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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과 ‘해외’, 그리고 ‘지식재산권(IP)’. 일본 대형 출판사들이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들기 위해 이 세 가지 키워드에 매달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망가(漫画·Manga)’1)라는 막강한 IP를 무기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디지털 유통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로열티를 받고 망가 IP의 2차 제작권을 넘기는 이른바 판권 사업(rights business)에 치중하던 과거와 달리, 출판사가 직접 영상 제작과 유통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출판계의 ‘거인’ 코단샤(講談社)는 지난해 11월 미국 할리우드에 영상 제작 자회사까지 세웠다. 일본 민영방송사(이하 민방)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간 출판사 대신 애니메이션이나 실사 영화를 제작해 유통한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원작을 가진 ‘IP 홀더(holder)’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나서면서 민방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광고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방송 업계의 위기감을 더욱 키우는 요소다. 결국 민방도 IP 전략을 정비하는 등 절치부심하기 시작했다. IP를 통한수익 극대화라는 지상 과제가 일본 미디어계 전반을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할리우드에 자회사 세운 ‘진격의 코단샤’
일본 출판업계에서 코단샤의 행보는 고무적이다. 코단샤는 지난해 11월 4일 할리우드를 거점으로 하는 영상 제작사 코단샤스튜디오(Kodansha Studios)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로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을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로 영입했다. 자오 감독과 함께 영화·드라마를 제작하고 디즈니·워너브라더스 등 메이저 제작사들과 협업해 온 베테랑 프로듀서 니콜라스 곤다(Nicolas Gonda)도 최고 운영 책임자(COO)를 맡았다.2)
업계에선 ‘단순히 해외 사무소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영화의 메카인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탄탄한 경영진까지 확보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와 관련, 코단샤스튜디오 측은 앞으로 제작할 영상물의 원작인 망가 등 일본 출판물의 저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오 감독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망가는 내 뼈와 피, 그리고 살을 만들어줬다. 망가뿐 아니라 소설, 아니메(アニメ),3) 동인지(同人誌) 등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며 “어릴 적부터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지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4)
<진격의 거인>, <공각기동대>, <도쿄 리벤저스> 등 블록버스터급 IP를 보유한 코단샤는 그간 할리우드 제작사를 통해 실사 영화화에 나서곤 했다. 하지만 결과물이나 진행 과정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령 워너브라더스가 2018년 판권을 가져간 <진격의 거인>은 여전히 기획 단계에 머물고 있고, <공각기동대>는 할리우드에서 실사판이 나왔지만, 원작의 철학적 깊이를 잘 반영하지 못하면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코단샤는 이런 실패 사례를 곱씹으며, 제작 환경의 문제를 인식했다. 일본에선 영화·드라마를 만들 때 ‘제작위원회’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두고 있어, 출판사도 제작위원회에 출자하면 간접적으로 제작에 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등에선 로열티만 받을 뿐 제작 방식에 토를 달기가 어렵다. 결국 코단샤는 영상이 제작되기 전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할리우드에 스튜디오를 내기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 노마 요시노부(野間省伸) 코단샤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일본의 엔터테인먼트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원작권을 해외에 넘겨 그쪽에서 알아서 하도록 맡겨왔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기획 회사를 세우고, 일본의 IP와 크리에이터를 세계로 넓혀가고자 한다”고 말했다.5)
‘많은 이야기’ 가진 출판사의 저력
코단샤의 이 같은 글로벌 IP 전략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종이잡지의 매출이 추락하던 2011년에 취임한 노마 사장은 ‘출판의 재발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꾸준히 디지털 전환(DX)에 힘써왔다. 그 결과 2015년만 해도 전체 광고 수입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던 디지털형 광고의 비중이 현재는 70%를 넘어설 정도로 커졌다.6)
2021년 발표한 ‘인스파이어 임파서블 스토리즈(Inspire Impossible Stories)’라는 기업 이념도 상징적이다. 말 그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가 창작되도록 독자·창작자·산업 전반에 자극을 주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면서 1909년 창업 이후 고수해 오던 한자 로고까지 영문(KODANSHA)으로 바꿨다.7)

이런 혁신 의지는 경영 전반에 영향을 줬다. ‘이야기(Stories)’에 방점을 둔 IP로 해외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조직 개편과 플랫폼 강화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2023년 미국 시장을 겨냥해 디지털 망가 플랫폼인 ‘K MANGA’8)를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자체 플랫폼으로 직접 시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할리우드 진출도 이뤄진 셈이다.
세간의 관심은 코단샤가 내놓을 첫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 20년 넘게 실사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된 전설적인 작품 <아키라> 등이 거론된다. 자오 CCO가 직접 연출을 맡을지도 관심거리다. 일본 미디어 업계는 코단샤스튜디오가 원작의 의도를 살린 고품질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과의 협상력을 높이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IP 종합 플랫폼 기업’ 지향하는 카도카와
코단샤 못지않게 카도카와(KADOKAWA)의 글로벌 IP 전략도 매우 공격적이다. 코단샤, 쇼가쿠칸(小学館), 슈에이샤(集英社)와 함께 일본 4대 출판사로 군림해 온 카도카와는 일찌감치 ‘IP 종합 플랫폼 기업’을 지향해왔다. 카도카와쇼텐(角川書店, 1945년 창업)이라는 사명을 2013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하면서 9개 자회사를 흡수 합병하는 대규모 통합을 단행했다. 출판 이외에 게임·애니메이션·이벤트 등 미디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카도카와는 “비할 데 없는 메가 콘텐츠 퍼블리셔이자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로서, 자유롭고 역동적인 IP 창출과 인터넷·디지털·글로벌 시장 진출에 도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9) 이후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그룹 전체 매출이 약 2,779억 엔(약 2조 6,000억 원, 2025년 3월 기준)으로 업계 톱이다.10)
카도카와의 최대 재산은 풍부한 출판 IP다. 망가·아니메·캐릭터 등 연간 IP 창출 수는 6,430점(2025년 3월 기준)에 이른다. 중기 경영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2년 내 연간 7,000점 이상의 IP 창출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11)
카도카와는 다른 출판사들과 달리 애니메이션 제작사(Studio KADAN, 칩튠 등)와 게임 제작사(아쿠아이어, 스파이크·춘소프트 등)를 산하에 두고 있다. 출판 IP의 부가가치를 스스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출판사의 IP를 애니메이션화해 성공한 경우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슈에이샤의 만화잡지 《주간영점프(週刊ヤングジャンプ)》 등에서 연재했던 <최애의 아이(推しの子)>다. 이렇게 카도카와의 손으로 탄생한 애니메이션은 한국 등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최대 아니메 배급망 가진 소니와 협업
카도카와는 소니와 손잡고 글로벌 유통망 확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니메 배급망(소니의 크런치롤)12)과 강력한 IP 창고(카도카와)가 만나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실제로 2024년 12월 두 회사는 전략적 자본·업무 제휴를 발표하면서, 소니가 약 500억 엔(약 4,600억 원) 규모의 카도카와 신주(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이듬해 1월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소니는 기존 주식과 합쳐 카도카와의 지분 약 10%를 보유한 최대 주주 자리에 올랐다.13) 프로젝트 단위의 단발성 협업이 아닌 상시 파이프라인 형태의 연속적인 협업을 위한 경영 구조를 만든 것이다.
두 회사는 협업 대상으로 카도카와 IP의 글로벌 실사 영화 및 드라마화,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카도카와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유통 확대, 게임 타이틀 출시 확대 및 퍼블리싱(publishing, 배급사가 마케팅과 유통을 맡아 수익을 분배하는 구조), 버추얼 프로덕션 촉진·보급 및 인재 육성 등을 적시하고 있다. 소니의 실사화 역량(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 글로벌 애니메이션 OTT(크런치롤), 게임 사업(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 등을 카도카와의 IP와 연결한다는 그림이다.
일례로 올해 크런치롤을 통해 공개하는 게임 원작의 애니메이션 <세키로: 노 디피트(SEKIRO: NO DEFEAT)>의 경우 카도카와가 제작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원작 게임이 지닌 유일무이한 매력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생성형 AI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전편(全編)을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 위한” 협업이다.14)
쇼가쿠칸·슈에이샤도 코단샤·카도카와의 글로벌 IP 전략에 자극받고 있다. 히토쓰바시(一ツ橋) 그룹 산하의 두 회사는 업계에서 경쟁하면서도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하나의 IP 전담 회사(쇼프로·ShoPro)15)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쇼프로는 <명탐정 코난>, <나루토>, <도라에몽> 등 대표 IP의 라이선스 관리를 도맡고 있는데, 최근 들어선 북미 법인인 비즈미디어(Viz Media)와 함께 애니메이션 공동 제작 등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2차 제작권을 글로벌 파트너에 판매하고 관리하는 데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다만 슈에이샤의 경우 자회사(슈에이샤 게임즈)를 세워 망가 원작의 게임을 직접 기획·제작해 유통하기 시작했다. 또 소니 산하 애니플렉스(아니메 배급사) 등과 공동 출자해 아니메 제작(JOEN)에도 관여하는 등 쇼가쿠칸과 달리 IP 사업에 대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에서 IP로, 민방 수익모델도 변화
일본 출판업계의 이런 움직임은 일본 민방의 IP 전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간 일본 민방은 수익 구조에서 광고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하지만 방송광고 시장은 축소세다. 게다가 지난해 후지TV의 성 상납 스캔들 이후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그러다 보니 후지TV 등 일부 방송사는 부동산 임대 수익으로 적자를 메우는 기형적 구조까지 갖게 됐다. 그런 만큼 수익원의 리모델링이 절실해졌다.
오랜 기간 일본 방송사들은 콘텐츠 제작을 광고 수익을 내기 위한 ‘비용’으로 치부한 측면이 있다. 일본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콘텐츠를 해외 판매, 리메이크, 상품화(굿즈 등), 이벤트, 게임 등 다방면의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IP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과거엔 해외 시장에서 프로그램 판매에만 주력했지만, 이젠 해외 파트너사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프로그램 개발 단계에서부터 시나리오, 캐스팅 등을 포함해 전 공정을 공동 제작할 정도다.
특히 후지TV는 한국·중국 등 아시아 파트너와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일례로 중국 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동영상 플랫폼인 빌리빌리(bilibil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중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시광대리인(時光代理人)>의 실사 드라마를 제작해 4월부터 방영한다. 후지TV의 첫 국제 공동 제작 지상파 드라마다.16) 정서적인 공감대가 있는 주변국의 인기 IP까지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예능 포맷 현지화, 할리우드 제작사 직접 투자도
닛폰TV는 예능 프로그램(버라이어티)의 미주 시장 개척에 열심이다. 지난해 6월에는 닛폰TV의 예능 포맷을 전담 개발하는 교쿠로스튜디오(Gyokuro Studio)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무소를 내고 미주에서의 영업을 강화하기로 했다.17) 이어 같은 달 블루앤트스튜디오(Blue Ant Studio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북미 시장에서의 예능 포맷 개발 및 제작 확대를 발표했다.18)
TBS도 미국 시장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월에는 할리우드 제작사인 레전더리엔터테인먼트(Legendary Entertainment)에 1억 5,000만 달러(약 2,2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19) <듄>, <고질라> 시리즈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베테랑 제작사와 함께 일본에서 성공한 IP를 글로벌 시장용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1) ‘일본 만화’를 가리키는 세계적인 명칭
2) https://www.kodansha.co.jp/notices/673
3) ‘일본 애니메이션’을 가리키는 세계적인 명칭
4), 5) <『エターナルズ』クロエ・ジャオ監督、講談社とハリウッドにスタジオ設立 日本の漫画や小説を実写映像化へ>, シネマトゥデイ, 2025.11.4, https://www.cinematoday.jp/news/N01515565
6) <「出版広告の再発明」を目指す講談社が新たに取り組むデータ基点のビジネス戦略──『AdverTimes.』にインタビュー記事が掲載>, 講談社Cステーション, 2022.1.18, https://cstation.kodansha.co.jp/article/1623
7) https://www.kodansha.com/jp/aboutus/#purpose
8) https://kmanga.kodansha.com
9) https://group.kadokawa.co.jp/company/history/06.html
10) https://group.kadokawa.co.jp/information/promotional_topics/article-12287.html
11) 朝日希新, <アニメ『【推しの子】』が絶好調のKADOKAWA、逆境を乗り越えグローバルIP企業へ!ゲーム『エルデンリング』など、世界を熱狂させるエンタメ戦略とは?>, Diamond Online, 2025.7.23, https://diamond.jp/articles/-/368547
12) https://www.crunchyroll.com/?srsltid=AfmBOoocOinjRTiqI1aym4zbLdp336n-GvnsTmL1l2aYkvB8vmppePvV
13)
14) https://sekiro-anime.jp/news.html#news-250822-1
16) <フジテレビグローバル戦略!初の国際共同製作地上波ドラマが放送決定>, フジテレビジョン, 2026.2.18, https://www.fujitv.co.jp/company/news/260218.html
17) https://www.ntv.co.jp/info/pressrelease/docs/20250602.pdf
18) <日本テレビとカナダBlue Ant Studiosが北米市場向けバラエティフォーマットに関する戦略的パートナーシップを締結>, NipponTV, 2025.6.5, https://www.ntv.co.jp/info/pressrelease/20250605.html
19) Weprin, 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