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상세
독자를 만족시키고 지갑을 열게 하는 기사는 무엇일까. 일상적인 아이템을 보다 수준 높고 질 좋은 기사로 만든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외 언론의 다양한 기사 작성 사례를 통해 우리 신문의 유료화와 지속가능성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던 지난 4월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에 “Open the fu*kin’ Strait, you crazy bastards”라고 썼다. 국내에는 “빌어먹을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라, 미친놈들아”라고 보도됐다. 욕설을 그대로 살리면, “X같은 호르무즈 해협을 열어라, 미친 개XX들아”다. 미국 대통령이 SNS에 공개적으로, 그것도 가족이 함께 모이는 기독교 축제의 날에 이러한 욕을 했으므로 난리가 날 만하다. 우리 대통령이 그랬다면, 언론은 대통령의 자질과 국가의 품격을 운운하는 야당의 비판, 여당의 맞대응, 시민 반응, 전문가 의견 등을 며칠간 떠들썩하게 보도했을 것이다.
기자의 감각적인 판단으로 이 정도의 보도는 예상할 수 있다. 신기하게도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채 4일 후에 이런 기사를 냈다. 2020~2026년 미국 정치인들이 엑스(X)에 ‘fu*k’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예를 찾아보니, 공화당보다 민주당 의원들이 더 많이 사용했으며 최다 사용자도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다는 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했던 터라 그의 거친 입을 호되게 비판했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야당인 민주당에 불리한 내용을 가감 없이 보도했다. 기사는 이 단어의 역사적 용례도 함께 소개해, 미국 정치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대통령의 욕설을 사건으로 다룬 기사는 휘발적이지만, 그것을 계기로 정치인의 욕설을 분석한 기사는 오래간다. 10년 뒤에 읽어도 재미있고 유익할 것이다. 그것이 에버그린 콘텐츠(evergreen contents)다. 기자의 감각적 판단 못지않게 숙고적 판단이 긴요하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더 좋은 기사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연설이나 공·사석 발언, SNS 포스팅에서 횡설수설하거나 동문서답한 사례를 보도했는데, 기사에 소개된 건이 수십 개나 된다. 이런 조사 분석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면 금상첨화다. 워싱턴포스트는 인공지능 모델을 활용해 2023~2026년 일론 머스크가 엑스에 올린 6만 5,918개의 게시물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수집해 보도했다. 그간 몇 개의 사례와 증언에 기댔던 기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다. 주제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기사 곳곳에 적나라한 모습으로 차고 넘친다. 논문 수준의 과학성까지 갖춰서 반박은 언감생심이다.
많은 사례를 분석하면, 불가피하게 기사에 숫자를 사용하게 된다. 숫자는 위력적인 정보지만, 저널리즘은 그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한다. 기사에 숫자가 많으면, 이해가 잘 안되고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통계분석이나 전수조사 식의 기사가 어땠는지를 떠올리면 이해가 간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33개월간 트위터에 올린 1만 1,000여 건의 트윗 전수를 수집해 그가 누구를 향해 어떤 내용의 인신공격과 분노를 표출하고, 자기 자랑을 일삼았는지 분석했다. 그런데 기사에 숫자가 안 보인다. 영어 5,800단어나 되는 긴 기사는 숫자 대신 트윗 사례와 맥락, 반응으로 채워졌다. 미국의 판사들이 사법 위협에 맞서 총기 무장에 나섰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역시 판사들의 총기 구매와 사용에 대한 전수조사를 토대로 했지만, 숫자는 최소한으로 사용됐다. 기사에 숫자는 쥐약이다. 경제부나 산업부 기자들로서는 난감할 텐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경제 기사를 사회부 기사처럼
미국 언론은 숫자를 기사 본문에 넣지 않고, 그래프에 담아 함께 보도한다. 경제·산업 기사에 그런 사례가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개발비를 마련하려고 채권을 발행하는 바람에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경제에 악영향을 줬다고 보도하면서 기사 본문은 사례와 취재원 인용문으로 채우고 각종 수치는 그래프로 전달했다. 미국의 많은 근로자가 시간제로 일하며, 복수의 직업을 가진 근로자가 25년 만에 최다라는 워싱턴포스트 기사도 전형적인 통계 기사지만, 숫자는 그래프로 처리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전문지라서 숫자 없이는 기사를 못 쓸 것 같은데도 특별히 예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대다수 기사에 그래프가 붙었다.
경제부나 산업부 기자들은 자신들의 기사가 재미없고, 독자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숫자다. 기사 본문의 숫자는 숙독을 방해할 뿐이며 그래프 같은 이미지로 제공될 때 직관적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숫자를 줄이고자 하니 기사에 쓸거리가 부족해 기자는 새로 정보를 찾아 나서야 한다. 올 초에 모 언론사의 신임 경제부장이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어 부원들에게 “경제 기사를 사회부 기사처럼 쓰라”고 지시했다. 책상에 앉아서 자료와 숫자로 기사를 쓰지 말고, 밖으로 나가서 사례를 구하고 현장을 보라는 뜻이었다. 이런 기사는 미국 신문에 더러 있어서 배울 만하다.
트럼프는 국익을 위해 관세정책을 밀어붙였지만, 자국 기업인들에게 해를 끼치기도 했다. 이 역설적 경제 효과를 뉴욕타임스는 하이힐 회사 사례를 통해 보여줬다. 이 회사는 생산비를 아끼려고 브라질에 공장을 두었는데, 트럼프가 브라질의 수출품에 관세를 높인 탓에 미국 수출이 중단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사례 소개에 정책의 맥락이 덧붙여져서 사회부 기사인지 경제부 기사인지 분간이 잘 안될 정도다. 기실, 독자에게 어느 부서의 기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경제·산업 아이템을 현장 중심으로 쓰면, 언론사의 부서 즉 취재 영역을 뛰어넘는 기사로 발전한다. 뉴욕타임스는 크기가 작고 토핑도 적은 피자의 주문이 늘었다는, 전형적인 트렌드 기사를 피자 매출 감소의 원인, 물가 상승, 건강 중시 경향, 체인 피자점과 독립 피자점의 차이까지 담은 복합 기사로 만들어냈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 새롭게 접근하자
사회부의 주요 아이템인 사건·사고 기사도 조금만 다르게 접근하면 몰라보게 좋아진다. 한 가지 방법은 사고 자체보다 이와 관련된 인물에 주목하는 것이다. 공사장에서 인부 사망 사고가 나면 인재 가능성과 책임 소재를 취재해야겠지만, 책임 추궁에 치우치다 보면 망자가 잊힌다. 이런 기사는 사건·사고를 피해자 중심으로 보도하라는 금언에도 어긋난다. 뉴욕타임스는 건물 공사장의 외벽이 무너져서 형제 인부가 죽었을 때, ‘그들이 누구인가?’에 주목했다. 멕시코 이민자인 이들은 고향의 형제자매와 자녀까지 미국으로 불러들여 서로 의지하며 미래를 꿈꿨다. 이 정도의 이주민은 대수롭지 않다고 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공사장 인부로, 건물 청소부로, 택시 운전사로 일하지 않으면 뉴욕은 단번에 멈출 것이다. 생각이 여기쯤 이르면 왜 뉴욕타임스가 이들을 보도했는지가 이해된다. 사건의 인물이 평범하더라도 그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낼 수 있다. 사람들은 유명 인사에게는 관음적 호기심을 가질 뿐이지만, 갑남을녀에게는 부지불식간에 공감하고 빙의한다. 화재나 교통사고도 마찬가지다. 사고 자체는 그냥 뉴스지만, 그 속의 인물은 의미 있는 뉴스다.
인물 중심의 뉴스를 조금 심화하면 인물 사례연구가 된다. 몇 년 전 팬데믹 때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학생 간에 교육 격차가 생겼는데, 디지털 격차가 한 원인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각각 일반 주택과 트레일러하우스에 사는 두 고등학생이 온라인 수업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이용하는 와이파이 성능과 컴퓨터 사양의 차이를 비교했다. 국내 언론도 이런 사례를 기사에 활용하지만, 대개 맛보기 정도로 소개하고 만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가서 속살을 보여줘야 더 좋은 기사로 발전할 수 있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미개척 상태여서 새롭게 시도할 여지가 많다. 언론은 공직에 내정된 사람에 대해 병역, 위장전입, 음주 운전, 재산 증식 같은 단골 메뉴를 짚으며 인사 검증 기사를 쓴다. 신현송이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됐을 때도 그의 외화 자산, 아파트 갭투자, 영국 국적 딸의 불법 전입신고를 들춰냈다. 그의 이력은 물론이고 대통령과의 인연, 주요 발언을 담아 기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하다. 그의 경제관, 전문성,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인식…. 언론은 이런 궁금증을 취임 인터뷰로 단번에 해소하기도 하지만, 인터뷰 때는 장밋빛 미래만 미사여구로 쏟아내므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그의 경제에 대한 진심을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미국 신문도 신현송 같은 경제 수장을 다뤘는데, 그 기사에 힌트가 있다.
케빈 워시(Kevin Warsh)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이하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을 때, 뉴욕타임스는 여러 자료를 통해 경제와 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추적하고 확인했다. 기사는 케빈 워시가 스탠퍼드대에 다닐 때 학보사인 스탠퍼드데일리에 났던 인터뷰 기사, 2006~2011년 연준 이사 시절 금리 인하에 대해 보여줬던 태도, 2023년 팟캐스트 인터뷰 기사, 연준 의장에 대한 그의 발언을 소개했으며 학생 때부터 그를 아는 경제학자, 그의 전현직 동료들, 대학 때 수강했던 국제정치 과목의 담당 교수,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전 의장, 연준 의장 인사청문회를 함께 받았던 시카고대 경제학자, 전 연준 부의장에게서 그에 대한 평가 의견을 얻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작년 이후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무자비하게 이민자를 단속한 국경순찰대 총대장 그레고리 보비노(Gregory Bovino)를 다루면서 그의 인터뷰 기사와 성명서, 그가 단속요원들의 활약상을 담아 제작했던 단편 영화, 그의 이민자 체포에 대해 주교가 썼던 신문 칼럼, 소장에 기록된 그의 이민자 체포 방식과 판결문, 그의 작전에 대한 비영리 기관의 조사 내용, 그가 이민 단속 확대를 요청하며 주지사에게 보냈던 메모, 백악관과 국토안보부 공무원들의 그에 대한 반발 등을 인용했다.

위 두 기사에서 주제 인물을 직접 인터뷰해도 좋지만,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외곽에서 인물을 죄는 방식을 프로파일링(profiling)이라 하고, 그런 기사를 프로파일(profile)이라고 한다.1) 국내 언론에도 20여 년 전에 선구적인 역작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한국일보가 평범한 시민의 죽음을 고이 기록한 <비로소 부고>를 통해 프로파일링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 기사는 부고이므로 망자를 인터뷰할 수 없고, 망자는 유명 인사가 아니어서 화려한 경력이 없으며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행보나 발언도 없다. 쓸거리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을 법한데, 오히려 이것이 기자에게 행운이다. 이럴 때 기자가 택할 수 있는 취재 방법은 지인 취재다. 그래서 <비로소 부고>는 망자의 지인들을 취재하여 망자를 그려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비로소 부고>는 ‘부고의 민주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2025년 Q저널리즘상을 받았다. 프로파일링은 산 사람에게도 당연히 적용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신현송 프로파일 기사를 쓸 수 있다. 인물을 취재하러 갈 때, ‘지인 취재’라는 네 글자를 기억하면 탁월한 기사를 수월하게 만들 수 있다.

과거를 소환하라
현재 사건을 다루는 것이 기사지만, 과거의 유사 사례를 함께 엮어서 보도하면 더 좋다. 과거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 않던가? 재난 기사에 10년 전 유사한 재난 때 정부 대책은 어땠는지를 소개하거나 연쇄살인마 기사를 역대 엽기적 사건과 비교하면서 쓰는 식이다. 이런 글쓰기를 역사적 접근(historical approach)이라고 한다. 작년에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Le Figaro)가 영화 <콘클라베> 비평 기사를 보도하면서 모범을 보여줬다. 그 기사는 일반적인 영화 비평을 4분의 1 정도만 하고, 나머지 분량은 교황을 소재로 한 영화의 역사로 채웠다. 교황은 지금도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 그나마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져 왔다. 교황은 기독교의 정점, 정치적·세속적 권력의 상징, 신비주의자인 동시에 고독과 침묵의 비밀주의자다. 이것이 1954년 이후 70여 년간 영화에 나타난 교황의 모습이다.
르피가로 기사는 교황 영화에 대한 소고(小考)다. 영화 비평에 역사를 섞음으로써 지식과 교양도 전달했다. 미국 신문에도 역사적 접근 방식의 기사가 많다.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요즘 미국에서는 점점 더 많은 의과대학 학생에게 음식을 활용한 치료법을 가르치고 요리도 배우게 한다. 이런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고만 보도해도 좋은 기사가 되겠지만, 뉴욕타임스는 의과대학에 요리와 영양학이 선택과목으로 도입된 경위와 변화, 음식과 건강 관리를 연결 지은 의과대학의 역사를 함께 소개했다. 음식 담당 기자가 이 기사를 썼다. ‘과거를 소환하라!’ 역사적 접근 식의 기사를 꿈꾼다면, 기억해야 할 경구다.
보도자료에서 출발해도 새로운 기사가 될 수 있다
기자들은 보도자료를 받으면 내용을 재확인하고 인용문 하나라도 추가해 보도하는데, 미국 기자들의 보도자료 가공 수준은 그 이상이다. 대개 보도자료 내용 중 하나를 선택해 거기서부터 종합적인 안목을 보여주는 식으로 기사를 만든다. 예를 들어,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통계 중 의료 분야의 고용 증가에 주목해, 35년간 의료 분야의 성장과 노동 시장의 변화, 고령화 및 베이비붐 세대의 미용에 관한 관심 증가, 의료 분야 채용의 증가와 공급 부족 및 임금 상승, 정부의 의료 예산 삭감에 따른 부정적 여파 가능성 등을 종합해 보도했다. 보육비 부담이 커져서 아이 돌봄 비용을 줄인다는 워싱턴포스트 기사도 컬럼비아대의 발표 자료를 기반으로 그 배경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여러 사례를 통해 실태를 밝혔다.
보도자료에서 출발해 완전히 새로운 기사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 5월 8일 미국 노동부의 노동 현황 통계가 발표됐을 때, 워싱턴포스트는 유독 젊은 남성과 노년 남성이 기록적인 속도로 노동 시장에서 이탈한 점을 발견하고, 아예 그 이유를 기사 주제로 잡아서 장문의 기사를 썼다. 즉 ‘남성 청년과 노인이 노동 시장에서 급속히 이탈했다’가 아니라 ‘왜 그런가?’가 기사의 주제다. 노동부 통계의 여타 내용은 기사에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기사를 노동부 발표 당일에 보도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자료가 엠바고와 함께 미리 기자들에게 제공된다면, 기사 준비 시간이 많아지므로 더 좋다.
이런 보도자료는 국내에도 흔한데, 여전히 기사는 보도자료를 옮긴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5월 10일 질병관리청이 폭음과 만성 질환에 대한 보고서를 냈을 때, 모든 신문은 지난 10년간 남성의 폭음 비율은 감소했지만, 여성의 폭음 비율은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었으므로 모든 신문이 그것을 주제로 잡았고 제목도 그렇게 뽑았다. 기사 마지막에 약방의 감초처럼 전문가 의견이 붙은 것도 신문마다 똑같았다. 워싱턴포스트였다면, ‘왜?’를 주제로 잡아서 취재하고 보도했을 것이다.
하나의 정보만 추가해도 기사는 좋아진다
기사에 정보 하나만 추가해도 몰라보게 좋아진다. 많이도 필요 없이, 단 하나만…. 옛날 사건인데, 1969년 남미의 니카라과 근해에서 라이베리아 소속 화물선의 한국인 선원이 실족해 바다에 떨어졌지만, 거북이의 등에 매달려 표류하다가 15시간 만에 그가 타고 있던 화물선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된 적이 있다. 국내 신문은 외신을 받아 이를 보도했으며 그가 일주일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해 기자회견을 한 내용도 보도했다. 여기서 독자의 의문은 딱 하나다. ‘과연 그 거북이는 어떤 거북이인가?’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성인이 올라탈 수 있는지, 거북이는 자기 등에 붙은 사람을 떨어뜨리지 않고 그대로 두는지, 바닷속으로 들어가기도 할 텐데 그러면 사람은 익사하지 않는지…. 한국인이 구사일생했고 한국 신문이 보도했는데도 기사는 이런 점을 짚어주지 않았다. 이 궁금증은 그의 구출이 확인됐을 때 나온 미국 신문 데일리리포터(The Daily Reporter)의 기사에서 말끔히 해소된다. 데일리리포터는 거북이 연구가와 수족관 다이버를 통해 그 거북이를 장수거북으로 추정하고, 니카라과 근해가 주요 서식지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기사에 있는 취재원 인용문은 이렇다. “장수거북은 무게가 1,000파운드(약 450kg)가 넘게 자라며 등껍질 너비가 6~7피트(약 1.8~2.1m)까지 커요. 모든 거북이 중에서도 제일 바보입니다. 당신이 그의 등에 올라타도 전혀 모를 겁니다. … 한국에는 거북이가 바다에서 좋은 동물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북이를 바다의 사신 또는 안내자라고 부르죠.” 기사는 맨 마지막에 거북이가 잠수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의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흔하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적었다. “거북이는 때때로 수면에서 오랜 시간 먹이를 먹기도 하고, 몸에 공기가 차서 아플 때는 등껍질 아래에 공기를 품고 오랜 시간 떠 있기도 합니다.”
시리즈 기획 기사에 필요한 연결의 노하우
요즘에는 단편의 영화보다 여러 편으로 구성된 드라마가 더 인기다. 긴 것은 수십 편이 넘는다. 드라마는 전체가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지만, 편의상 여러 회로 쪼개져 있다. 전체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것이 목표이므로 각 회는 다음 회를 유인하는 연결성을 지녀야 한다. 즉, 연결의 노하우가 관건인데, 제15회 인권보도상 본상 수상작인 일본 주니치신문(中日新聞)의 <반도의 특공병(半島の特攻兵)>이 모범을 보여줬다. 2025년 1~6월에 3부 17회로 보도된 기사는 태평양전쟁 때 가미카제 특공대에 투입돼 오키나와 바다에 추락한 후 실종된 조선인 조종사 기무라 세이세키(박정석) 소위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렸다.
그의 일가는 1930년대에 경남 창원 고사리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는데, 기획팀의 기자 7명은 기무라의 일본 호적과 그를 알 만한 사람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5회차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10대 후반이었던 기무라도 야마구치현으로 가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낸 것일까. 그때는 이미 무슨 일이 있어도 출격하겠다는 의사를 다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일단을 알기 위해 또 다른 조선 출신 특공대원을 아는 96세의 전 소년 비행병을 찾았다.”
일본에서 취재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기자들은 결국 기무라의 출생지인 경남 창원행을 결심한다. 6회차 기사의 마지막에 그 내용이 나온다. “기무라의 마음속에 조금 가까워졌다고 소부카와(기획팀 기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기사는 매회 마지막에 다음 회를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독자는 긴 기사를 읽지 않는다고 기자들은 말하지만, 그것은 기사가 길어서가 아니라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기사를 끝까지 읽도록 만드는 힘이 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문은 종종 기획 기사를 시리즈물로 보도하지만, 각 회는 단순히 병렬될 뿐 다음 회와 연결돼 있지 않다.
모두가 아는 정보로 자기만의 기사 만들어야
이 글을 읽으면서, 또 뉴욕타임스 같은 해외 신문을 얘기하느냐며 짜증을 낼 기자가 있을 것이다. 기본만 챙기는데도 하루가 모자라고, 손가락에 관절염이 생길 정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열심히 일하는 한국 기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해보자고 말하는 게 미안하다. 그러나 현실은 기자들의 이런 속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기자들이 하소연하는 사이에 독자는 멀어지고 돌아섰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뭐라도 해보자는 건데, 그래도 의구심은 남는다. ‘이 글에 소개된 것처럼 기사를 만들면 기사가 좋아지고 독자가 불어나고 유료화도 가능할까?’ 국내에는 본격적으로 이를 실천한 언론사와 기자가 없으므로 필자도 그 답을 모른다.
유료화에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독자 프로파일을 파악하고, 페이월(paywall)을 실험하고, 기사 외의 부가서비스 고안도 해야 한다. 포털과의 관계 설정도 중요한 해결 과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기자가 아니라 언론사 내 다른 담당자가 맡아서 할 일이다. 기자가 해야 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은 기사를 잘 쓰는 것밖에 없다. 사실, 기사 잘 쓰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자는 버겁다. 국내에는 이렇다 할 예가 없지만, 해외에는 유료화에 성공한 언론사가 제법 많다. 이 글에 소개한 기사는 그런 언론사의 기사들이다. 이런 기사여야 유료화에 성공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유료화에 성공한 언론사의 기사가 이러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앙일보의 더중앙플러스를 비롯해 몇몇 언론사가 프리미엄 뉴스 생산에 뛰어들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자들은 자기의 고유 업무 외에 별도로 시간을 내어 별건의 주제로 프리미엄 뉴스를 생산한다. 기자가 투잡(two job)을 뛰는 셈이다. 중앙일보도 이렇게 하다가 ‘유료 기사팀’을 만들어 프리미엄 뉴스를 전담하도록 했는데, 이들이 만드는 기사도 대부분 별도의 기획 기사이며 일부만 현안과 관련된 기사다. 유료 기사팀에 배치된 30~40명의 기자는 편집국으로서는 결손 인원이다. 그래서 투잡 모델이든 전담팀 모델이든 지속가능성이 작다. 궁극적으로는 이 글에 소개된 미국 신문처럼 기자가 일상적인 아이템을 조금 더 수준 높게, 질 좋게, 매력적이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지속가능성이 커진다. 아주 조금만 더 그렇게 하면 된다. 위 기사들은 모두 기자가 평소에 쓴 것이다. 당일 아이템을 당일이나 고작 며칠 지나서 조금 더 심층적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기자 개개인이 당일의 사안을 프리미엄 기사로 만드는 근육을 키워 나가는 게 요체다. 자기만 아는 정보로 단독이나 특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아는 정보로 자기만의 기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후자가 진정한 차별화이며 유료화에 더 요긴할 것이다.
1) 박재영(2020), 《뉴스 스토리: 내러티브 기사의 작법과 효과》, 이채, 265쪽; 박재영(2025), 《좋은 기사의 스토리텔링》, 이채, 27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