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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사는 저마다 자체적으로 정한 윤리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준과 원칙이 제각각이며, 무엇보다 제대로 실천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언론윤리규정 개선을 위한 연구》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언론사들이 낡은 관행을 버리고 시대에 맞는 윤리규정을 지켜 국민에게 쇄신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언론에 쏟아진 공격과 비판은 언론인에게 깊은 상처와 당혹감, 인식의 혼란을 동시에 줬다. 이런 공격이 사실관계보다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것이라며 부당하게 여기고, 분노만 한다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의 뉴스 수용자는 더 이상 언론 보도를 말없이 받아들이고 침묵하는 공중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언론 못지않게 상세한 정보에 접할 수 있고, 취재 보도의 정확성과 정당성을 꼬치꼬치 따지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언론이 그렇게 보도할 수밖에 없는 제반 제약과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성찰 없는 관행을 탓하는 것은 부질없다. 언론은 이제 낡은 관행이 아니라 시대 가치에 맞는 윤리규범을 실천해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언론윤리규정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에는 유승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특임교수와 오현경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객원연구원이 참여했다. 연구는 국내 언론규범을 언론단체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들 단체와 개별 언론사들이 시대 변화를 반영해 이를 수정·개선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제한된 범주에서 이뤄졌다. 특히 매체의 종류와 규모, 이념적 경향성과 관계없이 언론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고 실천해야 할 포괄적이고 보편적 윤리원칙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각되는 가치 담겨
연구팀은 먼저 국내외 주요 언론단체의 윤리규정을 비교·분석했다. 국내 언론단체의 윤리규정은 25개에 이른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사진기자협회, 인터넷신문위원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한국전문신문협회 등이 독자적인 윤리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제정한 ‘신문윤리강령 및 신문윤리실천요강’은 국내 언론 윤리규범의 모태 역할을 하고 있다. 1957년 신문의 날에 맞춰 제정된 국내 최초의 윤리규범이고, 1996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대폭 수정·보완됨으로써 시대 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상당수 언론단체나 개별 언론사들은 이 강령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준거로 삼고 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당시 언론에 쏟아진 공격과 비판은 언론인에게 깊은 상처와 당혹감, 인식의 혼란을 동시에 줬다. ©연합뉴스
해외의 언론 윤리규정은 북미와 유럽 지역의 언론 단체 중심으로 살펴봤다. 미국기자협회(SPJ, 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와 미국 경제기자협회(SABEW, Society of American Business Editors & Writers), 미국과 캐나다의 라디오·텔레비전·디지털뉴스협회(RTDNA, Radio Television Digital News Association), 영국 윤리적저널리즘네트워크(EJN, Ethical Journalism Network)의 윤리강령과 미국 퓨리서치센터 ‘우수 저널리즘을 위한 프로젝트(PEJ,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The Elements of Journalism)》, 미국 워싱턴뉴스위원회의 TAO(Transparency, Accountability, Openness) 언론공약, 그리고 독일 언론평의회의 언론보도지침(German Press Council Guidelines for Journalistic Work), 유럽기자연맹의 뮌헨윤리헌장인 ‘기자들의 의무와 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 Duties of Journalists)’ 등을 참고했다.
동서양을 떠나 언론 활동에서 직면하게 되는 윤리적 주제들은 크게 다를 수 없기 때문에 국내외 윤리규범의 주제와 내용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해외 언론단체들의 경우 언론이 추구해야 할 포괄적 대원칙(guiding principles)을 먼저 제시하고, 각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지켜야 할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간결하게 압축한 이 포괄적 대원칙에는 진실 추구, 독립성, 공정성 같은 전통적 원칙들이 예외 없이 강조된다. 그러나 동시에 시대 변화와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각되는 가치들, 즉 투명성, 피해 최소화, 인류애 같은 국내 규범에는 없는 원칙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기자협회는 ‘진실을 찾아 보도하라’, ‘위해를 최소화하라’, ‘독자적으로 행동하라’, ‘책임지며 투명하라’는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저널리즘 위기를 언론 윤리규범 강화를 통해 극복해나가자는 취지로 미국과 유럽 언론인들이 2011년 결성한 윤리적저널리즘네트워크(EJN)는 ‘진실과 정확성’, ‘독립성’, ‘공정성과 불편부당성’, ‘인류애’, ‘책무성’의 다섯 가지 대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위해를 최소화하라(minimize harm)’ 조항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인데, “윤리적 저널리즘은 취재원, 보도의 대상, 동료들, 공중의 구성원들을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대한다”는 취지다. EJN이 표방하는 ‘인류애’ 역시 “우리가 출판하거나 방송하는 것이 가슴 아픈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말과 영상들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는 비슷한 맥락을 담고 있다. 이 원칙이 왜 소중한지를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해 뼈저리게 절감한 바 있다.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이 받을 고통을 배려하지 않거나 범죄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취재 보도 행위를 무신경하게 일삼는 행태는 독자들이 언론을 경멸적 언어로 부르는 신뢰 추락으로 반사돼 나타나고 있다.
투명성 원칙은 디지털 시대와 관련이 있다. 언론의 정파성이 깊어지고 누구나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개방된 뉴스 생산 환경 속에서 수용자가 언론 보도를 신뢰할 수 있게 하려면 그 보도가 어떠한 취재원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투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단체들의 윤리강령은 사실 저명한 저널리즘 연구기관인 포인터연구소(Poynter Institute)에서 정한 포괄적 저널리즘 윤리원칙을 중요하게 참고한다. 이 연구소가 그동안 제시한 기본 원칙은 ‘진실 추구’, ‘독립성’, ‘위해 최소화’의 세 가지였다. 그러나 2014년 이를 개정해 ‘독립성’을 ‘투명성’으로 대체하고, ‘위해 최소화’는 ‘공동체 참여’로 개념을 확장했다. 이 연구소는 이제 뉴스는 언론사뿐 아니라 시민이나 비영리단체, 심지어 기업 취재원에게서 직접 나올 수 있는 복잡한 환경이며 언론사에 대한 정부 보조도 가능할 수 있기에 독립성보다는 투명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1) 투명성 원칙은 뉴스의 출처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뉴스에 영향을 미친 상업적 이해의 공개, 지적 정직성, 실수의 신속한 수정 등을 주요한 실천 규범으로 한다.
해외는 진실 추구, 국내는 언론 자유 우선
국내외 윤리규정의 또 다른 차이는 해외의 모든 규정이 예외 없이 진실 추구를 제1원칙으로 앞세우는 반면, 국내 강령들은 언론 자유 수호를 제일 먼저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오랜 기간 독재 및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언론 자유의 확보가 무엇보다 절박했던 역사적 경험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추구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규정하는 윤리규범에 언론의 권리를 포함하는 것은 부조화하며, 해외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항이다. 또한 신문윤리강령은 언론의 자유(1조), 언론의 책임(2조), 언론의 독립(3조), 보도와 평론(4조), 개인의 명예 존중과 사생활 보호(5조), 반론권의 존중과 매체 접근의 기회 제공(6조), 언론인의 품위(7조)로 이뤄져 있는데, 서로 차원과 맥락을 달리하는 개념들이 뒤섞여 있어 통일성이 부족하다.
국내 윤리규정의 내용은 상세하고 방대한 편이지만 다양한 주체들이 독자적으로 정하다 보니 용어와 개념에 대한 통일이나 일관된 기준이 없이 혼란스럽게 쓰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명칭 자체도 윤리규정, 윤리강령, 실천요강, 실천지침, 시행세칙, 시행준칙, 보도기준, 권고기준 같은 용어들이 명확한 구분 없이 혼재돼 있다. 또한 매우 추상적이거나 선언적인 규정들이 많아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시대 흐름에 맞지 않은 사문화된 조항들도 적지 않다.
연구팀은 현직 언론인과 언론 윤리 전문가 10명에 대한 심층 인터뷰도 실시해 국내 언론규범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자들은 인권의식의 신장과 디지털 혁신 같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언론윤리규정이 필요하다는데 대부분 공감했 다. 특히 현직 언론인들은 현재의 윤리규정들이 너무 추상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이 많아 다양한 윤리적 가치가 충돌하는 현실 상황에서 유용한 준거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중시되고 인격권을 보호하는 법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보도의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과거 관행에 매몰돼 있다는 반성도 있었다. 예를 들어 검찰이 수사 중인 범죄 사건을 수사 단계에서 확정된 사실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언론 관행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은 전문가뿐 아니라 현직 기자들도 공감을 표시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윤리규범은 규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이들은 현재 마련된 윤리규정들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고 진단하며 그 원인으로 윤리적 실천을 중시하지 않는 문화와 사회 분위기를 꼽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윤리규정의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언론사 및 언론단체에서 마련하고, 언론사 내 수평적인 소통 문화 조성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윤리규정 개선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대원칙은 최대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제시하고, 세부 준칙은 사례를 중심으로 최대한 상세하게 기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연구팀은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서 먼저 언론윤리규정의 체계화를 위해 ‘윤리강령 – 행동준칙 – 실천지침’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규정 모델을 제안했다. 최상위 규정인 강령은 언론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가치를 제시하고, 준칙은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지침이며, 실천지침은 취재보도 영역별로 세부적으로 적용하는 윤리규정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어 언론 윤리규정 개선안으로 여섯 가지 포괄적 핵심 원칙(core principle)에 따라 이들 원칙을 실천하는 데 필수적인 주요 실행 준칙을 각각 9~10가지로 압축한 저널리즘 원칙 시안을 제시했다. 포괄적 핵심 원칙이 거시적 차원이라면, 세부 실행 준칙은 중시적 차원이며, 이를 바탕으로 개별 언론사에서는 더욱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취재보도준칙을 마련하는 3단계 위계구조 모델이다.2)
언론 윤리 규정 개정안, 여섯 가지 핵심 원칙
여섯 가지 핵심 원칙을 간략히 소개하면 첫째는 ‘정확한 보도로 진실을 추구한다’는 진실성 원칙이다. 실행 준칙은 열 가지로 명확한 근거에 입각한 정확한 보도, 사안의 전모와 충분한 맥락 제공, 취재 정보의 교차 확인, 정확하고 충실한 취재원 인용, 성급한 확정 보도 금지, 실수와 오류의 신속 수정, 사실과 의견 구분, 과도한 일반화 금지, 온라인 정보의 엄격한 사실 검증 등이다.
둘째는 ‘불편부당하며 공정하게 보도한다’는 공정성 원칙이다. 실행 준칙은 아홉 가지로 특정 세력이나 집단에 편향되지 않는 보도,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의 반영, 적극적 가치 판단, 대립하는 견해 사이 균형 추구,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 입장 반영, 주관적이고 편향적 표현 지양, 취재원의 편향적 선택과 부각 금지, 중요 사실의 의도적 누락 금지, 반론의 충분한 반영 등이다.
셋째는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보도한다’는 독립성 원칙이다. 열 가지 실행 준칙은 권력에 대한 독립적 감시, 광고주나 정부 입장 일방적 전달 금지, 내·외부의 압력과 청탁 거부, 편집과 편성의 자유 수호, 편집과 경영의 분리, 이행 상충 회피, 취재원과 거리 유지, 독자적이고 고유한 기사 개발, 타사 기사 확인과 표절 금지, 온라인 어뷰징 행위 금지 등이다.
넷째는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도한다’는 투명성 원칙이다. 실행 준칙은 열 가지로 보도 출처와 취재원 공개, 익명 취재원 예외적 사용, 익명 취재원 사용 이유 설명, 보도 출처와 근거 최대한 공개, 보도 원재료 독자에게 제공, 독자와의 적극 소통, 외부 지원과 후원 공개, 보도의 이해 상충 소지 공개, 자료 변형과 왜곡 금지, 지적 정직성 유지 등이다.
다섯째는 ‘개인과 공동체를 배려한다’는 배려와 존중 원칙이다. 열 가지 실행 준칙은 취재와 보도 피해 최소화, 사생활과 명예 존중, 약자 보호와 대변, 차별과 편견 금지, 선정적 보도 지양, 취재원과 약속 및 비밀 준수,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 권리 존중, 사회적 갈등 유발과 공익 훼손 주의, 보도 피해 신속히 조치, 생명 존중과 생태환경 보호 등이다.
여섯째는 ‘직업윤리를 준수하고 품위 있게 행동한다’는 품위유지 원칙이다. 실행 준칙은 아홉 가지로 정당한 취재방법 사용, 사칭 금지와 신분 공개, 호의적 특혜와 편의 거부, 취재원에 부당한 압력 행사 금지, 이권 개입과 부당이득 취득 금지, 물질적 지원 강요 금지, 취재원 위협 금지, 금품 수수와 향응 등 금지, 취재에서 얻은 정보 개인적 사용 금지 등이다.
이 핵심 원칙과 실행 준칙은 엄격한 학술적 논의가 아니라 언론 현장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슈들을 정리한 시안에 불과하지만, 언론계의 윤리규범 재정비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공익성과 사익 추구라는 공존할 수 없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회적 제도로서 기능하는 언론의 취재 보도 활동은 끝없는 윤리적 딜레마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윤리규범은 이러한 일상적 갈등을 헤쳐나가는 도덕적 나침반이자 무너져가는 독자의 신뢰를 되찾는 유일한 처방이다.
1) McBride, K. & Rosenstiel, T., 《New Ethics of Journalism》, Sage, 2014.
2) 배정근·유승현·오현경, 《언론윤리규정 개선을 위한 연구》,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