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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부터 대통령실은 ‘쌍방향 브리핑제’를 도입했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 사이 논쟁이 있었지만, 기자들에 대한 과도한 비방과 악성 댓글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기자들에 대한 공격의 함의와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대통령실이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생중계하는 ‘쌍방향 브리핑’을 본격 시행한 지 4개월이 지났다. 한동안 크게 문제가 됐던 질문하는 기자에 대한 괴롭힘 양상은 다소간 진정된 듯도 보인다. 시행착오를 거쳐 적응기에 들어섰기 때문일 수도, 대통령실까지 나선 몇 차례의 경고가 유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 조롱과 혐오가 소위 ‘팔리는’ 콘텐츠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조회수를 노린 혐오 장사는 언제고 다시 판을 키울 수 있다.
기자 공격에 대통령실도 ‘경고음’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였다. 브리핑이 끝나고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는데 화면에는 답변자(대변인)만 등장한다. 이제 와 보면 자연스러운 건 아니었다. 또한 공적인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을 공개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건 그 행위에 임하는 이들의 책임감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백악관 등의 선례도 있었다. 여기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오히려 부적절해 보였다.
그렇다 해도 분명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었다. 기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사이버불링)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공격 양상은 물리적으로까지 번지며 그 수위와 정도가 심각해졌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에도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한 기자가 ‘신상 털기’를 당하고, 대선 당일 밤 이재명 대통령 부부를 취재했던 영상기자가 근거 없는 음해와 인신공격에 시달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방침엔 ‘카메라를 추가 설치해 질문하는 기자의 얼굴도 비춘다’라는 것뿐, 기자를 보호하는 조치는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의 얼굴이 노출됐을 때 일어날 일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자가 질문을 잘하면 된다’라는 반박으로 쉽게 일축됐다. 질문의 수준이 높아지면 대변인(혹은 책임자)의 답변 또한 충실해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가 향상될 거라는 긍정적 전망도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백악관처럼 대변인과 기자들이 질의응답에 그치지 않고 활발히 ‘토론’을 벌이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그러나 기자들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만으로 브리핑룸 문화가 단번에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려는 너무 빨리 현실로 나타났다. 대통령실이 질의응답 과정을 생중계하고, 그 영상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공개하면서 질문하는 기자들을 표적 삼은 비방·조롱형 콘텐츠가 쏟아졌다. 기자의 얼굴과 소속사 이름을 썸네일에 넣고 자극적 제목을 단 유튜브 영상, 숏폼 콘텐츠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특히 기자의 질문에 강유정 대변인이 보이는 반응이 주된 소재가 됐다. 대변인이 어떤 표정과 태도를 보이는지가 질문한 기자의 ‘수준’을 결정했고, 이에 따라 조롱과 공격의 수위도 달라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쌍방형 브리핑 시행 한 달쯤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규연 수석은 “질문하는 기자들에 대한 온라인상의 과도한 비방과 악성 댓글, 왜곡된 영상편집 등의 부작용이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라면서 “관련 영상을 재가공해 유포할 때 명예훼손 등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고, 공격받은 기자가 관련 영상을 신고하면 그걸 다시 조롱하며 쇼츠로 만들어 올리는 채널도 있었다. 결국 한 달 만에 대통령실이 후속 조치를 내놨다. KTV 영상에 ‘브리핑 영상을 자의적으로 편집, 왜곡하여 유포하는 행위는 명예훼손 등에 해당할 수 있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라는 자막을 넣기로 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냐’ 물으신다면
그리고 다시 두 달 정도가 흘렀다. ‘찍어내듯’ 비방형 콘텐츠가 쏟아지던 이전보단 일단 양적인 면에선 어느 정도 진정된 분위기다. 정권 초기에 비해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진 탓인지, 유튜브 알고리즘 영향인지, 대통령실의 조치가 효과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여전히 기자들이 쉽게 표적이 된다는 것이고, 이를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것이다.
일련의 상황을 겪으며 확인한 불편한 사실은 기자들을 소위 ‘조리돌림’하는 콘텐츠가 ‘팔린다’라는 것이었다. 막상 영상을 보면 특별할 게 없어도 ‘기자 참교육’, ‘대변인 분노’ 같은 제목이 들어가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언론 불신을 넘어 언론 혐오는 조회수를 먹고 자란다. 그리고 일부 언론사 유튜브 채널도 여기 동참해 판을 키우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자들이 위축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기자가 의연하게 맡은 바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쉬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하는 기자도 있다. 문제는 이런 기자들을 보호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언론계엔 대체로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감’을 받기도 힘들다. 재난·재해 상황에서의 트라우마가 아닌 이상 기자들이 겪는 고통은 뉴스룸 안에서도, 밖에서도 인정받기 쉽지 않다. 기자들 스스로가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속내를 감추기도 한다.
언론 불신이 기본값이 된 상황에서 딱히 해법이 없다는 생각에 체념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는 사이 언론의 존재, 기자 일의 본질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 이전 보수 정부 시절, 기자들은 ‘왜 질문하지 않나’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왜 그런 질문을 하냐’라고 욕을 먹는다. 기자들이 이재명 정부를 깎아내리려 한다고, 윤석열 정부 땐 말도 못 하던 기자들이 ‘설친다’라고 비난한다. 야당의 의혹 제기에 대해 입장을 물으면 그 입장에 동조하는 양 몰아가거나 근거도 없는 질문을 한다며 기자의 ‘자격’을 의심한다.
밈이 된 기자 공격, 방관해선 안 돼
지난 8월 말 한미 정상회담 때 우리 풀(pool·공동 취재) 기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을 두고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 대변인에 이어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한 일이 있었다. 이규연 수석은 “한국 기자의 적극적 질문은 우리가 의제를 선점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백악관에 동행한 기자들이 탁월하기도 했겠지만, 그 자리에 다른 기자들이 있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질문하는 것, 그것이 기자의 일이며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자들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비난하기보다 더 좋은 질문을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다. 물론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지 명쾌하게 정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같은 질문을 두고도 한쪽에선 ‘사이다’라며 찬사를 보내지만, 다른 쪽은 ‘무례하다’라고 손가락질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론 불신과 혐오가 진영을 가리지 않는 시대, 누구나 수긍하는 좋은 질문이란 기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질문을 멈출 순 없다. 기자는 언제 어디서나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질문을 잘 했다고 해서 칭찬이나 감사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고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충분하다.
기자의 질문은 공적인 행위이고 따라서 언제나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비판과 비방은 구분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자에 대한 비방과 공격이 온라인상에서 밈(meme) 형태로 확산하는 것을 방관해선 안 된다. 대통령실은 그런 행위가 잘못된 것이란 신호를 일관되게 주고, 문제가 심각한 경우 적절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 언론계도 기자 괴롭힘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전투’는 최일선의 기자들이 치르지만, 그 책임은 언론 전체의 몫이다. 공동 대응을 해도 모자랄 판에 ‘혐오 장사’에 언론사가 편승하는 것은 곤란하다.
기자는 질문하는 힘을 기르고, 언론사는 적절한 재교육과 법적 조력 등으로 기자의 성장과 보호를 지원하며, 대통령실은 그런 기자·언론과 적당한 긴장 속에서 브리핑 문화를 더 내실 있게 바꿔가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 기자와 대변인이 질의응답 도중 ‘설전’을 벌이더라도 모두가 ‘쿨하게’ 지켜볼 수 있는, 그런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