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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래로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미디어의 왕좌를 지켜왔다. 미디어와 관련된 여러 제도가 텔레비전 방송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텔레비전 방송에만 재원이 집중되지 않도록 제도들은 엄격하게 적용됐다. 디지털 환경으로 새로운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점차 역전되고 있다. 기존에 텔레비전 방송을 기준으로 마련됐던 제도가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에 적절치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과거 텔레비전에 관심과 재원이 집중됐던 것과 달리 많은 시장 행위자들이 텔레비전 방송보다 더 유리한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텔레비전은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텔레비전 방송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텔레비전에만 엄격하게 적용됐던 여러 제도의 완화를 기대했는데, 지난 8월 초 프랑스 정부가 이에 응답하는 시행령 두 가지를 발표했다.
광고 규제 완화와 영화 편성 제한 폐지
텔레비전 방송을 위해 마련된 첫 번째 시행령은 시청자 맞춤형 광고와 영화 광고를 허용하는 내용이다.1) 이 시행령을 통해 텔레비전 방송사는 인터넷 TV를 통해 지상파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지역, 시청자 프로필, 선호도 등 일정 기준에 맞춰 맞춤형 광고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시행령 발표로부터 18개월이라는 점이 한시적이기는 하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 광고 역시 허용할 예정이다. 본래 프랑스에서는 독립영화와 소규모 영화들을 보호하기 위해 텔레비전 방송에서 영화를 광고하는 것을 제한했다. 이 규제 완화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텔레비전 방송 규제를 완화하는 두 번째 시행령은 영화 편성 제한 폐지에 관한 것이다.2) 그동안 프랑스 지상파 종합 편성 텔레비전 채널에서는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 10시 30분 이전, 토요일 종일, 일요일 저녁 8시 30분 이전에는 영화를 편성할 수 없었다. 또 요일에 상관없이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사이에 편성할 수 있는 영화 편수도 144편으로 제한돼 있었다. 종합편성채널은 연간 최대 192편까지만 편성할 수 있었고, 영화 전문 채널의 경우에도 연간 편성할 수 있는 영화 편수가 500편으로 제한적이었다. 이는 영화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는 이러한 규제가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과거 영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텔레비전 방송사에 적용되던 규제가 오늘날 거꾸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에 대한 텔레비전 방송사의 경쟁력을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로부터 텔레비전 방송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새로운 시행령은 저녁 프라임타임대 영화 편성 가능 편수를 144편에서 196편으로 늘렸다. 종합편성채널의 연간 편성 가능 편수는 192편에서 244편, 영화 전문 채널의 편성 가능 편수는 500편에서 800편으로 대폭 확대됐다. 토요일 저녁 8시 30분 이후 영화 편성도 가능하게 됐다.
프랑스 정부의 ‘지상파 텔레비전 구하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플랫폼이 기존의 시청각 미디어 규제에서 벗어나면서, 결과적으로 규제들이 텔레비전 방송에만 적용돼 불공정한 경쟁이 발생했다. 이번 시행령은 기존 텔레비전 방송과 새로운 미디어 간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을 조금이라도 맞춰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즉, 프랑스 정부의 목표는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텔레비전 방송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맞춰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규제 완화라는 양 갈래 방향으로 향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정부는 ‘텔레비전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방송법을 통해 해외 스트리밍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5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넷플릭스, 아마존 등 해외 스트리밍 사업자들에게 수익의 25% 내외에서 프랑스 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시청각물 제작 투자 의무를 부과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는 방송법 개혁에서 포함될 예정이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조정되며 차일피일 미뤄지던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의회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계류 중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번 시행령에서 드러난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규제 완화다. 이는 2019년 초 프랑스의 경쟁위원회(l'Autorit de la concurrence)가 제안한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사에 대한 규제 완화의 맥락에 놓여 있다. 당시 경쟁위원회는 텔레비전 방송이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것을 제안했는데, 특히 넷플릭스, 아마존 등 온라인 유료 스트리밍 플랫폼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이 컸다. 당시 경쟁위원회는 방송사의 영화 의무 투자 규정 완화, 독립 제작사 투자 완화와 함께 광고 제한 완화, 영화 편성 규제 완화 등 네 가지를 권고했는데, 이번에 발표된 시행령 두 건이 바로 이에 해당된다. 사실 이번 규제 완화 역시 본래 방송법 개혁에 포함될 것이었으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시행령 형태로 서둘러 발표된 것이다.
이번 시행령 발표로 텔레비전 방송사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다소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로 텔레비전 방송은 뜻밖의 시청률 상승을 맛봤다. 그럼에도 봉쇄 초기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파행, 이에 대한 대처와 준비 미비로 시청률 상승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광고 수익은 얻지 못해 아쉬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분적인 규제 완화는 시청률 상승과 맞물려 텔레비전 방송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90년대부터 엄격히 적용돼 온 규제가 완화된 것에 환영하고 있다. 또, 텔레비전에서 영화 광고가 허용된 것은 영화 산업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프랑스 영화, 텔레비전 전문 잡지인 텔레라마(T l rama)는 “연간 700여 개 영화가 제작되지만 그중 절반은 성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텔레비전 광고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화가 개봉했는지를 알게 하고 영화관에 가고 싶게 만들 것”이라고 평가했다(Onana, 2019). 물론,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의 불공정 경쟁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누구도 100% 만족할 수 있는 규제는 없다는 점에서, 프랑스 정부는 넷플릭스, 아마존 등 미국 디지털 스트리밍 플랫폼과의 대결 중인 텔레비전 방송에 힘을 실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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