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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방법으로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대, 언론인도 이용자도 ‘좋은 기사’를 바란다. 과연 좋은 기사란 무엇일까. 2025년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기사를 되돌아보고 새해 좋은 기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건들을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올해는 대통령 탄핵과 대통령 선거, 특검 등의 정치적 중대사가 연이어진 와중에 산불과 캄보디아 범죄 단지 같은 대형 사건·사고도 잦았다. 뉴스가 홍수를 이룬 덕에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유용한 정보를 편하게 얻을 수 있었지만, 현장을 지키던 기자들은 악몽 같은 한 해를 보냈다. 기자들은 현장에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전쟁 같은 하루를 또 보내며 문득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자문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적어도 올해는 기자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취재를 잘했느니, 기사가 좋았느니 하며 품평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신없이 터지는 사안을 제때 무탈하게 막은 것만으로도 기자들은 칭찬받아야 한다. 이제 사건도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스스로 올해 자기의 기사를 되돌아보고 내년에 어떻게 더 좋은 기사를 쓸 것인지 모색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달에 좋은 기사 한 개만 쓴다면
‘좋은 기사’를 고민하면서 지나치게 개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언론 실무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좋은 뉴스는 자기가 습관적으로 하는 취재와 글쓰기에서 어느 한 요소라도 조금만 더 잘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취재원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는 것은 좋은 기사를 위한 하나의 예다.
새벽 배송 금지라고 하면, 대개 찬성과 반대 두 입장만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복잡다단하다. 택배 노동자 단체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택배노조, 쿠팡 노조,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각 단체 내에서도 당연히 이견이 있을 것이다. 새벽 택배의 주 이용자인 주부도 전업주부와 맞벌이 주부 사이에 입장이 엇갈릴 수 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에 소속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조국혁신당, 진보당 의원들의 생각도 서로 다를 것이다. 고용노동부 담당자와 학계 전문가도 자기 나름의 의견을 지닐 것이다. 즉, 새벽 배송 금지에 찬성하더라도 전면적 찬성과 부분적 찬성이 있을 것이고 단계적 찬성도 있을 수 있다. 반대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자는 기사에 꼭 필요한 사람 몇 명만 취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기사에 포함되는 취재원이 보통 서너 명이다. 예컨대, 정치적 사안에 여당과 야당만 있지 않으며 갈등적 이슈에 찬성과 반대만 있지 않다. 중립도 있으며, 찬성하는 쪽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라지며 반대하는 쪽에서도 그렇다. 현대인은 동질적인 집단이 없다고 할 정도로 부족(tribe)처럼 아주 작게 나뉘었다. 가끔 기사 댓글에 언급된 기막힌 관점에 놀랐던 기억이 있을 텐데, 많은 취재원의 다양한 의견을 담으면 기사에서도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다.
검찰 개혁, 노란봉투법, 부동산 정책,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기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그의 의견을 기사에 소개하면 기사는 기대 이상으로 좋아진다. ‘기사에 꼭 필요한 취재원 몇 명’은 기자의 지적 오만이다. 취재원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사안을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으며 자기의 위치를 더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화재나 교통사고에 관한 기사도 매번 ‘~사고가 발생했다’라는 식으로 보도했을 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고 자체보다 사고에 개입된 사람에 주목하면 새로운 기사가 나온다. 그 사람이 유명 인사라면 기자는 당연히 그에게 주목할 텐데, 평범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를 중심으로 사고를 풀어갈 수 있다. 누구나 흥미롭고 감동적인 서사를 지닌다. 사람들은 유명 인사에게는 관음적 호기심을 가질 뿐이지만, 갑남을녀에게는 부지불식간에 공감하고 빙의한다. 화재 자체는 그냥 뉴스지만, 화재 속 인물은 의미 있는 뉴스다.
좋은 기사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인터뷰 코멘트를 얻는 것 외에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다. 기자는 화재나 교통사고 같은 물리적 현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는 유심히 잘 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예 눈을 활용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을 만났을 때 그의 말을 듣기만 하지 말고 표정과 태도, 제스처와 행동을 살펴보고, 그의 작업공간이나 생활공간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을 눈여겨보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취재원의 말보다 그의 비언어적 정보가 기사의 주제를 더 강렬하고 분명하게 입증한다. 기사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기사 몰입도도 높인다.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썼던 상투어를 하나라도 줄이거나, 단어 하나 표현 하나라도 바꾸거나, 한 문장이라도 독자를 매료시킬 문장을 고안하는 것도 좋은 기사를 위한 일이다. 주관적으로 비칠 수 있는 표현을 객관적 정보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 ‘그는 슬퍼 보였다’ 대신에 ‘눈시울이 붉어졌다’로 쓰고, ‘분노했다’ 대신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라고 하면 된다. 손가락 하트나 주먹을 쥐고 ‘파이팅!’ 하는 연출 사진 대신에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것이다. 좋은 기사에 관한 복잡하고 난도 높은 논의는 이 외에도 있겠지만, 당장은 이 정도만 해도 족하다. 그렇다면, 한 달에 좋은 기사 한 개를 쓰겠다고 작심하는 기자를 기대해 볼 수도 있겠다. 회사에 이런 기자 100명이 있다면, 매달 좋은 기사 100개가 만들어진다. 매일 서너 개가 나오는 꼴이다.

가만히 있으면 뉴스와 기자의 미래는 없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만 하자’라고 했지만, 현재의 여건에서 이 ‘아주 조금’조차 쉽지 않다. 지금도 질식할 것 같은데 무언가를 더 하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 이대로 있겠다고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하루 24시간 중 미디어 이용에 할애하는 시간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볼 때, 뉴스는 여타 미디어 콘텐츠와 제로섬 경쟁을 해야 한다. 뉴스는 영화 OTT와 싸워야 하고 쇼츠나 게임과도 싸워야 한다. 지금도 불리한데, 앞으로는 더 불리할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뉴스의 미래는 없고 기자의 미래도 없다. 그래서 지금 당장 뭐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프랑스, 독일의 언론은 무엇이든지 새롭게 하고 있는데, 우리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언론의 탄생 배경이, 성장 역사가, 문화와 시장이 다르다며 항변하려고 해도 우리는 세계적 표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제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시점이다.
혹자는 그렇게 한다고 독자가 돌아오는가, 그래서 기사를 더 많이 보겠느냐고 하겠지만, 일단 우리는 좋은 기사를 만드는 시도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 독자가 좋은 기사를 보지 못했는데, 누군들 무엇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뉴스 하나라도 읽으면서 좋은 경험을 한다면 어떻게든 보답할 것이다.
우리 관행이 이렇다 저렇다 주장하는 순간, 기자들은 무엇도 바꾸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어떤 개선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거버넌스가 문제라거나 편집국장과 부장과 선배가 고지식하다거나 인원이 부족하고 시간이 없다는 말은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회사의 거버넌스와 언론 시장, 편집국장과 부장과 선배가 바뀌기를 기대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 누군가가 준비해 주기를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말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자기가 찾아서 짬을 내서 직접 하자. 자기가 무언가를 못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안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활이 잘못됐거나 바람 탓이 아니라 자기가 잘못 쏘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고쳐야 한다.
언론사와 기자가 아무리 타성에 젖어서 관습적으로 일한다고 해도, 조직 내부와 기자 개개인의 마음에 혁신의 열정이 숨어있을 것이다. 몇몇 신문이 후원제나 구독 모델을 실험하고 프리미엄 뉴스 같은 새로운 기사를 시도하는 것은 하나의 증거다. 언론사로서는 괄목할 만한 효과가 나오지 않아서 답답할 텐데, ‘좋은 기사’가 그 난관을 돌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사는 거창하지 않으며 어렵지도 않다. 기자가 혼자서 할 수 있다. 그간의 관행 중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면 기사는 좋아진다. 독자도 화답할 것이다. 결국 기자가 좋아지고 회사가 좋아진다. 철석같이 그렇게 믿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