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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점검 - n번방 사건] 피의자 신상공개와 공익
집중점검 | 등록일 : 2020-06-01

 


 

강력 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많은 국민이 원하는 바다. 그러나 신상 공개 후 관행적으로 양산되는 언론 보도는 본래 의도를 퇴색시키고 있다. 피의자 신상 공개에 따른 기사들이 과연 공익 측면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n번방 사건 보도를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자들의 검거·수사 보도가 나오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민들이 뉴스 기사를 공유하고 공분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범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의 다양한 노력을 요구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다. 성폭력 범죄 보도에서 꾸준히 지적되던 문제들이 이번 보도에서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의자 신상 공개 보도가 핵심적 비판 대상이다.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500만 명이 넘는 동의가 있었던 것에서 잘 드러나듯, 이번 사건에서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매우 강력하게 조성됐다. 이에 따라 경찰이 신상 공개를 결정하고 언론이 범죄자의 신상 공개 관련 기사를 앞다퉈 생산했다. 그런데 이렇게 양산된 뉴스가 구태의연한 관행에 따라 작성되고 있어 오히려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시민단체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그간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솜방망이 판결을 내려온 사법부 규탄 집회를 열었다. ©뉴스1

 

 

신상 공개 통해 얻는 사회적 이득은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의 주범이자 최초로 검거된 조주빈의 신상을 가장 먼저 공개한 언론은 SBS였는데, 공개 시점 및 내용 적절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경찰이 ‘박사’ 조주빈의 신상 공개를 결정하기 전날, SBS는 2020년 3월 23일 공익 목적으로 ‘박사’의 이름과 개인 정보를 보도했다. 당시는 청와대 국민 청원을 비롯해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철저한 수사와 처벌 요구가 빗발치던 시점이므로, 언론의 신상 공개는 일반적 범죄 예방 효과 및 범죄 재발을 방지하는 공익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뉴스에서 피의자의 개인정보를 알린 데 그친 게 아니라, 주변인이 말하는 개인의 성격이나 사생활 정보 등 불필요한 내용이 보도된 데 있다. 이 보도 이후에도 다수 언론사가 주변인의 반응, 뉴스 댓글에 올라온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무차별적으로 기사 소재로 삼았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피의자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권리보다 강력 범죄 재발 방지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공익이 우선한다고 보는 입장에서 이뤄진다. 물론 이에 대한 논란 역시 존재한다. 강력 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는 수사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하며, 신상 공개의 범위가 광범위해 침해성이 높고, 재범 방지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강력 범죄자 신상 공개 제도 자체를 반대하기도 한다.1) 하지만 이런 문제점이 대체로 법・제도상 미비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세부 항목 예컨대 신상 공개의 방법을 구체화하고 공개 범위를 명확하게 하며 공개를 판단하고 시행하는 주체를 분명하게 하는 등 제도 개선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2) 한편 성범죄자 신상 공개 제도는 피의자 신상 공개와는 달리 법적 판결을 받은 사람의 신상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상 공개 관련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어떤 것이 있는가일 것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는 강력 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에 해당하는 것이며 경찰청이 밝힌 공익의 내용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 효과” 등이다. 

 

 


 

‘n번방’을 최초 개설해 운영한 ‘갓갓’ 문형욱 ©뉴스1 

 

반복되는 문제적 관행들

 

신상 공개의 형식이 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이뤄지고 관련 정보가 유포되기 때문에, 언론 보도는 이와 관련된 공적 담론을 설정하고 의제를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반복되는 문제적 관행이 있는데, 대표적인 유형은 피의자에 대한 주변 반응을 알아보고 선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놀라운 일이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0년 5월 13일 연합뉴스는 ‘갓갓’ 문형욱의 신상을 공개하며, “전 국민을 공분케 한 그는 놀랍게도 주변에선 ‘내성적이지만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서술한다.3) 피의자 연령대가 낮은 이번 범죄 사건의 특성상, 학업 관련 사항이 자주 보도 내용에 포함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미래보다 가해자의 미래가 더 중하게 고려돼 온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4) 성폭력 범죄의 판결에서 가해자의 반성이 중요한 감형 사유로 다뤄지며, 가해자가 과거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강조되면서 처벌이 약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피의자의 신상 정보가 단순히 이름이 아닌, 어떤 남성이었는지를 주목하고 알려주는 보도는 결국 감형 요소를 구성하는 데 기여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의 성실함이 소속 대학, 혹은 학업 성적 등으로 증명된다는 사고는 우리 사회의 성적 지상주의적 인성 평가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전문대 다닐 때 평점 4.17 우등생>5)과 같은 기사 제목을 볼 때, 해당 보도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피의자의 학업 성적이 좋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언론이 다뤄야 할 질문은 이처럼 입시 중심의 평가 구조가 성차별 구조를 강화하고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강력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일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그저 이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말할 뿐이다. 도대체 왜, 그리고 무엇이 놀라운 것인지, 누구의 놀라움인지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은 없다. 

 

사실 놀라움이란 관행적으로 범죄자가 ‘두 얼굴’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러한 양면성 강조는 범죄자의 일탈성, 악마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라는 비판 역시 꾸준히 있었다. 가해자를 악마로 묘사하는 것은 성범죄가 발생하는 성차별적 구조의 문제를 가리게 되며, 특정한 나쁜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한다.6) 이에 따라 범죄자 처벌이라는 법의 범위를 벗어나는 남성 중심 성 문화 비판, 성평등에 기초한 성교육 강화 등 장기적인 해결책을 공공 담론으로 논의하기 어려워진다.7)

 

또한, 신상 공개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문제 중 하나는 신상 공개가 통상 수사기관으로 들어갈 때 취재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짐에 따라 피의자의 변명이나 향후 재판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발언을 언론이 그대로 중개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조주빈은 신상 공개 시 성착취 피해자들이 아닌 유명 언론인과 정치인을 언급했고, 이에 따라 당일 온라인 공간이 성착취 범죄 문제가 아닌 유명 언론인 의혹으로 떠들썩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이러한 관행적 양식이 갖는 저널리즘적 가치는 무엇일까? 사실상 심층 취재가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고 범죄자의 한두 마디의 말을 그대로 중계하는 형태의 보도는 단순 중계이자 여론 동조일 뿐, 심층적이고 문제 해결적인 저널리즘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포털 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최근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렇듯 실시간 중계에 가까운 기사들은 상업적 목적으로 작성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특히 피의자의 말이나 피의자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제목에 인용해 클릭 유도 장치로 활용한다. 국민감정을 자극해 뉴스 소비자들이 뉴스를 읽고 댓글을 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말수 적고 평범”…‘갓갓’ 문형욱은 4년제 대학 건축학도>8) 등의 제목이나, <‘갓갓’ 문형욱, 돈 한 푼 안 챙겼다…“성적 취향이 범행 동기”>9) 등의 보도는 피의자의 성향에 대한 타인의 주관적 판단, 처벌을 줄여 보려는 피의자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부적절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피의자 신상 공개에서 공익으로 표현되는 국민의 ‘알 권리’는 시민이 주권자로 국정을 판단하기 위한 정보이자, 시민으로서 사회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관련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피의자의 사생활이나 개인에 대한 평가, 피의자의 변명이 포함되지는 않을 것이다. 피의자 신상 공개 시 주변인의 반응을 싣는 것, 신상 공개의 짧은 순간 한두 마디 말을 들어 실시간으로 이를 중계하려는 것이 저널리즘에서 공익적 가치를 갖는지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성범죄와 관련해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인식의 개선을 위한 정보를 널리 알리고 정부의 대응을 촉구할 수 있는 공적 담론 형성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해당 보도를 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저널리즘의 윤리와 성평등 인식은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1) 박찬걸·정광진,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대한 비판적 검토>.《형사정책》, 31(3), 33-55쪽, 2019.

2) 장재성,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의 법적  문제와 개선 방안>, 《한국경찰학회보》, 21(4), 193-216쪽, 2019.

3) 권준우, <대학생 ‘갓갓’의 두 얼굴…‘내성적이고 평범한 건축학도’>, 연합뉴스, 2020.5.13, https://www.yna.co.kr/view/AKR20200513135900061

4) 권김현영, <고통의 ‘무의미함’과 피해자화의 문제>. 여성신문. 2017.3.21,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2713

5) 신민재,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전문대 다닐 때 평점 4.17 우등생”>. 연합뉴스, 2020.3.24, https://www.yna.co.kr/view/AKR20200324066900065?input=1

6) 김은경·이나영, <성폭력, 누구에 대한 어떤 공포인가>, 《미디어, 젠더 & 문화》, 30(2), 5-38쪽, 2015. 

7) 양정혜, <뉴스 미디어가 재현하는 범죄현실 :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의 프레이밍>. 《언론과학연구》, 10(2), 343-379쪽, 2010. 

8) 박태근, <“말수 적고 평범”…‘갓갓’ 문형욱은 4년제 대학 건축학도>, 동아일보, 2020.5.13,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00513/101031991/2

9) 김정석, <‘갓갓’ 문형욱, 돈 한 푼 안 챙겼다...“성적 취향이 범행 동기”>, 중앙일보, 2020.5.14, https://news.joins.com/article/23776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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