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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 현장]프랑스_ LaFA, <시청각 미디어의 미래를 위한 백서> 발간
글로벌 미디어 현장 | 등록일 : 2025-08-29

지난해 11월 출범한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LaFA, La Filière audiovisuelle)가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 보호를 위한 첫 번째 주요 활동으로 백서를 발행했다. 7개월의 조사 끝에 발간된 백서는 프랑스의 시청각 미디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보호하고 지켜 나가기 위한 제안을 담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사회·문화적 자산, 시청각 미디어 산업

 

지난 6월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가 발행한 백서에 따르면,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은 연간 약 126억 유로(약 20조 3,500억 원)의 부가가치와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문화 산업 영역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경제적 이윤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의 부가가치는 자동차 산업(95억 유로)을 앞지르는 수준이다. 또, 약 80%의 관광객이 프랑스 여행의 계기를 프랑스 영화나 드라마 시청이라고 응답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경제적 효과 창출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하루 평균 4시간 23분을 시청각 미디어에 할애하며, 이를 통해 일상의 큰 부분을 채우고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또한 창의적이고 사회 다원성을 반영한 콘텐츠는 사회 통합과 차별 근절에 이바지하고 있다. 시청각 미디어는 프랑스의 소프트 파워로 국제적 영향력에도 공헌하는 등 비경제적·비물질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디지털화, 글로벌화 등 시청각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프랑스의 시청각 미디어 산업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백서는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을 보호하고 그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Exception culturelle)’1)라는 원칙에 기반해 시청각 미디어 생태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의 출범

 

사실, 지난해 11월 방송사, 제작사, 작가협회 등으로 구성된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가 출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시청각 미디어 부문의 디지털화와 글로벌화로 약화되고 있는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의 가치사슬을 보존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글로벌 OTT가 프랑스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 국내 기업이나 기관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반목하기보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의 보호를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들은 프랑스가 문화적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문화 보호의 근거가 되는 문화적 예외 개념을 협회 출범의 동력으로 삼았다. 현재 이 협회에는 이를 주도한 TF1과 프랑스 공영방송사, M6 등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제작사협회(USPA, l’Union nationale de la production audiovisuelle), 독립제작사협회(SPI, le Syndicat des producteurs indépendants), 작가협회(SCAM, les sociétés de droits d’auteur telles que la Société civile des auteurs multimédias) 등 약 25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는 첫 활동으로 발간한 백서를 바탕으로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의 유지·발전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데, 특히 다음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존치를 위한 공적 자금 투여, 둘째, 시청각 미디어 생태계의 공정한 경쟁 환경 마련, 셋째,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대책 마련이다.

 

공영방송 독립·생존 위한 공적 자금 지원 제안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는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부문의 문화 주권을 위해 공영미디어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 공영미디어는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콘텐츠 생산의 중추라 할 수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의 제작 투자비는 2023년 기준 5억 600만 유로(약 8,200억 원)로 전체 방송사 및 플랫폼 기업들이 투자한 전체 총액의 36%를 차지하고 있으며 투자 금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시청각 미디어 콘텐츠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에 있어서도 공영방송은 중요하다.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텔레비전을 많이 시청하는 편이다. 조사에 따르면, 약 78%의 프랑스인들이 매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고 응답했는데, 매일 유튜브를 시청하는 비율이 32%, OTT 플랫폼을 이용하는 비율이 17%임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프랑스인들 역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영상 시청 소비 방식이 점차 비선형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약 47%는 여전히 선형적인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는 선형적 소비가 21%인 영국, 15%인 미국에 비해서도 현격히 높은 수치다. 시청점유율도 2024년 기준 공영방송이 29%로 TF1 26.8%, M6 12.6%와 비교해 지상파방송사 중에서도 제일 높은 편이다. 약 32%의 프랑스인이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다고 응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69% 정도의 프랑스인이 텔레비전 뉴스를 신뢰한다고 응답할 만큼 공영방송은 신뢰받는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5년부터 2023년까지 프랑스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5억 유로(약 8,000억 원)로 감소했고, 2022년 수신료가 폐지되면서 재정적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공영방송 정체성 및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지주회사 설립 개혁안 역시 여전히 의회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는 공영방송이 프랑스 콘텐츠 제작의 핵심적 주체이자 시청자 신뢰의 기준점이 된다는 점, 또한 프랑스의 문화 주권 유지, 허위 정보와의 투쟁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임을 강조하며 “예측·지속 가능하도록 공영방송만을 위한 자금 지원을 통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내 사업자와 글로벌 OTT 간 공정경쟁 환경 조성 요구

 

한편, 이번 백서는 글로벌 OTT 플랫폼의 프랑스 시장 진입으로 인한 프랑스 미디어 기업과 글로벌 OTT 플랫폼 사이의 불균형적인 경쟁 상황에 대한 조정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시청각미디어서비스 지침을 국내법으로 일찌감치 도입해 프랑스 영토 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만들어내거나 이용자를 확보한 글로벌 OTT 사업자들에 제작비 투자 의무를 부과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정 부분 국내 사업자와 균형을 맞춰가고 있지만, 두 주체 간의 경쟁에서 불거지는 어려움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프랑스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면서 명백한 불균형 경쟁 조건을 다소 완화한다는 점, 프랑스 정체성이 담긴 콘텐츠 제작이 더 많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실제 프랑스의 중소 규모 제작사들이 최근 늘어나는 제작 수요에 대한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해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인적·기술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글로벌 OTT 플랫폼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데 반해, 국내 플랫폼들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제작 기간이 연장되는 등 또 다른 측면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제작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백서에 따르면 2023년 드라마 시간당 평균 제작비는 전년 대비 28.7% 증가해 처음으로 100만 유로(약 16억 2,000만 원)를 넘어섰다. 또한, 선형 방식의 텔레비전 시청자 감소로 광고 수익이 감소세를 보이자 프랑스 미디어 기업들이 디지털 전략을 적극 채택하고 있으나, 이 역시 비용이 많이 소요되면서 재정적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이용자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구매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인터넷 사업자들로부터 시청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의 전체 가치사슬에 대한 혁신적 지원이 없으면 프랑스 기업들의 재정 건전성이 약화돼, 콘텐츠 공급과 창작 감소, 지역 콘텐츠 생산량 감소가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 증가로 이어져 종국에는 프랑스 방송 시스템의 균형을 해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여전히 여러 제도가 전통적인 텔레비전 방송 사업자에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방송 사업자들은 미성년자 보호 정책에 따라 특정 시간대 특정 프로그램은 편성할 수 없고, 특정한 장르의 편성 비율을 따라야 하는 등 편성 규제를 받는다. 반면 OTT 플랫폼은 편성 규제를 받지 않으며 심지어 연령 제한 같은 콘텐츠 분류 역시 자체 규정에 따른다. 영화 홀드백2) 기간 역시 글로벌 OTT 플랫폼이 9~17개월인데 비해 프랑스 방송사는 22개월이다. 텔레비전 방송사에 적용되는 광고 시간, 광고 제한 등도 글로벌 OTT 플랫폼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특히, 유튜브, 틱톡과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과의 광고 경쟁은 더욱 전통적 방송 사업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과 유튜브, 틱톡 등은 시청률에 대한 측정을 의무화하지 않으므로 투명한 검증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까닭에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는 광고 시간, 횟수, 품목 제한 등 기존의 텔레비전 방송 광고에만 엄격히 적용되는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OTT 플랫폼 사업자들에게도 방송 사업자들과 같은 수준의 규정을 적용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울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유튜브, 틱톡 등의 플랫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해 제작비 투자 의무를 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제안하고 있다.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인공지능 활용 대책 마련 촉구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는 인공지능과 이에 따른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시청각 미디어 산업에서도 인공지능은 적지 않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적정한 제도는 마련돼 있지 않다. 

 

이는 지식재산권 차원에서 콘텐츠 창작에 대한 보호를 모호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창작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시청각 미디어 산업 종사자의 3분의 1이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학습에 사용되는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 역시 시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는 투명하고 윤리적이며 책임감 있는 인공지능 활용이 가능하도록 조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시청각미디어전문협회 백서를 보면 프랑스와 우리나라 시청각 미디어 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상황보다는 나은 경우다. 이미 글로벌 행위자들에게 이른바 ‘디지털세’, ‘동영상 유통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기존 행위자들과 유사한 수준으로 제작 투자나 편성 의무를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작한 콘텐츠와 관련해 이른바 ‘매절 계약(buy-out)’3)이라 불리는 방식의 계약도 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문화적 예외 원칙에 기반해 프랑스 정체성이 담긴 시청각 미디어 콘텐츠 및 해당 산업 보호를 위해 시장 행위자들이 주체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귀감이 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 1980~1990년대 WTO 자유무역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논리에 반기를 들며 프랑스와 캐나다가 주장한 것으로, 문화 상품은 일반적인 재화나 서비스와는 다르게 다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후 프랑스 문화 정책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2) 영화 한 편이 상영 후 다른 수익 과정으로 이동하기까지 걸리는 기간. 편집자 주 

3) 처음 지급받은 금액 이외에 저작물 이용과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제작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계약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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