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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은 발생 직후부터 미국 언론의 담론 경연장이 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언론이 전쟁의 정당성을 확산하는 데 집중했다면 2026년의 보도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편이다. 이번 전쟁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특징과 우리 언론에 주는 시사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 주도의 안정 체제)를 대신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렉스 아메리카나(Lax Americana, 방종하고 부주의한 미국)’다. 신중함도, 절제도, 성찰도 없는 초강대국 미국이 체스판 위를 활보하며 오랜 동맹을 위협하고 과거의 경쟁자를 자극하고 있다. 단기적 이익만 좇으며 그로 인해 자신과 세계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세계다.”
뉴욕타임스의 저널리스트 카를로스 로사다(Carlos Lozada)가 지난 3월 24일 기고한 칼럼 <미국이 위험한 국가가 됐다>1)의 한 대목이다. 로사다는 이번 이란 전쟁을 단순한 지역 분쟁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미국의 국제적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는 이번 전쟁이 미국이 기존의 동맹과 국제 규범, 그리고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부터 회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강조한다.
2026년 2월 28일, 전격적인 공습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발생 직후부터 미국 언론 내에서 단순한 전황 전달을 넘어 복합적인 담론의 경연장이 됐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지성계를 대표하는 매체들은 전략 부재, 수렁에 빠질 가능성, 국제법적 정당성 위기라는 다층적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 패권의 쇠퇴’라는 거시적 관점은 이 전쟁이 단지 하나의 군사적 에피소드가 아니라 21세기 국제 질서의 전환점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간인 피해는 소외되고 전쟁을 게임처럼 재현하며 권력의 논리를 반복하는 ‘호위견(guard dog)’식 보도가 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의미와 정당성을 둘러싼 ‘담론의 전장’
이번 전쟁은 미사일과 드론이 오가는 물리적 현장일 뿐만 아니라,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담론의 전장’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 언론의 대응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와 사뭇 다르다. 9·11 테러의 기억이 생생했던 당시에는 애국주의 정서에 편승해 전쟁의 정당성을 무비판적으로 확산시키는 ‘선전 도구’에 가까웠다.
반면 2026년의 보도는 상대적으로 신중하며 때로는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전쟁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기보다 확전의 위험성과 행정부의 오판 가능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는 과거 보도 실패에 대한 학습 효과이자,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한 언론계의 깊은 불신이 반영된 결과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월 28일 자 사설에서 “중동에서 장기전을 막겠다고 공약한 대통령이 이란의 체제 변화를 목표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충격적인 배신”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헌법상 전쟁 선포 권한이 의회에 있음을 상기시키며 행정부의 독단적 결정을 질타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미국의 접근 방식을 ‘무모함’으로 규정하고, 국내외적 지지 기반 없이 시작된 전쟁의 참담한 결말을 예고했다. 퓰리처상 2회 수상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이번 전쟁이 “전쟁의 잔혹성을 제한하려던 역사적 노력을 부정하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척 헤이글(Chuck Hagel)과 레온 파네타(Leon Panetta) 전 국방장관도 공동 기고를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불필요한 공격이 반미 감정을 부추겨, 결국 미국과 동맹국을 겨냥한 “새로운 세대의 테러리즘을 낳을 수 있다”라고 우려 섞인 진단을 내놓았다.
반면,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략적 실용주의를 앞세워 매파적 목소리를 냈다. 지난 3월 1일 자 칼럼을 통해 이란의 군사적 억제력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공세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미 주요 매체들은 각자의 이념적 지향점에 따라 치열한 프레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 보도의 세 가지 특징: 기술, 경제, 그리고 비인간화
현재 미국 언론의 전쟁 보도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군사적·기술적 프레이밍’의 압도다. 많은 보도가 미사일 정밀도와 공습 규모 등 수치에 집착한다. ‘정밀 타격’ 같은 용어는 전쟁의 참혹함을 가리고 기술적 우월성을 강조한다. 수용자가 전쟁을 인간의 비극이 아닌 세련된 기술 작전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둘째, ‘경제적 지정학’으로의 매몰이다. 유가 폭등, 공급망 혼란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보도의 중심을 차지한다. 전쟁의 가치가 ‘인권’이 아닌 ‘수치’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전쟁터에 남겨진 개개인의 삶은 통계 뒤로 사라진다.
셋째, 언어 오용을 통한 전쟁 정당화다. ‘선제 타격’이나 ‘보복’ 같은 단어는 미국 측 공격에 방어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민간인 희생이 발생해도 언론은 ‘부수적 피해’라는 정부 용어를 답습하며 전쟁을 하나의 구경거리(spectacle)로 소비하게 만든다.

언론의 역할 논쟁: ‘감시견’과 ‘호위견’의 공존‘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watchdog)인가, 정당화하는 호위견인가’라는 고전적 화두는 이번 이란전 보도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이 “더 애국적인 언론이 필요하다”며 정렬을 요구하자, 데이비드 다모팔(David Darmofal)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정치학 교수는 “비판적인 언론이야말로 가장 애국적인 언론”이라고 응수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진보 성향의 MSNBC 등은 전쟁의 합법성과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감시견의 소임을 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폭스뉴스 등 보수 매체는 애국주의 프레임을 동원해 비판론자를 공격하며 정부의 메시지 전략을 뒷받침하는 호위견의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정부가 제공한 정보와 해석의 틀 안에서만 논의를 전개하는, 이른바 ‘인덱싱 이론(Indexing Theory)’의 전형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허먼(Edward Herman)과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주창한 ‘프로파간다 모델(Propaganda Model)’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주류 매체들이 정부 소식통과 지배적 이데올로기라는 필터를 거치며 권력의 프레임을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특히 NBC, CBS, ABC 등 지상파 방송은 심층 분석보다는 자극적인 영상과 정부 발표를 단순 전달하는 ‘앵무새’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알자지라저널리즘리뷰(AJR, Al Jazeera Journalism Review)의 샤이마 알이사이(Shaimaa Al-Eisai)는 “이라크 전쟁 당시 서구 언론이 부시 행정부의 입을 대변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 언론은 대중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언론 감시 단체 프레스워치(Press Watch)의 댄 프룸킨(Dan Froomkin) 역시 “언론인들은 군사 자산의 이동을 기록하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신해 트럼프 행정부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라고 일갈했다.
나아가 ‘전쟁의 미디어화(Mediatization of War)’ 현상도 심각한 수준이다. 공습 영상과 드론 화면은 전쟁을 고통스러운 물리적 사건이 아닌 하나의 시각적·서사적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크리스 레먼(Chris Lehmann) 더네이션(The Nation)의 기자가 탄식했듯, 언론이 군사적 공격을 앞세워 선전의 수위를 높이며 전쟁을 하나의 ‘미디어 이벤트’로 소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논리를 넘어 ‘평화 저널리즘’으로
미국 언론의 보도 양상은 한국 언론에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 언론은 외신을 인용할 때 미 주류 매체의 시각을 여과 없이 수용하거나 정부 발표를 받아쓰기하는 경향이 짙다. 만약 우리 언론이 미국의 전략적 프레임에만 갇혀 있다면, 이는 국익과 시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외신이 전하는 ‘정밀 타격’ 같은 수사 뒤에 숨겨진 민간인의 고통과 국제법적 쟁점을 입체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전통적인 군사력뿐 아니라 정보·미디어·사이버·심리전을 결합해 상대를 약화시키는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fare) 시대에는, 난무하는 선전과 프레임을 식별해 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기반의 기획 보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국제커뮤니케이션 학자 시스 해임링크(Cees Hamelink)는 선정성과 드라마틱한 갈등에 치중하는 미디어 논리가 전쟁 보도를 악화시킨다고 경고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제안한 ‘평화 저널리즘(Peace Journalism)’의 실천이다. 평화 저널리즘은 단순히 폭력의 현상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치고 다양한 행위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가능한 평화적 대안을 제시하는 접근법이다.
군사 전략가들의 화려한 지도나 미사일 궤적보다 중요한 것은 포화 아래서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전쟁이라는 거대 비극 앞에서 성찰적 보도를 추구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언론인들에게 절실한 덕목이다.
1) Lozada, C., <America Has Become a Dangerous Nation>, The New York Times, 2026.3.24, https://www.nytimes.com/2026/03/24/opinion/trump-iran-world-america-first.html?smtyp=cur&smid=fbnytopinion
2) The New York Times Editorial Board, <Trump’s Attack on Iran Is Reckless>, The New York Times, 2026.2.28, https://www.nytimes.com/2026/02/28/opinion/iran-attack-trump-war.html
3) Jones, T., <The Trump administration can’t stop complaining about the media>, Poynter, 2026.3.20, https://www.poynter.org/commentary/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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