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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열린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대한 국내 반응은 저조했다. 중계권을 확보한 JTBC가 비지상파 방송인 만큼, 국민적 관심 행사에 대한 접근권 논의도 이어졌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다가오는 가운데,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과 중계권 확보 사이에 얽힌 쟁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긴 중계권 분쟁의 한 장이 끝났다. 2026년 6월 개막하는 북중미 월드컵은 지상파 채널인 KBS와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동시에 볼 수 있게 됐다. 동계올림픽에 이어 월드컵까지 유료방송이 단독 중계하는 상황을 막겠다고 정부와 국회가 분주히 움직이고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선 끝에 지상파+유료방송 중계 조합이 완성됐다.
그러나 이제 겨우 고개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JTBC가 속한 중앙그룹은 2032년까지 세 번의 동·하계 올림픽과 대망의 100주년 월드컵까지 네 개 대회의 독점 중계권도 갖고 있다. 남은 6년간 비슷한 진통을 네 번은 더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회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보편적 시청권’을 강화하는 법안이 관련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완벽한 처방은 아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쨌건 2032년까지는 TV로 올림픽이든 월드컵이든 볼 수 있겠지만, 이후부터는 장담할 수 없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과 함께 일본에 ‘먼저 온 미래’는 2032년 이후 우리가 겪게 될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지상파+유료방송 중계, 극적 성사됐지만…
4월 20일, JTBC와 KBS는 북중미 월드컵을 공동 중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이하 방미통위) 중재 하에 월드컵 중계권 재판매 협상 테이블이 열린 지 약 100일 만에 전해진 소식이었다. 방미통위는 앞서 1월 7일 JTBC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네이버와 중계한다고 발표하자, 바로 다음 날 지상파 3사(KBS·MBC·SBS)와 JTBC를 불러 월드컵 중계권 논의를 시작했다.
동계올림픽이 전례 없이 저조한 열기 속에 막을 내리자, 월드컵만큼은 ‘지상파 중계’를 사수해야 한다는 정치권 등의 요구는 더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과거 국제대회에 비교하면 사회적 열기가 충분히 고조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면서 월드컵을 앞두고 “국제적 행사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을 폭넓게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2019년 중앙그룹이 2026~2032년 올림픽 중계권을 단독으로 확보했을 때부터 지상파와의 갈등의 골은 이미 깊었지만, 무엇보다 ‘적정 중계권료’에 대한 양측의 인식차가 너무나 컸다. 지상파에선 JTBC가 중계권을 비싸게 사놓고 비싸게 되팔려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내부 구성원들도 “수신료로 JTBC의 도박 빚을 갚을 순 없다”(KBS 같이노조), “JTBC의 들러리가 될 수 없다”(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며 격하게 반발했다. 경영진을 향해 JTBC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선 절대 안 된다고 경고하고, 방미통위와 정치권에도 공동 중계를 ‘압박’하지 말라며 날을 세웠다.

지난 3월 말까지도 협상은 진척이 없었다. 다급해진 JTBC가 승부수를 던졌다. JTBC는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을 1억 2,500만 달러(약 1,870억 원)에 샀다고 공개하면서 “디지털 재판매액을 제외한 방송 중계권료를 절반씩 부담하자”고 3사에 제안했다. 3월이 지나면 재판매가 불가하다며 데드라인도 통보했다. 당시 JTBC가 지상파 3사에 각각 제시한 금액은 약 250억 원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상파는 여기에도 난색을 표했고, 140억 원으로 가격을 다시 낮춘 끝에 최후통첩 시한에서 약 3주가 더 지나서야 협상은 마무리됐다.
곳간은 마르고, 중계권료는 치솟고
140억 원. 이번 월드컵 중계권료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중앙그룹이 뉴미디어 중계 파트너사인 네이버에서 얼마를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금액이 꽤 상당하다고 해도 지상파 중 KBS 한 곳에만 중계권을 되판 것으로는 손실을 메우기 힘들어 보인다. KBS 역시 ‘상당한 적자’ 를 감수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월드컵 중계권이 이제는 ‘폭탄’ 껴안기처럼 여겨지는 형국이다. 2019년 올림픽에 이어 2024년 월드컵 중계권까지 모두 확보하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꿈꿨던 중앙그룹으로서도 이런 상황은 예상 밖이었을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SBS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단독 중계했는데, 당시 6,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50억 원에 중계권을 사고도 크게 밑지진 않았다. 당시 SBS의 월드컵 광고 매출은 직전 독일 월드컵 때 지상파 3사가 벌어들인 650억 원보다 많은 700억 원으로 알려졌다. 월드컵 등에 힘입어 그해 지상파TV 광고비는 전년 대비 15% 이상 성장하며 2조 원에 육박했다. 그런데 불과 15년 만인 2025년, 지상파TV 광고 매출은 그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전체 방송광고 매출액도 1조 원 가까이 빠졌다. ‘월드컵 특수’는 적어도 방송가에선 옛말이 됐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극적으로 ‘16강 드라마’를 썼던 2022년에도 지상파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소폭 성장하는 데 그쳤다.
이번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국이 기존 32개 국에서 48개 국으로 확대돼 경기 수가 늘고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Hydration Break, 수분 충전 휴식 시간) 도입으로 광고 시간대도 늘어나는 만큼 일부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중계권료에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중계권료를 회수할 만큼 수익을 내는 것은 이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폭탄 돌리기’ 된 중계권… 글로벌 사업자의 노림수
JTBC의 중계권 확보를 두고 ‘독이 든 성배’, ‘승자의 저주’란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중계방송권 계약 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편적 시청권 관련 법안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지난 5월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민관심행사’ 등을 중계할 때 지상파 방송사업자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JTBC로선 중계권 재판매 대상을 최소 한 곳 이상은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반길 일만도 아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 협상에서 보듯 원하는 금액을 받아내리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지상파는 중계권 확보보단 재정 부담을 더 걱정하는 분위기다. 중계 ‘의무’를 이행하려면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지상파 3사 간 ‘폭탄 돌리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다음은? 한 번 올라간 중계권료는 내려올 생각을 않고, 곳간이 말라가는 방송사업자는 공동협상이든 단독 입찰이든, 중계권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구조가 됐다. 방미통위가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지만, 역시 재원이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가 ‘시장 파괴자’로 등장하기라도 하면, 마땅한 대책이 없다.
이런 일이 얼마 전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3월 열린 2026 WBC 대회의 일본 내 중계권을 넷플릭스가 독점한 일이다. 넷플릭스는 당시 중계권료로 이전 대회의 약 5배 수준인 150억 엔(약 1,400억 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내 방송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 국민에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돈을 내고 넷플릭스에 가입해 대표팀 경기를 시청하거나, 일부 방송사가 고육지책으로 택한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거나. 당시 넷플릭스 중계 영상 제작은 일본 지상파 방송인 니혼테레비가 맡았는데, 이를 두고 “일본 방송사가 미국 OTT의 하청 업체로 전락했다”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스포츠 중계권 시장은 ‘쩐의 전쟁’이 된 지 오래고, 막강한 자금력을 내세운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에 적자 경영·비상 경영이 일상이 된 국내 방송사가 대항하긴 더 어려워질 것이다. JTBC의 올림픽 독점 중계를 계기로 촉발된 보편적 시청권 논의가 지상파 중계 여부에 머무르지 않고 ‘그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