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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22일, 한국 정치는 전례 없는 시기를 지나왔다. 한국을 둘러싼 정치적 격랑에 해외 언론은 어떤 시선을 보냈을까.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주요 외신의 보도를 통해 그 흐름과 해석의 특징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한국 대통령의 군사 장악 시도, 어떻게 수포로 돌아갔나”
2025년 3월 10일 자 뉴욕타임스 온라인 뉴스 헤드라인이다. 지난 2월 25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변론이 마무리되면서 언론의 관심이 다소 잦아든 시점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계엄령이 어떻게 촉발·전개됐는지를 그래픽, 사진, 동영상 등을 활용해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12월 3일 밤, 윤 대통령은 TV 생중계를 통해 계엄령을 선포하며 한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는 군사정권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소환하는 사건이었다”라며 군인과 헬리콥터가 출동하는 사진과 영상을 제시하고 “국회 장악 직전까지 갔지만, 국민의 강력한 저항과 군 내부 이탈로 인해 계엄령은 불과 6시간 만에 철회됐다”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철저한 탐사보도였다. 법정 증언, 국회 속기록, 검찰 수사보고서, 관련자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를 교차 검증해 사건의 전말을 드러냈다. 정치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전개 속에서도 선정적 표현 없이 사실에 근거해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했으며,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시민들의 저항을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병력 배치 도표와 압수된 무기 사진 등은 시각적 효과를 더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국제 미디어가 본 한국의 정치 풍경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부터 2025년 4월 4일 탄핵 선고까지 122일 동안, 외신은 한국을 어떻게 조명했을까. 세계 언론은 1980년 이후 처음 선포된 계엄령과 그에 따른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를 실시간 속보와 심층 취재로 집중 보도했다. 정치·사회·미디어 측면의 분석도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보도는 계엄령 선포 및 철회(12월 3~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12월 14일),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2025년 4월 4일) 등 주요 시점에 집중됐다. 이를 통해 외신 보도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호평받은 해석적·맥락 저널리즘
뉴욕타임스 사례에서 보듯 외신들은 단순한 뉴스 전달을 넘어, 장기간에 걸친 조사와 분석을 통해 권력의 숨은 움직임과 배후의 과정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한국 정치와 사법 체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석한 기사들이 많았다. 한국의 사태를 단지 국내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대표 민주주의 국가가 위기에 빠진 사례로 조명한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에 던지는 경고이기도 했다.
예컨대 CNN은 지난 4월 4일 탄핵 결정 보도에서 “많은 이들이 무장 군인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을 보며, 권위주의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라고 전했다. 유럽 언론도 계엄 사태를 민주주의의 중대한 시험대로 인식했다. 진보 성향의 영국 유력지 가디언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도하며 계엄령 선포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평가했고, 보수 성향의 타임스는 탄핵안 부결 당시의 정치적 분열과 국민의 분노를 전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여당 의원들의 탄핵안 표결 보이콧과 그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보도하며 정치적 불확실성의 확대를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답변 형식으로 기사를 구성해 사안을 명확히 정리했다.

전반적으로 사건의 맥락과 배경, 의미를 짚으며 국제 정치·외교·경제에 미칠 파장까지 해석해 낸 ‘해석적 저널리즘(Interpretive Journalism)’을 수행했고, 심층 보도에 대한 독자의 호평을 끌어냈다. 뉴욕타임스의 한 독자는 “정말 훌륭한 보도다. 당시에는 유치한 퍼포먼스로만 보였지만, 지금 그 세부 내용을 읽어보니 대통령은 정말 진지했음을 느낄 수 있다”라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문학적 저널리즘과 감성적 서사
기자의 시각을 문학적으로 풀어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보도도 눈에 띄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뉴요커의 태미 김(E. Tammy Kim) 기자가 쓴 2024년 12월 4일 자 기사 <한국에서 벌어질 뻔한 쿠데타>1)이다. 김 기자는 계엄령 선포가 광주 민주화운동 등 권위주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고 지적하며, 국회를 둘러싼 시민들의 집결, 언론의 즉각 대응, 노동조합의 총파업 예고 등이 한국 시민사회의 저항 역량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는 1980년 광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현대사의 주요 순간과 현재 상황을 비교했고, 검찰 권력 중심의 통치, 김건희 여사의 부패 의혹 등을 대통령 리더십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했다.
“나는 11월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냈고, 월요일 밤 우연히 귀국했다(기자 입장에선 나쁜 타이밍이었다). 내가 본 한국은 윤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에서 주장한 것처럼 위기 상황은 아니었지만, 윤 대통령과 그의 아내는 분명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서울, 광주, 천안 등지에는 ‘윤석열 퇴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그를 반대하는 시위가 빈번했다. 지지율은 25% 남짓에 불과했다. 겉으론 평온했지만, 일상 밑바닥엔 비관과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유사한 사례가 가디언 2024년 12월 4일 자 기사 <나와 친구들은 밤새 불안에 휩싸여 휴대폰 화면을 끝없이 넘겼다>2)이다. 영화감독이자 저널리스트인 강혜련(Haeryun Kang) 씨는 박정희 정권을 비롯해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역사적 상처를 강조했다. 또한 냉전 반공주의 영향을 받은 기성세대와 햇볕정책 시기에 성장한 청년세대 간의 시각 차이를 분석하면서, 시민들이 겪은 혼란과 공포를 디지털 시대의 정보 소비 방식과 연결시켰다.
“곧바로 문자 메시지와 온라인 채팅방이 폭주했다. ‘지금 무슨 일이야?’, ‘장난이야?’, ‘오늘 바에서 계속 술 마셔도 돼?’, ‘우리 애들 내일 학교 가는 거야?’, ‘긴급 상황이 뭔데?’ 혼란은 6시간 동안 지속됐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분단이라는 가혹한 현실을 깨닫게 했고, 지도자가 그것을 어떻게 억압과 통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지를 상기시켰다.”
이들 보도는 사건과 인물을 서사적으로 풀어내 독자의 몰입을 유도했다. 역사적 사건에 인물과 목소리를 부여하는 ‘문학적 저널리즘(Literary Journalism)’에 해당하며, 상황을 재구성해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1인칭 서사 중심의 감성적 보도는 한국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
△‘왕좌의 게임’식 정치 보복 지적
오피니언 섹션에서는 이번 사태를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비민주적 행동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뤄낸 국가의 후퇴로 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24년 12월 3일 자 사설에서 “계엄령은 침몰하는 자신의 대통령직을 구하려는 무모한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계엄령이 실패한 것은 “민주주의 문화가 뿌리내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시철 경북대 교수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계엄령은 대통령이 직접 주도한 실패한 쿠데타였다”며 “이번 승리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은 국민의 강인함과 결의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도 2024년 12월 3일 자 사설3)에서 계엄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권력이 분산된 체제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예산안 통과나 인사 문제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미국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 해답은 군부 독재로 헌정 질서를 뒤엎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다미르 마루시치(Damir Marusic) 에디터는 같은 날 동료 기자들과 나눈 대담을 뉴스레터 형식으로 소개했다. 그는 “작년에 한국을 여행한 내 친구 중 한 명이 윤 대통령의 전 참모를 만났는데, 그 참모는 대통령은 판단력이 부족하고, 무능한 참모들의 말만 듣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Josh Rogin)은 “이번 사태는 한미 관계에 큰 재앙이며, 가장 나쁜 시기에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서 멀어지고 중국 쪽으로 기울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국 출신 저널리스트 구세웅(Se-Woong Koo)은 지난 4월 5일 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한국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를 뜻하는 ‘바나나 공화국’에 빗대었고, “‘왕좌의 게임’식 정치 보복과 양극화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시도를 비판적으로 본 반면 아버지는 이를 지지했다며 가족 간 정치적 분열도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또한 국민들이 정치제도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이로 인해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가짜뉴스 소비가 늘고 세대, 성별 갈등도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젊은 여성은 반윤 집회, 젊은 남성은 친윤 집회에 주로 참여하고, 연인 간에도 불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가 반성과 타협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한국 민주주의가 더욱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칼럼은 한국 사태를 통해, 확증편향과 허위 정보의 증가로 인해 사실보다 이념이 여론을 좌우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가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국제 뉴스의 ‘국내화(domestication)’
외신 보도에서는 언론이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자국 중심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세계의 국내화(the domestication of the world)’ 경향이 자주 나타났다. 국제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카이 하페즈(Kai Hafez)에 따르면, 국제 뉴스는 본질적으로 ‘멀고 낯선’ 사건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미디어 게이트키퍼들은 이를 자국의 이념, 가치, 이익, 관심사에 부합하도록 프레이밍하는 경향이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계엄령 사태 관련 사설 <출처 -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David French)는 칼럼 <계엄령이 미국에서도 가능할까?>에서, 미국에는 한국과 달리 대통령이 군사 통치를 선언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이나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가장 위험한 법으로 ‘폭동 진압법(Insurrection Act)’을 꼽으며, 이 법이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군사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흑인 인권 시위 당시 이 법의 적용을 검토했으며, 차기 집권 시 다시 사용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프렌치는 헌법과 법률의 모호함이 권력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국의 상황을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민주주의가 대통령의 ‘선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렌치의 칼럼에는 약 1,800개의 댓글이 달렸다. “트럼프는 외부의 어떤 사건을 구실로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다. 미국 시민들이 한국인들처럼 용기 있고 자유를 사랑하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한국 대통령의 시도는 국민 저항에 의해 좌절됐다. 미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지 확신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미국 시민이 너무 많다” 등 날카롭고 진지한 반응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독자 반응이 보도 기사에도 많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두에 언급한 뉴욕타임스의 보도 기사에는 134개의 댓글이 달렸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한국 시민들을 칭찬하는 내용이 많았다. “세계, 특히 미국에 반란 세력과 범죄 정치인에 맞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한국인의 용기는 정말 인상적이다”, “러시아 같은 곳에도 희망을 줬다”, “슬프지만 우리는 희망이 없다. 1월 6일(2021년 미국 의회 폭동) 책임자들이 다시 백악관에 돌아오고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에 진지하다. 많은 미국인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국은 행동했지만, 미국은 주저했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보도를 통해 한국 정치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됐다.”
저널리즘의 잠재력 일깨운 사례
한국의 계엄령과 탄핵 사태는 민주주의가 단지 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들의 용기와 연대에 의해 지켜지는 것임을 전 세계에 강력히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해외 언론은 한국의 계엄령 논란과 정치적 위기를 보도하면서 역사적 맥락, 시민사회의 저항 역량, 정치 양극화, 국제적 함의까지 종합적으로 조명하며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강조했다. 외신은 이 사태를 권위주의로의 회귀 시도로 보고, 탐사보도, 문학적 서술, 해석적 저널리즘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했다. 이는 저널리즘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권력 감시를 넘어 민주주의의 버팀목으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 시민들은 K-POP 응원봉을 활용해 비폭력적이며 연대적인 저항의 모습뿐만 아니라 ‘K-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세계에 보여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통 저널리즘 플랫폼 내에서, 이용자들이 댓글을 통해 언론인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디지털 공론장에서 저널리즘이 여전히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한국의 계엄령 사태는 저널리즘의 사회적 책무와 잠재력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1) E. Tammy Kim, , The Newyorker, 2024.12.4, https://www.newyorker.com/news/the-lede/a-coupalmost-in-south-korea
2) Haeryun Kang,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