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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은 정준희 교수가 2020년 4월부터 2023년 2월까지 34회 동안 41명(좌담회 1회 포함)의 사람들과 만나, 한국 저널리즘과 미디어 산업의 최신 의제를 짚어 내며 해당 주제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복합적으로 울리는 공론장을 만들어 왔던 《신문과방송》의 대표 연재물이다. 《신문과방송》이 만난 ‘마지막’ 사람은 정준희 교수 본인이다. 3년여간 이 만남을 주도하면서 느낀 소회와 어려움, 그리고 개인적 의미에 대한 정리를 출발점으로 해 우리 언론의 현재에 대한 정준희 교수의 의견,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그리고 《신문과방송》에 대한 평가까지 들어봤다.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의 의의는 무엇보다 해당 시점에서 꼭 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을 찾아, 시의적 의제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내는 공론장 역할을 한다는 것에 있었다.
“저는 인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의적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 (《신문과방송》의 기획과) 비슷한 문제의식들이 저널리즘계에 하나의 의제를 던져준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을 특정 인물의 입을 통해 한번 들어보는 기획이었다고 생각하고요. (…) 저는 일부러 주관적인 방식을 많이 택했거든요. 객관적으로 누군가가 물어보면 답을 쭉 해 주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제가 뭔가를 듣고 싶거나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거나 말하면 제일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을 선별했고(…) 제가 궁금한 것도 많이 풀어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제가 말하고 싶은 것도 사실은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통상적인 인터뷰나 대담의 정리 방식에서는 대담자의 사유와 목소리가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이와 같은 정준희 교수의 인터뷰 정리 방식은 분명 특별한 점이 있다. 이와 같은 틀은 《신문과방송》이라는 저널리즘과 미디어 산업을 다루는 월간지가 그 정체성에 맞게 짚어야 하는 이슈를 적절한 시점에서 제시하는 일종의 의제 설정 기능에 적합한 것이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의 특징과 의미에 대한 정준희 교수 스스로의 평가를 요청해 보았다.
“저는 일부러 도발한 면이 좀 있었어요. (…) 기존에 저널리스트들이 하는 인터뷰 방법에 익숙하신 분들이 보시기에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나’로 나오면 ‘왜 이렇게 자기 얘기를 많이 넣나’, ‘왜 이렇게 주관이 자꾸 드러나나’ 불편하셨을 수도 있는데, ‘논쟁도 좀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사실 좀 없지 않았어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의제 설정 측면들이 좀 강했고. 피하려고 했던 건 이분의 입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하는 거. (…) ‘역시 이런 의견이 있구나. 내 생각이 틀린 것만은 같지 않아’ 이런 것들을 관찰하면서, 저의 생각을 견주어보고, 또 새로 알게 되는 게 있으면 그것을 제 의제 안에 녹여내면서 (독자들의 입장에서) ‘이 사람이 이 영역에서 확실히 지켜봐야 될 사람이다. 꽤 큰 성취를 했어’라고 하는 생각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측면들이 좀 있었어요. 유의했던 한 가지는, 인터뷰를 하신 분들께 원고를 보여드렸어요. ‘혹시라도 잘못 옮긴 게 없느냐’, 그러니까 ‘제가 지나치게 생략해 버리거나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한 게 없느냐’(…)”
공론장에 던지고 싶었던 의제
시의적 주제를 공론장에 올리는 중요한 기능을 한 연재물이었지만, 여러 주변 환경과 사정으로 인해 다루지 못한 주제, 시기를 놓친 주제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4회의 연재 동안 다루지 못한 아쉬운 의제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했다.
“공영방송 문제가 제 전공 분야기도 하고, 상당한 논란의 주제인데, 공영방송 전임 사장을 다 만나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를 한번 들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게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 한번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공영방송 사장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을 거거든요. 무조건 도구로서 자신이 쓰이고 싶진 않았겠죠. 그런데 대부분 논란이 생겨서 물러나거나 또 아쉬움을 남기고 물러나거나 이렇게 되는데. 그게 임기 탓인지, 말 그대로 정파성 탓인지 아니면 공영방송 내부에 존재하는 진영 문제인지 그 이유를 그냥 솔직한 이야기로 좀 들어보고 싶었거든요. 그 안에서 보면 나름대로 공통분모도 찾아낼 수 있는 사실도 있고 해서.”
이는 개인적으로 다루고 싶었지만 다루지 못한 주제기도 하고, 《신문과방송》이라는 매체가 객관성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이 연재 형식 안에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언론사나 기관 내부 사정에 대한 허심탄회한 발화가 있었다고 해도 대담자 보호를 위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 필요했던 주제일 수도 있었다. 인터뷰에서 참여자들을 보호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면서도 정준희 교수가 공론장에 던지고 싶었던 의제들을 아우를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었는지 질문해 보았다.
“일단은 대담 형식으로 말을 되게 편하게 하는 것으로 했어요. 사전에 질문지도 안 드리고. (…) 제가 실제 질문을 많이 안 던졌어요. ‘내가 짐작한 게 맞았구나. 이분들이 할 말이 좀 있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최대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 그게 제가 인터뷰할 때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고요. (…) 자신들의 영역에서 그런 일들을 하는 걸 누군가가 알아봐 주고, 그게 업계에서 되게 중요한 문제라고 인정해 주는 게 그분들이 돌아가서 ‘내 일을 다시 잘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 측면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 혼자라고 생각하고 고립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좀 많아요. 숨겨진 목소리인 경우들도 좀 있었고, 근데 그게 혼자가 아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충분히 현재의 평가 시스템과는 다르게 인정할 만한 부분이라는 것을 격려하는 의도를 가졌는데 (…) 그게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발굴해서 인정해 주려고 하는 것’.”
즉, 이 만남이 참여자들에 대한 인정,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목소리들이라는 인정이라는 것이 이 만남의 가치를 구성하고, 또 자연스럽게 참여자들이 자신만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이 연재를 통해 《신문과방송》은 실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레거시 미디어의 언론인은 물론 시민단체, 공공기관 종사자, 그리고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는 청년 세대들을 폭넓게 만났으며 이 만남들은 정준희 교수의 표현과 같이 발굴과 인정의 의미를 가졌다. 실제 연재에서 발굴하고 인정한 것의 사례를 들어달라는 요청에 정준희 교수는 다음의 사례를 추천했다.
“이를테면 한국일보 두 분(조소진, 이정원) 만났을 때라든가, 최근에 정철운 기자도 그렇고요. 상대적으로 젊은 기자들인데 이분들의 특징이 이 일(기자)을 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계속하고 싶어 하고. 그게 프로페셔널리즘의 굉장히 중요한 특성이라고 보는데, 그걸 가진 젊은 세대들이 있었고, 제가 일부러 중간에 40~50대를 건너뛰고 60대에 가까운 분들을 만났거든요. 이런 분들을 만난 이유가 이분들이 끝까지 그 일을 하시는 분들인 거예요. 그리고 그분들은 젊은 세대의 기자들하고도 잘 지내시더라고요. (…) 이런 분들이 ‘예나 지금이나 되게 중요한 표본에 가까운 분들이 아닌가’ 그리고 ‘이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러면 ‘이걸 연결하는 게 현재 저널리즘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저널리즘의 다양한 관행이 있고 다양한 성취와 또 한계들이 있는데, 핵심이 되는 기자로서의 자질 그리고 즐거움, 행복감, 이것을 대중과 소통시키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 거고요.”
저널리즘의 역량 강화 위해 필요한 것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은 이처럼 현장 기자들의 세대 간 소통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학계 혹은 외부 미디어 비평에서 말하는 저널리즘 윤리와 현장의 입장 간의 소통에서는 어떤 기회를 만들었을까?
“(보도) 준칙과 현실 사이 괴리가 너무 크다 보니까. 괴리가 적어야 ‘얼마만큼 어긋난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괴리가 너무 크다 보니 애초부터 어긋났다, 아니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게 취재 일선의 그냥 기본인 상태라는 걸 발견하게 됐죠. (…) 해외에서의 취재 윤리는 도덕 기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취재하다 보니까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인데, ‘우리의 취재 준칙이라는 게 실제로 취재하다 보니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라는 질문이 있죠. (…) 최근에 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이슈들이 실제로 준칙화될 필요가 있는 다양한 케이스들이거든요. 근데 그런 케이스에 대해 논쟁들을 왜 안 해 나갈까.”
이러한 현장의 고민과 논쟁이 필요한 주제들 중에서, 앞으로 우리 언론계에서 더 많이 공유됐으면 하는 현장의 딜레마가 무엇인지를 짚어봤다.
“특정 분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저널리즘을, 그 자리에 계속 있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양성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는데 (…) 이게 불가능한 이유가 뭔가 했더니,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정 영역에만 계속 있게 하는 것이 특혜를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 능력 있는 기자일수록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더 발전시켜 커리어를 쌓는 그런 방식보다는 회사에 일을 해 줘야 하는 거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게 오히려 이 사람의 전문성 개발에 훨씬 더 나은 건데, 그래도 회사에 필요한 것들을 해야 하니까 둔탁해지는 거죠.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생산 공정에서 확실히 또 한 가지의 문제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둔탁해질 수밖에 없는 상태’예요.”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에서는 언론 영역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도 자주 만들었다. 이슬람 전문가, 의료 전문가 등이 그 사례다. 이러한 기획의 의도는 앞서 말한 전문성의 이슈와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기자 입장에서의 전문성, 저널리즘 내에서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과 더불어 전문가들이 저널리즘을 활용하게 하는 데까지 이르는, 저널리즘의 역량 강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전문 영역인데 전문 기자가 잘 없는 영역이에요. 전문적인데 중요해진 영역, 이를테면 이슬람 문제 (…) 근데 이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얘기할 때 정말 전문적인 이야기를 대중화시킬 수 있는 전문 저널리스트가 없어요. 백신 의료 문제도 마찬가지고, 환경 문제 쪽도 좀 그렇고요. 이분들은 필요할 때는 엄청나게 취재를 당하는데 취재 당하고 나면 잊혀요. (이런 분들을 만나는 것이) 현재 저널리즘에서 무엇이 부족한 영역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을 했고. (…) (이분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언론이 왜 우리를 취재하려고 하고 취재 당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알고, 그 부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얘기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신 분들이죠.”
‘어떤 정준희’가 될 것인가
이 만남에서 계속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터뷰 대상자는 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이는 개인적 관심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향후 한국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평가 지표 역할을 할 사례라는 점에서 짚어봤다.
“한국일보 조소진, 이정원 기자. 좋은 자리에서 또 ‘붐 업’되는 그런 계기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고, ‘이들이 성장해 가는 게 언론사의 현주소이고 우리나라 저널리즘 산업의 현주소일 거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지켜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 두 분이 여성 기자들인데 ‘결혼하고 나면 이렇게 취재할 수 있을 것 같냐’라는 질문에 대해 ‘결혼하고 나서 되게 달라지게 되지 않을까’ (라는 답변을 한 것이) 현재의 구조를 보여주잖아요. 성별 차이도 굉장히 많이 나겠다는 그런 생각도 그 두 사람을 보면서 했거든요. (…) 또 저는 뉴스타파는 계속해서 주목하고 싶었어요. 뉴스타파라는 (비영리 언론) 조직이 생존하고 발전해 가는 게 우리 언론의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해서, 후속 취재가 필요한 언론사다….”
《신문과방송》이 우리 저널리즘에 대하여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정준희 교수는 《신문과방송》의 가치에 대한 인정을 중요한 전제로 꼽았다.
“《신문과방송》의 가장 큰 미덕은 ‘유지가 되고 있다는 것’.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건데, 이게 제일 큰 미덕이지만 약점으로도 연결되죠. ‘공공재’예요. 값어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 언제든 얻을 수 있는 것, 되게 헐거운 정보라고 생각을 하는 것. 이게 내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취급을 그렇게 받아서 생기는 문제가 좀 큰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이 좀 극복이 됐으면 좋겠다.”
이 연재의 의미를 축약하는 의미에서,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 공통 질문 하나밖에 할 수 없다면 어떤 질문이 될지 들어보았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적용해 ‘어떤 정준희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어로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기자들을 만났을 때 거의 다 결론부에서 물어봤던 질문이에요. 이 기자 일의 끝에 뭐가 되고 싶냐고. 그러니까 자기가 기자 일을 함으로써 ‘어떤 기자로 기억되고 싶냐’ 그런 건데. 기자분들이 의외로 자신의 미래상을 잘 못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 (그 질문을 본인에게 한다면, 나는 어떤 정준희가 되고 싶으신지) 주변에 있는 분들이 질문을 던지더라고요. ‘너는 뭐하고 싶은데?’라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때 뭐라고 얘기했냐면 “한국어로 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내 모국어가 뛰어난 언어일 수 있음을 말로든 글로든 입증할 수 있는 텍스트를 쓰고 싶다.” 왜냐하면 저는 영어 텍스트를 주로 보고 있으니까 (…) 그게 그때 얘기했던 거고 지금도 똑같아요.”
정준희 교수의 ‘한국어로 만들어가는 지식’들의 단초가 담긴 ‘신문과방송이 만난 사람’은 한국 저널리즘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아온 《신문과방송》의 특성에 꼭 맞는 연재물이자, 우리 저널리즘에서 다뤄져야 할 현장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우리 저널리즘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지를 공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향후 유사한 방식의 대담, 혹은 인터뷰가 기획된다면 이와 같은 공론장을 여는 역할로서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시간 이 호흡을 이어 연재를 마무리해준 정준희 교수에게 《신문과방송》 독자와 관계자를 대신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