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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9일 프랑스 하원의회가 의회 정원에서 벌어진 의원 보좌관들의 집회에서 동영상을 촬영하고 긴장을 조성한 극우 미디어 프롱티에르(Frontières) 기자들을 강제 퇴거시켰다. 이 집회는 애초에 프롱티에르의 기사 때문이었다. 극우 미디어로 분류되는 이 언론사는 <LFI는 이방인 정당(LFI parti de l’étranger)>이라는 기사에서 좌파로 분류되는 프랑스 앵수미즈(LFI, La France insoumise) 소속 보좌관들을 실명 비평하고, 조사 명목으로 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해 공개했는데, 온‧오프라인에서 극우 지지자들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한 보좌관들이 하원의회에 요청해 집회를 열고 해당 문제에 대한 토론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자들이 이 장소에 들어와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집회자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고, 충돌의 위험이 생기면서 하원의장이 퇴거를 조치한 것이다. 프롱티에르 측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했고, 폭행이 있었다며 고발을 예고한 상태다. 하원의장 야엘 브론-피베(Yaël BraunPivet)는 보도자료를 통해 의회 안에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그러한 상황을 도발할 수 있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고, 이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며, 이 사건에 엄중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집회 측과 언론사 측에 모두 서한을 보내 규칙 준수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Rassemblement National) 의원들은 프롱티에르를 지지하고 의회 불참 의사를 표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설 곳을 잃었던 극우 세력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고 그 몸집을 불리고 있다. 극우 세력은 늘 존재해 왔지만 이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점차 가시화되고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극우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극우 미디어의 선동에 힘입은 극우 세력이 다시 극우 미디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공모하면서 세를 키워 나가고 있다. 사실 프랑스 언론 지형에서 극우 미디어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는데, 최근 방송 미디어, 인터넷 미디어로 확장하면서 극우 세력 간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 극우 세력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힘을 키워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재벌 미디어 기업과 극우 미디어, 극우 세력의 상호작용
다른 나라들이 그러하듯 프랑스 내 언론 지형을 공식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언론사의 논조와 의제 등을 통해 정치적 성향을 분류하며, 여러 극우 언론이 창간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현재 프랑스 내 극우 미디어의 정확한 숫자를 알기는 어렵다. 특히 극우 언론사는 재정적으로 여유롭기가 쉽지 않다 보니 생애주기가 짧은 편이다. 프랑스 정치 지형과 비례해 극우 미디어에 관심을 보이는 미디어 이용자들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주류 언론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 또, 이들은 프랑스 정부의 언론사 직접 지원 제도에 포함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프랑스는 이미 18세기 말부터 언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언론사를 지원해 오고 있다. 미디어 환경 변화, 시대 변화 등을 고려해 지원 대상에 대한 기준을 조정하기는 하지만 크게 변하지 않는 부분은 정치종합언론사(IPG, Information Politique et Générale)로 인정받은 언론사에 지원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2015년 인종주의, 반유대인주의 등 혐오와 폭력을 일으킬 수 있는 보도를 한 언론사는 지원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도입하면서 극우 언론사들이 재정 지원을 받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몇 극우 언론사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프롱티에르, 발뤠흐작튀엘(Valeurs Actuelles), 라볼쁠뤼스(La Baule +) 등이 있다. 이들은 최근 몸집을 불리는 극우 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종이 매체를 발행하는 동시에, 재정적 진입장벽이 낮은 인터넷 신문,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과거 리브르느와르(Livre noir)라는 극우 매체를 이어받은 프롱티에르의 경우 2020년 인터넷 신문으로 시작해 1년 만에 10만 구독자, 3년 만에 30만 구독자를 확보하면서 2023년부터 종이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 언론사는 지난 대선에서 에릭 제무르(Éric Zemmour)의 ‘커뮤니케이션 에이전시’라고 불릴 정도로 극우 정치인과 공생하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마리옹 마레샬(Marion Maréchal)은 극우 정치인 마린 르 펜(Marine Le Pen)의 조카면서 프롱티에르의 주주다.
젊은 극우 언론인들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메타에서 지난해 계정이 삭제된 극우 미디어 옥시덩티(Occidentis)는 계정이 복구돼 인스타그램에서 새롭게 활동하면서 약 16만 2,000여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고, 비슷한 극우 매체 곤조뉴스(Gonzo News) 역시 약 7만 6,000여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에게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언론사 기사 일부만을 발췌해 이들 기사가 잘못된 정치 뉴스라며 전후 맥락 없는 분석 내용을 전파하고 있다.
이들 극우 미디어가 힘을 얻은 이유는 진입장벽이 낮은 뉴미디어 환경, 극우 정치인 및 지지 세력과의 결탁 때문만은 아니다. 재벌 기업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억만장자 뱅상 볼로레(Vincent Bolloré)가 있다. 그는 미디어 그룹인 비벙디(Vivendi) 그룹, 까냘쁠뤼스(Canal +), 라갸데르(Lagardère) 그룹의 최대 주주로 인쇄 미디어를 비롯해 방송 미디어에서도 극우 미디어와 극우적 논점이 프랑스 사회에 자리 잡도록 진두지휘하고 있다. 볼로레 그룹의 채널 쎄위트(C8)1)는 물론, 까냘쁠뤼스의 시청률 높은 뉴스 전문 채널인 쎄뉴스(CNews)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지난 2023년에는 라갸데르 그룹의 일요신문(Le Journal du Dimanch) 편집장 자리에 발뤠흐작튀엘 전 편집장을 임명하며 주요 주간지까지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도 극우 정치인과 미디어 기업의 관계는 긴밀하다. 에릭 제무르(Éric Zemmour)는 쎄뉴스 진행자 출신이고, 발뤠흐작튀엘 전 편집장 죠프루와 르쥔(Geoffroy Lejeune)은 극우 정당 수장이었던 마린 르 펜 및 그 가족과 친분이 깊으며, 제무르가 창당한 정당에도 참여한 인사다. 이렇게 재벌이 지원하는 극우 정치인들과 극우 미디어의 상호작용은 극우 세력은 물론 극우 미디어까지 주류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주류 미디어에 진입한 극우 미디어들은 사람들에게 프레이밍, 의제 설정, 침묵의 나선과 같은 미디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적절하게 극우 인사가 아닌 사람들을 끼워 넣으면서 극우 인사 인터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민자들로 인해 프랑스에 가해질 수 있는 위협 등 사회적 불안, 이민, 이슬람에 관한 의제를 중심으로 극우 정당이나 지지 세력이 주장하는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틀 짓기 한다. 다채널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그들의 의제와 주장을 누적적이고 편재적으로 확산시켜 여론을 파고든다.
극우 받아쓰는 주류 미디어, 극우 ‘스피커’ 역할 하기도
극우 세력의 득세에 기여하는 것이 극우 미디어뿐만이 아니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23년 16세 소년이 이민자 배경 청년에게 살해 당한 사건과 이에 대한 반이민자 시위에 대해 쎄뉴스같은 극우 미디어 채널이 가장 먼저 보도하면서 뒤이어 극우 성향과 무관한 주류 미디어들조차 경쟁적으로 줄줄이 보도했다. 이러한 현상은 2022년 대선 이후 지속되고 있다. 가령, 에릭 제무르를 비롯해 그의 아내, 제무르 지지 유명 인사에 대한 인터뷰가 극우 성향의 미디어에서 이뤄지면 뒤이어 모든 뉴스 채널이 인터뷰를 요청하고 줄을 서는 것이다. 주류 미디어가 극우 세력의 주장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극우 세력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극우 세력은 자신들이 주류 미디어에서 가시화되고. 자신들의 의제가 언급되는 것 자체가 ‘문화적 전투’에서의 승리라고 본다. 의도하지 않게 주류 미디어가 보도 경쟁에 나서면서 극우의 어휘와 의제를 퍼뜨리고 그들을 수면 위로 노출하는 것이다.
극우 미디어가 아닌 주류 미디어들이 극우 세력의 활동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자료를 활용함으로써 극우의 ‘스피커’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지난 3월 말 국민연합(RN) 마린 르 펜이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 4월 초 국민연합 지지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때, 프랑스 공영방송사 채널인 프랑스2(France 2)와 뉴스 전문 채널 베에프엠떼베(BFMTV)가 집회 측 영상을 그대로 받아 보도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 경찰 측 추산 집회 인원은 7,000명 정도였으나, 집회 측 영상은 그 보다 훨씬 다수의 인원이 밀집한 것처럼 보이도록 촬영됐다. 문제는 극우 미디어의 존재와 그들의 편파적인 여론 호도, 주류 미디어의 극우 세력 의제화에 대해 이렇다 할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규제의 선을 넘는 경우에 대해 제도적인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오가며 생명력을 유지하는 극우 미디어들을 근본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롱티에르 기자들의 국회 퇴거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극우 미디어들이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보면 언론의 자유, 다원성 등 민주주의 사회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미디어 규범과 이념들이 딜레마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3일 계엄 이후 약 4개월간 한국 사회에서도 극우로 분류될 수 있는 세력이 갑작스럽게 가시화됐다. 그들의 적극적인 유튜브 활용도 있었지만 기성 언론이 균형 보도를 내세우며 그들의 모습을 앞다퉈 노출시킨 면이 적지 않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극우 미디어가 인쇄 미디어나 방송 미디어 차원에서 주류 미디어로 진입했다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프랑스 사례를 볼 때, 이 또한 머지 않을 수도 있다. 프랑스나 한국이나 극우 세력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미디어와 극우 세력의 가시화에 관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1) 쎄위트(C8)는 그동안 방송통신 규제기관으로부터 다양성 부족, 방송 윤리 위반, 규제기관의 권고 불이행 및 불법 등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제재를 받아왔고, 이를 비롯한 여러 누적된 문제들로 인해 결국 방송 채널 재허가를 받지 못해 올해 3월 1일을 기점으로 폐지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