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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방송에 광고가 붙어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창작 측면에서도 광고와 드라마는 서로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광고와 드라마는 오랫동안 친인척 관계였다. 미국의 전설적인 광고인 레오 버넷(Leo Burnett, 1891~1971)은 모든 상품마다 나름의 독특한 극적인 요소가 들어있는데, 상품의 내재적 드라마(inherent drama)를 발견하는 것이 광고의 요체라고 주장했다.1) 광고인은 상품만이 갖는 고유한 이야기를 찾아내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광고와 드라마는 이처럼 이야기 구조를 중시한다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그래서 광고를 가리켜 ‘15초의 드라마’라고 하며, 텔레비전 광고 아이디어를 그려놓은 얼개를 ‘이야기판(story board)’이라고 부른다. 브랜드 스토리를 흥미롭게 만들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광고인들은 어쩌면 이야기를 파는 비즈니스맨에 가깝다. 광고와 드라마가 친인척 관계로 만나는 친연성(親緣性)을 찾아가 보자.
드라마를 차용한 광고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형식의 광고로는 단연 대우전자의 ‘신대우가족’ 캠페인을 꼽는다. 그전에도 오리온의 투유 초콜릿 광고나 해태음료의 크리미 광고를 3~4편 만들었지만 10편 이상의 드라마 광고는 신대우가족 캠페인이 처음이었다. 이 캠페인의 핵심 아이디어는 대우전자를 상징하는 가상의 가족을 설정해 대우전자 제품을 가족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데 있었다. 이 캠페인은 제1편인 프롤로그(1991.8.31~9.13)로 시작해서 제13편인 결혼식(1992.2.22~3.13)에 이르기까지 6개월 넘게 방영됐다.2) 극본은 신달자 시인이 쓰고 연출은 이장호 감독이 맡았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광고회사 코래드의 백승화 기획자와 최진수 PD가 주도했다. 어쨌든 대우전자의 신대우가족 캠페인은 가족 간에 벌어지는 일화 속에 가전제품을 친숙하게 소개함으로써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대우전자 광고 ‘신대우가족’ 캠페인(1991~1992) <출처 - 필자 제공>
최근의 광고에서도 드라마는 단골 소재로 차용됐다. 버거킹 광고 ‘사딸라’ 편(2019)은 SBS의 드라마 <야인시대>(2002~2003)에 상당한 빚을 졌다. 드라마에서는 김두한(김영철 분)이 미군과 협상할 때 ‘사딸라’를 고집해 결국 목적을 달성해 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지금도 밈(meme, 유행어나 행동을 모방해 만든 사진이나 영상)이나 짤방(잘림 방지용 사진)으로 활용되고 인터넷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광고 창작자들은 밈과 짤방을 좋아하는 세태에 주목한 끝에 ‘사딸라’를 16년 만에 소환했다.
배우 김영철이 버거킹 매장에 들어가 직원에게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는 장면에서 광고가 시작된다. 직원이 “세트 하시면 가격은” 하며 가격을 안내하자, 김영철이 다짜고짜로 “사딸라”를 주장한다. “사딸라!”, “이거 세트 메뉴인데!”, “사딸라!”, “이러시면 안 돼요.” 막무가내로 4달러를 주장하는 김영철의 위세에 눌려 직원은 지쳐 포기해버린다. “그럼, 4,900원으로 하시죠!”, “오케이, 땡큐!” 계속 4달러를 외친 끝에 원하는 대로 협상을 마무리하는 유쾌한 내용이다. 종일 세트 가격을 설명하는 “올데이킹(ALL DAY KING) 4,900원”이라는 장면에서 끝나는가 싶었더니, 다시 김영철이 나와 “1,000원만 추가하면 패티가 2장!”이라고 외치며 광고가 마무리된다.

버거킹 광고 ‘사딸라’ 편(2019 출처 - 필자 제공>
이 광고는 드라마의 협상 장면을 패러디했다. ‘사딸라’ 는 <야인시대> 이후 김두한식의 협상이라는 유머 코드로 인기를 끌었다. 광고 창작자들은 누리꾼이 좋아하는 웃음 코드에 착안해, 고객이 직접 가격을 흥정해 햄버거를 산다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드라마 속의 대사와 황토색 의상을 광고에서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패러디의 의도를 기탄없이 드러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간과 가격에 햄버거를 판다는 광고 메시지를 드라마의 ‘사딸라’ 장면에 투영한 셈이다. 이 광고가 노출된 다음부터 올데이킹의 매출은 50~70%까지 상승했다.
JTBC의 드라마 <스카이캐슬>(2018.11.~2019.2.)의 명장면이나 배우들의 대사도 여러 광고에 차용됐다. 이 드라마의 배우들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두가 광고 모델로 활약했다. <스카이캐슬>의 아역 배우 오아린과 코디네이터 김서형이 출연한 바디프랜드 하이키 광고 ‘큰 사람’ 편(2019)을 보자. ‘높은(high)’과 ‘키(key)’의 합성어인 하이키는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용 안마의자 브랜드다. 오아린이 인상을 찌푸리는 장면에서 광고가 시작된다. 책상 옆에 어른 두 명이 시중들고 서 있다. “내가 이 나라의 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방법을 가져오란 말이야.” 화내는 오아린의 표정이 깜찍하다. 이때 코디네이터 김서형이 등장해 드라마에서처럼 냉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하이키를 믿으셔야 합니다. 하이키는 쑥쑥 모드와 브레인 마사지로 가능성을 키워주는 성장기 청소년의 안마 의자입니다. 큰 사람이 되세요.”

광고를 차용한 드라마
광고는 종종 드라마의 소재로도 활용됐다.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매드맨(Mad Men) 시즌 7>(2013)에서는 광고 프레젠테이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드라마는 유명한 광고 제작자의 일과 사랑 그리고 권력욕을 그려냈는데, 2007년의 시즌 1부터 시작해서 2015년에 시즌 7로 끝날 때까지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할 정도로 수작이었다. 핵심 내용은 1960년대 뉴욕의 매디슨가에 밀집된 광고회사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광고회사 스털링쿠퍼드레이퍼프라이스(Sterling Cooper Draper Pryce)의 광고 기획자인 돈 드레이퍼(Don Draper)의 성공 욕구와 내적 방황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매드맨> 시즌6에서 돈 드레이퍼의 프레젠테이션 장면(2013) <출처 - 필자 제공>
2013년에 방영된 <매드맨>의 시즌 6에서 돈 드레이퍼(존 햄 분)는 하인즈 경영진을 대상으로 하인즈 케첩(Heinz Ketchup)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프레젠테이션의 핵심 아이디어는 제품 패키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돈 드레이퍼는 광고에서 제품을 보여주지 않고 “하인즈 좀 건네줘(Pass The Heinz)”라는 헤드라인만으로 제품을 떠올리게 하자고 제안한다. 다 보여주지 않고 여운을 남겨야 오히려 소비자들이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 전략의 요체였다. 하지만 경영진들은 그의 제안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버린다.
그는 광고주의 제품을 기억하는 데 기여하는 최고의 것은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소비자의 상상이라고 주장한다. 상상은 예산의 규모나 시간 제약도 받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의 상상 공간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온종일 광고를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케첩을 보지 않아도 온종일 케첩을 생각하게 되겠죠(You’re going to be thinking about ketchup all day, and you didn’t even see it).” 그는 마지막까지 이렇게 말하며 광고 아이디어를 설명하지만 광고주를 설득하는데 끝내 실패한다. 여기까지가 드라마에서 구성한 프레젠테이션 상황이다.
그 후 하인즈 케첩은 드라마에서 50년 전에 광고주가 거절했던 아이디어를 2017년에 다시 되살려냈다. <매드맨> 10주년을 기념해 드라마에서 승인받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되살려 치즈버거, 프렌치프라이, 스테이크를 소재로 세 편의 인쇄 광고를 만들어 뉴욕포스트에 신문 광고를 게재했다.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잊힌 광고 아이디어의 부활을 알렸다.3) 광고에 제품은 보여주지 않고 “하인즈 좀 건네줘(Pass The Heinz)”라는 헤드라인만 썼다. <매드맨>의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제시했던 것과 똑같은 광고다. 드라마에 제품을 협찬해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노출하는 것이 제품 배치(PPL)인데, 이 광고에서는 드라마에서 구성한 상황을 실제 광고로 부활시킨 역사상 최초의 역PPL(reversed PPL)을 시도했다. 여러 광고 전문지에서는 그동안의 하인즈 캠페인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캠페인이라고 평가했다.
하인즈 케첩 광고 ‘치즈버거’ 편, ‘프렌치프라이’ 편, ‘스테이크’ 편 (2017)
국내에서도 KBS2의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2013.2.4~3.26)에서 그림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통영시 출신의 이태백이 지방대 중퇴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광고인으로 성공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시각화의 천재이자 강력한 정신력의 소유자인 이태백(진구 분), 금산애드 강한철 대표의 외동아들로서 탁월한 전략가인 애디 강(조현재 분), 언어 감각이 뛰어난 카피라이터인 백지윤(박하선 분), 미국의 명문 광고학교 출신으로서 금산애드의 광고 기획자인 고아리(한채영 분)가 출연해 광고회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광고인을 꿈꾸는 태백은 경력이 일천해 면접시험을 볼 때마다 실패한다. 결국 작은 간판 업체에 입사한 태백은 금산애드의 옥외광고물 시안을 무시한 채 자기 뜻대로 설치하다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자 금산애드의 인턴 사원인 백지윤은 당황해하며 태백을 돕기 위해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선다. 최고의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지윤은 실제로는 대기업으로 유명한 BK그룹 백회장(장용 분)의 딸이지만, 카피라이터의 꿈을 실현하려고 힘든 인턴 생활을 피하지 않는다. 그녀는 부잣집 딸이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꿈을 이뤄가는 도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후 태백은 지윤과 가까워지려고 BK애드에 입사한다. 그러나 애디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던 그녀는 마음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자 태백은 지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이처럼 <광고천재 이태백>에서는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사랑 이야기를 적절하게 버무려 광고업계의 치열한 면모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광고인의 세계를 너무 낭만적으로 묘사한 측면도 있다. 광고를 소재로 활용한 드라마에서 광고 현장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리면 현실과 동떨어지므로 수위 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드라마다.
KBS2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여러 장면들(2013) <출처 - 필자 제공>
퍼블리시티권 침해 없는지 살펴야
광고에서 이야기의 구성력이 중요해지자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드라마형 광고에서도 화자(話者)가 누구이며 어떤 시점에서 스토리를 구성했는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4) 광고 모델은 드라마 속의 화자를 흉내 내기 때문에, 동일인이 광고와 드라마에 동시에 출연하지 않는 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퍼블리시티권이란 성명, 초상, 목소리, 이미지, 캐릭터 같은 개인의 인격적인 요소가 만드는 재산적 가치를 허락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다.
따라서 퍼블리시티권의 핵심은 상업적 이용의 허락 여부와 인격권의 침해 여부에 달려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인격권 침해와 관련되는 핵심 주제인 공인(公人)의 개념에 대해 법원과 언론과 국민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연예인이 공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견해도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현실이라고 보고했다. 따라서 광고와 드라마의 친연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선을 넘지 않으려는 정교한 판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페이스샵을 카톡플친으로 들이셔야 합니다.”(더페이스샵), “어머님!! 쏠리치 자산관리를 폰에 들이십시오!!”(신한은행), “어머님, 이너주스 푸룬을 전적으로 화장실에 들이십시오.”(이너주스). 이처럼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서형 씨의 대사를 따온 광고 카피가 두루 차용되고 있다. “어머님, 〇〇를 집에 들이십시오”나 “그렇다면 전적으로 〇〇를 믿으셔야 합니다”와 같은 드라마의 명대사가 상업적 용도로 쓰이면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광고 창작자들이 정당한 저작권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배우의 얼굴이나 드라마의 대사를 차용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전에 인격권 사용에 대한 이용 허락을 얻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법원에서는 아직 이 문제에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다. 한 문장 정도의 차용은 저작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고, 일상생활에서 유사한 표현이 자주 사용될 경우 저작성이 부인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광고와 드라마 사이에서 퍼블리시티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차용하고 싶을 때마다 광고 창작자들이 퍼블리시티권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 Leo Burnett, 《Confessions of an Advertising Man》, Chicago, IL: Leo Burnett Company, p.77, 1961.
2) 백승화, 《국내 최초 본격 연속극 형태의 드라마 CM ‘신대우 가족’ 캠페인》, 광고학연구3, 83-93쪽, 1992.
3) Tim Nudd, <50 Years Later, Heinz Approves Don Draper’s ‘Pass the Heinz’ Ads and Is Actually Running Them-Joint effort between David Miami and Sterling Cooper Draper Pryce>, ADWEEK, 2017.3.13,
4) Mulvey, M. S. & Stern, B. B.,
5) 이재진, <공인의 정의>, 《언론과 공인》, 한양대학교 출판부, 13-26쪽, 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