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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건이 있을 때마다 포털사이트에는 엇비슷한 기사가 무수히 쏟아진다. 판에 박힌 내용은 물론 오타와 비문으로 가득한 기사를 접한 대중은 ‘기레기’라는 말을 쏟아낸다. 실시간 이슈에 적절히 대응하며 대중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둔 것이 딱 1년 전이다. 그동안 박사 수료생 신분으로 두 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금을 받아 박재영·허만섭 교수와 함께 작업한 《언론의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그리고 내놓기 부끄러운 학위논문 <저널리즘의 오래된 미래와 새로운 과거: 복제 보도와 원천 보도>가 그것이다.
기자의 감각을 놓아 버린 지 제법 됐으니, 이런 연구가 언론 현장에 무슨 도움이 될지 나 스스로도 의심스럽다. 이번에 청탁받은 원고 주제와 관련된 것이 그나마 일부 있어 짧게 소개한다. 보고서와 논문의 본류에 해당하는 출입처 관행, 복제 보도 및 원천 보도에 대한 상술은 최대한 피하려 한다.
“빨리 대충”… 관행적인 이슈 대응
위의 보고서와 논문은 모두 ‘뉴스 관행(news routine)’ 연구에 해당한다. 뉴스 관행은 일상적·반복적으로 기자들이 적용하는 취재 보도 업무의 규칙과 방식이다. 언론학 연구에서 관행은 ‘기자’와 ‘뉴스룸’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로 평가된다. 뉴스 관행이 변하면 기자와 조직도 변한다. 또는 기자와 뉴스룸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뉴스 관행이다.
모든 관행을 무조건 청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야구 선수는 각자의 ‘루틴’을 갖고 있다. 모자를 만지고 어깨를 흔들고 왼발 먼저 타석에 들여놓는 식이다. 루틴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높은 타율을 기록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
다만, 부정적 결과가 반복된다면 그 결과에 이르게 된 관행을 수정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비판 또는 성찰이 없다면 관행은 바뀌지 않는다. 한국 기자들의 취재 보도 관행으로 인한 문제는 무엇일까? 위의 연구들에서 대강 살펴본 사례로는 이런 것이 있다.
2020년 5월 7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의 어느 찻집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정의기억연대’에 이용당해왔다는 주장이었다. 포털 다음에서 ‘이용수, 위안부’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8시간여 동안 30여 개 언론이 47건(사진 기사 제외)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주요 기사들의 제목, 내용, 분량은 거의 같았다. 5건의 기사 제목은 구두점까지 똑같았다. 먼저 보도한 기사를 다른 언론이 베끼면서 표현과 구성만 약간 바꾼 것이다. 내용은 물론 제목까지 똑같은 기사를 여러 언론이 동시다발로 보도하는 일은 이제 너무 흔해졌다. 이 상황을 기자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충 이런 일이 전개되고 있다.
연구를 위해 기자들에게 매일 일기를 적도록 했는데, 어느 날 종합일간지의 A 기자는 4시간 30분 동안 6건의 기사를 작성했다. 평균 45분마다 기사를 1건씩 쓴 셈이다. 각 기사 분량은 200~1,000자 정도로 짧았다. 기사 작성에 소요된 시간은 “10분 정도”이고 모두 “연합뉴스를 보고 썼다”고 A 기자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경제일간지에서 일하는 B 기자가 어느 날 보도한 기사는 모두 8건이었다. 이 가운데 4건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정치인의 글을 보도했고, 3건은 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했다. 7건 기사에서 인용한 정치인은 한 사람이었다. 나머지 1건의 기사에 서너 명의 정치인이 등장하지만, 그 출처는 모두 소셜미디어의 글이었다.
종합일간지 정치부에서 일하는 C 기자는 어느 날 오후 정치인의 페이스북 글을 기사로 쓰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았다. 이날 C 기자는 국회 구성 전망을 보도하겠다고 발제해 정신없이 취재 중이었다. 정치인의 페이스북 글은 취재 사안과 무관했다. 이날 오후 적어도 8개 언론사가 이 사안을 보도했다. 각 기사의 제목은 거의 같고 내용도 대동소이했으며 분량은 600~1,000자 정도로 짧았다. 인터뷰에서 C 기자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빨리 대충 써서 온라인에 보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행을 한국 기자들은 ‘이슈 대응’ 또는 ‘실시간 대응’이라 부르고 있었다. 물론 언론이라면 당연히 이슈를 보도해야 한다. 문제는 ‘뉴스로 다뤄야 할 이슈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위 사례들을 보면, 연합뉴스에 보도된 짧은 기사, 정치인의 소셜미디어 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인의 발언, 그리고 다른 언론이 쓴 기사 등을 ‘긴급히 보도해야 할 이슈’라고 한국 언론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복제 보도 내는 기자들의 속사정
한국 언론계에 통용되는 ‘이슈 대응’이라는 말은 본래 의미에서 멀어져, 일종의 직업 은어(jargon)가 돼 버렸다. 이 단어는 기자들 사이에서 다음의 뜻으로 통한다. 첫째, 포털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사안이 ‘이슈’이다. 뉴스 가치를 판단할 때 사안의 중대성과 공공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둘째, 최대한 빨리 보도하는 것이 ‘대응’이다. 기사의 품질이 아니라 노출의 속도가 중요하다. 빨리 보도할 수 있다면 베껴 써도 상관없다고 여긴다. 통신사의 기사, 보도자료, 소셜미디어, 방송 프로그램,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 등을 그대로 옮겨 쓴다.
언론학자들은 이런 관행에 적용되는 원칙을 ‘즉시성(immediacy)’이라고 부른다. 공정성, 심층성, 투명성, 객관성 등 취재 보도 관행에서 견지해야 할 여러 규범이 있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지금 바로 보도한다’는 즉시성의 원칙이 다른 모든 규범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속하게 보도할 가치가 있는 중대 사안도 간혹 발생한다. 이 경우에 한국 언론이 적용하는 관행은 ‘조각내기’다. 2020년 12월 16일, 한 종합일간지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 결정 직후 보도한 기사 목록을 보면 ‘조각내기’의 패턴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언론은 새벽 4시 징계위원회 공식 발표 직후부터 4시간 동안 관련 기사를 12건이나 보도했다. 이 가운데 5건의 기사는 징계위원회 결정 내용을 소개했다. 징계위원회 발표 자료를 첫 번째 기사로 쓰고, 징계위원장의 입장을 담아 두 번째 기사를 쓰고, 법무부 차관의 입장을 담아 세 번째 기사를 썼다. 기사 내용은 사실상 똑같고, 정보 출처만 달랐다. 곧이어 징계위원회 결정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을 일일이 따로 보도하고, 여러 정치인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관련 의견 글을 차례로 보도했다. 하나의 기사에 담아야 할 내용을 일일이 쪼개고 분리하고 조각내어 보도한 것이다.
나는 이런 관행들을 ‘(다른 기사) 베껴 쓰기’, ‘(보도자료) 옮겨 쓰기’, ‘(기자회견) 받아쓰기’, ‘(하나의 사안을) 조각내기’ 등의 범주로 구분하고, 이를 통해 생산된 기사들을 학위논문에서 ‘복제 보도’라고 개념 지었다.
실시간 이슈 대응 관행, 또는 복제 보도 관행은 포털이 지배하는 한국의 독특한 뉴스 환경에 각 언론이 적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연구에서는 이런 관행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도 조사했다. ‘왜 연합뉴스 기사를 옮겨 쓰는지’, ‘왜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는지’, ‘왜 보도자료만 보고 기사를 쓰는지’, ‘왜 그토록 많은 기사를 빨리 출고하는지’ 등을 물어보니, 기자들은 비슷하게 답했다. 포털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설명한 논리는 대강 이렇다. ‘사람들은 오직 포털을 통해서만 뉴스를 본다. 따라서 포털에 많이 노출될수록 우리 언론사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독자를 끌어올 수 있다. 독자를 끌어 들어야 공들여 만든 기사도 널리 읽힐 수 있다. 그러므로 포털에 주요하게 편집될 만한 기사들은 뉴스 가치가 떨어지고 뉴스 품질에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빨리 많이 써야 한다.’
하나의 기사에 진실의 총체를 모아 보도하는 영미 언론
한국의 디지털 환경에서 시민들이 주로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포털에 유통되는 ‘실시간 대응 뉴스’가 수용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인식은 기자들의 낙관적 기대에 불과하다.
오기(誤記)와 비문(非文)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은 현저하게 낮으며, 선정적 내용으로 뉴스 소비의 효능감을 떨어뜨리는 뉴스가 포털에 가득하면, 사람들은 점점 뉴스 소비 자체를 멀리하게 된다. 뉴스에 목마른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포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전통 언론이 아닌 다른 생산자가 만든 뉴스를 찾게 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뉴스 서비스를 통해 오늘날의 미디어 플랫폼 지위에 오른 포털 사업자들이 이제와서는 뉴스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접으려는 태세를 보이는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털이 개설한 뉴스 시장을 찾는 이가 줄어들고 있으니, 그 시장 자체를 아예 닫으려는 것이다.
이는 주말 저녁 강남역에 모여든 택시 기사들의 사정과 똑같다. 강남역 주변에 유동 인구가 많긴 하다. 그래서 택시 기사들 모두 강남역에 줄지어 서 있다.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고 퉁명하게 응대하며 과속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택시를 타지 않는다. 아예 강남역에서 저녁 약속을 잡지 않으려 한다. 간혹 친절한 택시 기사가 있다 해도, 택시 업계 전체를 향한 냉소에 휩쓸려 손님을 잃을 것이다. 택시 사업 전체가 붕괴해도 시민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쁜 택시 서비스’의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포털에 졸속 기사를 올리는 한국 기자들의 처지가 강남역 택시 기사들의 사정과 얼마나 다르겠는가.
보고서와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해외 언론의 기자들도 만났다. 그들도 이슈 대응을 한다. 다만 그들의 관행은 한국과 달랐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이렇다. 2020년 11월 9일 오전 11시 45분(이하 그리니치 표준 시각),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Pfizer)는 코로나19 백신의 3상 임상시험에서 예방률이 90%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세계적 긴급 뉴스였다. 이 뉴스를 다룬 영국 가디언의 웹 기사(Hopes rise for end of pandemic as Pfizer says vaccine has 90% efficacy)를 보면, 첫 출고 시각은 9일 오전 11시 47분이고, 최종 출고 시각은 10일 오전 5시 40분이다. 기사 본문 분량은 5,140자(1,288단어)로 200자 원고지 26매에 달한다.
공식 발표 2분 만에 26매짜리 기사를 썼을 리가 없다. 핵심 내용만 먼저 보도하고, 이후 18시간 동안 계속 기사를 보완해 장문의 기사를 완성한 것이다. 심지어 기사 끝에는 ‘이후 실험 결과를 반영해 기사 본문을 고쳤다’는 주석이 달려 있는데, 그 수정일은 2020년 11월 28일이다. 발표 20일이 지났어도 기사의 중요 내용을 고치고 보완한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마찬가지다. 화이자의 발표를 보도한 기사(Pfizer’s Early Data Shows Vaccine Is More Than 90% Effective)를 웹에서 보면, 11월 9일 첫 보도 열흘 뒤인 11월 18일까지 기사를 보완했다고 주석을 달았다. 그 분량은 1만 2,000자(2,022단어)로 200자 원고지 40매에 이른다.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기사에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았을까?
위 기사에서 가디언의 취재원은 12개, 뉴욕타임스의 취재원은 14개다. 화이자의 보도자료, 화이자 대변인의 발언은 물론 증시 자료, 대통령의 발언, 보건당국의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이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화이자 발표 내용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내용을 많이 담았다. 이런 취재를 벌이느라고 며칠씩 시간을 들여 최초 기사를 계속 보완한 것이다.
이렇듯 ‘이슈 대응’에 있어 영미 언론은 하나의 기사에 진실의 총체를 최대한 모아 보도하는 관행을 갖고 있다. ‘종합하기’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 언론의 ‘조각내기’ 관행과 확연히 구분된다. 이 사안에 대한 국내 주요 언론의 보도는 앞서 소개한 전형적 패턴을 따랐다. 짧게 쓰고, 조각내어 썼다. 구체 사례에 대한 상술은 생략한다.
존 헨리(Jon Henley) 기자는 영국 가디언지의 파리 특파원이다. 그는 유럽 대륙의 코로나19 상황을 수시로 종합해 기사를 쓰고 있다. 영상 통화로 인터뷰하면서 물었더니,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빨리 보도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렇지만 정보를 충분하게 담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기사를 고친다.”
‘지속적으로 종합하기’의 뉴스 관행은 영미 언론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다. 긴급히 대응할 뉴스가 있다면, 전통적 마감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웹에 첫 보도를 올린다. 여기까지는 한국 언론의 관행과 같다. 그다음 단계부터 한국 언론은 ‘조각내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영미 언론은 첫 기사를 더욱 풍부하고 종합적으로 다루는 업데이트를 지속한다. 그 과정은 몇 시간, 며칠 또는 몇 달에 걸쳐 진행된다.
영미 언론 관행의 전략적 목표는 디지털 환경에서 ‘개별 뉴스에 대한 효능감’을 높이는 것에 있다. 이슈를 파악하려는 디지털 사용자들에게 ‘여러 기사를 살피거나 다른 매체를 찾아보지 않아도, 우리가 쓴 하나의 기사를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일종의 ‘원스톱 풀서비스’의 전략이다.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야 바뀐다
이를 위해 며칠에 걸쳐 기사를 보완한다는 것은 기사 마감의 잣대가 ‘지면’이 아니라 ‘디지털’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뉴스룸에도 ‘디지털 퍼스트’라는 구호가 횡행하지만, 그 실체는 웹에 빨리 간단히 쓰고 조금 보완해 지면에 보도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영미 언론이 생각하는 ‘디지털 퍼스트’는 ‘디지털 기사의 품질을 최대한 높이는 것’에 맞춰져 있다. 지면 기사는 그 과정 어딘가에서 거쳐 가는 중간 단계일 뿐이다.
이런 관행 차이는 뉴스룸 체계에도 영향을 준다. ‘실시간 이슈 대응’을 위한 한국 언론의 뉴스룸 체계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뉴스룸에 앉아 디지털 정보를 모아 신속하게 보도하는 전담팀을 두는 경우가 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대표적이다. 반면 출입처의 현장 기자들이 그때그때 속보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대표적이다. 많은 언론사는 그 경계에서 고심 중인 듯하다. 최근 한국일보는 실시간 뉴스 대응 전담팀을 없애고, ‘온라인 이슈 담당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뉴스룸 체계는 대단히 한국적인 것이다. ‘빨리 보도’해야 하는데, 출입처의 취재 기자들은 다른 일로 바쁘니, 디지털 자료만 갖고 얼른 기사를 쓰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디지털 이슈 대응팀’이 생겨났다. 인력이 부족해 별도의 팀을 만들 수 없는 언론사들은 그 역할을 현장 기자들에게 맡겼고, 이 때문에 기자들은 별 내용 없는 기사를 하루 3~10건씩 생산하고 있다.
반면,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살펴본 문헌이나 인터뷰를 종합하면, 영미 언론의 뉴스룸에는 이러한 ‘실시간 이슈 대응팀’이 없다. 영미 언론의 기자들도 디지털 환경에 부응하기 위해 ‘중대한 이슈의 긴급 속보’를 작성하긴 하지만, 이후에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완전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에 매진한다. 별도의 디지털 이슈 대응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관행의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관행을 바꿔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조심할 것이 있다. 관행은 제거되지 않고 대체된다. 관행의 혁신은 옛 관행을 새 관행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연합뉴스를 베껴 쓰지 말라”고 지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직접 확인한 정보만 기사에 담아라”는 식으로 새로운 대체 관행을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오랜 습관과 같은 기자들의 관행이 조금씩 바뀔 것이다.
또한, 관행의 변화는 점진적인 동시에 전면적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기사의 생산 방식을 바꿀 수는 없다. 특정 팀이나 부서에서 먼저 시작해 차츰 뉴스룸 전체로 확대해야 새 관행이 옛 관행을 대체하게 된다. 동시에 그 과정의 끝은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변화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보도하지 말자’는 관행 변화는 출고 기사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종이·웹·전파의 여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와 연결되며, 뉴스 생산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과제로 확장되고, 심지어 뉴스룸의 리더십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관행은 힘이 세다. 한 방에 바꿀 수는 없고, 하나씩 차근차근 바꿔야 하는데, 결국에는 다 바꿔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왜 도모해야 하는지, 이유와 동기가 분명치 않으면 하나씩 바꾸다 중도에 접게 되고, 결국엔 옛 관행이 다시 일상의 습관으로 돌아온다.
‘손님’ 되찾으려면
현재 한국 언론은 뉴스룸 역량의 절반 이상을 ‘실시간 대응’에 쏟아붓고 있다.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등 출입처가 부여된 기자들은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신속하게 웹에 받아쓰고 옮겨 쓰고 베껴 쓰면서 조각낸다. 디지털 전담 기자들은 포털과 소셜미디어의 무수한 정보를 신속하게 받아쓰고 옮겨 쓰고 베껴 쓰면서 쪼개어 보도한다. 극히 일부 기자들만 가끔 탐사보도를 내놓는데, 실시간 대응 뉴스로 오염된 강물에 맑은 샘물 한 바가지 퍼붓는 격이다. 디지털 사용자들에게 그런 기사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탐사보도가 뉴스룸 안팎에서 쉽게 외면당하는 현실에 기자들은 실망한다. 강남역에서 친절하게 손님을 모시려 했지만 집단적으로 냉소당하는 택시 기사의 처지이다. 그게 손님의 탓이겠는가.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존 헨리 기자는 “가디언 기사의 절반은 통신사의 보도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통신사 기사에 나온 현장 및 관련자를 찾아가 취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을 그는 ‘기사 개발(develop)’이라고 불렀다.
“가디언 기사의 30%는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기사”라고도 말했다. 기자 스스로 착안해 취재한 기사라는 뜻인데, ‘개척 보도’ 정도로 번역하는 게 좋을 듯하다. 특종이나 탐사보도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짧은 기사, 단발 기사라 해도 남들이 살펴보지 않은 지점을 드러내는 기사는 ‘개척 보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남들도 다 쓰는 기사는 전체 기사의 20%이고, 나머지 50%는 발생 이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취재한 보도이고, 30%는 독창적인 이슈를 담은 기사라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독자의 기대는 달라질 것이다. 진열된 상품의 ‘하한선’이 남다르고 ‘평균적 수준’도 높은 상점을 찾아왔다는 확신이 든다면, 손님들은 그 가게가 내놓는 ‘고급 제품’을 눈여겨 봐줄 것이다.
이제 눈을 돌려, 한국의 포털을 열고, 그곳에 진열된 한국 언론의 뉴스를 보자. ‘실시간 대응 뉴스’의 관행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아직 와닿지 않는가. 그 뉴스 목록을 보고, 누가 뉴스를 눈여겨보고 싶겠는가. 그런 뉴스를 만든 이들을 누가 존중하고 싶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