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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 그 명성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한치의 결함도 허용하지 않는 ‘무결성’을 추구하며 강력한 윤리적 잣대를 고수하는 뉴욕타임스의 사례를 통해 우리 언론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취재원과 골프를 쳐도 되는데 도중에 업무 얘기를 할 수 없다면, 기자들은 그러면 뭐하러 골프를 치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뉴욕타임스 규정이다. 기자 자신뿐 아니라 배우자나 가족의 대외 활동이 언론사에 해를 끼치는지 유의해야 하고, 그들이 언론사의 공정성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재산을 갖고 있지 않음을 기자가 회사에 보고해야 한다면, 요즘 같은 한국 분위기에선 인권침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뉴욕타임스 규정이다. 언론사의 임원과 최고위 에디터는 물론이고 1면 에디터, 경제·산업·금융 에디터, 논설실장과 부실장, 경제·산업·금융 담당 논설위원은 자사 외 어떤 회사의 주식도 보유할 수 없다면, 한국 기자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 역시 뉴욕타임스 규정이다.
이번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에 이런 희한한 규정이 많다. 이 윤리규정집을 감수하면서 여러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규정이 까다로운데 어떻게 취재하란 말인가? 아무리 기자 일이 좋더라도 이런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까지 할까? 뉴욕타임스 기자는 정말 이 규정을 잘 지킬까? 이런 의문은 규정집에 자주 등장하는 무결성(integrity)이라는 단어를 통해 상당히 해소됐다.
왜 뉴욕타임스는 이렇게까지 할까?
무결성은 ‘결함 제로(zero)’다. 뉴욕타임스는 모든 구성원이 모든 면에서 트집잡힐 만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완전히 차단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와 채용 계약 중인 기자는 자기가 뉴욕타임스에 들어와서 맡게 될 분야와 관련된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기자와 논설위원은 취재원에게서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공직 선거의 후보자에게 조언할 수 없다. 맛집이나 여행 담당 기자는 취재할 때 뉴욕타임스 소속임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 연출 사진은 절대로 쓸 수 없다. 취재용 인터뷰나 문건을 돈을 주고 구해서는 안 된다. 뉴욕타임스 규정을 한국 기자에게 적용하면, 대부분 징계를 받거나 해고될 것이다. 언론사처럼 빈틈과 하자가 많은 조직이 이처럼 엄격하게 규정을 설정해놓고 실제로 뉴스도 그렇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마침 최근에 나온 《한국의 정치 보도》라는 연구서에서 뉴욕타임스의 정치 기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기사는 2019년 말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논란을 다뤘다.1)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트럼프만큼 악의적으로 뉴욕타임스를 비난했던 대통령이 없었으니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탄핵 논란을 어떻게 보도했을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한국 신문이라면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 사람들이나 탄핵 지지자들로 기사와 지면을 도배했을 것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스 기사는 민주당 상·하원 의원과 당원 9명, 공화당 상·하원 의원과 당원 7명, 자유당 하원 의원 1명, 소속을 알 수 없는 2명을 취재원으로 활용했다. 취재원이 19명이나 된다는 점은 한국 정치 기사와 큰 차이점이다. 이들 중 14명이 실명 취재원인데, 이는 한국 정치부 기자로서는 족탈불급이다. 기사가 제법 긴데도 취재원 개개인의 활동과 의견에 충분히 분량을 할애하다 보니 기자의 해설 문장은 몇 개 없다. 한국 기자라면 대통령 탄핵을 정당화하려고 전문가를 동원해 그의 준엄한 말로 기사를 마무리했을 텐데, 뉴욕타임스 기사에는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기사의 마지막은 트럼프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다는 공화당의 입장 및 탄핵을 정치적으로 무기화하는 것이 두렵다는 공화당 하원 의원의 인터뷰 코멘트로 처리됐다. 한국의 어떠한 기자도 자사를 공격한 대통령을 이렇게 보도하지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포함된 취재원들은 각자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므로 한 기사에 10여 개 이상의 관점이 포함돼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기사는 대통령 탄핵을 바라보는 관점을 최대한 다양하게 제시해 독자가 여러모로 사안을 살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기사가 유달리 탁월해 연구서에 모범 사례로 실렸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보통의 뉴욕타임스 기사가 이런 수준이라는 사실이 그간의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밝혀졌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취재원 수, 실명 취재원 수, 심층성, 맥락성, 관점 다양성에서 한국 신문 기사보다 월등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영국 더타임스, 일본 아사히신문과 같은 세계 권위지와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우수하다. 회사 내부가 어떻기에 이렇게 최고 수준을 유지하는지 의아한데, 역시 최근의 한 책이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
무결성을 향한 뉴욕타임스의 노력
새로 번역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4판에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실의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2) 닉슨 대통령 시절인 1968년 뉴욕타임스의 이사진과 편집인은 신문의 사설·칼럼 면에 균형을 맞출 보수적 목소리를 찾으라고 아서 옥스 설즈버거(Arthur Ochs Sulzberger) 발행인을 압박했다. 편집인이 발행인을 압박하는 것도 뜻밖인데, 이사진도 그렇게 했다니 혹시 공화당 정부의 압력 때문이었는지 의심된다. 하지만, 그 압박은 사업 전략 차원이었다. 당시 전국판을 새로 준비하던 뉴욕타임스는 자신의 진보 색깔에 보수 색깔을 혼합해야 사업이 더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새로 영입된 사람이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인 윌리엄 새파이어(William Safire)다. 새파이어는 뉴욕타임스 재직 32년간 줄곧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결코 우파에 편향적인 글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마음의 독립’을 유지하는 글을 씀으로써 신문의 명성을 높였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신문사 내외부의 존경을 얻었다. 그를 인정하고 그의 글을 지지했던 뉴욕타임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설과 칼럼은 대놓고 정치적 편들기를 하는 글인데도 새파이어와 뉴욕타임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무결성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집착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한때 뉴욕타임스 구사옥 1층 로비에 잡동사니를 전시한 장식장이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25달러(약 2만 9,000원) 규정’ 때문에 전시된 물건들이다. 한국 기자들은 김영란법 덕분에 이제야 ‘3만 원 규정’에 익숙하지만, 뉴욕타임스 기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25달러 규정에 묶여 있었다. 뉴욕타임스 기자는 취재원에게서 회사 로고가 찍힌 컵이나 모자 같은 25달러 미만의 기념품만 받을 수 있다. 그 이상의 선물은 극구 거절해야 하지만, 도저히 그러지 못하면 회사에 신고해야 한다. 1층 장식장은 그런 선물을 모아둔 곳이다. 뉴욕타임스가 그만큼 청렴하고 투명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전시라 할 수 있다. 기자에게 선물 거절은 번거로운 일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기자들이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선물을 사양하는 공식 편지 양식을 만들어놨다. 친절하면서도 철저한 뉴욕타임스다.
요즘 ‘먹방’이 유행하면서 맛집 탐방이 예능 프로그램처럼 가벼운 일로 치부되지만, 원래 이 일은 저널리즘에서 레스토랑 크리틱(restaurant critic)이라는 꽤 무게 있는 취재 활동이다. 2000년대 초반의 자료를 보니 뉴욕타임스에 음식 담당 칼럼니스트 3명, 레스토랑 크리틱 1명, 음식 담당 기자 2명, 와인 담당 기자 1명이 있었다. 음식 담당 칼럼니스트와 레스토랑 크리틱 직함을 지닌 이들 4명의 연간 식사비는 약 20만 달러(약 2억 4,000만 원)였다. 기자 1명이 연간 6,000만 원, 하루에 16만 원의 취재비를 썼다. 이 모든 비용을 뉴욕타임스가 댔다. 앞에 소개했듯이 뉴욕타임스 기자는 취재원에게서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으며 맛집 담당 기자는 뉴욕타임스 소속임을 노출하면 안 된다. 뉴욕타임스는 변장이나 신분 가장 취재를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하는데, 맛집 기자에게는 오히려 이를 권장한다. 혹시라도 음식점이 그를 알아볼까 봐 회사가 걱정해 취하는 조치다.
뉴욕타임스도 실수를 저질렀고 사고가 났다. 타 언론사와 차이는 그에 대한 처리 태도다. 한 예로, 2003년 제이슨 블레어(Jayson Blair)의 기사 표절 및 조작 사건이 났을 때, 뉴욕타임스는 기자 20여 명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윤리 규정과 업무 절차를 개편했다. 5개월간의 조사 끝에 블레어 사건의 경위를 밝혀내고 뉴욕타임스의 향후 대책을 천명한 <시걸위원회 보고서(The Siegal Committee Report)>를 만들어 세계에 공개했다. 실수를 윤리 강화의 기회로, 실패를 사업 성장의 기회로 만들었다.
“품위가 곧 돈이다” 뉴욕타임스의 확신
뉴욕타임스 윤리규정집의 세세한 규정들은 책자에도 자주 언급돼있는 뉴욕타임스의 ‘권위’와 ‘명성’을 떠받치는 기둥들이다. 조금 더 크게 보면, 그것은 뉴욕타임스의 일관된 사업 전략인 ‘품위’와 연관된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의 사업 전략이 품위라고 하니 다소 의아하다. 언론학자 마이클 셔드슨(Michael Schudson)은 이 대목을 신문 읽기의 자부심과 수치심으로 풀이한다.
아돌프 옥스(Adolph Ochs)가 뉴욕타임스를 인수했던 1896년 뉴욕의 신문 시장은 60만 부의 뉴욕월드(New York World), 43만 부의 뉴욕저널(New York Journal), 13만 부의 뉴욕선(The New York Sun)이 점령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 시기는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의 절정기로 미국 역사상 신문들이 가장 오락적인 뉴스로 치열하게 부수 확장 경쟁을 했다. 이 상황에서 9,000부짜리 뉴욕타임스는 거대 신문을 좇아 오락성 뉴스를 만들며 떡고물이라도 챙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옥스는 정보 제공이라는 새로운 사업 전략을 내걸어, 셔드슨이 말하는 ‘오락 대 정보’의 신문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시민 대다수는 황색 저널리즘 신문이 제공하는 오락 뉴스로 소일했지만, 그런 자신에게 일말의 수치심을 느꼈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뉴욕타임스를 본다는 이유에서 뉴욕타임스를 읽기 시작했다. 상위 계층을 모방하고픈 심리에서 그들이 읽는 뉴욕타임스를 따라 읽으며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하여 애초에 대결 구도가 성립될 수 없을 정도로 거대 신문 쪽에 기울어져 있던 신문 시장의 무게중심은 점차 뉴욕타임스 쪽으로 이동했다. 품위가 사업 전략이 됐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뉴욕타임스가 미국 신문업계에 남긴 최고의 유산은 “품위가 곧 돈이다”라는 교훈이다. 뉴욕타임스가 93년간 세계 최고 권위의 신문으로 평가받는 비결이기도 하다. 윤리규정집을 감수하면서 뉴욕타임스는 ‘확신범’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자에 “뉴욕타임스의 가장 큰 힘은 권위와 명성이다”, “독자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고용주임을 명심하라”라는 문장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신문이 정도를 걸으면 성공에 이른다는 것을 종교처럼 믿는 집단이다.
한국 기자들은 뉴욕타임스 얘기를 들으면 시큰둥해하거나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다. 신문사의 성격이 우리와 다르고, 시장 환경과 독자도 우리와 다르므로 뉴욕타임스가 우리의 표준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국의 여느 신문사가 뉴욕타임스를 따를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따르기도 어렵다. 하지만, 단 한 신문사라도 뉴욕타임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어떠한 산업이든 일류 기업이 산업 전체를 이끈다. 미국신문업계에서 그런 기업은 뉴욕타임스였다. 한국의 불행은 신문업계에 그런 신문사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신문사마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므로 희망은 있다.
한국의 몇몇 신문사는 훌륭한 윤리 규정과 취재보도 준칙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실천이 문제다. 그전에, 신문사 구성원들이 규정의 존재와 내용을 알아야 한다. 요즘 대학은 교수들에게 주기적으로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받도록 하고, 미이수자에게 승진과 승급을 제한한다. 신문사가 구성원들에게 윤리 규정 읽기를 의무화하면 어떨까? 시험을 치르면 더 좋다. BBC도 윤리 규정 외우기 테스트를 하는 마당에 우리라고 못 할 것 없다. 윤리 규정을 놓고 사장과 말단 영업직원이, 에디터와 현장 기자가 난상토론을 하면 더 좋다. 윤리 규정을 어떻게 지킬지 고민하지 않고 실천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
1)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한국의 정치 보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68~74, 2022.
2) 톰 로젠스틸 & 빌 코바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이재경 역, 한국언론진흥재단, 227~234,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