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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던 독일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안이 무산됐다. 인상안 통과를 위해서는 독일 16개 주가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하지만 작센안할트주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동안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지던 주의회 의결 과정에서 수신료 인상이 저지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수신료를 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아 언론 자유를 핍박하고 있다는 비판과 공영방송의 안일함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인 ARD와 ZDF, 도이칠란트라디오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독일 수신료 인상, 어떻게 결정하나
독일 공영방송 수신료는 방송재정국가협약(Rundfunkfinanzierungsstaatsvertrag)에 따라 설치된 독립기구 방송재정수요조사심의위원회(KEF, Kommissionzur Ermittlung des Finanzbedarfs der Rundfunkanstalten)가 책정한다. KEF는 주회계감사원 및 미디어, 기술, 행정 분야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2년마다 한 번씩 공영방송의 재정 상태를 분석하고 적정 수신료를 평가한다. 수신료 책정은 방송국의 비용 절감 정책과 인건비 등을 주요 기준으로 한다. 16개 주 정부는 KEF의 권고에 따라 수신료를 결정한다. 권고를 무시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검증 가능한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16개 주정부의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만 수신료 변경이 가능하다.
현재 독일 공영방송 수신료는 17.50유로(약 2만 3,000원)다. KEF 권고에 따라 2021년 1월부터 18.35유로(약 2만 4,000원)로 85센트 인상될 예정이었다. 인상안은 지난 3월 주총리회의에서 합의됐는데, 라이너 하젤로프(Reiner Haseloff) 작센안할트주총리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의회에서 합의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 당시부터 이미 내부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6월 주총리회의에서는 작센안할트를 포함해 16개 주정부가 모두 인상안에 서명했으며, 주의회 동의도 하나씩 마무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12월 8일 작센안할트주총리가 주의회에 제출한 수신료 인상안을 표결을 하루 앞두고 자진철회함으로써 인상안이 사실상 부결됐다.

수신료 둘러싼 작센안할트주의 정치 갈등
구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주는 2016년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 Alternative f r Deutschland)이 의석수 2위를 차지해 독일 전역에 ‘충격’을 준 곳이다. 의석수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제1당 기민당(CDU)은 사민당(SPD), 녹색당(Gr ne)과 연정정부를 구성했으며 AfD는 거대 야당으로 정치적 입지를 견고히 할 수 있었다.
연정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3개당 중에 SPD와 녹색당은 수신료 인상을 찬성했지만, CDU는 반대 입장이었다. 이들은 공영방송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고, 비싸며, 담론이 부족하다고 지적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 위기는 수신료 반대 논리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문제는 CDU의 입장이 극우 정당 AfD의 당론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AfD는 초기부터 공영방송을 ‘친정부’, ‘국영방송’, ‘거짓방송’이라는 키워드로 비판하면서 수신료 반대에 앞장섰다. 연정정부 내에서는 분열이 일고, CDU와 AfD가 힘을 합쳐 수신료 인상안을 부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수신료 인상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작센안할트주총리가 수신료 인상안 반대 인터뷰를 했던 주내무부장관을 경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주내무부장관이자 CDU 지역당 위원장인 홀거 슈탈크네히트(Holger Stahlknecht)는 지난해 12월 4일 지역신문 폴크스슈팀메(Volksstimme)와의 인터뷰에서 “(공영방송에서) 더욱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담론이 가능해야 한다”면서 “비용 절감 노력을 충분히 했는지도 의문스럽다”1)고 말했다. 또한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지역의 변동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영방송이 도덕적으로 우월적인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수신료를 둘러싼 다른 당과의 갈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CDU가 소수 정부가 될 수도 있다”며 연정정부 해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주총리는 연정 갈등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같은 당 소속이자 차기 주총리로 꼽히는 주내무부장관을 바로 해임했다. CDU 내부 갈등도 불거진 셈이다.
작센안할트주총리는 주의회 표결을 하루 앞둔 2020년 12월 8일 수신료 인상안을 결국 자진 철회했다. 표결을 강행했을 경우 CDU와 AfD의 반대로 부결될 게 명백한 상황이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CDU와 극우 정당 AfD의 ‘화합’이 드러나게 된다. 주총리는 그 결과만큼은 막고자 했다.
평소 극우 득세 지역으로 무시당하던 1개 주 때문에 독일 전역의 수신료 인상이 불가능해졌다. AfD가 역대급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AfD 측은 “AfD의 승리이며, 야당이 정치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줬다”면서 “우리가 없었다면 수신료는 벌써 인상됐을 것”이라며 자축했다.
공영방송, 즉시 헌재소원 제기
방송 언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공영방송 ARD, ZDF, 도이칠란트라디오는 2020년 12월 11일 작센안할트주의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과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마를렌 티메(Marlehn Thieme) ZDF 방송위원회 의장은 작센안할트주의 결정이 “명백히 부적절한 정치적 결정”2)이라면서 신속한 법적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공영방송국이 있는 자를란트주와 브레멘주 정부는 헌법소원을 지지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입장문을 제출했다. 주정부 간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라인란트팔트주 담당관은 다른 주정부도 법적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기자들의 비판도 잇따랐다. 독일기자협회(DJV, Deutscher Journalisten-Verband)는 “작센안할트주총리와 연정정부는 공영방송 미디어 정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이 결정은 수천 명의 방송 저널리스트들의 등에 대고 정치적 파산 선고를 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독일기자협회는 코로나 시대 공영방송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수신료 인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동시에 수신료를 ‘정치 무대’로 올려놓는 정치인들을 비판해왔다. 토마스 포레이어(Thomas Vorreyer) 중부독일방송(MDR) 기자는 “(수신료 인상안을) 작센안할트주 홀로 반대하는 것은 이들 주장의 설득력을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경제 위기를 근거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코로나19는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데, (다행히도) 가장 여파가 적은 작센안할트주만 수신료 인상에 맞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하지만 공영방송 측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기각, 본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신료는 현행 17.5유로(약 2만 3,480원)로 유지된다.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도 새겨들어야
이번 수신료 문제가 작센안할트주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견도 있지만, 공영방송의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도 있다. 먼저 조직이 너무 비대하다는 비판이다. 마르쿠스 쿠어츠(Markus Kurze) 작센안할트주 미디어정책 담당관은 MDR과의 인터뷰에서 “공영방송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정말로 100개 가까운 채널이 필요하냐”면서 “지불할 만한 수준의 수신료, 수용할 수 있는 공영방송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규모가 돼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인상안과 함께 공영방송의 구조 개혁이 논의될 계획이었다.
마르쿠스 브라우크(Markus Brauck) 슈피겔(Spiegel) 소속 기자는 “AfD가 지금까지 가장 큰 정치적 승리를 거두는 데 CDU가 일조했으며, 공영방송도 시청자들을 내용적으로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극우뿐만이 아니라 사회 각계에 제기되는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브라우크 기자는 공영방송이 치열한 정치 담론을 이끌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명확한 정치 노선을 보이는 신문과는 달리 수신료로 만들어지는 공영방송은 객관성과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하지만 지금 공영방송을 오히려 안일하게 만들고 있다.
통일 후 30년, 구동독 지역의 역동성과 극우 정당의 이유 있는 성장, 팬데믹 시대 치열한 담론이 공영방송에는 보이지 않는다. 구동독 지역을 아우르는 MDR을 제외한 방송국에서 구동독 지역은 여전히 타자화돼 있으며 부정적인 키워드로 둘러싸여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는 정부의 홍보처가 돼 방역 정책을 그대로 전달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특히 많았다. 브라우크 기자는 “모든 방송국은 모든 사고방식을 지배한다. 시민 교육도 마찬가지다. 연합군은 독일의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해 공영방송을 설치했다. 그것은 그동안 다 익혔다”면서 “지금 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광범위한 토론을 할 만큼 충분히 성숙해있다. 현재 독일은 공영방송이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논쟁적이며, 용감하고, 흥미진진하다”고 지적했다.
독일 공영방송 수신료는 또다시 법원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모든 가정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독일의 수신료 체계는 2013년부터 이어진 지난한 소송을 거쳐 2018년 확립됐다. 하지만 공영방송이 독일 전역의 시청자들을 제대로 납득시킬 수 없다면 이제 수신료를 인상할 때마다 법원을 거쳐야할지도 모른다.
1) Michael Bock, <„Meine CDU ist nicht braun“>, volksstimme.de, 2020.12.4, https://www.volksstimme.de/sachsenanhalt/stahlknecht-meine-cdu-ist-nicht-braun
2) <Rundfunkbeitrag wird ein Fall für Karlsruhe>, Süddeutsche Zeitung, 2020.12.11, https://www.sueddeutsche.de/kultur/fernsehen-rundfunkbeitrag-wird-ein-fall-fuer-karlsruhe-dpa.urn-newsml-dpa-com-20090101-201211-99-652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