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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언론 대부분은 카말라 해리스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예측을 빗나갔다. 명망 있는 뉴스 매체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대선 결과 예측 실패의 원인을 짚어보고, 트럼프 집권 이후 언론과의 관계까지 전망해 본다. 편집자 주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2024년 10월. 베테랑 선거전략가 제임스 카빌(James Carville)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이길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몇 년간 반복적으로 선거에서 패배했고, 선거자금 확보가 중요한 상황에서 해리스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미국인 대다수가 합리적이어서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정반대였다. 박빙 승부를 예상했던 많은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트럼프가 큰 격차로 이겼다.
특히 스윙스테이트(Swing State, 경합주)에서 해리스는 전패했다. 이에 앞서 ‘중서부 예언자’라는 명성을 가진 여론조사 전문가 앤 셀저(Ann Selzer)는 선거를 사흘 앞둔 11월 2일 공화당 텃밭인 아이오와주에서 트럼프(44%)가 해리스(47%)에 뒤지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해리스가 인접한 다른 중부 주에서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이오와주의 실제 선거 결과는 트럼프의 13%p 차 압승이었다.
잘못된 판세 예측은 조사업체와 선거전략가는 물론이고, 여론조사를 보도의 핵심으로 전달하는 뉴스 매체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이후 예측 보도의 정확성, 공정성, 편향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미국 역사가 릭 펄스타인(Rick Perlstein)은 “여론조사는 타협의 산물일 뿐”이라며 “이제 여론조사를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 업체들이 사업 목적으로 경마식 보도를 부추기고, 특정 후보에게 편향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대선은 전례가 없을 만큼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 트럼프 암살 시도 등 예측을 어렵게 하는 변수들이 많았다. 해리스가 승리하거나 초박빙 선거를 예상했던 조사업체와 뉴스 매체들은 틀린 정보를 제공한 셈이 됐다. 주류 언론은 예컨대 경제, 인플레이션, 이민 등 중요 이슈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과소평가했다. 트럼프가 항상 우세했는데도 언론이 이런 흐름을 놓쳤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빗나간 예측 보도, 무엇이 문제였을까
과거 10번의 미국 대선 중 9번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던 역사학자 앨런 리히트먼(Allan Lichtman)은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의 승리를 예측했다. 그는 영국 신문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승리는 개인적으로 충격이 크지만 우리 민주주의와 사회에 던지는 함의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합리적, 이성적 유권자의 판단 대신 거짓 정보에 휘둘린 선거였다는 것이다. 그는 거짓 정보를 쉽게 퍼뜨리는 디지털미디어 환경을 예측 실패의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기존의 폭스뉴스나 우익 매체뿐만 아니라 우익 팟캐스트가 등장했고, 트위터를 소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거짓 정보를 무기로 유권자들의 합리적 결정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는 것이다. 이어 많은 사람이 모든 사안에 대한 거짓 정보가 지배하는 ‘대안적 세계(alternative universe)’에서 살게 됐다고 통탄했다. 리히트먼은 “우리는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를 통해 경고했던 ‘정보 통제(control of information)’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이 지나친 비관론이란 평가도 있다. 주류 미디어들이 모든 책임을 트럼프의 선동정치와 극우 미디어 탓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주류 미디어가 ‘진보적 편향성(liberal bias)’에 빠져 트럼프가 막말을 하고,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등 함량 미달 후보라고 공격하는 보도에 집중했다는 의견도 많다. 미국 언론을 주요 취재원으로 활용하는 한국 언론도 이런 보도를 상당 부분 따라간 게 사실이고, 이로 인해 선거 당일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선거 결과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예상보다 트럼프가 선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론조사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도 많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선거 분석가로 꼽히는 네이트 실버(Nate Silver)는 선거 10여 일 전에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하는 칼럼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그에 따르면, 많은 여론조사가 박빙 선거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번 선거 결과가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더불어 혼탁한 정치만큼이나 여론조사 또한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 지형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버는 최근의 여론조사들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인종에서 트럼프 쪽으로의 표 이동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짚어냈다고 평가했다. 조사에서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보완 기법을 사용해 왔다. 예컨대 응답률이 낮은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들을 반영하기 위해 공화당원들이 과거 누구한테 투표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낮은 응답률을 보완했다. 하지만, 기억에 의존한 답변은 원천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교육 수준이 낮은 공화당원들은 정기적으로 뉴스를 보지 않았고, 투표장에서 강하게 결집했다.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보수 성향 소수 인종들이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싼 애리조나주, 조지아주 등으로 대거 이사한 점도 변수로 작용했다는 게 실버의 평가다. 이처럼, 유권자의 심리적·사회적·인구학적 변화를 여론조사가 온전하고도 세밀하게 담아내 면도날 차이의 초박빙 선거에서 승자를 예측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예측 보도가 틀렸다고 언론 매체를 비난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확증편향에 빠져 자신의 성향에 맞는 미디어만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어난 데다, 딥페이크를 비롯해 인공지능(AI) 기술이 왜곡되거나 틀린 정보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 생태계 속에서 여론조사 또한 성역에 머무를 수 없다. 민주당, 공화당 양측 후보들이 미국 사회의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하면서 확산된 오보(misinformation), 허위 정보(disinformation), 가짜뉴스가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했다. 급변하는 사회적·정치적·미디어 환경이 유권자 태도뿐만 아니라 여론의 흐름을 좌우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진보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와 보수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 뉴스와 정보를 얻는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최근 노스이스턴대의 연구원 존 위베이(John Wihbey)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주로 선거 정보를 가족이나 친구들에게서 얻는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TV, 신문 등 전통매체에서 얻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주류 미디어는 외면한 채 거짓 정보가 많이 전달되는 소셜미디어에서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양질의 선거 정보가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선거 보도 바라보는 유권자의 시선
미국의 주류 미디어는 실시간으로 정보의 진위를 체크해 전달하는 팩트체킹 저널리즘을 이어갔다. 특히 뉴욕타임스의 경우 일반적 선거 정보는 물론이고 여론조사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전담 페이지를 운영했다. [그림 1]

후보 지지 선언을 놓고 두 유력 신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행보는 달랐다. 뉴욕타임스는 오피니언 섹션에서 해리스를 공식 지지한 후 트럼프가 매우 위험한 인물임을 강조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는 36년의 전통을 깨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은 미국인에게 편파적이지 않은 뉴스를 제공해 독자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라며 독립성을 그 이유로 제시했다. 이는 워싱턴포스트의 소유주 제프 베이조스가 트럼프의 정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항의해 20만 명이 넘는 독자가 구독을 취소했다. LA타임스도 해리스를 지지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철회했다. 이들 신문은 공정성을 결정의 배경으로 제시했지만 진보적 유권자들은 언론이 권력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갈등은 미디어 소유, 저널리즘 역할, 미디어 신뢰도 등의 문제에서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됐다. 제프 베이조스는 “신문의 후보 지지 선언은 ‘편향적이라는 인식(perception of bias)’을 강화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편향적이라고 믿고 있으니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00년 공화당원 중 47%는 뉴스 미디어가 공정하고 정확하게 보도한다고 답변했지만 2024년 이 수치는 12%로 떨어졌다. 미디어 신뢰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 영향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24년 미국 미디어가 선거에 실질적 힘을 쓰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24년 선거에서 유권자 중 73%가 정확하지 않은 선거 보도를 접했다고 답변했고, 52%는 선거 뉴스를 접했을 때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 선거 뉴스에 대한 의견은 큰 차이를 보였다. 선거 정보가 신뢰할 만하다고 답변한 유권자가 민주당 지지자는 52%인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29%에 그쳤다. 뉴스 매체가 선거를 잘 보도하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민주당 지지자는 77%였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39%에 불과했다.[그림 2] 그만큼 공화당 지지자들이 선거 뉴스를 더욱 불신하고 있는 셈이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선거 정보와 실제 그들이 접하는 선거 정보에서도 차이가 확인됐다. 유권자들이 가장 얻고 싶은 정보는 이슈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1위였지만 실제로 가장 많이 접한 선거 뉴스는 후보자의 행보와 발언이 1위였다. 이는 정책 선거를 바라는 유권자의 바람을 뉴스 매체가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선거 정보를 얻는 주요 매체로는, 미국 성인의 35%가 TV를 1순위로 손꼽았고, 뉴스 웹사이트 및 앱(21%), 소셜미디어(20%) 등의 순이었다. 30세 이하의 경우엔 소셜미디어가 46%로 1위를 기록한 반면 65세 이상의 경우엔 TV가 1위였다.
트럼프 시대, 언론과 권력의 지형도는?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향후 미국 언론과 권력 간의 긴장 관계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미국 언론은 자기 검열을 통해 트럼프에 유화적 태도로 돌아설 것인가, 아니면 비타협적 태도로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견지할 것인가. 트럼프 정부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눈엣가시 같은 언론을 옥죌 가능성이 크다. 이미 트럼프는 CBS 등의 언론사들을 상대로 왜곡 보도를 이유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방송 면허 허가권이나 미디어 간 합병의 승인권을 무기로 언론을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2024년 9월 실시된 미국 여론조사에서 18세부터 29세까지의 성인 인구 중 52%가 소셜미디어에서 얻는 뉴스 정보를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전국 단위의 뉴스 매체 신뢰도(56%)에 버금가는 것으로, 그만큼 주류 미디어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류 미디어가 소셜미디어의 파고 속에서 추락한 신뢰도를 높이고, 제4부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은 더욱 시급해졌다. 이를 위해 과감한 혁신 작업에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