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 상세
[미디어 월드 와이드] 독일
미디어월드와이드 | 등록일 : 2020-04-29

 


 

이동의 자유는 없을지언정 개인정보 보호는 포기할 수 없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독일의 외출 자제 및 셧다운(Shut Down) 조치를 보며 느낀 아이러니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2월 말부터 독일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의 대처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 특히 이동 금지나 영업 금지 없이 디지털 기술로 접근 가능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확진자와 접촉자를 통제하는 부문이 흥미롭게 다뤄졌다. 물론 독일 등 유럽연합 내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라는 평가가 늘 뒤따랐다. 휴대전화 기록, 카드 사용 기록과 CCTV를 통해 확진자의 이동 정보를 전방위적으로 파악하는 건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영업 금지, 외출 자제령 등을 통해 신체적인 이동을 제한했다. 이들에게 개인정보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도대체 어떤 조치가 더 강력하고 비민주적인 것일까. 코로나19 확산을 둘러싼 독일의 개인정보 보호 논란을 짚어봤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도입 실패, 블루투스 앱 추진 

옌스 슈판(Jens Spahn) 연방보건부 장관은 지난 323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기관 지원법과 감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위한 규정을 넣고자 했다. 한국식 확진자 경로 추적 방식이 현지에서 많이 보도된 이후다. 하지만 이 안은 정치권 안팎으로 강한 비판에 부딪혀 결국 최종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크리스틴 람브레히트(Christine Lambrecht) 법무장관까지 이동통신 정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유용한 정보가 아니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슈판 장관은 이 안이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빠르게 결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인터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휴대전화 정보 활용의 필요성을 계속 언급했다.

일주일 뒤인 330, 연방정부는 다시 신규 확진자 조사를 위해서 스마트폰 앱 활용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제한 조치, 즉 영업 중지나 접촉 제한 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활용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독일이 준비하고 있는 앱은 통화 기록이나 위치 정보가 아니라 블루투스를 이용한 것이다. 절차는 이렇다. 앱을 설치하면 개인정보 확인이 불가능한 무작위 코드가 생성된다. 앱이 설치된 휴대전화 소지자들이 서로 근접하면 블루투스를 통해서 서로의 기기에 저장된다. 만약 확진자가 나오면 이 코드를 통해 접촉자를 찾게 되며, 접촉자 또한 감염자의 신상을 알 수 없는 구조다. GPS처럼 제삼자가 위치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블루투스 신호가 잡힐 정도로 근접 접촉한 당사자들끼리 익명으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앞서 보건당국의 개인정보 활용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법무부는 앱 설치가 자율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옌스 슈판 연방보건부 장관 ©연합뉴스

 

 

독일 정부의 블루투스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독일 국영방송인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의 마르셀 퓌어스테나우(Marcel Fürstenau) 기자는 적절하고 효과가 보장된 현대 기술을 활용하는 걸 금기시해선 안 된다면서도 접촉자를 빠짐없이 찾아내기 위해서는 접촉자 모두가 이 앱을 설치해야 한다. 2018년 말 기준으로 휴대전화 소지자는 전체 인구의 5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 누구도 앱 설치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앱 설치가 가능한 휴대전화 미소유자도 많은데, 이 또한 대부분 코로나19 위험군으로 꼽히는 노년층이다. 더군다나 앱 설치를 강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실제로 이 앱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한 것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주의 개인정보보호위임관인 슈테판 브링크(Stefan Brink)와 클라리사 헨닝(Clarissa Henning)넷츠폴리틱(Netzpolitik)’의 기고문1)을 통해 연방정부의 대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브링크와 헨닝은 연방정부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요구에 디지털 기술을 꺼내 들었다면서 우리는 디지털 기술로도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다. 그런데도 (디지털 기술로)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먼저 디지털 기술의 불완전성을 지적한다. GPS 위치 추적은 위아래 공간, 벽으로 구분된 안전한 공간 등에 대한 정보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감염경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블루투스 또한 환경에 따라서 신호가 1m에서 100m까지도 도달하고, 신호의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에 감염 위험성을 정확하게 명시해주지 않는다. 브링크와 헨닝은 이 모든 조치가 결국은 연방정부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앱 설치의 자율성에 관한 부분이다. 그들은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재무장관이 이미 국민의 거의 100%가 이 앱을 설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는데, 이 기대 자체가 이미 국민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그 이면에는 앱 설치는 외출 및 접촉 자제령 완화를 위한 조건으로 그렇지 않을 때에는 여전히 국가적인 강제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의 질병관리본부 격인 로버트코흐연구소(RKI, Robert Koch Institut)는 최근 코로나-데이터 기부(Corona-Datenspende)’라는 이름의 앱을 공개했다. 앞서 언급한 확진자 및 접촉자 용도는 아니며, 스마트워치 등을 통해 시민의 이동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려는 목적이다. 코로나19 경로 추적을 위한 본격적인 앱 출시 전 사용자들의 반응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데이터 기부라는 이름에서 개인정보 보호 논란을 의식한 독일의 조심스러운 접근이 느껴진다.

 

격리자 목록 경찰에 넘겨 비판 받은 보건당국

일부 주정부에서는 보건 당국이 코로나 격리자 목록을 경찰에 전달했다가 위법 논란에 직면하기도 했다. 독일의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주마다 독립적인 지위로 활동하는 개인정보보호위임관들과 주정부의 입장이 부딪히고 있다.

43일 자 넷츠폴리틱 보도2)에 따르면 니더작센(Niedersachsen)주 관내 경찰서 두 곳이 보건당국으로부터 확진자 명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당국은 경찰 내부적으로만 활용할 목적으로 명단을 전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주정부 개인정보보호위임관이 함께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버라 틸(Barbara Thiel) 개인정보보호위임관은 주정부의 입장을 부인했다.

니더작센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43일 주정부 보건부가 코로나 확진자 정보를 경찰에 전달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금지했다. 위원회 측은 명단을 넘기는 일은 부적절하고, 정보 보호에 위반되며 의료진의 비밀 유지 의무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 정보가 단순히 경찰 내부적으로 보호조치를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격리 위반 시 처벌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정부 개인정보보호위임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격리자나 확진자 명단이 계속 전달됐다. 개인정보보호위임관은 금지조치를 권고할 수 있을 뿐 실행할 권한은 없다. 이에 야당 정치인들은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정보 전달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개인정보보호위임관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독일 개인정보보호연합(DVD, Deutsche Vereinigung für Datenschutz) 이사진인 법률가 틸로 바이허르트(Thilo Weichert)개인정보를 경찰에 넘겨준 것은 의료진들의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면서 니더작센주 격리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주정부를 상대로 고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안은 격리자나 확진자의 개인정보를 대중에 공개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기관 내부에서도 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문제를 두고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기본권을 다루는 독일의 무거운 인식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것은 디지털 기술이 아닌 백신

독일 개인정보보호법의 대상은 정보의 자기결정권(Informationelle Selbstbestimmung)’으로 개인이 자기 정보의 수집, 저장, 활용, 전달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기본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연방헌법재판소가 인격권과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권리라고 판결한 이후 기본권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가의 정보 수집 및 활용을 통한 기본권의 침해는 공공의 이익이 압도적일 경우에만 허용되며,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독일은 세계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처음으로 제정해, 이에 대해 자부심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70년 독일 헤센(Hessen)주에서 처음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했다. 전자로 처리되는 정보 보호와 이를 위해 독립적인 관리기구인 정보보호위임관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후 헤센주 법안을 바탕으로 독일 주정부가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했으며, 19771월에는 독일연방 차원의 개인정보보호법(BDSG, Bundesdatenschutzgesetz)이 통과됐다. 선도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을 갖추고 있던 독일은 유럽연합 차원의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 독일은 다른 유럽연합 가입국과 마찬가지로 20164월 제정된 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규정을 따르고 있다. 이 법에 기반해 독일 연방정부는 물론 모든 주정부가 독립적인 지위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Datenschutzaufsichtsbehörde)와 위임관을 두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자의 개인정보 처리 문제, 최근의 통신정보 활용 등 논란과 맞물려 지난 43일 개인정보보호기본원칙(Datenschutz-Grundsätze bei der Bewältigung der Corona-Pandemie)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정보의 자기결정권은 시민들의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적절한 때에만 제한할 수 있다면서 제한 규정은 되돌릴 수 있고 일시적이고 입법적 절차가 뒷받침되고 행정부가 단독으로 시행해서는 안 되며 제한 목적이 사라졌을 경우 개인정보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빠르고 강력한 조처를 하지 못하는 유럽권 나라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많다. 그렇다고 개인정보 보호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결정이 쉽게 이뤄져서도 안 된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개인정보보호위임관의 말은 기본권 제한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로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다. 그런데도 (디지털 기술로) 자유주의적 법치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건 결국 백신이다.

 

 

 

1) https://netzpolitik.org/2020/warum-freiwilliges-handy-tracking-nicht-funktioniert/

2) https://netzpolitik.org/2020/coronavirus-listen-der-niedersaechsischen-polizei-sind-illegal/

저자의 다른 미디어
  • 필자 : 이유진
  • 소속 :
  • 직함 :
  • 발행 : 2020-04-29
  • 조회수 : 7
  • 키워드 :
블로그 공유 트위터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