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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일본에도 출입처 제도가 있어서 언론사는 기관에 기자를 보내고, 기관은 기자실을 제공한다. 다만, 우리보다 출입처로 운용되는 기관이 적다. 더 큰 차이는 출입처에 나간 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우리 기자들은 출입처로 출근하고 거기서 퇴근할 정도로 출입처에 얽매여 있다. 과거 청와대 시절 한 출입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기사는 늘 수동적으로 생산됐고 리포트는 대통령이나 청와대 중심으로 썼다. … 종일 춘추관에 머물러야 했다. … 바깥 구경하기 힘든 날도 많았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2022a, 238쪽).
요즘도 그렇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쓴 기사의 문장은 대부분 ‘대통령’으로 시작한다. 문장의 주어가 대통령이며 내용은 그의 말이다. 장관이나 정치인 기사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이 직접 말하거나 보도자료에 적어놓은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다. 이런 보도가 정치부에 특히 심하다 보니, 정치인의 입을 좇는 데 지쳤다고 말하는 기자가 더러 있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를 거론하면 알레르기 반응이 날 텐데, 그래도 거기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
중요한 기사는 출입처 밖에 있다
한국 기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보았던 미국 기자는 이랬다.
“우리처럼 종일 기자실에 머물지 않는 점이 눈에 띄었다. 백악관 기자실엔 브리핑 시간에만 머물고 주로 외부에서 취재했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2022a, 238쪽).
이 외부는 백악관 건물 밖이라는 뜻인데, 미국의 백악관 출입 기자들이 정말로 밖으로 나가는지 의심스럽다. 이 의문을 워싱턴포스트의 백악관 담당 김승민 기자가 풀어준다.
“저는 백악관과 의회의 관계를 맡고 있어요. 저의 하루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의제들이 의회와의 관계 속에서 실현되거나 좌절되는 과정을 취재하는 겁니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2022a, 258쪽).
‘백악관과 의회의 관계’는 우리로 따지면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대통령실과 국회의 관계’를 취재한다는 것인데, 이게 뭔지는 잘 모른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여의도 국회로 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행정부의 의제가 실현되거나 좌절되는 과정’은 의제가 실현됐는지를 알아보는 것에 더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도 취재한다는 뜻이다. 이 대목은 우리에게 더 낯설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마약을 근절시키겠다’라고 말한다면, 대통령실 기자는 그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보도하면 그만이지 그 말이 실현되는지를 알아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결국 실현됐거나 좌절됐다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를 알아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의회와의 관계나 의제의 실현 여부를 보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일단 차치하고, 그걸 보도하려고 미국 기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다. 다시, 김승민 기자의 조언이다.
“좋은 기사를 쓰려면 출입처에 매몰되면 안 됩니다. … 매일 만나는 당국자를 찾아서 내가 이러이러한 기사를 쓰려는데 정보를 좀 달라, 이러면 안 됩니다. 밖으로 나와서 그들이 교류하는 대상을 직접 찾아가야 해요. 이익 집단이나 의회, 그리고 정치 연구기관 같은 곳들이죠. 거기서 진짜 중요한 기사들이 나옵니다.”1)
이 말은 미국 기사에서 그대로 입증된다. 미국 신문의 대통령·정치 기사는 취재원이 많고, 더 중요하게는 취재원이 다양하다(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2022a, 2022b). 사람의 직업이나 분야 및 자료의 종류로 구분했을 때, 조금 과장하면 미국 신문의 취재원은 셀 수 없이 많다. 심지어 일반 시민이 신문의 대통령 기사에 취재원으로 자주 등장한다. 방송 뉴스도 마찬가지여서, 대통령선거 보도임에도 KBS에서는 뉴스리포트 10개쯤 시청해야 겨우 시민 한 명이 나오지만, BBC에는 뉴스리포트마다 시민이 한두 명 나온다(박성호, 2017). 대통령과 국회를 담당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거리로, 아파트로, 사무실과 작업실로 찾아가서 시민을 만나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훌륭한 백악관 출입 기자 누구한테 물어봐도 이런 답을 얻을 겁니다. 현 정부 말고 이전 정권에서도 꾸준하게 백악관을 제대로 취재하는 원칙은 한 가지, ‘밖에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승민 기자의 이 말을 미국의 여러 기자가 똑같이 되풀이한다(좋은 저널리즘 연구회, 2022a, 195쪽 참조).
“다른 곳에서 정보를 먼저 구하라.” (뉴욕타임스, 피터 베이커)
“밖에서 백악관 안으로 가져올 것” (로이터통신, 카렌 보한)
“실제 기삿거리는 밖에서 찾은 후 백악관으로 돌아가 확인을 요청하고 그들의 반응을 보라.” (폴리티코, 조쉬 거슈타인)
사실 검증의 다른 말, 진실
한국 기자는 출입처 안에 있고 미국 기자는 출입처 밖에 있다. 이 차이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누군가가 이러쿵저러쿵하거나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팩트(fact)다. 아니, 팩트일 뿐이다. 출입처 사람들의 미사여구나 보도자료에 적힌 장밋빛 계획도 팩트일 뿐이다. 실제가 그러한지 또는 그 말이 그대로 실천될지는 알 수 없다. ‘대통령의 말’이 있고, ‘그 말이 참인가?’가 있다. 전자는 사실(fact)이고 후자는 진실(truth)이다. 둘은 전혀 다르다. 사실은 출입처에서 얻을 수 있지만, 진실은 구할 수 없다. 출입처는 사실을 말해줄지 몰라도, 진실은 알더라도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출입처는 자기 유리한 말만 한다. 그래서 출입처 안에서 들쑤시기보다 출입처 밖에서 죄어가야 한다.
출입처 안에는 사실이 있고 진실은 출입처 밖에 있다. 한국 기자는 출입처 안에서 사실에 충실하며 미국 기자는 출입처 밖에서 진실에 충실하다. 이 차이의 근원에 한국 기자들의 팩트 지상주의가 있다. 기자들은 말끝마다 ‘팩트, 팩트!’라고 외치는 바람에 진실 감각이 무뎌졌으며 사실 보도를 저널리즘의 전부로 착각하게 됐다. 기자들이 신봉하는 팩트는 원래 ‘사실 검증(fact verification)’인데, 사실을 확인하는 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검증하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면 그 워딩(wording)을 정확하게 확인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말이 얼마나 참인지 검증하라는 뜻이다. 영어 두 단어 중에서 핵심은 ‘검증’인데 우리는 그만 ‘사실’에 꽂혀버렸다. 사실 검증의 다른 말이 곧 진실이다.
불신의 시대, 주장의 시대에 진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의 저자들은 진실을 제1원칙으로 꼽았다(Kovach & Rosenstiel, 2021). 저자들은 웅변한다. 사실을 진실하게 보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사실에 대한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원래 정확한 사실 보도는 저널리즘의 목표가 아니다. 사실을 기자보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알려줄 사람이 예전보다 더 많아진 요즘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가식과 왜곡, 궤변이 판치는 혹세무민의 시대에 기자와 선동가는 어떻게 다른가? 저널리즘과 여타의 정보제공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또한,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정보 전달을 매개하는 독점적 지위가 사라진 현실이 저널리즘의 품질을 고급화하는 기회라고 했다. 기자들이 출입처 밖으로 나가는 것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단번에 출입처를 도외시할 필요는 없다. 미국 언론사도 당번을 정해 매일 한 명은 백악관을 지킨다. 물론, 미국 언론은 기본적으로 출입처 사람들의 어지간한 발언이나 보도자료는 뉴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출입처에 별 비중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과 달라서 곧장 미국식으로 바꿀 수 없다. 다만, 한 명이라도 밖으로 나가고 나머지 기자는 출입처를 지키는 실험과 연습을 해볼 수 있다. 혼자서 출입처를 맡고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밖으로 나가볼 수 있을 것이다. 출입처에서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지만, 출입처 밖으로 나가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
사실을 좇는 이류 기자나 삼류 유튜버가 있고, 진실을 캐는 일류 기자가 있다. 일류 기자가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무기는 사실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작업, 즉 검증이다. 기자는 그렇게 자신의 경계(boundary)를 명확하게 설정할 줄 알아야 한다. 출입처의 발표 내용, 유력 인사의 자극적인 말은 사실일 뿐이다. 그 진위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 곧 진실 찾기다.
1) 오종수, <[여성 언론인 대담] "한인으로서 큰 책임감" 워싱턴포스트 백악관 출입기자, 김승민>, VOA, 2021.4.1, https://www.voakorea.com/a/episode_seung-min-kim-257616/602722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