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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Arthur Gregg Sulzberger) 뉴욕타임스 발행인이 언론 비평지인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 Columbia Journalism Review)에 자신의 신문이 지향하는 ‘독립적 언론(independent journalism)’의 기치를 설명하는 장문의 에세이를 기고해 화제가 된 바 있다.1) CJR이 지난해부터 지상 토론과 세미나 등을 통해 공론화하고 있는 ‘객관성(objectivity)’ 논쟁에 신문사 사주가 가세한 셈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논문만큼 방대한 분량의 이 글은 저널리즘의 본질적 가치를 독립적 보도로 규정하면서 뉴욕타임스가 이를 추구하는 이유와 실천 방식, 논란이 많은 보도의 객관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 등을 정교한 논변으로 풀어나갔다.
설즈버거는 글의 서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로드 로젠스타인(Rod Rosenstein) 당시 법무부 부장관이 트럼프의 돌출 행동을 너무 우려한 나머지 대화를 녹음하려 했고, 심지어 대통령 자격을 박탈하는 헌법 조항 발동을 검토했다는 뉴욕타임스 특종 이야기를 꺼냈다. 이 보도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격한 분노를 보인 것은 이상할 게 없었지만, 반대쪽에서 보도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트럼프의 로젠스타인 해임, 특검 무산 등)를 이유로 보도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밝혔다.
설즈버거는 대통령이 임명한 최고위 법 집행자가 대통령의 적격성을 의심하고 자격 박탈을 논의했다는 사실은 공중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며 이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라고 옹호했다. 진실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며 사실이 어디로 이끌고 가든, 결과가 누구에게 불리하고 유리하든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완전하고 공정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양극화된 이념과 허위 정보가 판치는 정보 생태계로 인해 자유 언론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럴수록 독립적 언론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사주가 이렇게 언론 비평지에 기고까지 해가며 자신들의 독립성을 새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자신들의 보도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원천이 독립성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언론 보도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언론이 그 사안의 이해당사자 어느 편에도 치우침 없이 오로지 양심과 전문가적인 판단에 따라 보도한다는 것이다. “두려움도 편애도 없이(without fear or favor)”라는 뉴욕타임스 슬로건이 함축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다. 언론이 제4부로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게 하는 기능도 독립성을 유지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독립적 언론의 존재는 그 사회의 건강성을 상징한다.
미국의 대형 신문사들이 줄줄이 파산하던 2009년 말 미국의 저명한 언론학자인 마이클 셔드슨(Michael Schudson) 교수와 레너드 다우니 주니어(Leonard Downie Jr.) 교수는 <미국 저널리즘의 재건>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위기 대응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보고서는 대안 제시에 앞서 “미국 저널리즘의 재건은 특정 미디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원천적(original)’이며 ‘신뢰할 수 있는’ 보도 기능의 보호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선결 원칙을 천명했다.2) 이 세 원칙은 매체와 뉴스의 과잉 시대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론이 무엇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편파적 보도, 배경은
한국 언론의 독립성은 어디에 있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5만 8,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2022 언론수용자 조사>를 보면 국내 뉴스 이용자들은 언론 보도의 가장 큰 문제로 ‘편파적 기사’(22.1%)를 꼽았다. 보도가 편파적이라고 생각하니 신뢰가 형성될 수 없다. 시민들의 이런 인식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먼저 한국 언론의 가장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정파적 보도를 생각해보면 수긍이 어렵지 않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이념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해와 생각이 같은 집단은 감싸고 반대 집단을 공격하기 때문에 편파적이다. 과거에는 권력자의 비리가 드러나면 모든 언론이 함께 달려들어 실체를 파고들었지만, 요즘에는 같은 진영의 매체들이 권력자를 옹호하거나 물타기를 해서 사건이 유야무야될 정도로 편파성이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또한 경제 뉴스는 소비자보다 기업,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언론인 인식조사에서 매번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 1순위로 광고주가 꼽히고, 언론의 역할 가운데 중요도와 실행도 사이 격차가 가장 큰 분야가 ‘기업 활동에 대한 비판 및 감시’라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3) 2017년 공개된 장충기 전 삼성그룹 사장과 언론계 인사들이 주고받은 문자들은 언론이 삼성에 편향적인 기사들을 양산하는 배경을 짐작케 했다. 정부와 시민 사이에서도 편향적 보도를 부르는 관행과 구조가 있다. 정부 등 국가기관 출입처와 발표 자료에 크게 의존하는 취재 관행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관점이 깊게 반영된 보도를 낳는다. 이런 관행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디지털 미디어 환경 변화로 기사 생산 부담이 크게 늘어난 기자들은 현장을 확인하거나 시민의 관점을 반영할 시간적 여유 자체가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년 언론인 의식조사에 따르면 기자들은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13.7건의 지면 기사와 14.6건의 온라인 기사를 쓰고 있다. 주5일 근무를 감안하면 하루에 4~6건의 기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또한 2020년 1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정부광고 의존성 역시 정부 홍보성 기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역언론들이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광고와 협찬에 발목이 잡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4)
물론 언론이 편파적이라는 평가에는 수용자의 선입관이나 이념적 확증편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탈진실이 지배하고 갈등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언론은 갈등 당사자 모두로부터 공격받기 쉽다. 아무리 객관적 기사라고 해도 자신 편을 들어주는 ‘해장국 언론’이 아니라면 편파적이라고 평가절하되기 일쑤다.
모든 취재 대상으로부터의 독립
그 원인이 무엇이든 보도가 편파적이라는 평가는 언론이 자유롭고 독립적 위치에서 공정하게 뉴스를 만든다는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곧 독립성에 대한 불신이나 다름없다. 언론의 공정성이나 객관성 등은 늘 논란이 되지만 그럼에도 독립성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나 언론계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독립성의 의미를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언론 정도로 이해하는 협소한 인식이 문제라고 본다. 독립성을 언론의 자유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권력의 물리적이고 제도적 통제에서 벗어난 상태만으로 독립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기자들은 그들이 취재하는 대상으로부터 반드시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며 여기서 독립은 중립성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독립”이라고 강조했다.5) 말하자면 권력뿐 아니라 취재의 모든 대상에 정신적으로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해외 언론들은 그들의 독립성을 최대한 가시화하고, 그러한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세심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많이 퇴색했지만, 뉴스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업적 힘을 차단하기 위해 편집과 경영을 분리하는 관행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과거 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 신문사가 본사 사옥에서 기자들과 영업 직원들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따로 운영한 사례는 유명하다.
기자들의 일상적인 취재 보도 활동에 실질적 지침을 제공하는 언론사의 윤리 규정들이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을 차단하기 위해 매우 엄격하고 상세한 조항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해충돌은 뉴스를 결정하는 과정에 언론의 독자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이 아닌 사적 이해가 개입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독립성 훼손과 직결된다. 개인적으로 만난 한 해외 신문사의 특파원은 국내 기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이념 성향을 아무렇지 않게 표출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자신이 속한 신문사에서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은 물론 공개적인 자리에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이해충돌 차원에서 금기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례처럼 이해충돌은 실제로 발생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게 비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자의 의구심을 부르고 신뢰 관계를 해치기 때문이다. 대장동 개발을 주도한 김만배 씨와 돈거래를 한 언론인들이 아무리 실질적인 채무 관계에 의한 돈을 주고받았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눈에는 이해충돌의 증거로 보일 뿐이다. 선의의 취재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취재원과 호형호제하는 밀착 관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태도 역시 독립성의 가치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내 언론에서 이해충돌 이슈는 언론인 개인보다는 언론사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정파적 대립 구도에서 한쪽 진영에 치우친 보도로 파워게임에 간여하고, 광고와 협찬 수주에 편집국을 적극적으로 동원하거나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가며 트래픽을 노린 기사들을 양산하며, 보도 공간을 자사를 홍보하거나 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관행은 이해충돌을 구조화하고 일상화한다.
그 책임을 모두 언론사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언론사의 독립성을 의심하고 보도를 불신하게 하는 결과는 피할 수 없다. 사실보다 신념을 중요시하는 가치의 혼돈과 이념, 세대, 성별 간 분열이 가속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독립적 언론의 가치는 더욱 절실하다.
1) Sulzberger, A.G., <Journalism’s Essential Value>, Columbia Journalism Review, 2023.5.15, https://www.cjr.org/special_report/ag-sulzberger-new-york-times-journalisms-essentialvalue-objectivity-independence.php
2) Leonard Downie, Jr. & Michael Schudson, 《The reconstruction of American journalism》, The Columbia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2009
3) 《2021 한국의 언론인》,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4) 박장준, <언론의 ‘가장 만만한 물주’된 지자체, 영업 사원 된 기자들>, 미디어스, 2015.2.27,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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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Kovach, B. & Rosenstiel, T., 《The Elements of Journalism(4th Ed.)》, 이재경 옮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개정 4판)》.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