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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일간지의 한 중견 기자는 자기가 담당하는 국토교통부에서 하루 세 건 이상의 보도자료와 2~3건의 설명자료를 받는다.1)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대림산업 등 10대 건설사에서도 하루에 총 3~4건의 보도자료가 나온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도로공사 같은 공기업까지 합하면, 매일 받는 보도자료는 10건이 넘는다. 그 내용을 일일이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다른 종합일간지의 정치부 기자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맡고 있다. 담당 기관이 두 개라서 일이 단순할 것 같지만, 정당의 보도자료와 대변인의 논평, 주요 회의의 발언 자료 등을 합하면 하루에 10~20개의 문건을 검토해야 한다.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정당과 단체들이 주최하는 기자회견도 10여 건이 넘는데, 그것들도 챙겨야 한다.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만지작거리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기자 수가 줄어서 거의 모든 기자는 동료 기자의 출입처도 교차 담당(백업)하고 있다. 검토해야 할 보도자료와 써야 할 기사의 절대량이 증가했다. 예전에는 기자들이 취재원을 만나려고 사무실을 돌아다니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업무량이 많아서 그럴 시간이 별로 없다. 부동산 담당인데 주요 출입처인 국토교통부가 있는 세종시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기자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그랬다. 또한, 행정기관과 기업은 언론 접촉에 대한 내부 규정을 강화해 기자가 관계자를 만나기는 예전처럼 수월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한국 기자의 취재는 문서를 검토하고 전화 통화로 취재를 보강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 보도자료가 있다. 한마디로, 보도자료 과부하다.
가디언 교육 기자가 교육부엔 가지 않는 이유
한국 기자들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보도자료에 파묻혀 있지만, 보도자료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검찰을 담당했던 기자는 보도자료가 없어서 아침마다 회사에 기삿거리를 보고할 때 애를 먹었지만, 국토교통부를 맡고 보니 관련 기업들로부터 보도자료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했다. 기자들은 보도자료가 없으면 기사 아이템을 스스로 발굴해야 하는데, 시간이나 취재비 측면에서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예를 들어, 종합일간지의 전자·통신·IT 담당 기자는 온라인 기사를 포함해 하루 3~4건의 기사를 작성하고, 일주일에 3~4건의 경제면 머리기사를 쓴다. 이런 기사의 다수가 보도자료에 기초한 기사다. 그래서 보도자료가 없다면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 시간을 못 메울 것이라고 기자들은 우려한다.
외국에서도 정부 기관과 기업이 보도자료를 낼 터인데, 기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영국 교육부는 하루에 2~3건의 보도자료를 내지만, 일간지 가디언 기자들이 그것을 기사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디언의 교육 담당 기자는 교육부의 보도자료 10개 중 1개 정도만 기사로 보도한다. 보도자료를 기사로 쓰지 않는다면, 도대체 가디언 기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기삿거리를 찾는 것일까? 한국 기자와 달리, 가디언 기자는 교육부가 있는 건물에 잘 가지 않는다. 물론 특별한 발표가 있으면 가지만, 그런 경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다. 가디언 기자는 하루의 그 많은 시간을 각급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을 만나고, 가정에서 학부모를 만나는 데 쓴다. 거기가 ‘교육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가디언 기자들이 영국 교육부를 교육의 현장으로 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정부는 절대로 자기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가디언 기자들에게 있다. 반대로 말하면, 정부는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 하며 그것을 전파하는 공인된 통로가 보도자료다. 그래서 존 헨리(Jon Henley) 가디언 기자는 “보도자료는 기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도자료는 정부가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일 뿐이므로 기자는 정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들이 밀어붙이려는 것은 무엇이며 조정하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들은 보도자료를 받으면 그것이 진실인지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라면 현장에 나가서(on the ground) 커튼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부가 기자들에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의 진짜 모습을 찾아야 한다.” 존 헨리 기자의 말이다.
가디언 기자는 교육부 대신 의회의 교육위원회에 간다. 영국 하원의 교육위원회는 격주에 한 번 정도 열리는데, 거기에서 좋은 기삿거리를 건질 수 있다. 의회에는 가디언의 정치부 기자가 있으므로 둘이 함께 교육위원회를 취재한다. 같은 위원회를 취재해 교육 담당 기자는 교육 이야기를 쓰고, 정치부 기자는 정치 이야기를 쓴다.
보도자료를 다루는 방식의 차이
로이터 같은 유명 뉴스 통신사는 전 세계의 온갖 기관들이 홍보 대상으로 삼는 매체다. 매일 전 세계에서 로이터로 들어오는 보도자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텐데 로이터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로이터로 들어오는 모든 보도자료는 ‘보도자료 전담반’이 있는 인도 벵갈루루(Bengaluru) 지국으로 전달된다. 그곳의 기자 250여 명은 분야별로 보도자료를 떠맡아 기본적인 팩트체킹과 간단한 추가 취재를 한다. 24시간 체제다. 이렇게 로이터에서 보도자료를 기사로 1차 가공하는 사람을 섀도 리포터(Shadow Reporter)라고 부른다. 영어에 능통한, 싼 임금의 비정규직 젊은이들이다. 섀도 리포터 수십 명당 로이터의 멘토 기자가 붙어서 이들의 기사를 검수하고 송출한다. 섀도 리포터 중에는 보도자료 처리 외에 기사 발제도 해 로이터의 정식 기자로 채용된 사람이 많다. 자연스럽게 채용 연계형 인턴 제도가 정착됐다.
로이터가 섀도 리포터를 운영하는 것은 자사의 정규직 기자들이 보도자료 처리에 시간을 뺏기지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하찮은 일은 인턴이 맡고 자사 기자는 로이터만의 차별적이고 심층적인 기사를 만든다는 것이 회사의 목표다. 로이터는 폴란드에도 100여 명 규모의 섀도 리포터 지국을 운영하고 있다. 폴란드 지국은 보도자료를 유럽 국가들의 여러 언어에 맞춰서 기사로 만들어 송출한다.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보도자료를 서로 다르게 대하는 것은 취재에 대한 기본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 기자들에게 정부, 검찰, 경찰, 법원, 기업 같은 출입처는 가장 정확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기삿거리가 발생하며 취재도 이뤄진다. 그 대표적인 통로가 보도자료나 기자회견이다. 즉 한국 기자들에게 출입처와 보도자료는 아이디어를 구하고 취재까지 마무리하는 종착점이다. 이에 비해 외국 기자들에게 출입처나 보도자료는 취재의 출발점일 뿐이다. 모든 정부 정책은 결국 시민의 일상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정책에 대한 평가도 시민 일상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논리라면, 교육 정책을 다루는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부 당국자가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다. 그래서 가디언 기자는 교육부가 입주한 건물에는 가지 않고, 학교와 가정을 방문했다. 한국 기자들은 교육부 기자실에 가지 않으면 특종을 놓치고 정보전(戰)에서 밀릴 것으로 걱정하지만, 가디언 기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먼저 알아내는 것이 무의미함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관건은 그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내느냐다.
기자 아닌 ‘정보 처리자’로 가는 지름길
외국 기자들도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인 노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뉴욕타임스 기자들 사이에서 정부의 보도자료를 더는 받아서 쓰지 말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로 정부의 정책 예고 기사는 곧바로 근절됐다. 더 적극적인 노력은 1990년대 미국 공공저널리즘(public journalism) 사례에 나온다. 대통령 및 주지사 선거가 있었던 1992년에 미국 일간지 위치타이글(Wichita Eagle)과 샬럿옵서버(Charlotte Observer)는 각각 자기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선거의 후보자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는지 조사했다. 기자들은 거리 유세나 기자 간담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거 후보자에게 유권자들의 희망 사항을 질문했다. 그리고 그 답변으로 기사를 만들어 신문 지면을 채웠다. 반면에 후보자가 하는 말이나 그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인의 입만 보고 사는 사람들이다. 선거철에는 더하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시민이며 정치의 결과는 시민의 일상에 나타난다. 교과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시민이다. 위치타이글과 샬럿옵서버는 과거 자신의 경마식 보도와 정쟁 보도를 반성하고, 취재 보도의 근원을 정보 공급자에서 정보 소비자 쪽으로 완전히 바꿔버렸다.
한국 언론이 일거에 보도자료를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보도자료를 보도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카미야 타케시(神谷毅) 아사히신문 서울 특파원은 “한국에 와서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복붙’(복사해서 원고에 붙이기)하는 것을 보고 제일 놀랐다. 아사히신문에서는 문제의식을 갖고 보도자료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야 지면에 실린다”라고 말했다. 요즘의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보도자료의 정보 가치는 사실상 ‘제로’다. 정부와 기업 등 정보 공급자는 자신의 플랫폼에서 직접 보도자료를 시민들에게 전달한다. 예전처럼 기자이기 때문에 보도자료를 먼저, 수월하게 받아본다는 이점이 전혀 없다. 이런 시대이므로 기자가 보도자료로 기사를 쓰면, 오히려 정부와 기업이 기자를 얕잡아보는 빌미만 제공할 뿐이다.
보도자료에 의존하면, 뉴스의 주도권은 정부와 기업에 넘어가며 기자는 정보 처리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정부와 기업에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외에도,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 나라가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 나라는 독재 국가이거나 보도자료의 본질을 잘 모르는 언론 후진국이다. 한국 기자들은 여러 이유에서 보도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겠지만, 그 결과는 결국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대변하는 것이다.
1) 이 글의 내용 대부분은 <언론사의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박재영·허만섭·안수찬,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에서 발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