 시간대)를 차지했을 정도다.7)
이 방송이 정규 프로그램화된 건 2009년 10월이다. 때마침 라지코가 출범하면서 프로그램은 전국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방송으로는 듣거나 볼 수 없는 대규모 이벤트가 지난해 2월 도쿄돔에서 열렸는데, 이 역시 엄청난 화제가 된 것이다.
스탠드석 티켓 가격이 1만 엔(약 9만 4,000원), 무대에서 가까운 아레나석은 1만 2,000엔(약 11만 3,000원)으로 고액인데도 전석 매진됐다. 지난 1월부터 전국 순회공연 중인 일본의 ‘국민 밴드’ 사잔올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도쿄돔 공연 티켓 가격이 1만 1,000엔(약 10만 3,000원, 전석 지정석)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관중 동원력인 셈이다.
도쿄돔 이벤트를 보기 위해 모인 관중은 약 5만 3,000명이었다. 현장 티켓을 구하지 못해 극장에서 라이브 중계를 관람하거나(4,500엔), 온라인 스트리밍 방송(3,300엔)을 시청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총 티켓 판매 수는 15만 6,707명에 달했다. 이는 코미디쇼 사상 최고 기록(온·오프라인 혼합 관중)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도 올랐다.8)
다른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46(乃木坂46)을 내세워 지난 1월에 열린 ‘노기자카46의 올나이트 닛폰 presents 구보 시오리의 청춘문화제 in 요코하마 아레나’는 1만 2,000여 명을 끌어모으며 티켓(1만 1,000엔)을 완판시켰다. TBS 라디오의 인기 팟캐스트 프로그램 <제인 수와 호리이 미카의 오버 더 선(OVER THE SUN)>이 지난 3월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진행한 이벤트 역시 시야제한석을 포함해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청취자들이 이처럼 고액인데도 이벤트에 호응하는 것은 비공개성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이런 이벤트는 라디오 방송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하지 않는다. 반드시 이벤트에 참여해야만 볼 수 있다. 일부 이벤트에선 팬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운동회’나 다른 유명 인사들이 등장하는 특별 행사도 진행한다. 즉 라디오 팬덤을 이용한 친밀감이 새로운 수익 창출에 이바지한다는 얘기다.
이벤트에 참가한 청취자 중 상당수는 각종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을 통해 열광적인 반응을 공유하고, 이는 다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형 이벤트가 하나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장르로 자리매김할 정도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역 방송 사투리에 묘하게 중독
일본의 민영 라디오는 대부분 지역방송이다. 그만큼 라디오 프로그램을 전국화하기에는 로컬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그런데 라지코의 등장은 이 같은 시장 분위기조차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투리 방송의 중독성이다. 가고시마 지역의 MBC남일본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고게나 콧가 아이모시타!(こげなこっがあいもした!)>9)는 프로그램명부터가 “이런 일이 있었다”를 뜻하는 현지 사투리다.
현지인도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방언을 방송 내내 쏟아내기 때문에, 타 지역 청취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청취자 개개인이 해석을 해보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마치 외국어 실력을 키우는 기분으로 이 방송을 듣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청취자는 가고시마 방언의 특징인 급하게 내뱉는 빠른 말투나 말끝을 올리는 억양 포인트를 두고 “마치 ASMR을 듣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라지코가 만들어낸 새로운 현상이라는 점에서 미디어 관계자들도 주목하는 부분이다.10)
AM 라디오의 퇴조, 와이드 FM 확대
100년 전, 일본에 라디오가 도입된 것은 1923년 9월 간토(關東·관동) 대지진의 영향이 컸다. 당시 수도권 신문사들의 사옥이 붕괴해 기능이 마비되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대중 사이를 유언비어가 파고들었다. 이는 곧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헛소문을 믿은 자경단의 학살로 이어졌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방송의 필요성이 고조된 결과 일본 각지에서 라디오 방송국 설립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다.
이처럼 라디오는 재난·재해 상황에서 필수적인 인프라다. 특히 장애물의 영향을 덜 받고 원거리까지 전파를 보낼 수 있는 AM 방송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전파 혼선 등으로 인해 잡음이 쉽게 발생하고 음질이 떨어지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다.
결국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AM 방송은 퇴출 분위기다. 이에 일본 총무성은 지난해 2월 1일부터 1년간 시험적으로 34개 AM 방송 중 13개 방송을 중단했다.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AM 방송을 FM 방송으로 전환하기 위한 점검 조치였다.
문제는 FM 방송의 경우 전파 수신 범위가 좁고 장애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난청 지역이 있어서 재난·재해 방송으로선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이런 단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AM 방송을 대체하기 위해 ‘와이드 FM’을 도입하고 있다. 와이드 FM은 AM 방송이 잘 안 잡히는 지역에서도 청취할 수 있도록 새롭게 주파수를 할당한 보완 방송이다. AM 방송 내용을 그대로 재송신하는 한국의 ‘표준 FM’과 유사하다. 단, 기존 FM 방송용 주파수(76.1~89.9㎒)와 와이드 FM의 주파수(90.0~94.9㎒) 대역이 달라 이에 대응한 라디오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라지코 측은 AM 방송의 와이드 FM 전환 과정에서 “라지코가 대체 미디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파 장애가 없는 라지코야말로 재난·재해 시 인프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자 수도 1,000만 명을 눈앞에 둔 만큼 활용 가치가 높다는 걸 내세운다.
2년 뒤면 한국도 라디오 100주년을 맞는다. 라디오는 공부나 가사, 업무를 하면서도 함께 들을 수 있는 매체다. 다른 레거시 매체들과 달리 생존력이 강한 이유다. 다만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청취자를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 라디오의 기적 같은 현재는 큰 참고가 될 만하다.
1) https://www.nhk.or.jp/archives/history/r-hososhi/01
2) https://radiko.jp/newsrelease/pdf/20250530_001_pressrelease.pdf
3) https://www.soumu.go.jp/main_content/000110962.pdf
4) https://www.dentsu.co.jp/news/item-cms/2025020-0227.pdf
5) <ラジコ池田社長「AMのFM転換を補完、利用者1000万人目指す」>, 日本経済新, 2025.7.4, https://www.nikkei.com/article/DGXZQOUC163EX0W5A610C2000000
6) https://xtrend.nikkei.com/atcl/contents/18/01137/00001/?ST
7) https://www.oricon.co.jp/news/2364012/full
8) <Most tickets sold for a comedy show(hybrid viewing)>, Guinness World Records, 2024.2.18,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759907-most-tickets-sold-for-a-comedy-show-hybrid-viewing
9) https://www.mbc.co.jp/radio/kogena
10) 髙田 悠太郎, <ラジオ3つの未来 「共感」より「不条理」に病み付き、地方局から予測>, 日経クロストレンド, 2025.4.4, https://xtrend.nikkei.com/atcl/contents/18/01137/00003/?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