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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현장] 필리핀 저널리스트 유죄 판결이 부른 파장
미디어현장 | 등록일 : 2020-07-31

인권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저널리스트 레사를 체포·기소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협박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언론을 적대시하고, 소셜미디어를 권위주의 통치에 활용하기도 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기로에 선 저널리즘의 운명을 개혁할 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현실을 보고 싶다면, 수년에 거쳐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필리핀 대통령과 ‘맞짱’을 뜨고 있는 필리핀의 저널리스트 마리아 레사(Maria Ressa, 56세)를 주목해야 한다. 웬만한 정치 드라마는 시시하다고 생각될 만큼 레사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다. ‘언론 자유의 수호자’란 평가를 받는 레사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는 2018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고, 세계신문협회로부터 언론자유에 큰 공헌을 한 이들에게 주는 ‘황금펜상’을 받았다.

저널리스트와 대통령의 목숨 건 대결

레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 넘게 탐사 전문 기자로 활동했고, 2012년 시민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목표 아래 인터넷 매체 래플러(Rappler)를 창립했다. 심층 취재로 각종 언론 관련 상을 받았고, 미국 포인터연구소(Poynter Intsitute) 및 페이스북과 협력해 ‘팩트체킹 저널리즘’에 앞장섰다. 특히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된 두테르테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파헤쳤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0월 레사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저널리스트와 대통령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래플러 홈페이지 <출처 - 래플러 화면 갈무리>


현재 레사는 사기, 탈세, 명예훼손은 물론이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두 차례 체포되는 등 정부로부터 집요한 탄압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15일,  필리핀 법원은 온라인 명예훼손 혐의로 레사와 전직 래플러 직원에게 각각 최대 6년의 징역형과 함께 8,000달러(약 965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재판정은 텅텅 비었고, 기자 세 명만이 방청석을 지켰다. 판사는 “언론 자유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데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레사에게 보석이 허용됐지만 언제 수감될지 모르는 처지다.

하지만 이번에 적용된 혐의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명예훼손을 문제 삼은 보도는 8년 전인 2012년 5월에 이뤄졌다. 기업인 윌프레도 켕(Wilfredo Keng)이 탄핵 재판을 받고 있던 대법원장과 유착 관계에 있으며, 해당 대법원장이 이 사업가 소유의 고급 승용차를 사용했다는 것이 보도의 주요 내용이었다. 윌프레도는 보도 후 5년이 지난 2017년 10월,  레사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보도가 나가고 4개월이 지나서 새로 제정된 ‘사이버모독법’이 그 근거 조항이었다. 법 제정 전에 벌어진 일을 소급 적용해 기소한 셈이다. 특히 윌프레도는 자신이 마약 거래에 연루됐다고 지적한 보도가 저널리즘의 윤리 기준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법무부는 결국 해당 사업가의 편을 들어줬는데, 해당 기사가 2014년에 다시 ‘발간됐다(Republished)’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억지라는 평가다. 2014년 보도는 이전 보도에서 탈세를 의미하는 ‘tax evasion’을 ‘tax evation’으로 잘못 표기한 오탈자를 바로잡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오자(typo) 기소’라는 웃지 못할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다. 

필리핀 매체 래플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겸 편집인 마리아 레사. 그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맞서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연합뉴스


선고 직후, 국제인권단체들은 정치적으로 불순한 판결이라고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인권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는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을 매섭게 비판한 레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George Clooney)의 아내이자, 저명한 인권 변호사인 아말 클루니(Amal Ramzi Clooney)는 “필리핀 법원은 부패와 권한 남용을 고발하는 저널리스트를 침묵시키려는 사악한 행동의 공모자가 됐다”며 “‘법의 지배(Rule of Law)’에 대한 모욕이자, 언론을 향한 냉혹한 경고이고, 필리핀 민주주의에 큰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풍전등화와 같은 필리핀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레사는 법원 앞에서 기자들을 향해 외쳤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당부합니다. 이번 사건은 래플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제 동료에 국한된 사안도 아닙니다. 바로 당신들의 일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필리핀 시민으로서 당신이 가진 모든 권리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레사의 외침처럼 필리핀에선 지금,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6월 필리핀 정부는, 현지 최대 방송사인 ABS-CBN의 면허를 중지시켰다. 인권 단체 휴먼라이트워치 (Human Rights Watch)는 “정치적 복수의 냄새가 난다”라며 비판했고, 미국 국무부도 “독립된 미디어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사회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라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두테르테는 이 방송사가 2016년 대선 때 상대 후보를 지지했고, 마약과의 전쟁으로 숨진 사람들의 명단을 공개했던 점을 내내 못마땅하게 여겼다. 방송사 폐쇄는 필리핀 언론인들 사이에 ‘자기 검열(Self-censorship)’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 보복이 두려워 대통령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를 삼가거나, 논조를 순화하고 있다.

이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 레사의 삶을 살펴보자. 그는 한 살도 채 안 됐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레사와 그의 여동생을 할아버지에게 맡긴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9년 후 돌아온 어머니는 두 딸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레사는 뉴저지주에 정착한 뒤, 고등학교 토론팀에 소속돼 각종 토론 대회의 상을 휩쓸었고, 프린스턴대에서 분자생물학과 연극을 공부했으며 영문학 학위를 받았다. 당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클래스메이트이기도 했다. 졸업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마닐라에서 정치 연극(political theater)을 공부했으며, 1987년 CNN의 마닐라 지국장으로 채용돼 1995년까지 활약했다. 이후 2005년까지 CNN 자카르타 지국장으로 일했다. 오랜 기간 서구와 아시아를 이어준 것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조슈아 해머(Joshua Hammer)는 뉴욕타임스에서 “레사는 1987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Edralin Marcos)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부에서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대통령의 민주주의 체제로 넘어가는 시점에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그는 민주주의의 이상들이 어떻게 번창하고, 소멸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극단적 이념이 어떻게 독버섯처럼 사회에 번지는지를 지켜봤다”고 평했다. 레사는 2001년 9·11 테러와 13개월 후에 발생한 2012년 인도네시아 발리 섬 폭탄 테러 등을 겪으며 테러리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발리 테러와 필리핀 내 이슬람 테러 조직을 심층 취재하면서 테러범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 훈련을 받았음을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2003년 책 《테러의 씨앗(Seeds of Terror)》을 발간했다. 2004년 ABS-CBN으로 직장을 옮겨 뉴스 부문 책임자로 일하면서 테러리즘의 인터넷 확산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때 발간한 책이 《빈 라덴에서 페이스북까지(From Bin Laden to Facebook)》이다. 

이후 레사는 당시 필리핀의 젊은 층이 온라인으로 대거 몰려가는 현상을 목도했다. 미디어가 개혁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2011년 레사와 ABS-CBN 동료 다섯 명이 의기투합해 200만 달러(약 24억 200만 원)를 조달했고, 이듬해 1월 인터넷 언론사 래플러를 출범시켰다. 래플러(Rappler)는 ‘토론하기(Rap)’와 ‘물결 만들기(Ripple)’의 합성어다. 래플러는 초강력 사이클론을 심층 보도하고, 필리핀대 총장이 논문을 쓰지 않은 대법원장에게 민법 박사학위를 수여했다는 특종을 보도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런 가운데 래플러가 취재에 집중한 대상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다바오의 시장이던, 뉴욕타임스의 표현에 따르면 “잔인하게 보일 만큼 카리스마 넘치던(brutishly charismatic)” 두테르테였다. 래플러가 두테르테의 선거 캠페인을 주목하고 보도를 시작하자 다른 매체들도 대거 뒤따랐다. 

레사는 2016년 5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몇 달 전, 두테르테 측이 인터넷에서 거짓 정보를 대규모로 전파해 자기 생각과 비슷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믿게 만드는 이른바 ‘에코 챔버(Echo Chamber)’ 효과를 확산시키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두테르테의 소셜미디어 책임자가 페이스북에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반대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가짜 계정들을 이용했음을 밝혀냈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초법적 살인이 극심했던 2016년 10월쯤, 레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짓 정보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어떤 개인, 정책, 조직들이 인터넷에서 큰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가짜 풀뿌리 운동을 일컫는 마케팅 기법인 ‘애스트로터핑(astroturfing)’ 현상도 목격했다. 레사에 따르면, 두테르테의 정책에 반대한 레일라 드 리마(Leila de Lima) 상원의원을 상대로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3단계 애스트로터핑이 실시됐다. 1단계는 드 리마의 신뢰도를 공격하고, 2단계는 그를 성적 대상으로 폄하하고, 3단계는 드 리마를 체포하라는 해시태그(#ArrestLeiladeLima) 운동이었다. 두테르테의 치부를 알려나가던 레사는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증오 메시지와 살인 협박에 시달렸다. 

선거를 앞둔 두테르테는 대통령이 되면 마약과의 전쟁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장례식장이 북적일 것이다. 난 시신을 공급할 것이다.” 유세 중 대통령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한 발언이다. 실제 2016년 6월 당선된 두테르테는 전광석화처럼 마약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취임식 다음날 경찰청을 방문해 “당신들의 의무를 수행하느라 1,000명을 죽여도 당신을 보호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테르테의 마약 전쟁, 이른바 ‘토캉(Tokhang) 작전’의 시작이었다. 고향 출신의 충성파들을 경찰 요직에 앉혔고, 필리핀 전역에 경찰 특공대를 파견해 마약 밀매업자와 투약자를 소탕하기 시작했다. 취임 한 달 만에 300명 이상이 살해당했다.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2017년 11월까지 마약과의 전쟁으로 숨진 사람은 총 5,050명이다. 실제 숫자는 많게는 2만 명 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과의 전쟁 희생자 중 50% 이상이 미성년자라는 증언도 있다. 두테르테는 “내 잘못이 뭔가? 내가 1페소라도 훔쳤는가? 나의 유일한 죄는 초법적 처형(extrajudicial killings)을 했을 뿐이다”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레사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전쟁에 경악했다. 정부 측 누군가가 ‘멈추라’고 말할 것이라고 믿었던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라고 토로했다. 

두테르테는 필리핀 저널리스트들을 ‘스파이’ 또는 ‘개자식’이라고 비난했고, 특정 기자들에게는 “암살에서 면제될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중 래플러 기자들을 향해선 “나쁜 일이 당신들에게 벌어질지 모른다”는 이유로 자신의 고향인 다바오에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두테르테 집권 중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테르테를 축복이라고 했다’라거나 ‘영국의 해리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이 두테르테를 칭찬했다’라는 등의 가짜뉴스가 우후죽순처럼 번져 나갔다. 페이스북을 통한 필리핀발 가짜뉴스가 범람하자 급기야 페이스북은 필리 핀을 가짜뉴스의 ‘최초감염자(Patient Zero)’로 칭하기에 이르렀다.

마리아 레사 유죄 판결에 부쳐

필리핀 언론 상황을 그저 강 건너 불로 치부하기엔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언론 상황이 엄중하다. 특히 이번 판결은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권력자들이 언론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언론인들이 배척과 공격을 당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지구촌에서 저널리즘을 수행하다가 투옥된 언론인이 매년 250명을 초과하는 등 최근 몇 년간 언론인을 향한 탄압이 늘고 있다. 언론 자유가 헌법상 최우선 가치인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고 공격하고 정당한 언론 보도를 끊임없이 ‘가짜뉴스’라고 조롱한다. 필리핀 야당 지도자 레니 로브레도(Leni Robredo)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번 판결은 법이 자유 언론의 입을 틀어막았음을 보여준다. 언론에 침묵을 강요하고, 법을 무기로 삼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안 그러면 다음은 당신 차례’라는 메시지다.” 

둘째,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통치자들이 공중보건 위기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무서워 집단으로 항의 시위에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 권력자들에게 호기가 되는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특히 민주주의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중국,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확연하다. 크리스토프 들루아르(Christophe Deloire) 국경없는기자회 사무총장은 “팬데믹 위기가 권위주의 정부가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충격적 처방을 실행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라며 향후 10년이 저널리즘의 미래에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분명 거짓 정보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인포데믹(infodemic)’을 경계해야 하지만, 팬데믹이 표현의 자유와 다원성을 침해하는 구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감시자가 돼야 한다. 

셋째, 이번 판결은 소셜미디어의 어두운 그림자를 환기했다. 소셜미디어는 연대와 공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처럼 소셜미디어는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촉발하는 등 각종 사회개혁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악성 여론전의 수단으로 변질된 경우도 많았다. 특히 기존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는 나라에서는 거짓말 증폭기가 됐다. 한국 사회 역시 사이버 공간을 파고드는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 저널리스트 시라 오비드(Shira Ovide)는 “페이스북이 생기기 전에도 폭압적 지도자들이 있 었다. 하지만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서 권위주의 통치자가 소셜네트워크를 절묘하게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소셜미디어 개혁이란 화두를 다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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