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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4월은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최대 개편 시기다. 예년 같으면 봄 개편으로 방송계의 분위기가 고조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위기감만 고조되고 있다. 3월 말, 일본을 대표하는 코미디언 시무라 켄의 사망을 시작으로 연예인과 방송 관계자들의 감염 소식이 잇따라 방송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은 전국에 긴급 사태를 발령해 외출 자제와 재택근무 등을 요청했다. NHK와 민영방송사들은 4월부터 뉴스와 시사 정보 프로그램을 제외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녹화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TV도쿄는 재택근무를 강화해 평소의 20% 정도만 출근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봄 개편 시기에 재방송 줄줄이
수도권 지역에 긴급 사태가 발령된 4월 초부터 방송국은 촬영 중단에 들어갔다.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의 감염 위험 때문이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은 '재고가 소진됐다'는 신선한 표현의 자막으로 촬영 중단을 알렸다. 촬영 중단에 들어간 프로그램들은 과거 방송분을 요약해 재편집한 ‘총집편(総集編)’ 방식으로 임시변통을 하고 있다.
드라마의 경우, 각 방송국들은 4월 방송 예정이었던 신작 드라마를 줄줄이 연기했다. 과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의 속편으로 기대를 받던 <한자와 나오키>(TBS)와 <파견의 품격>(니혼TV)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게 된 시간대는 <하루코의 이야기 파견의 품격 2007 특별편>(니혼TV, 2007년 작품), <시타마치 로케트 특별 총집편>(TBS, 2015년 작품), <노부타를 프로듀스 특별편>(니혼TV, 2005년 작품) 등, 과거 인기 드라마를 편집해 재방송하고 있다.

4월 개편 신작 드라마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한자와 나오키>는 코로나19로 제작이 중단됨에 따라 방송 시작을 당분간 연기했다. <출처 - TBS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일부 예정대로 방송을 시작한 드라마도 방송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로 편성되는 골든타임(오후 7~10시)과 프라임타임(오후 7~11시)대가 재방송으로 메워지는 이례적인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방송사들의 봄 프로그램 개편이 연기돼 아쉬워했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송사의 결정을 이해하는 분위기다. SNS에 ‘#재방송 희망 드라마’라는 투고가 화제가 될 정도로 과거 명작 드라마를 재방송해주기를 기대하는 시청자들도 많다. 문제는 재방송도 간단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재방송을 위해서는 스폰서 및 출연자 소속사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애니메이션도 성우들의 녹음에 지장이 생겨 재방송으로 전환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림픽도 연기돼 관련 특별 방송과 경기중계로 편성해 둔 시간대가 대거 공백이 됐다. 모든 방송사들이 대규모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원격 출연’ 확산
뉴스나 시사 정보 프로그램은 매일 촬영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로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는 더 높아졌다. 방송국들은 이에 ‘원격 출연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방송 출연자들을 자택이나 외부에서 중계로 연결하는 것이다. 평소 진행자와 아나운서 외에 다섯 명 정도의 해설자가 일렬로 나란히 앉아 진행되는 아침 와이드 쇼 <슷키리>(니혼TV)는 최소한의 인원만 스튜디오에 출연하고 해설자들은 별실에서 원격으로 출연하도록 변경했다. TBS 뉴스방송인
시라카와 도고(白河 桃子) 쇼와여자대 객원교수는 원격 출연 등의 거리두기는 해외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며 3월 말부터 겨우 움직임을 보인 일본 방송국들의 늦깎이 대응을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시라카와 교수는 “지금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다는 것을 TV 화면에 나타나는 ‘변화’로 시청자들에게 전할 수 있다"며, "캐스터나 전문가가 아무리 심각한 얼굴로 말해도 화면이 평소와 같다면 전해지지 않는다. 방송이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TV아사히의 경우, 뉴스 방송인 <보도스테이션?의 메인 캐스터가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스태프들도 감염돼 해당 방송의 스태프 전원을 자택에 대기시켰고 이로 인해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국민들에게 감염 예방을 외쳐온 방송국인만큼, 보다 철저한 대응이 있어야 했다.
현재는 많은 프로그램에서 원격 출연 방식을 도입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의 원격 출연을 새로운 연출법으로 동원해 재미있는 방송 만들기 경쟁에 돌입한 듯하다. 지금까지 방송된 영상과 미공개 영상을 보면서 자택으로 화상전화를 연결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화질이 좋지 않거나, 음성이 끊기는 등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그런 와중에 니혼TV의 몇몇 프로그램은 기술상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해 시청자를 흥미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요일 저녁 간판 예능 프로그램 <세계 끝까지 잇테Q!>는 스튜디오 녹화에 진행자 한 명만 참가하고 나머지 출연자들은 전화 연결로 출연하고 있다. 전화로는 서로의 음성만 전달되지만 토크 모습을 단순히 자막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TV 화면에 대화 내용이 메신저 라인의 그룹 채팅처럼 나오도록 맛깔나게 표현한다. 또한 세간의 궁금증을 조사한 VTR을 보면서 유명 MC 두 명이 진행하는 월요일 새벽 예능 프로그램 <게츠요카라 요후카시>는 4월 13일 방송부터 스튜디오 녹화를 무관객, 무스태프에 MC들의 음성만으로 진행하고 있다. 5월 4일 방송에서는 과거 VTR 재방송이 아닌, 그동안 소개된 인물들의 최근 근황을 영상통화로 취재한 VTR을 방송하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
하야카와 히로시(早河洋) TV아사히 회장은 3월 31일 정례회견에서 “코로나 19는 리먼 쇼크에 필적할 정도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이에 대한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일본이 경기후퇴 국면에 들어서면 지난해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저조한 TV 광고 시장1)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고, 내년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TV 광고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생산 라인이 멈춰 제조업체의 광고 출고량이 감소했는데, 특히 자동차 광고는 2월 20일~3월 19일 시기 3,789회에 그쳐 전년도(5,745회)에 비해 크게 줄었다. 또 일반적으로 봄 개편 시기인 4월 1일에는 평균 약 130개의 새 광고가 방영되지만 올해는 78건으로, 2001년 통계를 시작한 이래 최소치를 기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국적인 외출 자제로 TV 시청률이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이다. 일본 시청률 조사기관인 비디오리서치가 4월 23일에 발표한 조사2)에 의하면 TV 총 세대 시청률(관동지역 6~24시)은 2월 25일경부터 전년도를 웃돌기 시작해, 도쿄의 외출자제령 직후인 3월 28일 이후로는 전년도를 크게 웃돌고 있다. TV 시청량(오전6~24시 주간 평균, 관동 지역) 가운데 특히 증가 폭이 큰 세대로는 13~19세 남녀, 20~34세와 35~49세 남성이었는데, 150% 이상 증가했다. 주목할 점은 13~19세 남녀의 TV 시청 증가다. 이들은 모바일 세대로 TV를 보지 않는 세대, 이른바 일본에서 말하는 ‘탈TV’ 세대다. 코로나19로 휴교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젊은 층이 TV를 보게 된 것은 탈TV로 고민하던 방송업계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청률이 증가하는데도 촬영 중단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될 전망이다.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각 방송국의 노력에 귀추가 주목된다.
1)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가 발표한 <2019년 일본 광고비>에 따르면 그동안 선두를 지키던 TV 광고비가 처음으로 인터넷 광고비에 밀려난 것으로 나타나 방송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2) 비디오리서치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른 TV 시청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2020년 4월 13일~14일에 수도권 거주자 6~69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조사를 실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