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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기업 회장 장남의 음주운전 기사가 삭제·익명 처리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언론 보도는 중요한 공적 기록으로, 함부로 수정·삭제해선 안 된다. 언론 자유를 훼손하는 언론사의 대기업 광고주 의존 관행과 디지털 시대 사후 편집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2026년 초부터 언론계는 재벌 회장 아들의 음주운전 기사 삭제·수정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한겨레와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최소 13개 유력 언론사가 4년 전 보도한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장남의 음주운전 기사를 지난해 9월 전후 삭제하거나 익명 처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기자들의 거센 반발로 사장과 편집국장이 사퇴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국내 언론이 대기업 광고·협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영 구조로 인해 이들 광고주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에는 공영방송(MBC)과 공적 소유 구조를 가진 기간통신사(연합뉴스), 자본에 비판적인 진보 언론(한겨레)도 모두 포함돼 있다. 한국 언론의 독립성을 옥죄는 광고의 굴레에서 어느 언론사도 자유롭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이들 언론사는 발생 사실 자체는 보도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당시 기사를 검색해 보면 이들 매체 외 다른 언론들은 아예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이들 언론사처럼 일단 보도했다가 삭제한 탓에 검색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유명인이 음주운전으로 문제가 되면 수많은 뉴스를 쏟아내고 추후 과정도 지속적으로 기사화하는 것이 국내 언론의 보도 관행이다. 이로 인해 당사자는 사회적 지탄과 함께 직업이나 경력에 치명상을 입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한 음주운전 이력은 그에게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다닌다. 대중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겠지만 공적 기록인 언론 기사가 남아 있는 한 부끄러운 주홍글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설사 보도된 내용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사를 수정·삭제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소송까지 불사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대기업 광고주의 청탁 한마디에 기사를 삭제하거나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익명 처리해 주는 언론의 편파적 ‘관대함’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입김 센 대기업 광고주, 눈치 보는 언론사
저널리즘 관점에서 이번 사안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미 보도된 과거 기사에 대한 ‘사후 편집’ 문제다. 과거 오프라인 시대에는 신문과 방송에 일단 보도되면 해당 기사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방법이 없었다. 사후 편집이라는 낯선 개념이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이 되면서 온라인으로 처리된 기사는 언제라도 손쉽게 수정과 삭제가 가능해졌다. 돌발적인 사건·사고의 경우 먼저 1보를 하고 계속해서 내용을 보완·수정하거나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삭제하는 일도 일상적인 편집의 한 부분이 됐다.
그러나 같은 사후 편집 행위라도 그것이 언론사의 자발적 의사가 아니라 외부의 청탁이나 압력에 의해 이뤄진다면 이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성격이 달라진다. 또한 언론 보도는 역사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공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도 이후라도 함부로 수정해서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광고주 같은 힘 있는 외부 집단의 압력과 청탁, 또는 언론사의 이해관계에 의해 과거 기사가 은밀히 삭제·수정되는 일이 언론계에 만연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낳는다. 이번 사안도 지난해 말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처음 기사 삭제 사실을 확인해 공론화한 것이 계기가 돼 다른 언론사의 사례도 줄줄이 밝혀졌다. 다시 말해 SBS 노조의 폭로가 없었다면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심은 언제부터인가 국내 언론계에 기사와 광고·협찬을 주고받는 음성적인 거래 관행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현실로 인해 증폭된다. 기사형 광고나 광고성 기사, 광고 특집 같은 기사들이다. 경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이런 관행들은 언론사의 독립성 의지를 스스로 훼손함은 물론 기자들의 자기검열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
의존과 권력은 역함수 관계다. 대기업 광고주는 언론 보도로 발생할 수 있는 위기 관리 차원에서 광고 효과와 무관하게 광고를 지원하고 언론은 그 대가로 광고주의 요구를 보도에 반영한다. 대기업 광고주,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 같은 굴지의 재벌 기업에 대한 언론사의 의존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더욱 무시할 수 없다. 국내 재벌 기업이 가장 기피하는 리스크는 소유주(오너)에 관한 부정적 기사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하기에 일차적으로 보도 자체를 막지 못했다면 이차적으로 보도된 기사라도 수정·삭제하려는 것이다.
사후 편집, 규정과 절차 필요해
디지털, 인공지능(AI) 환경으로 과거 기사가 갖는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점도 외압에 의한 과거 기사 지우기의 개연성을 높이고 있다. 디지털 기록은 기본적으로 무한 반복 재생되는 특성이 있으며, AI에 의해 한번 학습된 정보는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 더욱 강한 전파력을 갖게 된다.
반면 디지털 기록에서 삭제된 사실들은 존재하지 않는 역사로 사라지기 때문에 AI에 의해 재구성되는 역사가 최근 학계에서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듯 대부분의 언론사는 과거 기사의 사후 편집에 대해 아무런 원칙이나 규정 자체가 없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언론사 가운데 기사를 쓴 기자에게 사전에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한 사례는 두세 곳에 불과했다. 심지어 보도 책임자가 아닌 마케팅 부서 책임자가 당사자의 해명이 빠졌다는 이유로 삭제를 결정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1)
이번 사태는 디지털 인공지능 환경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뉴스 사후 편집의 위험성을 언론계 전체가 환기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사마다 공개되지 않은 기사 삭제나 수정 사례가 얼마나 있었는지에 대한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회사 측은 당연히 이를 공개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노조나 기자단체가 적극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 기사의 사후 편집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절차를 마련하고 내부적으로 이를 감시하는 제도를 갖추는 방안도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태로 진통이 컸던 한겨레는 노사가 공동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최근 3년 여의 기사 수정 및 삭제 사례를 조사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경영과 편집 사이에 방화벽이 무너져버린 한국 언론 현실을 고려할 때 신문 편집에 간섭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과거 신문법 조항을 부활시켜 외부의 압력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정연우 세명대 명예교수)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2)
1) 윤유경·김예리, <SBS·YTN, 4년 전 ‘현대차 정의선 장남 음주운전’ 기사 삭제 논란>, 미디어오늘, 2025.12.24,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009
2) 전종희, <현대차에 휘둘린 언론…“법 개정해 재발 막자”>, 한겨레, 2026.1.20, https://www.hani.co.kr/arti/society/media/124078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