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한국에서 외국 매체의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는 라파엘 라시드(Raphael Rashid)는 한국 매체에 무언가가 보도되면 일일이 내용을 다시 확인한다고 했다. 그는 기사에 “어떤 관계자가 이러저러한 말을 했다”라고 적혀 있으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어떤 급의 사람인지 직접 확인한다. 그 관계자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중요한데, 기사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관계자가 공식 브리핑 후 기자들과 추가 문답 때 그렇게 말했는지, 기자 개인과 전화하면서 언급한 것인지, 혹은 화장실에 가는 도중 따라붙은 기자에게 넌지시 흘려준 것인지, 즉 취재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발언의 무게감과 신뢰도가 달라지는데도 말이다. 시민들도 기사를 보면서 라파엘 라시드 기자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기사는 난수표 같아 해독이 쉽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는 익명 취재원이다.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인의 성으로 ‘A’ 씨가 가장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대다수기사는 취재원을 A, B, C로 표시한다. 방송 뉴스의 태반은 사람의 얼굴이나 음성을 모자이크 처리해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든다. 정보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했는지를 명시하지 않거나 완벽히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급한 나머지 보도부터 하기도 한다. 이런 기사들은 내용이 투명하지 않아 그 진위를 가늠할 수 없다.
발언자 명시하기, 정보 출처 밝히기, 타사의 기사 직접 재검증하기 등은 기자가 잘 아는 준칙이지만, 취재 보도 여건상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취재원이 당장 실질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를 숨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관행적으로 또는 편의적으로 불투명하게 보도한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항의하면, 기사에 아파트 이름을 빼고 사진이나 영상에서도 아파트를 모자이크 처리하게 됐다. 기자들은 취재원의 익명 요청을 너무 쉽게 들어주고 있으며 익명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잡고 있다. 익명에 관한 판단이 무원칙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2022년 이태원 참사 후 서울시청 앞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됐을 때, 어떤 매체는 추모객의 얼굴을 모두 가린 채 보도했으며 다른 매체는 일부 추모객의 얼굴을 보여줬다. 2015년 시리아의 세 살배기 난민이 튀르키예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사진이 외신을 통해 국내 언론사에 전송됐는데, 그의 얼굴을 그대로 보도한 매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매체도 있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이 몰락했을 때 현지에서 한국인을 도왔던 아프간 사람들이 인천공항으로 들어왔는데, 국내 매체들은 그들의 얼굴을 가렸지만, 국내의 외신들은 그대로 공개했다. 요즘 날씨 뉴스에 부쩍 외국인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한국인을 촬영했을 때 발생하는 모자이크 처리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익명 보도는 언론 신뢰도 갉아먹는 주범
취재원의 신원 공개에 대한 기자들의 부담감은 예상외로 크다. 해외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한 외국인의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하고, 국내 정치인을 취재하는 국내 기자의 얼굴도 가려준다. 심지어 현장의 실제 화면은 모자이크 처리해 놓고, CG 화면은 생성형 AI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최근 신문 기사에 익명 취재원이 줄었다는 말이 나도는데, 속을 알고 보면 씁쓰름하다. 자기 기사에 ‘A 씨’, ‘김 모 씨’ 등 익명이 많으면 남사스러워서 그런지 몰라도, 언제부턴가 기자들은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이라는 정체불명의 인용 양식을 썼다. 이것 하나로 여러 명의 익명 취재원을 퉁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 보도의 단점이나 폐해는 못 본 척하고 넘어가기엔 너무 크다. 인간은 처리하기 쉬운 정보를 더 신뢰하고, 처리하기 어려운 정보는 덜 신뢰한다. 익명 취재원은 처리하기 어려운 정보에 해당하므로 기사 신뢰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 PD는 영상이든 음성이든 극도로 모자이크 처리를 꺼리는데, 주된 이유는 모자이크가 콘텐츠 몰입감을 떨어트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가해자나 피해자 같은 사건 관련자가 익명으로 표현되면 인물이 사건의 맥락에서 분리돼 피상적인 대상으로 전락하므로 사건을 보도하는 취지와 효과를 살리기가 어렵다. 정치 기사에서 보듯이, 취재원을 밝히지 않으면서 그의 의견을 기사에 실으면 기자의 복화술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세계 유수의 언론사는 기사에 실명이 드러났을 때 해당 취재원이 ‘즉각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피해를 볼 상황에서만 익명 보도를 허용한다. 대표적으로 BBC나 뉴욕타임스가 그런 언론사다. 이들은 익명으로 보도하더라도 취재원에 대한 정보를 부가함으로써 그가 그런 말을 할 만한 자격과 지위에 있는지를 독자나 시청자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뉴욕타임스는, 익명 보도는 언론 신뢰도를 갉아먹는 주범이라고 하면서 기사의 정보가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았다면 보도를 미룰 준비를 해야 한다고 취재 보도 준칙에 적었다. 특종을 위해, 또는 낙종을 면하기 위해 정확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는 천명이다.
한국 언론이 이런 규정을 단번에 도입하고 실행하기는 어렵다. 매체들의 과당경쟁을 고려하면, 속보를 우선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더라도 익명 보도 자체를 줄이고, 익명으로 보도하더라도 폐해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취재원과 기자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취재원이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한다면 많은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정부나 기업의 인사들이 앞장서서 실명으로 인터뷰해 주면 되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한지 의아하겠지만 최근 모범 사례가 있다. 얼마 전부터인가 한국은행 기사에서는 대리부터 과장, 차장까지 모두 실명으로 보도된다. 이창용 전 총재가 외부 소통을 강조하면서 보도자료나 보고서의 담당자가 직접 언론과 실명으로 인터뷰하고 백프리핑도 실명으로 진행하라고 지시한 덕택이다. 이제 한국은행 기사에서 ‘관계자’라는 단어는 찾기 어렵다.
기자들만 아는 ‘관계자’, 시민들도 알아야
취재원과 기자가 서로 협력해 실명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검찰이나 경찰, 정당은 공식 기자회견이나 브리핑 후에 기자들의 후속 질문에 답하기 위해 비공식 백브리핑을 개최한다. 간헐적으로 기자들과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대개 차장검사나 수사부장 같은 고위직 인사가 여기에 참석하는데, 이들은 기사에 ‘검찰 관계자’나 ‘경찰 관계자’로 표현된다. 기자들은 이런 관계자가 누구인지 알지만, 시민들은 잘 모른다. 이들이 누구인지를 정작 시민들이 알아야 그 발언의 진정성이 전달되고 신뢰감도 생긴다. 취재원 신원 공개는 결국 시민을 위한 일이다. 백브리핑이나 티타임의 실명화를 놓고 출입처와 기자단이 진지하게 협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다.
아무래도 취재원이 기자를 자주 만나고 정보를 많이 주면 불필요한 익명 보도를 줄일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무시로 몇몇 기자를 집무실로 초대해 격의 없이 대화하거나 헬기에 타기 전에 잠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갖기도 한다. 전자를 ‘풀 스프레이(pool spray)’라고 하고 후자를 ‘초퍼 토크(chopper talk)’라고 한다. 우리 정부나 기업의 주요 인사들도 기자들과 이런 만남의 자리를 자주 만들어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면 좋겠다.
기자가 취재원으로부터 실명 보도를 허락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때 국내 매체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사망자의 이름을 보도하지 않았지만, 뉴욕타임스는 한국인과 외국인 사망자를 실명으로, 그것도 얼굴 사진까지 첨부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이 끈질기게 유가족을 설득해 실명과 사진 사용을 허락받았다는 후문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종종 신원 공개를 꺼리는데, 언론이 그들의 처지를 고려해 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능사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기자가 눌러쓴 줄글보다 시위 참가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사안을 더 잘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굴을 그대로 보도할 수 있도록 시위 참가자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해외 언론은 익명으로 보도하더라도 부가 정보를 준다고 했는데, 국내 언론도 당장 따라 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그냥 ‘재계 관계자’라고 하기보다 ‘10대 기업에서 15년째 노조 관련 업무를 담당한 임원’과 같이 표현하면 발언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주요 정보가 미확인 상태이지만 꼭 보도해야 하는 속보 상황이 기자들에게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이때는 기사에 ‘유보적 언급’을 추가하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내용이 워낙 중대해서 곧장 보도해야 할 상황이라면, 그대로 보도하되 기사에 ‘아직 최종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추가하는 식이다. ‘본사 기자가 최종 검증하는 대로 다시 보도하겠다’라고 덧붙이면 더 좋다. 대형 참사 때 사망자 통계는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려우며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므로 기사에 사망자 수치를 쓰면서 ‘이 수치는 불완전하므로 재확인되는 대로 다시 보도하겠다’라고 부연하면 된다. 학술 논문에 ‘논문의 한계’가 있듯이 기사에도 ‘기사의 한계’를 붙이자는 것인데, 되도록 이 한계점을 리드 문단 다음에 곧바로 언급해 독자나 시청자가 미확인 상황임을 인지한 가운데 기사를 보도록 도와주면 좋다. 그것이 기사 신뢰도를 높인다는 게 미국 언론의 경험이다.
회사 원칙이 없다면 기자 스스로 만들자
투명성과 관련해 기자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관련 원칙이 회사에 없다는 점이다. 어느 경우에 꼭 실명으로 보도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는 익명으로 보도할 수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이를 조언해 줄 선배나 에디터도 없다. 그래서 준칙이 필요한데, ‘해줘 축구(Do-this-for-mefootball)’식으로 누군가가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기자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언론사 내부에서 논의를 거쳐 준칙을 마련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시민 사회와 학계는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시의성이나 특종 같은 독보적인 보도가 중요하듯, 기록성도 뉴스의 생명이다. 꼼꼼한 취재와 끈질긴 확인 그리고 정확한 표현…. 오직 기록을 위해 끝까지 취재원을 설득해 이름을 받아내는 성실성은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기자의 첫 번째 덕목이다. 이런 기록성을 높이 평가하는 뉴스룸 문화가 절실하다.
기자들의 자구적 노력과 함께 언론사의 책임자가 혁신적 결단을 내리는 지름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에 이런 예가 많은데,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국내에도 한 예가 나타났다. 올 상반기에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편집국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취재원 보호가 필요할 때만 예외적으로 익명 보도를 허용한다. 관계자, A 씨,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등의 관행적인 익명 보도 표현을 금지한다. 편집국 각 부서의 부서장과 보조 데스크(차장)는 매일 익명 보도 표기 현황을 보고한다.”
이 지시 전후의 동아일보 기사를 과학적으로 비교해 보지 않았지만, 간이 조사에서 익명 사용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지시가 공식 문서로 이어지고 외부에도 공개돼 언론계에 실명 보도라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