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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회복을 위한 노력들: 한겨레
집중점검 | 등록일 : 2020-03-02

자사만의 윤리강령 선포와 취재보도준칙 제정으로 대한민국 언론 최초의 역사를 썼던 한겨레가 곧 개정된 취재보도준칙 발표를 앞두고 있다. 과거보다 심혈을 기울여 체계적으로 준비했다는 개정안이 한겨레뿐 아닌 우리 언론계에 또 한 번의 새로운 역사로 기록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1988515일은 한겨레 창간일인 동시에 한국 최초로 개별 언론사가 윤리강령을 선포한 날이다. 한겨레는 종이신문을 발행하기 전에 윤리강령과 실천요강부터 준비했다. 강령의 서두는 다음과 같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민주언론을 실현하려는 국민들의 오랜 염원과 정성이 모아져 창간된 한겨레신문의 모든 임직원은 (중략) 언론활동은 국민의 뜻을 표현하고 실현하기 위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

 

언론의 병폐와 모순이 1987년 민주화를 맞아 고름처럼 터져 나오던 때였다. 기자는 촌지를 받았고, 언론은 독재 권력 및 재벌과 유착했다. 새 언론은 과거와 결별해야 했다. 윤리강령은 그 결별을 선언하는 일이었고, 핵심은 국민의 뜻을 표현하고 실현하는 데 있었다.

19년 뒤인 20071, 한겨레는 한국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취재보도준칙1)을 제정했다. 신문 시장 위축이 본격화된 당시 한겨레는 경영 위기를 맞았다. 정체성의 위기도 찾아왔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한겨레의 비판에 일부 독자들이 반발했다. 기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취재 보도의 중심을 잡아야 했다. 이것이 한국 언론사 최초의 취재보도준칙 제정으로 이어졌다. 아울러 2창간도 선언했다. 언론의 근본을 다잡아 신뢰를 회복하고 경영 위기도 함께 극복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준칙 서문의 일부를 옮긴다.

 

오늘날 우리나라 언론은 안팎으로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거친 취재 행태, 자의적인 기사 판단과 편집, 균형을 잃은 논조, 편집권에 대한 안팎의 압력과 간섭, 독자의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독선, 공익과 사익의 혼동 등이 만연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언론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겨레신문 또한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13년 전 처음 제정된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의 문제의식은 오늘에 그대로 적용된다. 오만한 취재, 자의적 편집, 비판을 외면하는 독선, 편집권에 대한 압력과 간섭 등이 혼합돼 언론 불신을 자초했고, 한겨레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단은 2020년 한 국 언론 상황을 예고한 듯하다.

201910월부터 이 준칙의 개정을 준비해온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문재인 정부 들어 벌어졌다. 한겨레의 평판과 신뢰가 많이 흔들렸다. 이 신문을 창간한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 정부 시기의 위기를 극복하려던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 한번 근본과 원칙을 재정립해 새로 출발하고 싶었다.

 

저널리즘 원칙 새롭게 다지는 데서 출발

 

세계 언론사에서 이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노력이다. 신뢰의 위기 때마다 윤리강령이나 취재보도준칙이 만들어졌다. 기자의 윤리규범을 최초로 명문화 한것은 미국 미주리주립대 저널리즘스쿨이다. 1908년 스쿨 창립과 함께 8개 조항의 기자의 신조(The Journalist’s Creed)’를 선포했다. 이 시기 미국 언론은 선정 언론(yellow journalism)’의 굴레에 빠져 놀림 받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저널리즘스쿨이 채택한 기자의 신조는 선정 언론과 결별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한겨레는 19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자유 언론 수호 투쟁 해직 기자들과 1980년 언론 통폐합 조치로 강제 해직된 기자들이 모여 1988년에 창간한 종합 일간 신문이다. 진보주의 입장을 고수하며,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단행하는 등 다른 신문들과의 차별성을 보였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건물 ©연합뉴스

 

1922년 창립한 미국신문편집인협회(ASNE, American Society of News Editors)은 더 체계적 규범을 만들었다. 이 시기 미국 언론은 19세기 정파 언론과 완전히 구분되는 객관 언론(objective journalism)’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협회는 창립 1년 만인 19237개 조항의 언론 정전(Canons of Journalism)’을 발표했다.

1960~70년대 들어 미국 언론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 밖으로는 베트남 전쟁, 안으로는 민권 운동 등이 발생했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에 대한 회의가 일었다. 이 시기를 미국신문편집인협회는 규범 개정으로 돌파했다. 1975년 미국신문편집인협회는 언론 정전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개별 조항을 대폭 개정해 원칙 선언(Statement of Principles)’을 새로 선포했다.

자기 갱신을 거듭하는 미국 언론의 노력 가운데 비교적 최근의 것이자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것 으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The Elements of Journalism)이 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전통 언론의 역할에 대한 회의가 번진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PEJ(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산하 저널리즘을 염려하는 언론인 위원회(Committee of Concerned Journalists)’4년여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포럼을 진행해 그 결과를 10대 저널리즘 원칙으로 정립했다.

이번에 새로 개정한 한겨레 취재보도준칙(이하 준칙 개정안’)은 이러한 역사를 모두 품으려 했다. 신뢰 위기의 극복은 저널리즘 원칙을 다지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했다. 20071월 취재보도준칙 제정의 실무 작업에 막내로 참여했던 나는 이번에 다시 한번 개정안 마련의 실무에 참가하는 행운을 누렸다. 반년 이상 작업했던 13년 전과 비교해 이번에는 시한이 매우 촉급했지만, 과거보다 더 체계적으로 개정안을 준비했다고 자평한다.

첫째, 노사 대표자들이 마련했던 과거 준칙과 달리, 이번에는 취재 보도 부문의 현장을 누비는 노·소장이 두루 참여했다. ‘취재보도 윤리 및 기준 점검을 위한 TF’20년 차 이상 4, 10~20년 차 3, 10년 차 이하 2명 등 주요 취재 영역을 골고루 경험한 기자들로 구성됐다. 9명 가운데 3명은 여성이었다.

둘째, 체계적으로 조사, 학습, 토론하고 자문을 받았다. , 언론학자들이 보기에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구성과 표현을 다듬었다. TF 위원들은 국내외 취재보도준칙을 함께 공부했고, 이 분야의 권위자인 배정근 숙명여대 교수, 이승선 충남대 교수, 오현경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원 등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오프라인 회의 및 온라인 비평 등을 여러 차례 부탁했다.

셋째, 이상의 과정에서 적어도 여덟 차례에 걸쳐 준칙 개정안을 바꾸고 다듬었다. , 정밀하게 세부 내용을 수정해왔다. 이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월 말~4월 초께 편집국 설명회와 사원 공청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이후 공식적으로 개정된 취재보도준칙이 공포될 예정이다.

 

쉽게 이해하고 실천 가능하도록

 

일련의 과정을 세밀하게 밟고 있는 이유가 있다. 오늘의 혼란과 위기 뒤에는 2007년 제정된 취재보도준칙이 죽은 문장이 돼버린 현실이 있다. 언론 규범이 신뢰 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되려면, 병증을 해결할 수 있는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유념한 원칙들도 있다.

첫째, 과거 준칙의 핵심은 유지하되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보강했다. 기존 준칙의 본문은 약 5,100자 분량인데, 준칙 개정안은 약 13,000자다. 2.5배로 늘어난 분량만큼 구체적 지침이 보강됐다.

둘째, 한 호흡에 숙지할 수 있도록 했다. 갓 입사한 초년 기자라 해도, 취재보도준칙을 읽는 것만으로 한겨레가 지향하는 가치, 취재 보도의 원칙과 태도, 취재 보도의 구체적 기준 등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의 범주를 점진적으로 상승시켰다.

예컨대 1책임과 의무에서는 한겨레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민주주의, 인권옹호, 시민공동체 헌신, 언론독립과 권력감시, 평화지향과 생명존중)를 적었다. 2진실 추구에서는 사실 보도를 넘어 총체적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심층 취재와 교차 확인 등을 상세히 적었다. 3공정과 균형은 다양한 관점과 반론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구체 지침을 적었다. 4정직과 투명에 는 취재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은 물론 기사와 편 집에 있어 이를 의심받을 요소를 없애기 위한 내용이 반영돼 있다.

셋째, 시민과 독자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시민 충성은 미국 PEJ‘10대 저널리즘 원칙에 등장하는 항목인데, 우리는 이를 독립적 장으로 다뤘다. 5시민과 독자 존중은 취재할 때 시민을 대하는 원칙, 보도에 대한 시민 및 독자의 비판에 대한 대응 등을 적었다. 6성찰과 품위는 이해충돌 배제의 원칙을 더 상세히 규정하면서도 이것이 시민과 독자의 눈높이에서 실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넷째, 디지털 환경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규범들을 새로 추가했다. 예컨대 2진실 추구디지털 정보 검증’, 3공정과 균형디지털 여론 보도의 편향 지양등은 허위 정보와 모략 등이 범람하는 디지털 공간에서 각종 정보와 의견을 다루는 원칙을 다뤘다.

다섯째, 편파보도로 직결되는 보도·편집의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항목을 추가했다. 3공정과 균형가운데는 인용문의 주관적 술어 지양’, ‘비판적 내용의 익명 인용 지양’, ‘제목의 직접 인용문 지양등을 구체적으로 적었는데, 이는 익명의 비난을 함부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고질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다.

여섯째, 최근 논란이 된 검찰 및 법원 관련 보도를 세부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범죄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세칙을 함께 개정했다.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과 별개로 2010년 이 세칙을 제정했는데, 이번에 준칙을 개정하면서 세칙도 함께 보강했다. 원래 3,300자 였던 분량이 이번에 5,000자로 늘었다. 산만했던 구성도 기본 원칙 수사 단계의 취재보도 재판 단계의 취재보도의 형식으로 명확히 다듬었다. 검찰 및 경찰의 수사부터 법원의 재판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단계마다 유념해야 할 규범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감사 맡을 언론책무실 신설

 

이 모두를 가로지르는 동시에 능가하는 중대한 변화가 있다. 준칙 개정안은 7준칙의 실행에서 취재보도준칙의 적용, 조정, 개정 등을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책임지는 언론책무실의 신설을 규정했다. 개정안에 담긴 언론책무실의 주요 권한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겨레가 발행하는 모든 콘텐츠를 점검해 수정, 보완, 개선 사항을 보도부문 책임자 및 기자들에게 수시로 알린다.

둘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취재보도 활동이 발생하면, 그 당사자 및 관리 책임자에 대한 제재 또는 징계를 (대표이사 등에게) 제안한다.

셋째, 일시적·일상적 감독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연례) 보고서를 만들어 준칙과 관련해 발생한 모든 문제의 구조적 배경을 상세히 분석한다.

넷째, 준칙을 더욱 구체화할 필요가 있거나, 준칙에 명시되지 않은 특별한 분야 및 전문 영역에 대한 세칙이 필요하면, 그 제·개정 작업을 담당한다.

과거 한국의 몇몇 언론사에는 심의실 또는 평가실이라는 기구가 있었다. 이들 기구는 기사의 교정·교열 사항이나 단순 사실관계의 정정을 권고하는 역할에 그쳤다. 반면 언론책무실은 공정성, 투명성, 심층성, 종합성, 진실성 등 저널리즘 규범에 비춰 그 품질이 떨어지는 기사를 적발하고 책임을 물으며 개선을 이끄는 기구다.

나는 이러한 언론책무실이 일종의 감사원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언론책무실은 편집인, 편집국장, 부장 등 최고 간부들의 업무를 감시하고, 기사 품질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게이트키핑의 문제점을 발견해 개선을 강제할 것이다. 또한 기자들에게는 기사 품질을 높이기 위한 규범의 실행과 적용을 교육할 것이고, 새로운 이슈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원칙을 고치고 다듬어갈 것이다.

마침 새로 선출된 김현대 대표이사 후보는 선거 공약으로 언론책무실 신설을 내걸었다. 과거의 심의실 또는 옴부즈맨을 아우르면서도 그보다 훨씬 강력한 저널리즘 원칙 감독 기구가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한겨레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 분야를 일궈온 미국 언론은 저널리즘 규범을 세부화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 뉴욕타임스의 윤리적 저널리즘 가이드의 분량은 58,500자에 이른다. 취재보도의 구체적 규범을 담은 진실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의 분량은 약 9,100자다. 이밖에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 ‘영상뉴스 편집 기준등을 그만한 분량의 내용으로 따로 두고 있다.

이를 번역해 베껴 쓰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뉴욕타임스와 같은 적용과 개정의 역사가 충분치 않다. 적용하고 관리하고 다시 고쳐가는 일이 앞으로 거듭돼야 더 많은 원칙과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모든 언론이 유능한 것은 아니지만, 뉴욕타임스는 누구에게나 올바른 저널리즘으로 평가받는다. 그 예외적 실천은 예외적 규범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한겨레는 32년 전 윤리강령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고, 13년 전 취재보도준칙 제정으로 두 번째 걸음을 옮겼으며, 이제 이를 크게 바꾸면서 세 번째 발자국을 딛는다. 아직은 걸음마인 것이다. 남아있는 길을 언론책무실이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1) 한겨레 취재보도준칙 개정3월 말 또는 4 초에 완료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 글에 등장하는 취재보도준칙의 내용은 초안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이 은 한겨레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다만 개정 작업에 참여한 실무자 가운데 한 사람의 개인 의견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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