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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기사는 세상에 나오기까지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기사를 쓰는 국내 기자들에게 마지막 문턱은 데스크다. 데스크의 결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기자와 데스크가 균형감을 유지하며 올바른 보도를 할 수 있을까.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뉴스룸 의사결정 체계’에 대해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최근 발생한 두 사건이 원고 청탁의 주요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지난 2월, 김완 한겨레 기자가 자신의 기사를 보도하지 않기로 한 국장단의 결정에 항의하며 기사 초고를 사내에 공개했다. 지난 4월, 강진구 기자는 자신의 취재 보도 활동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국장단과 갈등하다가 경향신문에서 해고됐다. 탐사취재의 경력을 쌓아온 중견급 이상의 기자가 뉴스룸 지휘자들과 충돌했다는 점, 민주성과 개방성이 높은 언론사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 등에서 두 사례는 얼핏 닮았다.
미리 밝히자면, 이 사례들에 대해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 구체적 사실을 모르니, 누가 무엇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는지 분석하거나 논평할 수 없다. 외견상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러한지 판단하기 어렵고, 그것이 의사결정 체계 때문에 발생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언론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만, 뉴스룸 안에서 기자와 간부가 충돌해 사표를 던지거나 징계를 받는 일은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많았다.
다만, 나는 위의 두 사례를 ‘징후’로 읽는다. 이들 사건의 핵심 쟁점은 권력 고발과 관련한 뉴스 가치 판단이었다. 권력 고발은 전통 언론의 여러 역할 가운데 중핵이다. 코스 요리의 메인 디시(main dish)에 비유할 수 있다. 메인 디시는 주방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만드는 주요리다. 그 요리법에 혼란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주요리의 품질이 들쑥날쑥하면 손님들이 발길을 끊는다. 그게 당신 탓이라고, 수석 주방장과 보조 주방장 사이에 갈등과 다툼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 언론은 무슨 요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각’을 잃어버린 대형 식당의 주방과 같다. 기사라는 제품의 표준, 그리고 취재 보도라는 업무의 기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뉴스에 대한 공감각이 사라지면, 뉴스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선택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누가 옳은지 겨루거나, 누가 옳건 상관없으니 그만둬 버리거나. 일의 기준이 다른데, 왜 굳이 함께 일하겠는가. 그러니 뉴스룸의 갈등은 최악의 상황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징후기도 하다. 그마저 지쳐버리면 기자들은 조직을 떠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뉴스룸 의사결정의 핵심은 뉴스의 표준과 지향을 설정하는 데 있다. 기사라는 상품을 제조하는 핵심 공정이 무엇인지 정의해 공유해야, 여러 사안에 대한 조직적 결정이 가능하다. 이는 ‘뉴스 가치 판단’과 직결된다. 무엇이 뉴스인지 판단하는 것, 어떤 요소가 있어야 뉴스이고 어떤 요소가 빠지면 뉴스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 이를 위해 각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는 것 등에 대한 공감각이 뉴스룸 의사결정 체계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뉴스룸 갈등, 데스크의 혼란
이 문제와 관련해 저널리즘 연구에서 거의 정설로 통하는 전제가 있다. 첫째, 기자의 뉴스 가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기자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뉴스룸의 조직적 맥락이다(Weaver & Wilhoit, 1986). 둘째, 기자들은 뉴스 가치 판단을 위한 지향과 지침을 정식 훈련이나 교육이 아니라, 데스크의 지시와 언행, 그리고 소속 언론사의 칼럼과 사설을 읽으며 내면화한다(Breed, 1955). 다시 말해, 제아무리 독특한 개성과 특이한 사상을 갖춘 기자라 할지라도 결국엔 소속 언론사의 데스크가 무엇을 말하고 쓰는지를 보면서 뉴스의 표준과 취재 보도의 지향을 체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 언론의 데스크에 미안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언론사에서 벌어지는 뉴스룸 갈등은 오직 데스크의 책임이다. 기자와 데스크 사이에 뉴스 가치 판단을 두고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데스크가 보내는 시그널에 큰 혼란이 생겼다는 뜻이다.
다만, 일선 기자들에게 미안한 이야기도 덧붙여야 하겠다. 뉴스룸 갈등의 책임이 데스크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기자가 아니라 데스크다. 그들이 준비하고 예상했던 데스크의 역할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들은 출입처에서 단독이나 특종을 도모하며 두세 개 취재 부서에서 이력을 쌓으면, 어지간한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이 가능했던 시절에 기자 생활을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뉴스 가치 판단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기를 맞닥뜨렸다.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 다양성 등의 규범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를 취재 보도에 정밀하게 적용해 구현한 경험도 거의 없다. 그들은 과거 그들의 데스크로부터 배운 바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을 뿐인데, 무슨 일이건 데스크의 책임이라고 아우성치는 기자들에게 포위당해 있다. 어쩌면 좋을지, 데스크도 혼란스럽다.
영미식과 독일식이 뒤섞인 한국의 뉴스룸
한국의 언론사들이 다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 다른 나라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언론학자 프랭크 에서(Frank Esser, 1998)는 영국 언론과 독일 언론의 조직 체계 및 편집 방침을 비교 분석하면서 두 나라의 언론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데스크의 전문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첫째, 정보 수집(gatherer)과 정보 처리(processor)의 분담 방식에서 영국 언론과 독일 언론은 다르다. 독일 언론은 사실을 직접 취재하는 탐사보도를 뉴스룸 외부의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맡긴다. 언론사 소속의 정규직 기자는 이를 취사선택하거나 분석·해설하는 일을 맡는다. 모든 기자가 데스크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영국 언론에서는 두 기능을 뉴스룸 내부에서 병행하되, 이를 엄격히 구분해 각자의 전문성을 키운다. 취재 보도에 유능한 기자는 평생 전문 기자로 지내고, 젊은 나이에 정보 처리 역량(gate keeping)을 드러낸 이는 일찌감치 데스크가 되어 오랫동안 그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서로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두 모델에는 모두 탁월한 탐사보도와 수준 높은 분석·해설을 내놓는 고유한 경로가 있다. 독일 언론은 상당 수준의 지식, 교양, 경력을 쌓은 인물들만 정규직으로 채용해 이들에게 뉴스 가치 판단의 독립성을 부여하고, 이들이 선택한 (프리랜서들의) 뉴스만 보도한다. 이에 비해 영국 언론은 뉴스 가치 판단의 절차를 세분해 상호 검증한다. 예컨대 취재를 지휘하는 시티(city) 데스크, 기사 내용을 검토하는 카피(copy) 데스크, 기사 내용을 재작성하는 라이팅(writing) 데스크,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편집자(editor), 그리고 편집자들의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최고 편집자(chief editor) 등을 모두 거쳐야 한 편의 기사가 보도된다.
셋째, 뉴스 판단의 전문성을 고양하는 전략의 차이는 뉴스룸 구성의 차이로 연결된다. 모든 기자가 에디터이자 칼럼니스트인 독일 언론에서 정규직 기자의 평균 연령은 50대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도 적지 않다. 반면 영국 언론은 젊은 나이에 입사해 뉴스룸 내부에서 데스크의 실무를 배운다.
넷째, 이로 인해 영국 기자와 독일 기자는 업무 관리와 통제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다르다. 영국 언론의 데스크와 기자는 사실 검증을 위한 조직적 절차를 취재 보도의 불가결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수용한다. 반면, 나치의 언론 통제를 경험한 독일에서는 개별 기자의 업무에 개입하는 것을 검열로 인식해 이런 일 자체를 금기시한다.
언론 모델에 있어 영미와 유럽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힌 다른 연구를 고려하면(Hallin & Mancini, 2004), 이상의 영국 언론은 영미 언론의 대체적 특징을 드러내고, 독일 언론은 중유럽 언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에서의 연구는 20여 년 전의 것이다. 대체로 보아 유럽 언론은 영미 언론의 방식으로 변화해왔다. 이제는 독일 언론에서도 영미 모델의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소 오래된 해외 연구를 소개한 이유가 있다. 오늘날 한국 언론의 뉴스룸 체계에는 영미 모델의 원형질과 독일 모델의 원형질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한국 뉴스룸의 외형은 영미의 것을 본떴다고 할 수 있다. 언론사가 직접 고용한 기자들이 정보를 수집하면, 데스크가 일련의 단계 및 층위를 따라 그 정보를 검토한다. 그런데 한국 뉴스룸의 저변에는 독일의 것도 있다. 기자들은 데스크의 판단을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검열로 이해한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한국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군사 정권에 의한 언론 통제의 시절을 거쳤다. 그 시절의 데스크가 (기꺼이 또는 마지못해) 군사 정부의 검열을 대행한 것도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광고주의 압박에 의한 검열이 종종 발생했다. 그런 유형의 검열이 오늘에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호언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 기자가 독립적으로 뉴스 가치를 판단해 데스크와 긴장하는 것이 오히려 미덕으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한국 언론의 뉴스룸에는 정보를 검증하는 영미식 데스크의 형식,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는 독일식 데스크의 정신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뉴스 가치 판단을 둘러싼 의사결정이 매번 힘들 수밖에 없다.
한국 언론에 부족한 정보 처리의 전문성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중유럽 언론의 뉴스룸에서는 지적으로 단련된 중년의 엘리트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므로 의사결정에 심각한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 한국 언론이 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의 해법은 언제나 ‘경로 의존적’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앞으로 걸어갈 길의 출발점이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한국 언론은 부단하게 영미 모델을 추종해왔다. 한국 언론의 의사결정 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 해법의 참조처는 영미 언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유럽 언론 모델로 나아가면, ‘지적으로 단련된 엘리트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한다. 그런 일이 한국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에서는 영국 언론의 뉴스룸에서 기자와 데스크 간의 적대감이 존재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데스크는 기자를 ‘취재원과 특정 주제에 과도하게 몰입한 집단’으로 평가하고, 기자는 데스크를 ‘독자의 입김에 놀아나는 집단’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냉소하는데도 영미 언론의 뉴스룸에서 ‘정보 수집’과 ‘정보 처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 편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언론이 영미 언론에서 수입한 여러 관행 및 제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 기자’ 제도다. 이 직위 또는 직책을 도입하면서 한국 뉴스룸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기자-부장-국장-논설위원 등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승진 체계’가 의미를 잃었다. 유능한 기자라면 데스크가 되지 않고 오랫동안 취재 일선에서 보도할 수 있고, 그게 더 바람직하다는 관념이 한국 뉴스룸에 확산된 것이다. 이는 정보 수집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긍정적 변화다.
다만, 그 반대편에서 뉴스룸의 균형을 잡아주는 제도가 아직 한국 언론에 자리 잡지 못했다. 에서의 개념을 빌리자면, ‘정보 수집의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보 처리의 전문성’이다. 한국의 뉴스룸은 전문 기자의 경로를 개설했지만, ‘전문 데스크’의 길은 닦지 못했다. 한국에서 부장 또는 국장은 여전히 ‘거쳐 가는’ 자리로 여겨진다. 여기에 ‘연공서열’ 문화까지 더해, 입사 기수별로 한두 명씩 편집·보도 국장을 선정하는 것이 데스크를 배출하는 지배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체계의 문제가 무엇일까? 뉴스 가치를 판단하고 처리하는 최고 책임자의 전문성이 입사 연차, 출입처 경력, 사내 대인 관계 등에 대한 평가로 대체돼 버린다. 선수로서 유능해도 감독 및 코치로서 무능할 수 있는 것처럼, 유능한 기자가 곧 좋은 편집·보도 국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제아무리 유능한 편집·보도 국장이라 해도 치약 짜듯이 1년여 동안 혹사당하고 퇴장하는 방식으로는 뉴스룸의 진보에 기여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일종의 ‘학습 효과’가 생긴다. 기자들 가운데 누구도 ‘뉴스 가치 판단의 전문성’을 기르지 않는다. 경찰, 검찰, 정당, 특파원 등을 거치는 경력 관리, 그리고 사내 평판과 대인 관계의 관리에 주력하게 된다. 그게 국장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데스크가 갖춰야 할 전문성의 핵심
그렇다면, 데스크가 갖춰야 할 전문성의 핵심은 무엇일까? 디지털 환경에서 뉴스룸 혁신을 위한 조직적 조건을 살펴본 어느 연구를 보면(Malmelin & Virta, 2016), ‘불확실성의 제거’를 뉴스룸 간부들의 핵심 역할로 꼽았다. 분명한 목표와 전략을 제시하고, 그것이 기자 개인에게 어떤 성취를 줄 것인지 알리는 작업을 통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장차 어디로 갈 것인지’를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라는 것이다.
이는 경영학이나 조직 사회학에서 다루는 경영자(CEO) 리더십과 유사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영미 사회는 리더의 자격과 책임을 중시하고, 이를 고도화하는 체계를 여러 분야에서 발전시켜왔다. 이를 뉴스룸에 적용한 역사도 오래됐다. 리더십의 핵심은 목표와 지향, 그리고 그곳에 가닿을 전략과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다. 뉴스룸의 리더십은 여기에 더해, 저널리즘의 규범과 원칙, 그리고 이를 다양한 상황에 적용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기사가 무엇인지, 여기에 필수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그것이 뉴스룸 구성원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약 2년 전, 출입처 제도와 관련한 연구를 위해 뉴욕타임스, 가디언, 로이터 등 해외 유수 언론의 기자들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디지털 환경이 도래하면서 이들 언론사 모두 인력 구조조정을 겪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었다. ‘유능한 에디터 및 데스크’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한 것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 특파원은 “구조조정 이후에도 1,500명 안팎의 뉴스룸 인력이 줄지는 않았다. 해고한 인력 규모만큼, 여러 역할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유능한 에디터들을 새로 뽑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를 해고한 뒤 데스크를 늘리라고 한국 언론사에 권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법의 경로의존성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에서는 그런 종류의 구조조정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뉴스룸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고도화해야 하는지를 숙고할 필요는 있다. 유능한 데스크는 수십 명의 기자와 맞먹는 조직적 자산이다. 문제는 ‘유능한 데스크’가 과연 한국 언론의 뉴스룸에 존재하는지에 있다.
이를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 이제는 한국에도 소속 언론사를 바꾸거나 프리랜서로 일해도 충분히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전문 기자들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소속 언론사를 바꾼 뒤에도 상품의 표준과 업무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는 ‘전문 데스크’가 한국에 있을까? 실제로 영미 언론에서는 A 신문사의 국장이 B 방송사의 국장으로 옮겨가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 인재가 한국의 어느 언론사에 있는가? 그런 이력과 경력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어느 언론사에 있는가?
기업, 대학, 병원, 심지어 스포츠 구단조차 경쟁 조직의 ‘전문 관리자’를 스카웃하는 시대에 한국 언론사들은 여전히 연공서열에 따라 출입처 경력에 기초해 자사에서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해온 이들에게 ‘정보 처리’의 책임을 맡긴다. 데스크의 전문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한 업무 표준
조직 수준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대할 때, 대화부터 앞세우는 접근을 나는 경계한다. 공통의 지식을 공유한 집단에서 대화는 효과적일 수 있다. 반대의 경우, 대화는 서로의 이질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때로는 대화 때문에 갈등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대화는 만능의 처방이 아니다.
이 글의 서두에 등장한 두 언론사가 뉴스룸 내부 소통을 전담하는 ‘소통 데스크’를 마련한 유이한 언론사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의사결정에 자꾸 문제가 발생하니, 내부 소통에서 답을 찾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물론 소통은 중요하다. 다만 필수 전제가 있다. 상품의 표준과 업무의 지향을 먼저 설정해야 한다. 소통은 그 표준을 수정하고 확산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요소다. 조직 내 소통을 전담하는 데스크가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통의 실체로서의 업무 표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걸 마련할 책임과 권한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미안하지만, 한국 언론사 뉴스룸에서 발생하는 의사결정의 갈등은 전부 팀장급 이상 간부들의 탓이다. 뉴스 판단의 기준에 있어 상한선과 하한선을 제시하되, 그것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기준이 다르고, 이 기사와 저 기사의 잣대가 다르면, 검증은 검열로 오해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정말 검열이라면, 당연히 기자들에게 권리가 주어진다. 검열을 거부하는 것은 언론 자유의 모든 것이다. 당신은 유능하게 검증하는 데스크인가? 그런 데스크가 당신의 언론사에 얼마나 있는가? 당신의 언론사는 정보 검증의 전문가를 어떻게 육성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정보 처리의 전문성과 정보 수집의 전문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뉴스룸을 만들어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