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집중점검] 왜 저널리즘 원칙인가?
집중점검 | 등록일 : 2020-03-02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하고 신설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망라한 두 언론사의 준칙이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정확성이다. 이제 독자들은 그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 두고 볼 일이다. 편집자 주

 

작년에 한국 언론은 독자의 힘을 실감했다. 독자들은 언론이 어떻게 보도해도 기자와 언론사에 항의 전화나 문자 폭탄을 퍼부었다. 충성 독자는 더 민감하게 반응해 기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문 구독이나 재정 후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언론은 옴짝달싹 못 했고, 기사는 점점 더 독자의 구미에 맞춰졌다. 독자가 원하는 것을 좇았던 이 경험은 나쁘지 않다. 그간에 언론은 말로만 독자가 최고라 고 했지 실제로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한다라는 말은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로 좋게 들리지만, 그것은 언론이 수행해야 할 임무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이다. 이 둘의 균형이 저널리즘의 고민거리다. 이들을 어떻게 조화 할 것인지는 진실 혼돈의 시대를 헤매는 요즘의 한국 언론에 매우 긴요하다. 독자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자는 결정은 손쉽고 편하다.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도 제공하려고 하면, 문제는 복잡해지고 결정은 어려워진다. 이때 방향을 잡아주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마침 최근에 몇몇 신문사가 이 원칙을 정비했다.

 

정확성, 저널리즘의 대원칙

 

올 초에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했으며 한국일보는 취재보도준칙을 신설했다. 한겨레 준칙은 13,000자 분량으로 상당히 구체적이며 한국일보 준칙은 6,000자 분량으로 다소 선언적이다. 두 준칙 모두 저널리즘 원칙을 망라한다. 예를 들어, 한겨레는 첫 번째 준칙인 검증과 정확한 보도2항에 정확성 우선을 강조했으며 한국일보는 취재 보도의 다섯 번째 기준으로 사실 보도와 정확성을 제시했다. 한국일보는 사실을 사실대로 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진실을 추구한다라고 부연했는데, 이 문구는 저널리즘의 본질을 꿰는 대원칙이라 할 만하다. 누구나 알고 있고, 말했을 법한 단어가 정확성이다. 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와 함의를 깊이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정확하게 보도한다라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인물 기사에서 정확성은 나이나 주소를 틀리지 않게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물을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은 그의 전모, 즉 명암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1980년 존 레넌(John Lennon)이 불의의 피격으로 사망하자 뉴욕타임스는 그의 부음을 보도했다. 존 레넌은 비틀스의 멤버로 1964년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1)의 주역이었고, 1970년 그룹 해체 후 솔로로 활동하며 부인 오노 요코(小野洋子)와 앨범을 만들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부음기사는 비틀스 이후 그의 음악에 대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는 했지만, 청년기의 표현 양식을 지겨울 정도로 재활용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 노래들은 진실하기는 했지만 지향성이 없었고, 록 음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정적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라고 썼다.2) 존 레넌의 음악 생애에는 흰색도 있었고 검은색도 있었다. 아니, 파란색과 빨간색도 있었을 것이다. 레넌뿐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면적이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인생의 75%는 굴욕이다. 위대한 인물은 더 굴욕적일 수 있다. 산이 높으면 그림자도 크다고 하지 않았던가? 온 세계가 레넌을 추앙하고 그의 노래를 찬양할 때, 뉴욕타임스는 용기 있게도 그를 혹평했다. 하지만, 그것은 딱히 용감해서가 아니라 정확성 원칙을 지킨 것일 뿐이다. 유달리 망자에게 후한 우리로서는 뉴욕타임스처럼 보도하기 쉽지 않다. 생존 인물이라면, 팬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물의 정확한 보도는 요원하다. 한국 언론이 언제까지 BTS의 음악이나 봉준호의 영화를 지금과 같이 보도할지 지켜볼 일이다. 그래도 인물은 어느 정도 정확하게 보도할 수 있는 취재 대상이다. 대상이 사건이면, 정확한 보도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원칙이 있는 이유

 

어떻게 하면 태극기 집회를 정확하게 보도할 수 있을까? 군중이 몇 명이고, 그들이 어떤 구호를 외쳤으며 어디까지 어떻게 행진했는지가 정확성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태극기 집회를 관찰했던 대학원생들은 현장이 언론 보도와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다양한 군상이 있으며 양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누구도 단번에 태극기 집회를 정확하게 보도할 수 없다. 기자들은 바로 이 점 즉 누가 보도해도 제대로 보도할 수 없다라는 점을 들어 자기의 보도를 정당화하지만, 그런 불가능성을 자기방어의 논리로 활용할 일은 아니다. 그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우므로 더 충실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그쳐야 한다. 정확성은 한 인간으로서 기자의 지적 한계 또는 지적 양심(intellectual conscience)을 일깨운다. 양심적인 기자는 무엇이든지 조심스럽게 보도하며 단정하기보다는 열어두며, 일면이 아니라 다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정확성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기에 저널리즘의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대원칙이다. 예를 들어, 정확성은 피의사실공표죄 문제와도 연관된다.

작년에 사람들이 언론의 검찰발 보도를 받아쓰기라고 비난하자 언론은 정치적 공격이라고 반박하면서 알 권리를 들이댔다. 하지만, 이 논쟁은 저널리즘의 핵심에서 한참 비켜났다. 참고로, 미국에는 피의사실공표죄와 관련한 논란이 별로 없는데, 사법 및 수사 체계가 달라서가 아니라 기자들이 취재보도 원칙을 지키기 때문이다. 미국 기자는 검사에게 들은 말만으로 기사를 쓰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는 기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검사의 말을 검찰 외부에서 검증하거나 최소한 검사에게 그래서 피의자는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물어서 답변을 기사에 넣어야 한다. 이것이 삼각확인(triangulation) 원칙이다. 한국의 검찰 담당 기자들도 평소에 이렇게 하지만, 정작 중대 사안을 다룰 때는 단독(특종) 경쟁과 속보 압박에 짓눌려 이 원칙을 무시한다. 중요한 국면에서는 검찰의 움직임이나 수사 방향 자체가 워낙 큰 뉴스이므로 검찰 쪽 내용을 알고 있는데 안 쓰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난감한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둔 것이 원칙이므로 원칙은 이럴 때 더 잘 지켜야 한다. 한겨레 준칙도 정확성은 신속성보다 우선한다. 여러 취재 방법을 통해 복수의 근거를 확보해 교차 확인한 뒤, 이를 보도한다. 속보 또는 특종 경쟁 등을 이유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삼각확인 원칙을 지키면 검찰 받아쓰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피의사실공표죄 논란도 있을 수 없다. “싱글 소스(single source)로는 안 된다라거나 “(주인공 인물 외) 지인을 취재하라라는 주문도 삼각확인 원칙의 다른 표현이다. 검사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보도는 정확한 보도가 아니라 오히려 부정확한 보도다. 언론이 부정확하게 보도해놓고 그에 대한 비판을 언론 탄압이라고 반박했으니 엉뚱하기 이를 데 없다.

 

 어떻게 하면 태극기 집회를 정확하게 보도할 수 있을까? 군중이 몇 명이고, 어디까지 어떻게 행진했는지가 정확성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진은 지난 21일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 현장의 모습 ©뉴스1

    

 

관건은 지키는 것

 

학술 논문 가운데 일반 시민이 보면 기겁할 것 같아서 금서로 지정해야 할 것들이 가끔 있다. 최근에 종합일간지 6개의 기자와 에디터 24명을 조사한 학위 논문도 그랬다. 이 논문에 기자는 의도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할 때는 사실과 의견을 혼용하며, 에디터는 애초의 의도를 강화하는 쪽으로 기사를 첨삭한다고 돼 있다. <사실 확인인가, 사실 만들기인가>가 논문 제목이다.

한국 기자들의 입에 붙어 있는 팩트! 팩트를 챙겨라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자들이 떠받드는 팩트는 과연 어떤 팩트인가? 인물의 대조적인 양면을 보여주거나 집회의 상반되는 양상을 전달하거나 검찰의 말과 그에 대한 반박을 함께 담으려 하면, 당장 기자들은 주제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체질상 서로 다른 것들을 도저히 한 기사에 못 담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건도 한 방향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한 색깔로 규정되지 않는다.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뚜렷하게 밝히는 사람은 소수이며 입장이 뚜렷하지 않은 색깔 없는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수적 열세의 사람들뿐 아니라 이런 회색지대의 침묵하는 대중(reticent public)’이 진정으로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다. 이들을 여하히 보도할 것인가 역시 정확성의 문제다.

정확성은 미국 언론에서 신성불가침이다.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는 저널리즘의 어떤 원칙보다도 정확성을 우선시해 뉴욕월드(New York World) 편집국의 온 벽을 정확, 정확, 정확!’이라고 쓴 카드로 도배했다. 19세기 말의 일이다. 그의 혜안처럼 정확성만 잘 지켜도 저널리즘의 많은 문제는 해결된다. 이론적으로도 정확성은 사실성과 객관성의 토대이다. 정확한 보도는 최대한 균형적이며 최다수가 동의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하며, 따라서 기자가 수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객관성을 보장해준다. 정확성을 달성하면 여타 원칙도 덩달아 달성된다.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원칙을 만들었으니 이제 관건은 지키는 것이다. 만일 사전 토론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어떻게 하면 이 원칙을 잘 지킬 수 있는지, 장벽은 무엇인지, 어떻게 장벽을 해소할 수 있는지 등을 숙고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리하여 두 신문의 실험과 경험 이 전체 한국 언론에 청량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1)  비틀스를 필두로 영국 출신 밴드들이 미국 팝 시장의 높은 벽을 넘어 선풍적 인기를 끈 현상
2)  뉴욕타임스, 윤서연 외 5인 역,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 인간희극, 2019.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박재영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0-03-02
  • 조회수 : 21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