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지방 소멸’과 ‘언론의 위기’. 오늘날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의제들이다. 수도권 집중화가 가속화되면서 지역은 ‘소멸 위험’으로 분류되고, 클릭 중심의 플랫폼 환경 속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서울이 아닌 지역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전국적 이슈를 다루지 않으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이 거대한 ‘서울 공화국’ 속에서 지역 언론은 어떤 의미를 갖고 존재할 수 있을까?
미디어 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의 윤유경 기자가 쓴 《전국언론자랑》은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서울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전국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19개 지역 언론사를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들의 사례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도 지역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고, 소외된 목소리를 공론장으로 이끌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지역 언론의 현재를 보여준다.
버스를 멈춰 세운 할머니의 삐뚤빼뚤한 글씨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말로부터도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 지역 안에 소외 지역이 있는 것처럼, 소외 지역 안에서도 더 소외돼 취재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이중 소외’ 현상이 나타난다.
전북 진안의 주간지 진안신문은 이러한 이중 소외가 어떻게 공론장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진안신문은 글을 배울 기회가 없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지역의 어르신들과 발달장애 청소년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그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어울림’이라는 코너에 매주 실었다. 그중 2011년 8월, 당시 74세였던 정이월 어르신이 쓴 <사람 태우지 않는 버스>라는 기사의 일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을 바드라는 열락을 바닸다. 아침식사도 않고 20일 토요일날 아침 7시 50분 버스로 동 향면 학선리 곡마을 앞에 승강장에서 버스가 오기에, 손을 들 고 흔들며 소리쳤다. 버스는 그양 지나간다. (...) 버스가 왜 사람을 안 태우고 가? 나뿐 사람이지,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
5분에 한 대씩 버스가 오는 대도시와 달리, 이곳 동향면에서는 몇 시간 만에 겨우 오는 버스가 그냥 지나가 버린 것이다. 병원조차 못 갈 뻔했던 억울함이 담긴 이 글은 단순한 하소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이월 어르신이 자신의 경험을 공론장에 공유하며 목소리를 내자 이 사건은 그냥 지나가는 불편으로 묻히지 않았다. 결국 버스 회사는 사과했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치가 이뤄졌다.
글을 몰라 신문을 읽을 수조차 없었던 이들이 지역신문의 기자가 돼 서툴지만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그대로 표현했고, 실제 변화를 끌어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일, 그리고 공론장을 확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소멸 위기 지도에는 없는 사람의 ‘온기’
‘지방 소멸’이라는 딱지가 붙은 곳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소멸 위험 지수’는 20~39세의 가임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로 나눈 수치로, 이 지수가 낮을수록 지도상에 새빨간색으로 칠해진다. 서울 관점에서 이 붉은색은 곧 ‘사라질 지역’으로 읽힌다. 그렇게 규정하는 순간, 그 안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같이 사라진다.
경남신문의 <심부름센터> 기획은 이러한 편견에 맞서 ‘심부름을 해주고 그 삯으로 주민의 이야기를 듣겠다’며 오지마을을 찾아갔다. 2021년 창간 75주년 기획 <경남에도 사람이 산다>를 시작으로, 2022년 <경남 소멸 리포트> 이후 세 번째 지역 소멸 기획 시리즈다. 소멸 위험 지수 같은 서글픈 숫자 대신, 그 안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주민들, 마을을 지키는 이들의 온기로 입사마을 주민들의 삶을 깊이 있게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출처 - 진안신문 2011년 8월 29일 자 온라인 기사 갈무리>
경남의 작은 군, 그 안에 더 작은 마을 소식까지 실어 주니, ‘지역은 아직 살아있다’는 외침으로 가득 채워졌다. 스무 가구 남짓한 마을의 이야기는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지역을 ‘죽어가는 곳’으로만 규정해 버리는 것이 얼마나 무심하고 폭력적인 일인지 또한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입사마을에 처음으로 신문이 배달되는 역사적인 순간도 맞이했다. 한 번도 종이신문이 배달된 적 없는 오지마을이었지만, 심부름센터 프로젝트가 끝날 즈음에 경남신문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일반 우편으로 발송돼 발행 후 이틀이 지난 구문(舊聞)이었지만, 어르신들은 경로당에 모여 진한 믹스커피와 함께 천천히, 열심히 읽었다.
지역신문의 생명력은 결국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에서 나온다. 지역을 더 가까이에서, 더 오래 머물며, 그 삶의 온기를 충실히 담아낼 수 있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다.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습니다
2022년 5월, 부산일보가 근현대사의 질곡을 품은 산복도로 중턱에 있는 호천마을에 빨래방을 열었다.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은 ‘2022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났다. 2030팀의 젊은 기자들과 PD들의 아이디어로 시작해 회사가 과감히 투자한 이 기획은 당시에도 큰 화제를 모았다.
산복빨래방은 단순히 빨래하러 오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와 정을 나누고,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산복도로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습니다’라는 문구처럼, 주민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24편의 기사로 실렸고, 글로 다 담지 못한 이야기는 38편의 유튜브 영상으로 기록됐다.
기자는 타인의 정보와 발언을 취재해 기록으로 옮기는 직업이다. 취재 윤리상 그 대가를 직접 제공할 수 없기에, 기자의 일은 어쩌면 늘 ‘빚진’ 상태로 남는다. 경남신문이 심부름센터로, 부산일보가 빨래방으로 마을을 찾아간 이유도 이 긴장을 풀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을 것이다. 지역의 현안과 소외된 목소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만들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공짜’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실천적 약속이기도 했다. 이상배 기자는 취재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지역 언론이 가장 빛날 때는 지역에 한없이 다가가는 순간이다.”
2022년 10월 31일, 기자와 PD들은 산복빨래방을 마을에 넘기고 부산일보로 돌아갔다. 그러나 산복빨래방이 주민들과 나눈 정, 그곳에서 전해준 이야기, 그리고 언론에 남긴 고민은 그대로 남아있다. 단독이나 속보 경쟁, 조회수 올리기에서 벗어나 여전히 지역 곳곳에 살아 숨 쉬는 지금, 여기 우리를 듣고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역 언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끝까지 파고드는 우리 동네 ‘슈퍼맨’과 ‘암행어사’지역에 큰 사건이 발생하면 전국적 관심은 잠시 집중됐다가 금세 사라진다.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도 그랬다. 충남 태안의 주간지 태안신문은 이 사건을 18년째 꾸준히 추적하고 있다. 당시 정치인과 봉사 단체, 시민들이 와서 기름을 닦는 모습이 수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기름이 얼추 닦인 뒤부터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사고 이후 지역민들에게는 여전히 신체적·정신적 피해와 공동체 갈등과 분열이라는 현재 진행형 고통이 남아있었다. 특히 긴급 생계비 배분 문제, 피해 배상 과정에서 기금 운용을 둘러싼 문제 등을 치밀하게 지적하며, 지금까지 2,000건이 넘는 기사를 썼다.
태안신문 기자들이 지역에서 ‘슈퍼맨’으로 통하는 이유는 군민들의 제보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끈기와 책임 덕분이다. 주민들의 마지막 민원 창구를 자처하며 작은 제보라도 끝까지 취재해 답변해 주는 이들의 태도가 지역에서 신뢰로 이어졌다.
중도일보 손도언 기자가 ‘국악계의 암행어사’라고 불리는 이유도 같다. ‘한번 걸리면 끝까지 판다’는 그는 충청도가 판소리의 원류임을 밝히기 위해 10년간 100편의 기사를 기획하고 수백 명을 인터뷰했다. 급기야 수몰된 국악 단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수중 다이빙까지 시도했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사명감으로 지역의 무형 자산을 기록하려는 그의 노력은 지역 기자가 아니고서는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힘, 충북 괴산의 어린이 기자들
언론 환경에서 어린이는 주요 보도 의제로 환영받지 못한다. 어린이날을 제외하면 관련 기사를 찾아볼 수나 있을까. 충북 괴산 송면초등학교의 어린이 신문, ‘어쩌다 특종!’은 어린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취재하며 신문의 주체가 된다. 1호는 송면초신문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교직원분들은 참여 불가능합니다’라는 첫 공지와 함께 지금의 이름으로 스스로 정했다.
어린이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은, ‘학생들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쉽게 쓴 기사’,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기사’, ‘맞춤법이 틀리지 않고 문장이 어색하지 않은 기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담긴 기사’다.
신문이 발행되는 아침이면 기자들이 학교, 도서관, 양로원 등에 직접 찾아가 배포한다. 열심히 돌린 신문이 버려지면 ‘어쩌다 특종!의 분노’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 이른바 칠판 시위도 한다.
“7, 8호에 이어 또 신문을 버린 ○○○에 분노한 기자들은 이제부터 신문을 주지 않기로 했다.”
(칠판에 적힌 경고문 중에서)
어쩌다 특종!은 2023년 12월 11일에 방영된 JTBC <밀착카메라> 코너에도 소개됐다. 마을 이장님은 특급 정보원, 어린이 기자들은 발로 뛰어 특종을 따낸다. 어린이 기자들의 강점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능력이다. 아이들이 바라본 세상은 사소해 보이는 것조차 모두 중요하다. 궁금한 건 묻고 잘못된 건 바로잡는다. 이것이 이들이 신문을 만드는 이유다.
인터뷰 시점에 어린이 기자 넷 중 셋이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가장 큰 고민은 신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였다. 학교에서 신문반이 줄어드는 현실을 보듯 인기 있는 동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쩌다 특종!은 어린이들의 방식대로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목소리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저자의 바람에 더해 함께 기대한다.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을 잇는 ‘연결’의 가치
지역신문 독자는 누굴까. 《전국언론자랑》에서 만난 독자들은 익명화된 대중이 아닌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맺어야 하는 바로 우리 옆의 사람들이었다.
제주 우도에는 마을 신문 달그리안이 있다. 섬 속의 섬 주민들에게 ‘우리 마을에 신문이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고향의 소식을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주민들은 달그리안 부스에 놓인 신문과 사진들을 보며 옛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목소리가 신문에 담기고, 그 기록은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의 역사로 다시 기억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2000년 서해대교 개통 당시, 국내 최장 대교라는 홍보 뒤에 대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고 기억에서 사라진 행담도 주민들이 있었다. 당진시대는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진 행담도 원주민을 2년간 수소문해 그들의 잊힌 역사를 기록했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행담도 이야기를 꺼렸지만, 더는 찾아갈 수 없는 고향의 기억을 하나둘 꺼내놓으며 그간의 생채기를 조금씩 치유해 갔다.
이 과정은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라는 책과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행담도, 그 섬에 살았네>로 이어졌다. 그 덕분에 행담도가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라 화해와 상생의 역사적 공간으로 다시 이해되기 시작했다. 당진시대는 지역민의 목소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너진 공동체의 기억을 복원하고 상처 입은 주민들을 다시 고향과 연결했다.
지역 언론이 거창한 담론을 앞세우지 않더라도 이웃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지역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의 가치가 지역 언론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되고 있다.
서울 밖 삶의 보고, 지역 언론
“왜 서울로 가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지역에 있는 기자들은 “이곳에 우리 삶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담긴 지역 언론의 작은 실천들은 거대 담론에 가려졌던 풀뿌리의 힘이 어떻게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차분히 보여준다. 동네 중국집의 개업 소식을 전하고, 이웃의 결혼과 부고를 알리며,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잊혀가는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그 지역에 뿌리내린 언론만이 할 수 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가 사는 동네의 작은 신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회관, 학교, 그리고 이야기를 담아내는 지역 언론의 시간 속에 살아 움직인다.
건강한 공동체 회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리고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묻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서울 밖에도, 아니 서울 밖이라서 더욱 뜨겁고 생생한 삶의 현장이 곳곳에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