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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 플랫폼 중심의 뉴스 유통, 사회 균열을 조장하는 정파적 보도, 개혁이 없는 시대착오적 관행 등으로 한국 저널리즘은 언론 신뢰도 최하위라는 오명을 얻었다. 실망과 불신으로 질적 추락 중인 한국 저널리즘, 지금의 위기를 변화와 개혁으로 극복하고 저널리즘의 품격을 회복할 수 있을지 톺아본다. 편집자 주

저널리즘의 ‘품격’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저널리즘 매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직업 덕목이 무너지고 언론이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다는 뜻이다. 기자를 ‘기레기’라 비하하는 표현이 언론을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려가 일부 업계 종사자나 학계의 관심사를 넘어서 대중적으로 통념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레기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 층위는 현재 한국 언론이 저널리즘 품격 측면에서 안고 있는 문제점의 징후를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첫째는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 콘텐츠의 저열함에 대한 실망, 혹은 품질에 대한 불신과 관련된 징후다. 기사가 팩트와 투명성이라는 기본 원칙을 무시하면서 질적 추락을 계속하고, 단기적인 주목도가 높은 기사만 쫓아다니는 바람에 뉴스 가치라는 잣대도 유명무실해졌다. 둘째는 언론의 정파화가 초래하는 현실 왜곡과 사회 갈등 심화와 관련이 있다. 언론은 사회적 균열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면서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셋째는 복합적 문제점이 누적된 결과물로서 언론에 대한 신뢰의 소멸을 들 수 있다. 기사 내용의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언론사 이름은 이제 품질을 보증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수용자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낙인으로 전락했다.
저널리즘 품격 하락에 대한 우려는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저널리즘 영역에서 일어난 변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서 매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널리즘의 전통적인 원칙이 무너지고 상업주의의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뉴스 유통 환경이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언론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전반적인 구조적 변화가 위기의 주된 배경을 이룬다. 이 추세는 언뜻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관심사처럼 보이지만 서구의논의 틀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널리즘의 품격 하락은 새로운 기술과 시장 환경 변화의 산물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한국적인 전통과 맥락이 닿아있는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구의 틀에 이러한 한국적인 특수성을 고려해서 파악해야 한다.
한국 언론에서 품질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시장’은 서구 학자의 글에서 다루는 시장과 성격이 다르다. 서구의 논의에서 흔히 보듯이 시장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공공 부문의 육성이란 주장이 우리 사정에는 딱히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보이는 문제점에 대한 진단은 해외 논의와 유사해 보이지만 한국적 현실이 가진 특성을 감안하고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 언론에서 시장이 저널리즘의 품격 하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본다.
플랫폼 중심 뉴스 유통이 낳은 뉴스의 하향 평준화
한국 언론에서 시장의 특성을 읽는 첫 번째 키워드는 플랫폼이다. 오랫동안 뉴스란 언론사가 생산해서 묶음 형태로 제공하는 종합 상품이었다. 뉴스 소비자 역시 선별되고 편집된 패키지 형태로 뉴스를 받아서 소비했다. 언론의 영향력은 바로 이 선별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행사됐다. 이 패키지 뉴스 시대에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뉴스와 더불어 재미는 없지만 적어도 꼭 필요한 정보를 골고루 담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인터넷과 포털, 모바일이 뉴스 유통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뉴스 비즈니스의 이 모든 관행이 다 무너졌다. 뉴스 산업은 이제 언론사라는 생산자와 포털이라는 유통업자로 이원화되고, 뉴스는 패키지가 아니라 낱개 단위로 유통된다. 뉴스 가치 선별은 편집자의 판단이 아니라 이용자 조회수가 주도하게 됐다. 뉴스의 주도권은 사실상 포털, 특히 네이버라는 단일 창구로 집중됐다. 이처럼 뉴스 산업에서 일어난 매우 이례적인 수준의 독점화는 매우 독특한 한국적인 현상이었다. 물론 독점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포털이 편집 기능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고 개별 뉴스사이트 구독이나 알고리즘 방식의 뉴스 노출 등으로 전환하는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언론사는 편집 기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고 개별 뉴스 하나하나에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 결과 언론을 추락시킨 모든 부조리한 문제점이 발생했다.

온라인에서 노출 경쟁으로 생겨난 가장 두드러진 징후는 시간 경쟁과 기사 부실화다. 우선 거의 초 단위로 보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사의 질적 하락이 심해졌다.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거치지 않은 함량 미달의 기사를 ‘단독’, ‘속보’ 따위의 이름을 붙여 남발하면서 언론 자체가 조롱거리가 됐다. 미확인 기사, 의도적 왜곡이나 과장이 심한 기사가 넘쳐나다 보니 메이저 언론사가 오히려 가짜뉴스의 주범이라는 비판도 높아졌다. 확인된 팩트보다는 자극적 인용문으로 눈길을 끌려는 기사도 많아졌다. 공인도 아닌 ‘논객’의 발언이 포털 머리기사에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는 수준을 넘어서 독자적인 기사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쯤이면 뉴스 품질 하락을 넘어 뉴스 가치 판단이란 직업 규범이 붕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우려스러운 징후는 메이저 언론사가 이러한 병폐를 저지르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설리, 구하라 등 젊은 연예인이 악성 댓글로 잇따라 세상을 등졌는데, 언론 보도는 이 댓글을 상업적으로 부추겨 비극을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 결과에 의하면 설리 사망 사건 이전 6개월 동안 보도량은 연예 스포츠 매체보다 일반 일간지가 오히려 더 많았다. 포털이 악성 댓글 관련 기사를 올리면, 이 댓글들이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하고, 언론이 이를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기사화하는 식의 악순환이 일어났다. 이처럼 사실 여부나 뉴스 가치와 무관하게 조회수 높이기에만 열중하는 행태에서는 언론사별로 차이가 없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온라인 플랫폼상의 경쟁이 언론 간의 차별화와 품질 경쟁이 아니라 부정적 방향으로 이어진 것이다. 원래 인터넷은 다양성과 심층성 확보, 진입 장벽 해소 등 전통적 시장 환경의 기술적 한계를 해소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등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과 달리 실제로는 과당 경쟁에 따른 획일화와 질적 하락이라는 하향 평준화만 나타난 것이다.
갈등 사회와 정파성의 상업화
저널리즘 시장의 문제점을 읽는 두 번째 키워드는 정파성이다. 현재 넘쳐날 정도로 많은 언론이 붕어빵처럼 엇비슷한 기사를 양산하는 가운데서도, 이들을 구분하는 차이가 있다면 바로 과도한 정파성이다. 언론은 선거나 국회보도뿐 아니라 경제정책, 과학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파적 차이를 드러내면서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정파적 보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가 코로나19 보도였다.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대처는 의학과 방역이라는 전문 영역에 속하는데, 여러 언론은 이것조차도 정파적인 소재로 악용했다. 질병을 지칭하는 용어부터 정파성에 따라 달랐다. 일부 보수신문은 ‘우한폐렴’이나 ‘우한바이러스’라는 호칭을 고집했고, 심지어 WHO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로 용어를 통일했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용어는 감염병 확산에서 문제의 근원은 중국과 친중 정권이라는 정파적 시각에서 출발한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내내 언론은 부적절한 용어 사용에 그치지 않고 정파적, 선정적 프레임으로 사태를 보도해 사회 갈등을 부추겼다.
언론의 정파성은 주제나 논리적 방향을 자의적으로 결정해 사회적 의제 설정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 영역까지 정파성으로 채색하고 팩트조차도 정파적 시각에 맞춰 선택적으로 보고, 과장과 왜곡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20번 문제 관련 오보가 좋은 예다. 처음에는 ‘수능 문제로 정권 홍보?’라는 시각에서 비판하다가 잘못된 사실에 근거했음이 밝혀지면서 망신을 당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능이 바보 감별? 너무 쉬웠던 한국사 1번, 20번’이라는 제목으로 정부 비판에 나섰다. 보도기사에서 교묘하게 정파적인 사실 해석을 시도하다가 어설프게 속내를 들킨 해프닝이었던 셈이다. 언론이 이렇게 정파성의 시각에서 매사를 왜곡하게 되면 언론의 존재 이유인 사회적 소통이나 논의가 불가능해진다.
언론의 정파성이 이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흘러간 데는 물론 한국 사회 자체의 변화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언론의 정파성은 한국 사회 전반의 정치적 균열을 그대로 반영한다. 세대와 지역, 계층을 가로지르는 복잡한 균열의 선이 한국 사회의 통합과 사회적 소통을 잠식하고 있고, 이것이 언론이라는 지형에도 반영된 것이다. 미디어 이용자 시장 역시 이러한 구분선을 따라 분열돼 있다. 정파성을 상업적으로 악용하는 언론의 행태는 사회적 균열에 편승해 체계화된 무지를 조장하고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한 셈이다. 언론의 정파성은 사회 상황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사회 갈등을 부추겨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정파적 언론이 던지는 목소리에는 박수와 비난이 동시에 따를 뿐 대화와 소통을 통한 합의의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낡은 시장구조의 유산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읽는 세 번째 키워드는 전통이다. 현재 온라인 환경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된 온갖 문제점이 사실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진 낡은 전통과 구조에 뿌리박고 있는 해묵은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서구에서 언론 품격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시장이라는 틀은 한국 언론에서의 시장 상황을 읽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한국 언론에서도 시장이 저널리즘을 위협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이 미친 영향은 성격이 다르다. 언론 지형 역시 기형적인 시장에서 형성됐기에, 엄격히 말해 시장의 위협으로 무너질 자랑스러운 전통이라는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론의 위기와 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수십 년 동안 존재했지만, 정작 언론 내부에서 체감할 만한 수준의 변화나 개혁은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저널리즘의 개혁에 관한 논의는 기술적 플랫폼에 관한 일부 내용을 제외하면 수십 년 동안 거의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반복됐다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이자 대책으로 제시된 객관성과 투명성, 심층성, 신뢰 강화 등에 관한 논의는 공허한 논의로 겉돌았다. 이 같은 외부의 비판과 제언에 대해 언론계 내부에서는 대개 ‘현장의 실정’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로 무시하는 태도가 주류를 이뤘다. ‘현장’이라는 표현은 악습과 시대착오적 관행이 직업적 경험이자 경륜으로 둔갑해 재생산되는 데 대한 알리바이 구실을 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론인의 사고 습관과 감각, 관행은 구조적 환경의 결과로 누적된 ‘구조화된 구조’에서 이제는 구조적 변화를 가로막는 ‘구조화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언론이 이처럼 외부 비판에 대해 둔감할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 시장이 갖고 있던 전근대적 낙후성과 관련이 있다. 언론사, 특히 신문 간의 경쟁은 서구적 의미의 시장 기제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광고는 측정된 마케팅 효과가 아니라 광고주의 위기 관리 차원에서 지출하는 보험료나 홍보 비용에 가까웠다. 이처럼 언론 기업이 경제적 부가가치 생산이 아니라 광고 산업에 대한 기생 업종의 성격을 띠다 보니, 시장이 가진 퇴출과 정화 기능도 작동하기 어려웠다. 시장의 부작용은 심각하되 시장이 가져오는 변화와 자기 혁신의 학습 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 미디어 시장의 쇠퇴와 심각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는 언론사가 없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이다. 이 기적 아닌 기적은 개혁 해법의 모색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처럼 전근대적 시장에서 언론사의 경쟁력은 콘텐츠의 품질보다는 전체 부수나 시장 위치를 고려한 ‘등급’ 차원으로 결정되니, 시장 분화와 내용의 차별화 전략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론직필, 고급지 등 무슨 수식어를 붙이든 다 사탕발림에 불과할 뿐, 일간지 시장에는 오직 타블로이드 성격을 띠는 정파적 신문만 넘쳐난다. 위기가 워낙 오래 지속되다보니 언론 내부에서도 문제점에 대한 불감증이 만연하게 됐고, 언론 위기라는 담론은 역설적으로 자기 혁신을 거부하는 의례적 알리바이에 그쳤다.
이 모든 문제점은 신뢰도 하락으로 나타났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에서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수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언론도 해외 직구’라는 조롱도 들린다. 이 평가는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언론의 문제점이 압축돼 표현된 징후다. 위기는 이처럼 산적한 문제점들이 중첩돼 형성된 것이라 단기간에 해결할 방도는 없다. 그렇지만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앞날에 언론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언론은 위기를 원론적 수준에서는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노력과 희생이 절실한 문제로 여기지는 않았다. 언론의 위기가 이 지경까지 추락한 것은 그동안 변화와 개혁의 어려움만 원론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작은 변화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결과다. 개혁과 혁신은 새로운 것을 더하는 작업이 아니라 낡은 부분을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한국 언론에는 4차 산업혁명이나 빅데이터에 관한 논의 이전에 우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절실하다. 그러니 새해에는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고 개혁의 작은 씨앗이라도 뿌리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